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 치료캠프’ 가보니…“이거 질병 맞아요”

입력 2019.06.04 (15:09) 수정 2019.06.0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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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치유캠프 '국립 청소년 인터넷 드림마을'
"게임 중독은 질병".. 끊는 방법은 '몰라요'
"대화에 못 끼고 '아싸' 될까 봐" 게임 찾기도

어제(3일), 전북 무주군 덕유산 언저리에서 전국 곳곳에서 중·고등학생 30여 명을 만났습니다. 벌써 열흘째, 이곳에 모여서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춤도 춥니다. 표정이 편안하고 밝아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고민이 있어 모인 아이들입니다. 게임을 하느라 부모님과 싸우고, '몰폰(몰래 휴대폰 하기)'을 하다 걸려 가출을 하고, '폰압(휴대폰 압수)'에 항의하다 일주일씩 등교거부를 하고.. 사연은 다양하지만, 모두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중독 성향을 치유하기 위해 온 아이들입니다.


■ "핸드폰 없이, 게임 없이 살 수 있을까?"

'국립 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늘어나 자기 조절에 어려움이 있고,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겪고 금단 현상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2011년 만들어졌습니다. 부모나 학교에서 문제점을 인지하고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껴서 참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은 첫날부터 '금단현상'을 겪습니다. 휴대폰을 달라고 떼를 쓰고 캠프에서 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굉장히 지루해합니다. 심지어 프로그램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기수 별로 2~3명씩 발생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멘토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안정을 찾아간다고 말합니다. 핸드폰과 인터넷이 아닌 다른 활동들에서 재미를 느끼고 친구들과 멘토, 전문상담가와의 대화 시간이 늘어가면서 초반에 보였던 공격적이고 불안한 모습이 줄어든다는 겁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휴대폰을 달라고, 집에 보내달라고 떼쓰기도 했는데 지금은 집에 가기 싫을 만큼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또 "첫날 휴대폰을 반납하면서 '게임 없이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게임이 아니라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 "게임중독, 질병 맞아요…그런데 끊는 방법을 몰라요"

아이들에게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게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상외로 '질병이 맞다'는 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 아이는 "핸드폰을 함으로써 못 하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또 다른 아이는 "핸드폰 때문에 학교에 안 간 적도, 밤을 새운 적도 많기 때문에 질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온종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폐인'이라고 칭하면서 "나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관리를 해야겠다"라는 생각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게임을 끊는 방법을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한 아이는 "예전에는 독후감을 쓰거나 꾸미기를 잘해서 상도 많이 받았는데, 게임을 계속 하다 보니까 이제는 그것들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래 친구들의 여가활동이 게임밖에 없다 보니, 덩달아 게임이 유일한 취미라고 토로하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대화에 끼지 못하기도 하고, 학교 끝나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도 PC방"이다 보니,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만둘 수 없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이제 캠프를 통해 책 읽기나 춤 등 다른 활동을 알게 됐으니까, 퇴소 후에도 계속 해 볼까 생각 중"이라면서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과의존 성향을 조절하기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 치료 공간 태부족…모바일·인터넷 전문가 있는 청소년 상담센터 전국 17곳뿐

WHO의 게임중독의 질병코드 등재가 논란이 되면서 게임중독 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보든 그렇지 않든, 청소년들은 스스로 게임 과의존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치유·치료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드림마을은 방학이 시작되면 지원자가 몰려 별도의 면접을 보고 중독 성향이 강한 순서대로 입소할 수 있습니다. 또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친다고 해도, 퇴소 뒤 중독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아이들이 퇴소한 뒤에도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운영하는 지역청소년상담복지센터나 교내 wee센터와 연계해 2달간 관리합니다. 하지만 전국 130여 개 상담센터 중에 모바일·인터넷 중독 전문가가 있는 곳은 광역 지자체를 중심으로 17곳에 불과합니다.

특히 드림마을에 와서까지 금단 현상을 못 이긴 '고위험군' 아이들은 도움받을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학교 상담실로 연결하지만, 권고사항일 뿐입니다. 이 경우 전문 심리치료나 약물치료를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기수마다 2~3명, 평균 10%에 달합니다.

또 게임 중독에서 해소돼도, 다른 것에 대신 의존하는 일종의 '풍선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마트폰 이용 조절에 성공하는 대신 섭식장애나 충동조절장애가 나타나는 식입니다.

