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유출 “일단락됐습니다”, 믿어도 될까요?

입력 2019.06.05 (19:56) 수정 2019.06.05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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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썩했던 '3급 비밀 유출' 사건 기억하십니까? 추측성 기사까지 더해져 수많은 보도들이 쏟아졌는데요, 정작 외교부 징계위원회까지 마무리된 지금은 너무 조용합니다. 그래서 파면된 참사관 외에 같이 언급됐던 외교관 2명은 어떻게 됐는지, 징계 결과를 두고 외교부 안팎의 반응은 어떤지, 내놓겠다던 재발방지 대책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정리했습니다.

중징계에서 경징계로 수위 조정…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한미 정상의 통화내용을 알려준 참사관이 파면된 것은 아시죠? 향후 5년간 공무원 임용이 불가하고 퇴직 급여가 50% 감액되는 최고 수위의 중징계입니다. 참사관 측 법률대리인은 이의 제기는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참사관은 앞으로 외교부가 대검찰청에 형사고발 한 건으로 조사도 받게 됩니다.

그럼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열람할 권한이 없던 이 참사관에게 통화내용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된 나머지 두 명의 외교관은 어떻게 됐을까요? 징계위 전 열린 외교부 보안심사위원회에서는 참사관과 똑같이 이 두 명도 중징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유출은 안 했어도 비밀문서 관리를 엄격히 하지 않은 '보안 규정 위반'의 책임이 엄중하다고 외교부는 설명했습니다.

이 중 한 명은 고위 공무원이어서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가 따로 심사해 조만간 결과가 나옵니다. 다른 한 명은 지난달 30일에 열린 외교부 자체 징계위원회에서 결정이 났는데 '감봉 3개월'이 나왔습니다. 중징계가 아닌 경징계입니다. 왜일까요? 중징계 권고가 나왔는데 경징계로 징계 수위가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말했습니다.

‘기밀 유출’ 참사관이 조사를 위해 외교부에 출석하고 있다.‘기밀 유출’ 참사관이 조사를 위해 외교부에 출석하고 있다.

징계는 했지만, 징계 사유는 비밀?

징계 절차가 끝났는데도 외교부는 이 두 명에게 적용된 정확한 징계 사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있습니다. '보안업무 규정 위반'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밝힌 게 전부입니다.

기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규정을 위반한 것이냐고 물을 때마다 외교부는 "정확히 확인해서 알려주겠다"고 답변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비공개 자리에서 '아마 구체적으로 답변하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넌지시 말했습니다.

"사정 뻔한데 세게 징계하기 어려울 것"

많은 전·현직 외교관들은 약해진 징계 수위와 어정쩡한 외교부의 처신이 '애초에 징계감이 아니기 때문'일 거라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외국 정부를 상대하는 외교관 업무 특성을 고려하면, 기밀이라고 해도 업무 관련성이 있는 부분은 일정 부분 공유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특히 이번에 파면된 참사관은 미국 국회를 담당했기 때문에, 한미 정상의 통화내용을 알아야 업무 방향을 잡을 수 있었을 거라는 데 대부분 공감합니다. 이 때문에 해당 참사관에게 정상 간 통화내용을 보도록 용인한 두 명에게 중징계를 내리기 어렵다는 겁니다.

'기밀 유출'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나머지 2명의 '비밀 관리 소홀'에 대해서는 정상이 참작될 여지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25일 파리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기밀문서 공람 부분은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국회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에 출석해 ‘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 보고했다. (5월 28일)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국회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에 출석해 ‘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 보고했다. (5월 28일)

유출됐다는 다른 기밀 2건은 어디로?

궁금한 건 또 있습니다. 외교부는 줄곧 "강효상 의원에게 유출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외교기밀은 3건"이라고 말해왔습니다. 한미 정상 통화내용에다 4월 정상회담 관련 내용, 3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볼턴 미국 안보보좌관의 만남이 무산된 경위 등 3건입니다.

