유시민 “‘언론개혁’을 위한 전쟁, 결코 끝나지 않았다”

입력 2019.06.01 (18:51) 수정 2019.06.0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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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당시 언론과의 전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참패했다고 봐요. 화력에서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을 노 대통령은 한 거예요. 그리고 졌어요. 그러나 전쟁이 끝났나? 그건 결코 아니라는 거죠."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노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출연한 '저널리즘 토크쇼 J'(이하 J)에서 가장 힘주어 한 말이다.

J의 고정패널인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 가운데 '언론개혁'이 국민들에 의해 기억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언론을 불신하고 언론의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열망하고 있는 바탕을 노무현 대통령이 깔았다"고 분석했다.

전쟁의 시작, '언론사 세무조사' 소신 발언

"언론은 더 이상 특권적인 영역이 아닙니다. 언론과 싸울 기개있는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언론과의 전쟁 선포를 불사할 때가 됐습니다"

노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재직했던 지난 2001년 2월. 노 대통령은 출입기자들과 간담회에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얘기했다.

언론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기 세무조사는 5년마다 한번씩 실시되는데 대부분의 언론사가 7년 동안 세무조사를 받지 않던 상황이었다. 언론사들은 세무조사 자체를 언론 탄압과 동일시했다.


조선일보는 2월 9일자 '노무현 씨의 언론 전쟁'이라는 사설에서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발언이며 언론이라는 것이 당장 압살해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악마 같은 존재라는 망상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노무현 장관을 '노무현 씨'라고 낮춰 부르는 방식으로 스스럼 없이 반감을 드러냈다. 경향신문 역시 "민주사회에서 자신들에게 비판적이라고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니 이 무슨 비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인 발상이란 말인가"라고 썼다.

이에 대해 정준희 교수는 "언론사 세무조사는 김영삼 정부 때 한번 했다. 그전까지 안 받았던 게 사실은 신기한 것이다. 모든 법인들은 세무조사를 5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언론사만 안 받는 이상한 특권이었다. 당시 언론사들의 경영상태는 엉망이었다. 부채비율은 1000%가 넘는 언론사가 수두룩했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시장경제에 적합한 기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교수는 언론의 이중적 태도도 지적했다. "1997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술자리에서 기자에게 '창자를 뽑아버리겠다', '씨를 말려버리겠다'라는 말을 했지만 거의 보도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대선 기간 이 후보 선거캠프에서 '집권 후 언론 통제 방안'이란 문건이 폭로됐을 때도 대부분 언론사는 다루지 않았다. 집권 가능성이 높은 야당의 지도자가 만들어낸 것인데도 보도가 안 됐다. 얼마나 비일관적인 일인가?"라고 말했다.

노무현은 왜 '언론개혁'에 앞장섰나?


유 이사장은 노 대통령이 몇 번의 언론 경험을 통해 언론에 대한 강한 개혁의지를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노 대통령이 통합민주당의 초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1991년 9월. 조선일보는 당시 노 신임 대변인에 대한 프로필 기사 제목을 <고졸 변호사…상당한 재산가>라고 뽑았다. 그러면서 '한때 부산 요트 클럽의 회장으로 개인 요트를 소유하는 등 상당한 자산가'로 당시 노 신임 대변인을 소개했다.

이어 주간조선이 1991년 10월 6일자에서 다시 "노무현이 8인승 크루저와 같은 호화 요트를 즐겼다"고 보도했다. 9월 28일자 조선일보 5면 광고란에는 속옷차림으로 침대 앞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노무현의 만평과 함께 "통합야당 대변인 노무현 의원 과연 '상당한 재산가'인가"라는 제목의 광고를 내기도 했다.

유 이사장은 "노 대통령이 갖고 있던 요트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요트가 아니라 무동력에 돛 하나 달린 작은 배예요. 줄을 당기면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거 있잖아요. 노 대통령은 당시 1988년 서울올림픽 출전을 준비했어요. 그러면서 이런 얘길 했어요. '요트는 돈 있다고 하는 줄 아냐. 남자라야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인권 변호사가 호화 요트를 탄다고 하면 '이중인격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잖아요. '저 사람 믿지 마라'라는 메시지죠. 그러니까 당하는 정치인으로서는 몹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공격인 거죠"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 기사가 나간 다음해에 출마한 부산 동구 총선에 출마해 '5공 설계자' 가운데 한 명인 허삼수 후보와 맞붙어 패했다.

