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중국 공산당 때리는 ‘스티브 배넌’…“중국 막는데 모든 시간 쓸 것”

입력 2019.06.0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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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스티브 배넌(출처:미국 CNN방송 화면 캡처)

■ 백악관 쫓겨난 트럼프 오른팔 '스티브 배넌'...중국 공산당 때리기 나서

스티브 배넌은 극우 성향의 미국 온라인 언론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설립자이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던 온라인 매체의 수장이던 배넌이 뉴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트럼프 캠프의 CEO를 맡으면서부터이다. 트럼프 당선 후 배넌은 백악관 수석 전략가 및 수석 고문에 내정되었으나 백악관 내 참모들 사이에 정책 불화가 이어지고 특히 트럼프의 사위인 쿠슈너 등과의 갈등으로 7개월만인 2017년 8월 백악관을 떠났다.

배넌이 세운 '브라이트바트 뉴스'는 온라인상에서 '서구적 가치'를 옹호하고 '백인 우월주의' '반이민' 등을 내세우며 이른바 '대안 우익(alt-right)' 운동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활동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러스트 밸트(쇠락한 공업지대) 일대 백인 노동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했고, 트럼프는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 주에서 백인 노동자들의 몰표를 받아 민주당 힐러리 트럼프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백악관에서 사실상 쫓겨난 스티브 배넌은 이제 주 활동무대를 유럽으로 옮기고 타깃을 민주당이 아닌 중국으로 바꿨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국 공산당이다.

유라시안 미디어 포럼(EURASIAN MEDIA FORUM)에 참석한 스티브 배넌(사진 오른쪽 끝)유라시안 미디어 포럼(EURASIAN MEDIA FORUM)에 참석한 스티브 배넌(사진 오른쪽 끝)

■ 유라시아 중심 알마티에 나타난 '스티브 배넌'

스티브 배넌을 만난 것은 현지시간 5월 24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제16회 유라시안 미디어 포럼(EURASIAN MEDIA FORUM)'에서이다. 배넌은 기본적으로 싸움꾼이다. 논쟁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 정치스타일로 말하면 '확신범'이다. 배넌은 이 자리에서 중국 공산당이 중국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미국 월스트리트(Wall Street) 금융가와 협력해 미국 노동자의 이익을 해치는 불공정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적으로 지목한 월스트리트 금융가와 중국 공산당을 착취의 주범으로, 중국 노동자와 미국 노동자를 희생자로 분류하며 자본가를 타도하자는 듯한 계급 투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다.

배넌에 따르면 서방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중국에 자본과 기술을 제공해 중국이 낮은 임금을 기반으로 값싼 제품을 생산하도록 도왔고 중국 공산당은 이를 대가로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 노동자는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트럼프는 이것을 바꾸길 원한다는 것이다.

유라시안 미디어 포럼에서 연설하는 스티브 배넌유라시안 미디어 포럼에서 연설하는 스티브 배넌

■ 미·중간 벌이는 건 '무역분쟁' 아닌 '경제전쟁'
■ 중국 시스템은 해체돼야 할 '구체제'..中 공산당 비난 쏟아내

배넌은 지금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는 이른바 '무역전쟁'은 단순한 무역전쟁이 아닌 '경제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미·중간에 벌어지는 지금의 충돌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넌은 올해 말쯤이면 잠정적인 선에서 합의가 이뤄질 수 있지만, 이것은 전제 조건이 많은 합의로 예를 들어, 농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급'이나 '기술이전 강요', '지적재산권 보호' 등에서 언제든지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합의는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중 간의 갈등이 지금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지 합의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배넌은 자신을 Capitalist(자본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산당 1당이 사실상 국가 전체를 지배하는 중국 시스템을 해체되어야 할 구체제로 규정하고 전 세계 60개국 언론인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공산당 비난을 쏟아낸 것이다.

