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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지하철 타기 겁나요”…지하철은 불법 촬영 온상
입력 2019.06.05 (08:00) 수정 2019.06.05 (08:02) 취재후
‘2시간 동안’ 지하철역 머무르며 불법 촬영한 남성
엄벌 공언에도 불법 촬영 범죄 좀처럼 줄지 않아
피해에 걸맞은 처벌 필요
[취재후] “지하철 타기 겁나요”…지하철은 불법 촬영 온상
지하철 승차장의 불법 촬영

마네킹 같던 남성

왼손에 스마트폰과 보조배터리를 든 남성이 서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대전의 한 지하철 승차장에서입니다. 전동차를 기다리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남성, 가만히 보니 뭔가 어색합니다. 전동차를 타기 위해 걸어가면서도 유독 왼팔, 왼손만은 절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내리고 타는 사람들로 혼잡한 승차장에서 남성은 마네킹 같았습니다.

남성이 스마트폰과 함께 들고 있던 건 보조배터리가 아니었습니다. 보조배터리 모양의 불법 촬영 카메라였습니다. 남성은 승차장이 혼잡한 틈을 타 앞에 서 있던 여성에게 바짝 붙은 뒤 이 카메라로 불법 촬영을 했습니다. 왼손을 움직이지 않은 건 촬영 각도 때문이었습니다. 남성은 2시간가량 역에 머물며 계단, 승차장 등에서 10명이 넘는 여성을 대상으로 불법 촬영을 했습니다.

불법 촬영에 사용된 보조배터리 모양 카메라불법 촬영에 사용된 보조배터리 모양 카메라

보조배터리 모양 카메라로 불법 촬영

남성의 불법 촬영을 적발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오랜 시간 역에 머물고 여성을 따라다니는 등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역무원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역무원은 CCTV로 해당 남성의 불법 촬영을 확인한 뒤 먼저 그 모습을 증거로 남겨뒀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출입구 근무를 서다 다시 나타난 남성을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남성은 다시 불법 촬영을 저질렀는데요. 역무원은 그런 남성을 직접 쫓아가 붙잡았습니다.

남성은 불법 촬영을 부인했습니다. 스마트폰 사진첩을 보여주며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불법 촬영에 스마트폰이 아니라 보조배터리 모양의 카메라를 사용했단 걸 아직 알지 못한 상황. 하지만 역무원은 끈질기게 추궁했습니다. 주머니에 숨긴 보조배터리 모양의 카메라를 찾아냈습니다. 역무실에서 확인한 카메라 메모리카드에서는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촬영한 동영상 등 불법 촬영물 수십 개가 발견됐습니다. 하마터면 그냥 넘어갈 뻔한 불법 촬영 범죄가 적발된 순간이었습니다.


좀처럼 줄지 않는 불법 촬영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역무원의 '소명의식'에 감탄하자니 씁쓸함이 남습니다. 이젠 흔하게 여겨지는 불법 촬영 범죄 때문인데요. 정부가 엄벌을 공언하고 있지만, 불법 촬영 범죄는 좀처럼 줄지 않습니다. 경찰청의 발표로는 전국적으로 지난 2016년 5천 180여 건이던 불법 촬영 범죄는 2017년 6천 4백여 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도 5천 9백여 건에 달했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전동차 안, 역 화장실 등 지하철에서 발생했는데요. 전문가들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데다 그 사람들이 시간에 쫓겨 바쁘게 이동한다는 지하철의 공간적 특성을 불법 촬영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범법자 입장'에서 그런 공간적 특성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라고요.


피해에 걸맞은 처벌 필요

이런 사정에도 불법 촬영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내려지는 처벌은 가벼운 편입니다.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된 불법 촬영에 대한 1심 유죄판결을 분석한 결과 벌금형과 집행 유예가 각각 46%와 41%로 대부분이었습니다. 실형은 10%에 그쳤습니다. 불법 촬영 대상이 된 사람들이 받게 될 피해에 비해 처벌은 관대한 겁니다.