노 대통령은 조선일보사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주간조선의 기사가 국회의원 노무현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금으로 2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 판결을 사람들은 몰랐다. 다른 언론들이 침묵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당시 언론인들의 동업자 의식에 큰 절망감을 느꼈다'고 기록했다.

'언론 개혁'이라는 전쟁

노 대통령이 '언론 개혁'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유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모든 권력 가운데 선출되지도 않고 교체되지도 않고, 유일하게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언론 권력이예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배우와 관련된 스캔들이 만약 대통령의 아들이나 형이나 동생의 얘기라면 그냥 넘어갔겠어요? 통화 기록 1년치 다 없어지는 일이 가능하겠어요? 한국의 대형 언론사 사주들은 지금도 법 위에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견제받지 않고 선출된 적도 없고 교체되지도 않을 항구적인 사적 권력이 공론의 영역에서 미치는 힘을 무기로 삼아서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고 있는 이 사태를 참을 수 없다, 그거였어요"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언론 개혁에 나섰다. 2003년 2월 23일 신임 대통령 자격으로 가지는 첫 단독 인터뷰를 <오마이뉴스>와 진행하는 방법으로 '기성 매체 권력 분산'이라는 언론 개혁 방향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완전히 끊는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정권에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그 보도를 빼기 위해 어떻게든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비논리적인 방법으로, 흔히 말하는 로비적 방법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원칙대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 <오마이뉴스> 인터뷰(2003년 2월)-

또 청와대 기자실부터 '개방형 브리핑 제도'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청와대 취재 자격을 기존 청와대 출입 기자단에 소속된 언론사 기자가 독점하는 관행을 깨고자 했다. 언론사 지정석 방식으로 운영됐던 기자실을 폐쇄했다. 대신 대부분의 언론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브리핑룸을 신설해 기성 매체의 특권을 정상으로 되돌려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언론들은 이를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2003년 3월 17일자 '이창동 문화의 신취재지침 파문 확산'이라는 기사를 통해 "노무현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역시 외부 칼럼을 통해 "낡고 아마추어적인 언론정책이며, 노무현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의도가 없다면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라고 반발했다.

정준희 교수는 "기자실은 '취재 특권'에 가까웠고 기자들이 먹고 사는 핵심이었는데 노 대통령이 이걸 건드린 것이다. 정책의 지향은 상당히 선진적임에도 불구하고 기사들에서는 '왜 이 자는 무릎을 꿇지 않을까' 하는 심리가 읽힌다. 미국 뉴욕타임즈는 2004년 6월 13일 보도를 통해 한국의 개방형 브리핑제도에 대해 '언론과 권력을 서로 결착시켰던 고리가 드디어 해체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임기 마지막까지도 놓을 수 없었던 과제

기자들의 반발로 개방형 브리핑제는 노 대통령 임기 중반 이후 흐지부지 됐다. 기자실을 없애고 만든 브리핑룸이 다시 기자실이 됐고 출입 기자들은 알음알음 자기들까리 간사를 정해 기자단을 운영하곤 했다. 2007년 5월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에 노 대통령은 다시 한번 언론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브리핑룸을 통폐합하는 내용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었다. 언론은 더욱 단결해 더 격렬하게 반발했다. 동아일보는 '5공 때보다 더 악랄한 언론 통제'라고 주장했고, 경향신문은 '5공의 악몽이 떠오른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J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노 대통령에게 언론 개혁은 숙명이었다고 말했다.