배넌이 중국에 대한 공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올해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배넌이 트럼프와 지금도 긴밀히 교류하며 외곽에서 지원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前 백악관 수석 전략가 출신이 단독으로 이같은 일을 벌인다고 보기에는 여러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보수파 주도 CPDC 모임에서 연설하는 스티브 배넌(사진 출처 : SCMP)미국 보수파 주도 CPDC 모임에서 연설하는 스티브 배넌(사진 출처 : SCMP)

■ 美 보수파, 냉전 시대 유물 'CPDC' 다시 설립..스티브 배넌이 주도
■ 'CPDC', 현존위험위원회:중국
■ 1950년대 소련 공산주의 대응 위해 결성 후 해체

지난 3월 25일 미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한 조직이 탄생했다. 미국 내 보수파 인사들로 구성된 초당파 조직인데 'CPDC', 우리나라식 표현으로 바꾸면 '현존위협위원회:중국' 정도로 해석된다. 이 조직의 전신은 '현존위험위원회(CPD)'이다. CPD는 1950년대 소련 공산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한 민간조직이다. 과거 냉전시대 유물이 냉동에서 깨어나 다시 새롭게 출범한 것이다. 배넌은 4월 9일(현지시간) 열린 CPDC 모임에 참석했다. 그는 당시 신탕런(NTDTV) 기자에게 "중국 공산당은 인민을 노예처럼 부려 빠르게 부상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을 통해 이를 바꾸고 있다"며 "인민이 자유, 인권 등의 권리를 누려야 중국은 비로소 강대해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 배넌 "적절한 타협은 부질없다"..중국 공산당 목표는 '세계 패권 국가'
■ "중국 WTO 가입 후 미국 내 500만 명 제조업 일자리 잃어"
■ "미 중간 경제전쟁 합의 불가능..중국 시스템 해체 의미"

그리고 5월 6일에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우리는 중국과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적절한 타협은 부질없다'는 내용의 기고를 했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 "중국공산당(CCP)의 목표는 세계적인 패권 국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수개월 동안 무역협상을 하고 있지만 어떤 협상도 협정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과의 경제전쟁은 일시적인 휴전이 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타협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기고문에서 중국 공산당이 2001년 WTO 가입 이후 줄곧 산업민주주의를 상대로 경제전쟁을 벌여왔으며 이것은 미국이 지금까지 직면해본 적이 없는 가장 큰 경제 및 국가 안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10억 명이 넘는 중국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대신에 2001년 이후 500만 명 이상의 제조업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중국이 왜 미국과 합의를 할 수 없는지 밝힌 대목이다. 배넌은 무역협상을 하면서 합의를 위해서는 중국이 강제적인 기술이전 종식과 지적 재산 도용 금지, 사이버 공격 중단, 환율조작 금지, 비관세 장벽 철폐, 국영기업에 대한 불공정한 보조금 지급 중단 등에 대해 동의해야 하는데 중국 공산당이 이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중국 시스템의 법적, 규제적 해체에 해당하는 내용이라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배넌는 계속해서 미 중간 무역 협상은 두 개의 유사한 시스템이 더 긴밀한 유대를 추구하는 거래가 아니라고 밝히고 오히려 이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경제 모델 사이의 근본적인 충돌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미국에 최선의 결과는 중국이 약탈적, 몰수적, 상업적 관행을 포기하는 동시에 양국 간 협정을 감시하고 신속하게 집행할 수 있는 충분한 수단을 제공하는 상세한 '합의문'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화웨이 사용 금지 행정명령(그래픽 출처:KBS) 트럼프, 화웨이 사용 금지 행정명령(그래픽 출처:KBS)

■ "미국의 싸움은 중국 인민이 아닌 중국 공산당과의 싸움"
■ "화웨이 죽이는 게 무역협상보다 10배 중요"
■ "화웨이가 곧 중공군...5G 무기화 가능"

배넌은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미국의 싸움은 중국 국민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싸움이다. 중국인들은 이 야만적인 정권의 첫 번째자 지속적인 피해자이다. 미국이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 트럼프가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실존적 위협에 맞서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배넌은 현지시간 5월 2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경제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화웨이 사용금지) 행정명령이 중국과의 무역협상 결렬보다 10배는 중요하다"면서 "화웨이는 미국뿐 아니라 서방세계의 주요 안보 위협으로 서구 시장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미국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기업이 제조한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차세대 산업으로 불리는 5G 시장에서 선두에 선 중국 화웨이를 정조준한 것이었다. 배넌은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주효했다는 것을 보수층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 ‘중·미 무역협상에 관한 중국 입장’ 백서 발표(출처:KBS 화면 캡처)중국 정부, ‘중·미 무역협상에 관한 중국 입장’ 백서 발표(출처:KBS 화면 캡처)