물론, 처벌 강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불법 촬영물은 피해자 주변을 끈질기게 맴돕니다. 한 번 공유된 동영상과 사진은 사라지기 힘듭니다. 최소한 그런 피해에 걸맞은 처벌이 필요해 보입니다. 교정적 정의를 실천해 피해자를 위로하는 건 국가의 가장 기본적 역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연관 기사] 불법 촬영 증가…범죄 절반이 지하철에서
  • [취재후] “지하철 타기 겁나요”…지하철은 불법 촬영 온상
    • 입력 2019.06.05 (08:00)
    • 수정 2019.06.05 (08:02)
    취재후
‘2시간 동안’ 지하철역 머무르며 불법 촬영한 남성
엄벌 공언에도 불법 촬영 범죄 좀처럼 줄지 않아
피해에 걸맞은 처벌 필요
[취재후] “지하철 타기 겁나요”…지하철은 불법 촬영 온상
지하철 승차장의 불법 촬영

마네킹 같던 남성

왼손에 스마트폰과 보조배터리를 든 남성이 서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대전의 한 지하철 승차장에서입니다. 전동차를 기다리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남성, 가만히 보니 뭔가 어색합니다. 전동차를 타기 위해 걸어가면서도 유독 왼팔, 왼손만은 절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내리고 타는 사람들로 혼잡한 승차장에서 남성은 마네킹 같았습니다.

남성이 스마트폰과 함께 들고 있던 건 보조배터리가 아니었습니다. 보조배터리 모양의 불법 촬영 카메라였습니다. 남성은 승차장이 혼잡한 틈을 타 앞에 서 있던 여성에게 바짝 붙은 뒤 이 카메라로 불법 촬영을 했습니다. 왼손을 움직이지 않은 건 촬영 각도 때문이었습니다. 남성은 2시간가량 역에 머물며 계단, 승차장 등에서 10명이 넘는 여성을 대상으로 불법 촬영을 했습니다.

불법 촬영에 사용된 보조배터리 모양 카메라불법 촬영에 사용된 보조배터리 모양 카메라

보조배터리 모양 카메라로 불법 촬영

남성의 불법 촬영을 적발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오랜 시간 역에 머물고 여성을 따라다니는 등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역무원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역무원은 CCTV로 해당 남성의 불법 촬영을 확인한 뒤 먼저 그 모습을 증거로 남겨뒀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출입구 근무를 서다 다시 나타난 남성을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남성은 다시 불법 촬영을 저질렀는데요. 역무원은 그런 남성을 직접 쫓아가 붙잡았습니다.

남성은 불법 촬영을 부인했습니다. 스마트폰 사진첩을 보여주며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불법 촬영에 스마트폰이 아니라 보조배터리 모양의 카메라를 사용했단 걸 아직 알지 못한 상황. 하지만 역무원은 끈질기게 추궁했습니다. 주머니에 숨긴 보조배터리 모양의 카메라를 찾아냈습니다. 역무실에서 확인한 카메라 메모리카드에서는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촬영한 동영상 등 불법 촬영물 수십 개가 발견됐습니다. 하마터면 그냥 넘어갈 뻔한 불법 촬영 범죄가 적발된 순간이었습니다.


좀처럼 줄지 않는 불법 촬영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역무원의 '소명의식'에 감탄하자니 씁쓸함이 남습니다. 이젠 흔하게 여겨지는 불법 촬영 범죄 때문인데요. 정부가 엄벌을 공언하고 있지만, 불법 촬영 범죄는 좀처럼 줄지 않습니다. 경찰청의 발표로는 전국적으로 지난 2016년 5천 180여 건이던 불법 촬영 범죄는 2017년 6천 4백여 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도 5천 9백여 건에 달했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전동차 안, 역 화장실 등 지하철에서 발생했는데요. 전문가들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데다 그 사람들이 시간에 쫓겨 바쁘게 이동한다는 지하철의 공간적 특성을 불법 촬영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범법자 입장'에서 그런 공간적 특성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라고요.


피해에 걸맞은 처벌 필요

이런 사정에도 불법 촬영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내려지는 처벌은 가벼운 편입니다.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된 불법 촬영에 대한 1심 유죄판결을 분석한 결과 벌금형과 집행 유예가 각각 46%와 41%로 대부분이었습니다. 실형은 10%에 그쳤습니다. 불법 촬영 대상이 된 사람들이 받게 될 피해에 비해 처벌은 관대한 겁니다.

물론, 처벌 강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불법 촬영물은 피해자 주변을 끈질기게 맴돕니다. 한 번 공유된 동영상과 사진은 사라지기 힘듭니다. 최소한 그런 피해에 걸맞은 처벌이 필요해 보입니다. 교정적 정의를 실천해 피해자를 위로하는 건 국가의 가장 기본적 역할 중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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