"2007년에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 5년을 정리해보자면서 '언론과 관계가 이렇게 안 좋은 게 대통령으로서 잘못된 걸까?' 라고 물으셨어요.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내가 좀 더 융화적이어서 언론과 관계를 잘 풀었다면 개별 정책의 수행에는 좀 더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내게 역사적인 숙명이었다. 언론과 권력이 서로 거래관계를 맺고 그 권력을 유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국민에게 손해고 민주주의의 장애물이다. 언론 개혁이야 말로 구시대의 막내인 내가 해야만 하는 역할이다'"

'언론 개혁'을 위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유시민 이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개혁'을 이렇게 평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개혁'을 위한 전투에서 참패하셨어요. 저는 그렇게 봐요. 이길 수 있는 무기도 없었어요. 대통령은 혼자 말하는데, 신문사들은 여러 개가 매일매일 몇 백만부를 찍어내면서 한단 말이에요. 방송도 같이 얹어지죠. 그러니까 화력에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노무현 대통령은 한 거에요. 그럼 이 전쟁이 끝났냐? 그건 결코 아니라는 거죠."


유 이사장이 주목하고 있는 건 '대안 미디어'다.

"한때는 저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절망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거는 헤어날 방법이 없다, 현직 대통령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대안 미디어들이생기면서 이제는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도 가지기 시작했는데요. 저도 유튜브를 하잖아요. 예전에는 언론인들 바뀌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지금은 그런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냥 그대들은 그대들대로 사시오. 나는 나대로 살아갈 테니. 이제는 조금 견딜 만한 세상이 되었다. 그 정도의 태도로 살고 있죠"라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시민들에게 당부의 말도 남겼다.