■ 중국 "미국이 합의문에 주권 관련 내용 넣으려 해"
■ 중국 "주권과 존엄성 존중돼야, 중국은 원칙에 대해 절대 양보 못 해"

이런 배넌의 예측이 맞은 것일까? 중국 정부는 현지시간 2일 미·중 무역협상과 관련한 백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무역 전쟁의 발생 원인부터 협상 결렬의 책임이 모두 미국에 있다는 것인데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이 합의문에 중국의 주권과 관련한 내용을 포함하려 했다며 한 나라의 주권과 존엄성은 존중돼야 하며 중국은 중대한 원칙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배넌의 말대로 서로 다른 두 시스템이 충돌하고 있는 경제전쟁을 피하는 길이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이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실크로드, '일대일로'의 중심에 있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만난 스티브 배넌에게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을 해 봤다.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쉽지 않은 선거가 될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트럼프의 굳건한 지지층이었던 러스트밸트에 있는 백인노동자의 표심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4월 실업률은 3.6%를 기록해 49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나 다름없다. 4월 비농업 일자리는 26만 3,000개가 증가했는데 전문가 전망치인 19만 개 증가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트위터에 "고용, 고용, 고용!"이라고 자축하는 글을 올렸다. 그렇지만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버리고 트럼프가 경제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치와 경제가 다른 이유이다. 배넌은 이 대목에서 머뭇거렸다. 백인노동자들이 왜 동요하고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 "화웨이 다음 타깃은 중국 기업 美 월가 입성 차단"
■ "중국 공산당 자금 제공하는 기금들 회수해야"

배넌은 앞으로 중국 기업들이 미국 자본시장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자신의 시간을 전부 쏟아 부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기업공개(IPO)하는 것을 전면 차단하고 연기금과 보험회사들이 중국 공산당에 제공한 자금을 모두 회수해야 한다고"고 목청을 높였다. 자신을 중국 문제에서 트럼프 대통령보다 "훨씬 오른쪽"에 있는 '슈퍼 매파'라고 부르는 배넌의 예상대로 미·중 간 무역전쟁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양측간의 충돌이 끝이 나지 않는 새로운 경제전쟁의 시대에 살게 되는 것일까?

‘스티브 배넌’과 프랑스 대표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스티브 배넌’과 프랑스 대표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배넌, 유럽의회 선거 결과 정확하게 예측
■ 영국·독일·프랑스 등에서 배넌 우호세력 '대승'..기존 중도세력 몰락

배넌을 만난 것은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다. 배넌은 유럽의회뿐만 아니라 유럽주요국에서 포퓰리즘과 극우주의가 활개치며 주도적인 세력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자리','복지','연금'이라는 측면에서 기성 노동자들은 새로운 이민자에게 이 세 가지를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기득권을 보호하는 포퓰리즘과 극우주의가 표를 얻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럽의회의 선거 결과는 배넌이 예측한 대로 결론이 났다. 그동안 중도우파인 유럽국민당(EPP)과 중도좌파 사회당은 (S&D)은 의회 의석 절반 이상을 차지해 왔다. 이제는 약 42%를 차지하게 됐다. 몰락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유럽을 이끌고 있는 독일 메르켈 총리의 중도우파 기독민주당은 28%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사상 최악의 참패다. 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은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성향 정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를 누르고 승리했다.

