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잘알’ 변호사도 당한다…“‘접견피싱’, 소문날까 신고도 못해요”

입력 2019.06.0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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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에게 접견만 받고 접견비는 내지 않는 '접견 피싱' 기승

① A 변호사는 최근 자신을 '과거 의뢰인의 지인'이라고 소개하는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수감자를 연결해줄 터이니 구치소에 방문해서 접견부터 해보라는 내용이었다. A 변호사는 절차대로 접견비를 요구했지만, 남성은 "돈 걱정은 하지 말아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입금을 미뤘다. A 변호사는 그 말을 믿고 약속한 날짜에 구치소를 찾았지만, 정작 수감자는 서너 시간 동안 사건과 상관없는 잡담만 늘어놓다 "접견이나 수임을 요청한 적이 없다"며 잡아뗐다. A 변호사는 구치소를 방문하면 의뢰인에게서 받는 접견비를 못 받았다.

② B 변호사에게는 "아들이 서울 동부구치소에 갇혀있는데, 변호사님께 접견을 받고 싶어 한다"는 중년 여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건 내용이나, 수임에 관한 이야기는 없이 오직 접견에 대한 이야기만 이어갔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B 변호사는 어떻게 자신을 알고 연락을 했는지 따져 물었다. 그러자 중년 여성은 횡설수설하다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도 B 변호사에게는 같은 내용의 전화가 여러 차례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변호사 접견' 제도 허점 노려

최근 변호사들을 긴장시키고 있는 이른바 '접견 피싱' 피해 사례입니다. '접견 피싱'은 변호사들에게 선임을 전제로 접견을 제안한 뒤, 막상 접견이 끝나자 선임은커녕 접견비도 내지 않는 범행을 가리키는 '서초동 신조어'입니다. 언뜻 보면 수감자들에게 금전적인 이득이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범행이 기승인 것일까요? '변호사 접견'이 길어야 10분간만 가능한 '가족 접견'과 달리,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 사이에 시간제한 없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돈' 대신 '자유'를 노린 피싱인 셈입니다.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신종 사기인 셈이죠.

수감자에게 '변호사 접견'을 보장하는 이유는 성실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접견 피싱'은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또 다른 범행으로 악용하는 것이니 질이 나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일부 수감자들의 행태를 생생한 영상으로 뉴스에 담는 일은 실패했습니다. 피해 변호사들이 신원이 노출될까 카메라 앞에 서기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한 현직 변호사는 "일종의 사기를 당한 것인데, 소문이 나면 법조인으로서 신뢰도가 떨어질까 걱정되는 것이 당연하다"며 "주로 저연차 변호사들이 피해 대상이 되는데, 경력에 흠집이 갈까 봐 주변에 말도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충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접견 피싱'을 당한 회원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파다한데 정작 신고가 접수되는 경우가 드물어 매우 안타깝다"고 설명했습니다. 변호사들이 '접견 피싱'을 당해도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다 보니,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산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접견 피싱' 이어지자 변호사 협회, 구치소에까지 협조 공문

더 큰 문제는 '접견 피싱'과 '정상적인 접견'을 명확히 구분하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수감자가 '변호사를 직접 만나보니 선임하기 싫어졌다'고 주장하면 이를 무조건 '접견 피싱'으로 단정 짓기도 힘듭니다. 또 '무료 접견'을 영업 방식으로 쓰는 변호사도 있어서 '돈을 내지 않는 접견은 곧 범죄'라는 공식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변호사들도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대한변협은 회원들에게 "변호사가 수감자를 접견한 뒤에 선임하는 것은 정상적인 수임 방법이지만 무료 법률상담은 자칫 '접견 피싱'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유료 상담하실 것을 재차 권유 드린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또 지난달에는 '접견 피싱'이 여러 차례 일어난 서울 동부구치소에 재발 방지를 요청하는 협조 공문도 보냈습니다.

