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의 질주’에 수천만 원…온정 노린 후원사기?

입력 2019.06.0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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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서 시작된 이른바 '붕어의 질주' 사건, 들어 보셨나요? 해당 닉네임을 쓰는 이용자가 어려운 가정 형편을 호소하자, 순식간에 수천만 원대 후원금이 모이면서 훈훈한 '미담'으로 끝나는 줄 알았던 이 사건. 하지만 지금 '붕어의 질주'는 사기 논란에 휘말리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단 몇 주 만에 충격적인 반전을 맞기까지, 게시판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저희 집에 음식물 쓰레기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가족끼리 맛있게 나눠 드세요.'라면서요."

지난달 15일, '붕어의 질주2'라는 닉네임을 쓰는 회원 A씨는 보배드림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올립니다. 본인은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병에, 아내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데다 사업이 망하면서 두 아이까지 끼니를 해결하지 못할 만큼 경제 사정이 어렵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본인의 불우한 성장 배경과 가난한 집안 형편을 절절하게 풀어놓은 A씨는 회원들에게 소액이라도 좋으니 후원을 부탁한다고 호소했습니다.


10여 일 뒤 A씨는 두 번째 게시물을 올립니다. 밀린 3개월 치 월세와 소정의 생활비를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보배드림 회원 B씨를 만났지만, 정작 모습을 드러낸 그가 자신을 조롱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B씨가 '가족끼리 맛있게 나눠 드세요'라고 쓴 택배 상자를 보내와 열어 봤더니, 음식물 쓰레기가 들어 있어 가족들이 큰 충격에 빠졌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습니다.

A씨의 이른바 '쓰레기 택배' 글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다른 사이트로 퍼져나갔습니다. 많은 보배드림 회원들은 택배를 보낸 B씨를 색출하자며 목소리를 높였고, A씨 계좌에는 후원금이 잇따랐습니다.

■ "3천만 원대 후원, 그런데 IP는 똑같다?"


2주 남짓한 기간 동안 A씨에게 모인 후원금 액수는 3천9백만 원이 넘습니다. A씨가 직접 밝힌 액수만 해도 이 정도니까, 꽤 많은 돈이 입금됐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일부 회원들이 A씨에게 '인증'을 요구하면서 사태는 급반전을 맞이합니다. 후원금이 치료비와 생계비에 쓰였다는 걸 믿을 수 있도록, 병원 영수증 사진 등을 찍어 올리라고 요구한 건데요.

A씨의 반응은 격렬했습니다. 그럼 누워 있는 아내 사진이라도 찍어 올리란 말이냐, 이런 상황에서 인증까지 요구하느냐며 A씨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사진이 올라오지 않자, 여론은 A씨가 자신의 불우한 사연을 지어낸 게 아니냐며 의심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른바 '조작'이 아니냐는 거죠.

결국, 운영자까지 나서 공지를 올리면서 '의심'은 '사실'로 굳어졌습니다. 지난 3일, 보배드림 운영자는 음식물 쓰레기를 보냈다는 B씨의 IP 주소와 '붕어의 질주' A씨의 IP 주소가 일치하니, 더는 해당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지 말라고 공지합니다. IP 주소는 온라인에서 개별 컴퓨터를 구분하는 고유번호인데요. 이 두 주소가 같다는 건 사실상 모니터 뒤에 숨어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똑같은 사람일 가능성, 다시 말해 '쓰레기 택배' 사건이 A씨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 보배드림 측 "피해자 카페 개설해 단체 소송 등 법적 대응 불사"


공지가 올라온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A씨는 해명 글을 씁니다. '음식물 쓰레기 택배' 글은 각색해서 쓴 게 맞지만, 본인의 불우한 성장 과정과 질병, 가족들이 월세방에 산다는 내용 등은 모두 사실이라는 겁니다. A씨는 또 처음 호소 글을 올릴 때만 해도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을 만큼만 회원들에게 돈을 '빌릴' 생각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A씨의 해명은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많은 회원들은 A씨가 정말로 밀린 월세를 해결할 생각이었다면, 딱 3개월 치 월세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돈을 받은 뒤 후원 계좌를 닫았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처음부터 '돈을 빌려달라'고 쓰지 않고, 아이들이 굶고 있다거나 아내가 아프다는 것 같은 딱한 사연을 동원해 후원금을 요청한 점도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돈을 보낸 회원들은 A씨가 묘사한 어려운 형편조차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며 환불을 요청하는 중입니다.

A씨는 후원금이 들어오자마자 밀린 월세를 내고 빌린 돈을 갚느라 2천2백만 원가량을 썼다며, 4천만 원에 이르는 후원금 전액을 당장 갚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일일이 계좌 이체를 해 줄 수 없으니, 후원금을 돌려받고 싶으면 직접 은행에 전화해 '오입금 환불'을 요청하라는 입장입니다. 은행에다 '실수로 계좌를 헷갈려 잘못 입금했다'고 거짓말을 하라는 거죠.