배넌, 대규모 군사 충돌 지점은 '남중국해'
■ 배넌, 미·중 '항행의 자유' 명분 내세워 군사 패권 두고 충돌 우려

이런 배넌이 마지막으로 들려준 것은 북한이나 이란, 중동이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탄두를 장착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 위협적이라고 하지만, 대화를 진행 중이고 북핵이나 이란이 핵 문제로 인해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는 것이다. 배넌은 미국과 무력충돌이 발생할 지점은 '남중국해'라고 단언했다. 해상에서 미중간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실제로 매우 높다는 것이다. 경제와 군사라는 두 패권을 놓고 경제가 지금 충돌을 시작했다면 군사 패권을 놓고 '항행의 자유'를 명분으로 내세워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이 실제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배넌의 예측은 계속 맞아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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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03 09: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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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스티브 배넌(출처:미국 CNN방송 화면 캡처)

■ 백악관 쫓겨난 트럼프 오른팔 '스티브 배넌'...중국 공산당 때리기 나서

스티브 배넌은 극우 성향의 미국 온라인 언론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설립자이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던 온라인 매체의 수장이던 배넌이 뉴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트럼프 캠프의 CEO를 맡으면서부터이다. 트럼프 당선 후 배넌은 백악관 수석 전략가 및 수석 고문에 내정되었으나 백악관 내 참모들 사이에 정책 불화가 이어지고 특히 트럼프의 사위인 쿠슈너 등과의 갈등으로 7개월만인 2017년 8월 백악관을 떠났다.

배넌이 세운 '브라이트바트 뉴스'는 온라인상에서 '서구적 가치'를 옹호하고 '백인 우월주의' '반이민' 등을 내세우며 이른바 '대안 우익(alt-right)' 운동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활동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러스트 밸트(쇠락한 공업지대) 일대 백인 노동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했고, 트럼프는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 주에서 백인 노동자들의 몰표를 받아 민주당 힐러리 트럼프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백악관에서 사실상 쫓겨난 스티브 배넌은 이제 주 활동무대를 유럽으로 옮기고 타깃을 민주당이 아닌 중국으로 바꿨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국 공산당이다.

유라시안 미디어 포럼(EURASIAN MEDIA FORUM)에 참석한 스티브 배넌(사진 오른쪽 끝)
■ 유라시아 중심 알마티에 나타난 '스티브 배넌'

스티브 배넌을 만난 것은 현지시간 5월 24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제16회 유라시안 미디어 포럼(EURASIAN MEDIA FORUM)'에서이다. 배넌은 기본적으로 싸움꾼이다. 논쟁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 정치스타일로 말하면 '확신범'이다. 배넌은 이 자리에서 중국 공산당이 중국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미국 월스트리트(Wall Street) 금융가와 협력해 미국 노동자의 이익을 해치는 불공정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적으로 지목한 월스트리트 금융가와 중국 공산당을 착취의 주범으로, 중국 노동자와 미국 노동자를 희생자로 분류하며 자본가를 타도하자는 듯한 계급 투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다.

배넌에 따르면 서방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중국에 자본과 기술을 제공해 중국이 낮은 임금을 기반으로 값싼 제품을 생산하도록 도왔고 중국 공산당은 이를 대가로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 노동자는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트럼프는 이것을 바꾸길 원한다는 것이다.

유라시안 미디어 포럼에서 연설하는 스티브 배넌
■ 미·중간 벌이는 건 '무역분쟁' 아닌 '경제전쟁'
■ 중국 시스템은 해체돼야 할 '구체제'..中 공산당 비난 쏟아내

배넌은 지금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는 이른바 '무역전쟁'은 단순한 무역전쟁이 아닌 '경제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미·중간에 벌어지는 지금의 충돌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넌은 올해 말쯤이면 잠정적인 선에서 합의가 이뤄질 수 있지만, 이것은 전제 조건이 많은 합의로 예를 들어, 농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급'이나 '기술이전 강요', '지적재산권 보호' 등에서 언제든지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합의는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중 간의 갈등이 지금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지 합의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배넌은 자신을 Capitalist(자본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산당 1당이 사실상 국가 전체를 지배하는 중국 시스템을 해체되어야 할 구체제로 규정하고 전 세계 60개국 언론인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공산당 비난을 쏟아낸 것이다.