법을 다루고, 많은 범죄 피해자들과 피의자들을 상대하는 변호사. 하지만 사기 범죄의 대상에는 '법잘알'인 변호사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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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잘알’ 변호사도 당한다…“‘접견피싱’, 소문날까 신고도 못해요”
    • 입력 2019-06-03 16:11:21
    취재K
변호사들에게 접견만 받고 접견비는 내지 않는 '접견 피싱' 기승

① A 변호사는 최근 자신을 '과거 의뢰인의 지인'이라고 소개하는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수감자를 연결해줄 터이니 구치소에 방문해서 접견부터 해보라는 내용이었다. A 변호사는 절차대로 접견비를 요구했지만, 남성은 "돈 걱정은 하지 말아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입금을 미뤘다. A 변호사는 그 말을 믿고 약속한 날짜에 구치소를 찾았지만, 정작 수감자는 서너 시간 동안 사건과 상관없는 잡담만 늘어놓다 "접견이나 수임을 요청한 적이 없다"며 잡아뗐다. A 변호사는 구치소를 방문하면 의뢰인에게서 받는 접견비를 못 받았다.

② B 변호사에게는 "아들이 서울 동부구치소에 갇혀있는데, 변호사님께 접견을 받고 싶어 한다"는 중년 여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건 내용이나, 수임에 관한 이야기는 없이 오직 접견에 대한 이야기만 이어갔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B 변호사는 어떻게 자신을 알고 연락을 했는지 따져 물었다. 그러자 중년 여성은 횡설수설하다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도 B 변호사에게는 같은 내용의 전화가 여러 차례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변호사 접견' 제도 허점 노려

최근 변호사들을 긴장시키고 있는 이른바 '접견 피싱' 피해 사례입니다. '접견 피싱'은 변호사들에게 선임을 전제로 접견을 제안한 뒤, 막상 접견이 끝나자 선임은커녕 접견비도 내지 않는 범행을 가리키는 '서초동 신조어'입니다. 언뜻 보면 수감자들에게 금전적인 이득이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범행이 기승인 것일까요? '변호사 접견'이 길어야 10분간만 가능한 '가족 접견'과 달리,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 사이에 시간제한 없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돈' 대신 '자유'를 노린 피싱인 셈입니다.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신종 사기인 셈이죠.

수감자에게 '변호사 접견'을 보장하는 이유는 성실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접견 피싱'은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또 다른 범행으로 악용하는 것이니 질이 나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일부 수감자들의 행태를 생생한 영상으로 뉴스에 담는 일은 실패했습니다. 피해 변호사들이 신원이 노출될까 카메라 앞에 서기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한 현직 변호사는 "일종의 사기를 당한 것인데, 소문이 나면 법조인으로서 신뢰도가 떨어질까 걱정되는 것이 당연하다"며 "주로 저연차 변호사들이 피해 대상이 되는데, 경력에 흠집이 갈까 봐 주변에 말도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충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접견 피싱'을 당한 회원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파다한데 정작 신고가 접수되는 경우가 드물어 매우 안타깝다"고 설명했습니다. 변호사들이 '접견 피싱'을 당해도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다 보니,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산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접견 피싱' 이어지자 변호사 협회, 구치소에까지 협조 공문

더 큰 문제는 '접견 피싱'과 '정상적인 접견'을 명확히 구분하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수감자가 '변호사를 직접 만나보니 선임하기 싫어졌다'고 주장하면 이를 무조건 '접견 피싱'으로 단정 짓기도 힘듭니다. 또 '무료 접견'을 영업 방식으로 쓰는 변호사도 있어서 '돈을 내지 않는 접견은 곧 범죄'라는 공식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변호사들도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대한변협은 회원들에게 "변호사가 수감자를 접견한 뒤에 선임하는 것은 정상적인 수임 방법이지만 무료 법률상담은 자칫 '접견 피싱'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유료 상담하실 것을 재차 권유 드린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또 지난달에는 '접견 피싱'이 여러 차례 일어난 서울 동부구치소에 재발 방지를 요청하는 협조 공문도 보냈습니다.

법을 다루고, 많은 범죄 피해자들과 피의자들을 상대하는 변호사. 하지만 사기 범죄의 대상에는 '법잘알'인 변호사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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