"언론 소비자인 시민들이 의심해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게 다 사실은 아닐 수 있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해석이 전적으로 옳은 게 아닐지 몰라'...이런 생각을 좀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약간의 소망이나 희망을 갖게 됐다면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10여년 전 노 대통령이 했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언론이 달라져야 합니다. 언론의 수준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깨어있는 시민의 참여입니다. 더 많은 시민들이 기사의 생산과 유통에 참여하고 책임 있는 비판으로 언론의 정치 권력화를 견제해 나갈 때 언론의 수준과 기사의 품질은 더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 세계시민기자포럼 영상 메시지(2007년 6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토크쇼J'. 이번 주에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이해 준비한 특집 방송 2부 <노무현과 언론개혁②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방송된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안톤 숄츠 독일 기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송수진 KBS 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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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시민 “‘언론개혁’을 위한 전쟁, 결코 끝나지 않았다”
    • 입력 2019-06-01 18:51:53
    • 수정2019-06-02 10:03:01
    저널리즘 토크쇼 J
"재임 당시 언론과의 전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참패했다고 봐요. 화력에서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을 노 대통령은 한 거예요. 그리고 졌어요. 그러나 전쟁이 끝났나? 그건 결코 아니라는 거죠."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노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출연한 '저널리즘 토크쇼 J'(이하 J)에서 가장 힘주어 한 말이다. J의 고정패널인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 가운데 '언론개혁'이 국민들에 의해 기억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언론을 불신하고 언론의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열망하고 있는 바탕을 노무현 대통령이 깔았다"고 분석했다. 전쟁의 시작, '언론사 세무조사' 소신 발언 "언론은 더 이상 특권적인 영역이 아닙니다. 언론과 싸울 기개있는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언론과의 전쟁 선포를 불사할 때가 됐습니다" 노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재직했던 지난 2001년 2월. 노 대통령은 출입기자들과 간담회에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얘기했다. 언론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기 세무조사는 5년마다 한번씩 실시되는데 대부분의 언론사가 7년 동안 세무조사를 받지 않던 상황이었다. 언론사들은 세무조사 자체를 언론 탄압과 동일시했다. 조선일보는 2월 9일자 '노무현 씨의 언론 전쟁'이라는 사설에서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발언이며 언론이라는 것이 당장 압살해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악마 같은 존재라는 망상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노무현 장관을 '노무현 씨'라고 낮춰 부르는 방식으로 스스럼 없이 반감을 드러냈다. 경향신문 역시 "민주사회에서 자신들에게 비판적이라고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니 이 무슨 비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인 발상이란 말인가"라고 썼다. 이에 대해 정준희 교수는 "언론사 세무조사는 김영삼 정부 때 한번 했다. 그전까지 안 받았던 게 사실은 신기한 것이다. 모든 법인들은 세무조사를 5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언론사만 안 받는 이상한 특권이었다. 당시 언론사들의 경영상태는 엉망이었다. 부채비율은 1000%가 넘는 언론사가 수두룩했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시장경제에 적합한 기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교수는 언론의 이중적 태도도 지적했다. "1997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술자리에서 기자에게 '창자를 뽑아버리겠다', '씨를 말려버리겠다'라는 말을 했지만 거의 보도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대선 기간 이 후보 선거캠프에서 '집권 후 언론 통제 방안'이란 문건이 폭로됐을 때도 대부분 언론사는 다루지 않았다. 집권 가능성이 높은 야당의 지도자가 만들어낸 것인데도 보도가 안 됐다. 얼마나 비일관적인 일인가?"라고 말했다. 노무현은 왜 '언론개혁'에 앞장섰나? 유 이사장은 노 대통령이 몇 번의 언론 경험을 통해 언론에 대한 강한 개혁의지를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노 대통령이 통합민주당의 초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1991년 9월. 조선일보는 당시 노 신임 대변인에 대한 프로필 기사 제목을 <고졸 변호사…상당한 재산가>라고 뽑았다. 그러면서 '한때 부산 요트 클럽의 회장으로 개인 요트를 소유하는 등 상당한 자산가'로 당시 노 신임 대변인을 소개했다. 이어 주간조선이 1991년 10월 6일자에서 다시 "노무현이 8인승 크루저와 같은 호화 요트를 즐겼다"고 보도했다. 9월 28일자 조선일보 5면 광고란에는 속옷차림으로 침대 앞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노무현의 만평과 함께 "통합야당 대변인 노무현 의원 과연 '상당한 재산가'인가"라는 제목의 광고를 내기도 했다. 유 이사장은 "노 대통령이 갖고 있던 요트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요트가 아니라 무동력에 돛 하나 달린 작은 배예요. 줄을 당기면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거 있잖아요. 노 대통령은 당시 1988년 서울올림픽 출전을 준비했어요. 그러면서 이런 얘길 했어요. '요트는 돈 있다고 하는 줄 아냐. 남자라야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인권 변호사가 호화 요트를 탄다고 하면 '이중인격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잖아요. '저 사람 믿지 마라'라는 메시지죠. 그러니까 당하는 정치인으로서는 몹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공격인 거죠"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 기사가 나간 다음해에 출마한 부산 동구 총선에 출마해 '5공 설계자' 가운데 한 명인 허삼수 후보와 맞붙어 패했다. 노 대통령은 조선일보사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주간조선의 기사가 국회의원 노무현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금으로 2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 판결을 사람들은 몰랐다. 다른 언론들이 침묵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당시 언론인들의 동업자 의식에 큰 절망감을 느꼈다'고 기록했다. '언론 개혁'이라는 전쟁 노 대통령이 '언론 개혁'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유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모든 권력 가운데 선출되지도 않고 교체되지도 않고, 유일하게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언론 권력이예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배우와 관련된 스캔들이 만약 대통령의 아들이나 형이나 동생의 얘기라면 그냥 넘어갔겠어요? 