배넌이 중국에 대한 공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올해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배넌이 트럼프와 지금도 긴밀히 교류하며 외곽에서 지원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前 백악관 수석 전략가 출신이 단독으로 이같은 일을 벌인다고 보기에는 여러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보수파 주도 CPDC 모임에서 연설하는 스티브 배넌(사진 출처 : SCMP)
■ 美 보수파, 냉전 시대 유물 'CPDC' 다시 설립..스티브 배넌이 주도
■ 'CPDC', 현존위험위원회:중국
■ 1950년대 소련 공산주의 대응 위해 결성 후 해체

지난 3월 25일 미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한 조직이 탄생했다. 미국 내 보수파 인사들로 구성된 초당파 조직인데 'CPDC', 우리나라식 표현으로 바꾸면 '현존위협위원회:중국' 정도로 해석된다. 이 조직의 전신은 '현존위험위원회(CPD)'이다. CPD는 1950년대 소련 공산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한 민간조직이다. 과거 냉전시대 유물이 냉동에서 깨어나 다시 새롭게 출범한 것이다. 배넌은 4월 9일(현지시간) 열린 CPDC 모임에 참석했다. 그는 당시 신탕런(NTDTV) 기자에게 "중국 공산당은 인민을 노예처럼 부려 빠르게 부상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을 통해 이를 바꾸고 있다"며 "인민이 자유, 인권 등의 권리를 누려야 중국은 비로소 강대해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 배넌 "적절한 타협은 부질없다"..중국 공산당 목표는 '세계 패권 국가'
■ "중국 WTO 가입 후 미국 내 500만 명 제조업 일자리 잃어"
■ "미 중간 경제전쟁 합의 불가능..중국 시스템 해체 의미"

그리고 5월 6일에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우리는 중국과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적절한 타협은 부질없다'는 내용의 기고를 했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 "중국공산당(CCP)의 목표는 세계적인 패권 국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수개월 동안 무역협상을 하고 있지만 어떤 협상도 협정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과의 경제전쟁은 일시적인 휴전이 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타협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기고문에서 중국 공산당이 2001년 WTO 가입 이후 줄곧 산업민주주의를 상대로 경제전쟁을 벌여왔으며 이것은 미국이 지금까지 직면해본 적이 없는 가장 큰 경제 및 국가 안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10억 명이 넘는 중국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대신에 2001년 이후 500만 명 이상의 제조업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중국이 왜 미국과 합의를 할 수 없는지 밝힌 대목이다. 배넌은 무역협상을 하면서 합의를 위해서는 중국이 강제적인 기술이전 종식과 지적 재산 도용 금지, 사이버 공격 중단, 환율조작 금지, 비관세 장벽 철폐, 국영기업에 대한 불공정한 보조금 지급 중단 등에 대해 동의해야 하는데 중국 공산당이 이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중국 시스템의 법적, 규제적 해체에 해당하는 내용이라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배넌는 계속해서 미 중간 무역 협상은 두 개의 유사한 시스템이 더 긴밀한 유대를 추구하는 거래가 아니라고 밝히고 오히려 이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경제 모델 사이의 근본적인 충돌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미국에 최선의 결과는 중국이 약탈적, 몰수적, 상업적 관행을 포기하는 동시에 양국 간 협정을 감시하고 신속하게 집행할 수 있는 충분한 수단을 제공하는 상세한 '합의문'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화웨이 사용 금지 행정명령(그래픽 출처:KBS)
■ "미국의 싸움은 중국 인민이 아닌 중국 공산당과의 싸움"
■ "화웨이 죽이는 게 무역협상보다 10배 중요"
■ "화웨이가 곧 중공군...5G 무기화 가능"

배넌은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미국의 싸움은 중국 국민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싸움이다. 중국인들은 이 야만적인 정권의 첫 번째자 지속적인 피해자이다. 미국이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 트럼프가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실존적 위협에 맞서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배넌은 현지시간 5월 2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경제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화웨이 사용금지) 행정명령이 중국과의 무역협상 결렬보다 10배는 중요하다"면서 "화웨이는 미국뿐 아니라 서방세계의 주요 안보 위협으로 서구 시장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미국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기업이 제조한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차세대 산업으로 불리는 5G 시장에서 선두에 선 중국 화웨이를 정조준한 것이었다. 배넌은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주효했다는 것을 보수층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 ‘중·미 무역협상에 관한 중국 입장’ 백서 발표(출처:KBS 화면 캡처)
■ 중국 "미국이 합의문에 주권 관련 내용 넣으려 해"
■ 중국 "주권과 존엄성 존중돼야, 중국은 원칙에 대해 절대 양보 못 해"