따라서 '게임' 자체를 질병으로 두고 접근하는 대증요법보다는 아이들이 심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게임이 아닌 다른 놀잇거리를 풍부하게 마련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드림마을의 신희지 멘토는 말합니다. "(아이들의 과의존 성향에는) 생각보다 환경적인 부분들이 크다는 걸 느꼈다"며, "흥미를 느낄 만한 대안적인 활동이 없거나 친구 관계가 안 좋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신 멘토는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현상 자체를 표면적으로 이해할 게 아니라 그 뒷면의 환경적인 부분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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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04 15:09:52
    • 수정2019-06-04 15:32:54
    취재K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치유캠프 '국립 청소년 인터넷 드림마을' <br />"게임 중독은 질병".. 끊는 방법은 '몰라요'<br />"대화에 못 끼고 '아싸' 될까 봐" 게임 찾기도
어제(3일), 전북 무주군 덕유산 언저리에서 전국 곳곳에서 중·고등학생 30여 명을 만났습니다. 벌써 열흘째, 이곳에 모여서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춤도 춥니다. 표정이 편안하고 밝아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고민이 있어 모인 아이들입니다. 게임을 하느라 부모님과 싸우고, '몰폰(몰래 휴대폰 하기)'을 하다 걸려 가출을 하고, '폰압(휴대폰 압수)'에 항의하다 일주일씩 등교거부를 하고.. 사연은 다양하지만, 모두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중독 성향을 치유하기 위해 온 아이들입니다.


■ "핸드폰 없이, 게임 없이 살 수 있을까?"

'국립 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늘어나 자기 조절에 어려움이 있고,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겪고 금단 현상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2011년 만들어졌습니다. 부모나 학교에서 문제점을 인지하고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껴서 참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은 첫날부터 '금단현상'을 겪습니다. 휴대폰을 달라고 떼를 쓰고 캠프에서 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굉장히 지루해합니다. 심지어 프로그램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기수 별로 2~3명씩 발생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멘토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안정을 찾아간다고 말합니다. 핸드폰과 인터넷이 아닌 다른 활동들에서 재미를 느끼고 친구들과 멘토, 전문상담가와의 대화 시간이 늘어가면서 초반에 보였던 공격적이고 불안한 모습이 줄어든다는 겁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휴대폰을 달라고, 집에 보내달라고 떼쓰기도 했는데 지금은 집에 가기 싫을 만큼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또 "첫날 휴대폰을 반납하면서 '게임 없이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게임이 아니라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 "게임중독, 질병 맞아요…그런데 끊는 방법을 몰라요"

아이들에게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게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상외로 '질병이 맞다'는 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 아이는 "핸드폰을 함으로써 못 하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또 다른 아이는 "핸드폰 때문에 학교에 안 간 적도, 밤을 새운 적도 많기 때문에 질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온종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폐인'이라고 칭하면서 "나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관리를 해야겠다"라는 생각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게임을 끊는 방법을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한 아이는 "예전에는 독후감을 쓰거나 꾸미기를 잘해서 상도 많이 받았는데, 게임을 계속 하다 보니까 이제는 그것들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래 친구들의 여가활동이 게임밖에 없다 보니, 덩달아 게임이 유일한 취미라고 토로하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대화에 끼지 못하기도 하고, 학교 끝나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도 PC방"이다 보니,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만둘 수 없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이제 캠프를 통해 책 읽기나 춤 등 다른 활동을 알게 됐으니까, 퇴소 후에도 계속 해 볼까 생각 중"이라면서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과의존 성향을 조절하기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 치료 공간 태부족…모바일·인터넷 전문가 있는 청소년 상담센터 전국 17곳뿐

WHO의 게임중독의 질병코드 등재가 논란이 되면서 게임중독 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보든 그렇지 않든, 청소년들은 스스로 게임 과의존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치유·치료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드림마을은 방학이 시작되면 지원자가 몰려 별도의 면접을 보고 중독 성향이 강한 순서대로 입소할 수 있습니다. 또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친다고 해도, 퇴소 뒤 중독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아이들이 퇴소한 뒤에도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운영하는 지역청소년상담복지센터나 교내 wee센터와 연계해 2달간 관리합니다. 하지만 전국 130여 개 상담센터 중에 모바일·인터넷 중독 전문가가 있는 곳은 광역 지자체를 중심으로 17곳에 불과합니다.

특히 드림마을에 와서까지 금단 현상을 못 이긴 '고위험군' 아이들은 도움받을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학교 상담실로 연결하지만, 권고사항일 뿐입니다. 이 경우 전문 심리치료나 약물치료를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기수마다 2~3명, 평균 10%에 달합니다.

또 게임 중독에서 해소돼도, 다른 것에 대신 의존하는 일종의 '풍선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마트폰 이용 조절에 성공하는 대신 섭식장애나 충동조절장애가 나타나는 식입니다.

따라서 '게임' 자체를 질병으로 두고 접근하는 대증요법보다는 아이들이 심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게임이 아닌 다른 놀잇거리를 풍부하게 마련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드림마을의 신희지 멘토는 말합니다. "(아이들의 과의존 성향에는) 생각보다 환경적인 부분들이 크다는 걸 느꼈다"며, "흥미를 느낄 만한 대안적인 활동이 없거나 친구 관계가 안 좋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신 멘토는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현상 자체를 표면적으로 이해할 게 아니라 그 뒷면의 환경적인 부분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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