많은 회원들은 이제 이번 사건을 수많은 이들을 속여 경제적 이득을 취한 '후원 사기'로 보고 있습니다. 보배드림 운영진 측은 후원금을 낸 회원을 따로 모아 집단 소송을 준비한 뒤, 이달 안에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심금을 울리는 필력과 안타까운 사연, 그리고 이웃을 도우려는 선의가 만나 빚어진 이번 '붕어의 질주' 사건은 끝내 법정으로 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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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붕어의 질주’에 수천만 원…온정 노린 후원사기?
    • 입력 2019-06-05 16:47:08
    취재K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서 시작된 이른바 '붕어의 질주' 사건, 들어 보셨나요? 해당 닉네임을 쓰는 이용자가 어려운 가정 형편을 호소하자, 순식간에 수천만 원대 후원금이 모이면서 훈훈한 '미담'으로 끝나는 줄 알았던 이 사건. 하지만 지금 '붕어의 질주'는 사기 논란에 휘말리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단 몇 주 만에 충격적인 반전을 맞기까지, 게시판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저희 집에 음식물 쓰레기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가족끼리 맛있게 나눠 드세요.'라면서요."

지난달 15일, '붕어의 질주2'라는 닉네임을 쓰는 회원 A씨는 보배드림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올립니다. 본인은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병에, 아내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데다 사업이 망하면서 두 아이까지 끼니를 해결하지 못할 만큼 경제 사정이 어렵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본인의 불우한 성장 배경과 가난한 집안 형편을 절절하게 풀어놓은 A씨는 회원들에게 소액이라도 좋으니 후원을 부탁한다고 호소했습니다.


10여 일 뒤 A씨는 두 번째 게시물을 올립니다. 밀린 3개월 치 월세와 소정의 생활비를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보배드림 회원 B씨를 만났지만, 정작 모습을 드러낸 그가 자신을 조롱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B씨가 '가족끼리 맛있게 나눠 드세요'라고 쓴 택배 상자를 보내와 열어 봤더니, 음식물 쓰레기가 들어 있어 가족들이 큰 충격에 빠졌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습니다.

A씨의 이른바 '쓰레기 택배' 글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다른 사이트로 퍼져나갔습니다. 많은 보배드림 회원들은 택배를 보낸 B씨를 색출하자며 목소리를 높였고, A씨 계좌에는 후원금이 잇따랐습니다.

■ "3천만 원대 후원, 그런데 IP는 똑같다?"


2주 남짓한 기간 동안 A씨에게 모인 후원금 액수는 3천9백만 원이 넘습니다. A씨가 직접 밝힌 액수만 해도 이 정도니까, 꽤 많은 돈이 입금됐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일부 회원들이 A씨에게 '인증'을 요구하면서 사태는 급반전을 맞이합니다. 후원금이 치료비와 생계비에 쓰였다는 걸 믿을 수 있도록, 병원 영수증 사진 등을 찍어 올리라고 요구한 건데요.

A씨의 반응은 격렬했습니다. 그럼 누워 있는 아내 사진이라도 찍어 올리란 말이냐, 이런 상황에서 인증까지 요구하느냐며 A씨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사진이 올라오지 않자, 여론은 A씨가 자신의 불우한 사연을 지어낸 게 아니냐며 의심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른바 '조작'이 아니냐는 거죠.

결국, 운영자까지 나서 공지를 올리면서 '의심'은 '사실'로 굳어졌습니다. 지난 3일, 보배드림 운영자는 음식물 쓰레기를 보냈다는 B씨의 IP 주소와 '붕어의 질주' A씨의 IP 주소가 일치하니, 더는 해당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지 말라고 공지합니다. IP 주소는 온라인에서 개별 컴퓨터를 구분하는 고유번호인데요. 이 두 주소가 같다는 건 사실상 모니터 뒤에 숨어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똑같은 사람일 가능성, 다시 말해 '쓰레기 택배' 사건이 A씨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 보배드림 측 "피해자 카페 개설해 단체 소송 등 법적 대응 불사"


공지가 올라온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A씨는 해명 글을 씁니다. '음식물 쓰레기 택배' 글은 각색해서 쓴 게 맞지만, 본인의 불우한 성장 과정과 질병, 가족들이 월세방에 산다는 내용 등은 모두 사실이라는 겁니다. A씨는 또 처음 호소 글을 올릴 때만 해도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을 만큼만 회원들에게 돈을 '빌릴' 생각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A씨의 해명은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많은 회원들은 A씨가 정말로 밀린 월세를 해결할 생각이었다면, 딱 3개월 치 월세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돈을 받은 뒤 후원 계좌를 닫았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처음부터 '돈을 빌려달라'고 쓰지 않고, 아이들이 굶고 있다거나 아내가 아프다는 것 같은 딱한 사연을 동원해 후원금을 요청한 점도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돈을 보낸 회원들은 A씨가 묘사한 어려운 형편조차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며 환불을 요청하는 중입니다.

A씨는 후원금이 들어오자마자 밀린 월세를 내고 빌린 돈을 갚느라 2천2백만 원가량을 썼다며, 4천만 원에 이르는 후원금 전액을 당장 갚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일일이 계좌 이체를 해 줄 수 없으니, 후원금을 돌려받고 싶으면 직접 은행에 전화해 '오입금 환불'을 요청하라는 입장입니다. 은행에다 '실수로 계좌를 헷갈려 잘못 입금했다'고 거짓말을 하라는 거죠.

많은 회원들은 이제 이번 사건을 수많은 이들을 속여 경제적 이득을 취한 '후원 사기'로 보고 있습니다. 보배드림 운영진 측은 후원금을 낸 회원을 따로 모아 집단 소송을 준비한 뒤, 이달 안에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심금을 울리는 필력과 안타까운 사연, 그리고 이웃을 도우려는 선의가 만나 빚어진 이번 '붕어의 질주' 사건은 끝내 법정으로 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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