이런 배넌의 예측이 맞은 것일까? 중국 정부는 현지시간 2일 미·중 무역협상과 관련한 백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무역 전쟁의 발생 원인부터 협상 결렬의 책임이 모두 미국에 있다는 것인데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이 합의문에 중국의 주권과 관련한 내용을 포함하려 했다며 한 나라의 주권과 존엄성은 존중돼야 하며 중국은 중대한 원칙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배넌의 말대로 서로 다른 두 시스템이 충돌하고 있는 경제전쟁을 피하는 길이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이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실크로드, '일대일로'의 중심에 있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만난 스티브 배넌에게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을 해 봤다.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쉽지 않은 선거가 될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트럼프의 굳건한 지지층이었던 러스트밸트에 있는 백인노동자의 표심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4월 실업률은 3.6%를 기록해 49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나 다름없다. 4월 비농업 일자리는 26만 3,000개가 증가했는데 전문가 전망치인 19만 개 증가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트위터에 "고용, 고용, 고용!"이라고 자축하는 글을 올렸다. 그렇지만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버리고 트럼프가 경제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치와 경제가 다른 이유이다. 배넌은 이 대목에서 머뭇거렸다. 백인노동자들이 왜 동요하고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 "화웨이 다음 타깃은 중국 기업 美 월가 입성 차단"
■ "중국 공산당 자금 제공하는 기금들 회수해야"

배넌은 앞으로 중국 기업들이 미국 자본시장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자신의 시간을 전부 쏟아 부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기업공개(IPO)하는 것을 전면 차단하고 연기금과 보험회사들이 중국 공산당에 제공한 자금을 모두 회수해야 한다고"고 목청을 높였다. 자신을 중국 문제에서 트럼프 대통령보다 "훨씬 오른쪽"에 있는 '슈퍼 매파'라고 부르는 배넌의 예상대로 미·중 간 무역전쟁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양측간의 충돌이 끝이 나지 않는 새로운 경제전쟁의 시대에 살게 되는 것일까?

‘스티브 배넌’과 프랑스 대표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배넌, 유럽의회 선거 결과 정확하게 예측
■ 영국·독일·프랑스 등에서 배넌 우호세력 '대승'..기존 중도세력 몰락

배넌을 만난 것은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다. 배넌은 유럽의회뿐만 아니라 유럽주요국에서 포퓰리즘과 극우주의가 활개치며 주도적인 세력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자리','복지','연금'이라는 측면에서 기성 노동자들은 새로운 이민자에게 이 세 가지를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기득권을 보호하는 포퓰리즘과 극우주의가 표를 얻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럽의회의 선거 결과는 배넌이 예측한 대로 결론이 났다. 그동안 중도우파인 유럽국민당(EPP)과 중도좌파 사회당은 (S&D)은 의회 의석 절반 이상을 차지해 왔다. 이제는 약 42%를 차지하게 됐다. 몰락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유럽을 이끌고 있는 독일 메르켈 총리의 중도우파 기독민주당은 28%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사상 최악의 참패다. 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은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성향 정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를 누르고 승리했다.

배넌, 대규모 군사 충돌 지점은 '남중국해'
■ 배넌, 미·중 '항행의 자유' 명분 내세워 군사 패권 두고 충돌 우려

이런 배넌이 마지막으로 들려준 것은 북한이나 이란, 중동이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탄두를 장착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 위협적이라고 하지만, 대화를 진행 중이고 북핵이나 이란이 핵 문제로 인해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는 것이다. 배넌은 미국과 무력충돌이 발생할 지점은 '남중국해'라고 단언했다. 해상에서 미중간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실제로 매우 높다는 것이다. 경제와 군사라는 두 패권을 놓고 경제가 지금 충돌을 시작했다면 군사 패권을 놓고 '항행의 자유'를 명분으로 내세워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이 실제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배넌의 예측은 계속 맞아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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