통화 기록 1년치 다 없어지는 일이 가능하겠어요? 한국의 대형 언론사 사주들은 지금도 법 위에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견제받지 않고 선출된 적도 없고 교체되지도 않을 항구적인 사적 권력이 공론의 영역에서 미치는 힘을 무기로 삼아서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고 있는 이 사태를 참을 수 없다, 그거였어요"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언론 개혁에 나섰다. 2003년 2월 23일 신임 대통령 자격으로 가지는 첫 단독 인터뷰를 <오마이뉴스>와 진행하는 방법으로 '기성 매체 권력 분산'이라는 언론 개혁 방향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완전히 끊는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정권에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그 보도를 빼기 위해 어떻게든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비논리적인 방법으로, 흔히 말하는 로비적 방법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원칙대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 <오마이뉴스> 인터뷰(2003년 2월)- 또 청와대 기자실부터 '개방형 브리핑 제도'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청와대 취재 자격을 기존 청와대 출입 기자단에 소속된 언론사 기자가 독점하는 관행을 깨고자 했다. 언론사 지정석 방식으로 운영됐던 기자실을 폐쇄했다. 대신 대부분의 언론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브리핑룸을 신설해 기성 매체의 특권을 정상으로 되돌려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언론들은 이를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2003년 3월 17일자 '이창동 문화의 신취재지침 파문 확산'이라는 기사를 통해 "노무현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역시 외부 칼럼을 통해 "낡고 아마추어적인 언론정책이며, 노무현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의도가 없다면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라고 반발했다. 정준희 교수는 "기자실은 '취재 특권'에 가까웠고 기자들이 먹고 사는 핵심이었는데 노 대통령이 이걸 건드린 것이다. 정책의 지향은 상당히 선진적임에도 불구하고 기사들에서는 '왜 이 자는 무릎을 꿇지 않을까' 하는 심리가 읽힌다. 미국 뉴욕타임즈는 2004년 6월 13일 보도를 통해 한국의 개방형 브리핑제도에 대해 '언론과 권력을 서로 결착시켰던 고리가 드디어 해체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임기 마지막까지도 놓을 수 없었던 과제 기자들의 반발로 개방형 브리핑제는 노 대통령 임기 중반 이후 흐지부지 됐다. 기자실을 없애고 만든 브리핑룸이 다시 기자실이 됐고 출입 기자들은 알음알음 자기들까리 간사를 정해 기자단을 운영하곤 했다. 2007년 5월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에 노 대통령은 다시 한번 언론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브리핑룸을 통폐합하는 내용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었다. 언론은 더욱 단결해 더 격렬하게 반발했다. 동아일보는 '5공 때보다 더 악랄한 언론 통제'라고 주장했고, 경향신문은 '5공의 악몽이 떠오른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J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노 대통령에게 언론 개혁은 숙명이었다고 말했다. "2007년에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 5년을 정리해보자면서 '언론과 관계가 이렇게 안 좋은 게 대통령으로서 잘못된 걸까?' 라고 물으셨어요.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내가 좀 더 융화적이어서 언론과 관계를 잘 풀었다면 개별 정책의 수행에는 좀 더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내게 역사적인 숙명이었다. 언론과 권력이 서로 거래관계를 맺고 그 권력을 유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국민에게 손해고 민주주의의 장애물이다. 언론 개혁이야 말로 구시대의 막내인 내가 해야만 하는 역할이다'" '언론 개혁'을 위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유시민 이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개혁'을 이렇게 평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개혁'을 위한 전투에서 참패하셨어요. 저는 그렇게 봐요. 이길 수 있는 무기도 없었어요. 대통령은 혼자 말하는데, 신문사들은 여러 개가 매일매일 몇 백만부를 찍어내면서 한단 말이에요. 방송도 같이 얹어지죠. 그러니까 화력에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노무현 대통령은 한 거에요. 그럼 이 전쟁이 끝났냐? 그건 결코 아니라는 거죠." 유 이사장이 주목하고 있는 건 '대안 미디어'다. "한때는 저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절망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거는 헤어날 방법이 없다, 현직 대통령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대안 미디어들이생기면서 이제는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도 가지기 시작했는데요. 저도 유튜브를 하잖아요. 예전에는 언론인들 바뀌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지금은 그런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냥 그대들은 그대들대로 사시오. 나는 나대로 살아갈 테니. 이제는 조금 견딜 만한 세상이 되었다. 그 정도의 태도로 살고 있죠"라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시민들에게 당부의 말도 남겼다. "언론 소비자인 시민들이 의심해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게 다 사실은 아닐 수 있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해석이 전적으로 옳은 게 아닐지 몰라'...이런 생각을 좀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약간의 소망이나 희망을 갖게 됐다면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10여년 전 노 대통령이 했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언론이 달라져야 합니다. 언론의 수준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깨어있는 시민의 참여입니다. 더 많은 시민들이 기사의 생산과 유통에 참여하고 책임 있는 비판으로 언론의 정치 권력화를 견제해 나갈 때 언론의 수준과 기사의 품질은 더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 세계시민기자포럼 영상 메시지(2007년 6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토크쇼J'. 이번 주에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이해 준비한 특집 방송 2부 <노무현과 언론개혁②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방송된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안톤 숄츠 독일 기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송수진 KBS 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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