지난 5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에도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출석해 '유출된 기밀은 모두 3건'이라고 재확인했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틀 뒤인 30일,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관련 조사는 일단락됐다'고 밝혔습니다. 주미 한국대사관에 대한 조사도 더이상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출에 대한 조사가 모두 끝났다는 거죠.

그런데 외교부 징계위 결과, 기밀을 유출한 주미대사관 참사관의 징계 사유에는 한미 정상의 통화내용 한 건만이 반영됐습니다. 파면된 참사관은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유출한 점은 인정했지만, 3월과 4월에 유출됐다는 다른 두 건의 기밀에 대해선 모른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외교부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던 나머지 기밀 2건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징계 절차가 마무리된 겁니다.

가장 큰 의혹을 받았던 참사관은 이미 파면해버렸으니 더 이상 외교부가 조사할 수 없습니다. 다른 2명의 외교관도 '보안업무 규정 위반'이라는 두루뭉술한 혐의와 경징계를 받은 점 등을 감안할 때 기밀유출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렇게 두 건은 슬쩍 없었던 것처럼 끝나는 걸까요?


'재발방지 대책' 난감 … 비밀 분류 기준부터 다시 세워야

뒤숭숭한 분위기에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외교부 직원들은 이번 징계에 대해 '징계위에 들어간 분께 여쭤보라. 당신은 안 보셨냐고' 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실무자가 관련 기밀사항을 보지 못하면서 업무 수행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서둘러 기밀 유출을 막을 대책을 내놓겠다던 외교부는 아직 구체적 개선책은 커녕 큰 틀에서의 방향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교 전문가들은 업무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관리자급이 아니면 기밀 자료를 못 보게 하는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비밀 등급을 지정하는 기준부터 다시 세우고, 업무 관련자들이 해당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촘촘한 대책을 만들어야 재발 방지가 가능할 거라는 겁니다.

곧 중앙징계위에서 남은 1명, 고위급 외교관에 대한 징계가 결정됩니다. 외교부가 너무 늦지 않게 실용적이고 강화된 보안규정을 내놓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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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05 19:56:12
    • 수정2019-06-05 20:46:48
    취재K
떠들썩했던 '3급 비밀 유출' 사건 기억하십니까? 추측성 기사까지 더해져 수많은 보도들이 쏟아졌는데요, 정작 외교부 징계위원회까지 마무리된 지금은 너무 조용합니다. 그래서 파면된 참사관 외에 같이 언급됐던 외교관 2명은 어떻게 됐는지, 징계 결과를 두고 외교부 안팎의 반응은 어떤지, 내놓겠다던 재발방지 대책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정리했습니다.

중징계에서 경징계로 수위 조정…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한미 정상의 통화내용을 알려준 참사관이 파면된 것은 아시죠? 향후 5년간 공무원 임용이 불가하고 퇴직 급여가 50% 감액되는 최고 수위의 중징계입니다. 참사관 측 법률대리인은 이의 제기는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참사관은 앞으로 외교부가 대검찰청에 형사고발 한 건으로 조사도 받게 됩니다.

그럼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열람할 권한이 없던 이 참사관에게 통화내용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된 나머지 두 명의 외교관은 어떻게 됐을까요? 징계위 전 열린 외교부 보안심사위원회에서는 참사관과 똑같이 이 두 명도 중징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유출은 안 했어도 비밀문서 관리를 엄격히 하지 않은 '보안 규정 위반'의 책임이 엄중하다고 외교부는 설명했습니다.

이 중 한 명은 고위 공무원이어서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가 따로 심사해 조만간 결과가 나옵니다. 다른 한 명은 지난달 30일에 열린 외교부 자체 징계위원회에서 결정이 났는데 '감봉 3개월'이 나왔습니다. 중징계가 아닌 경징계입니다. 왜일까요? 중징계 권고가 나왔는데 경징계로 징계 수위가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말했습니다.

‘기밀 유출’ 참사관이 조사를 위해 외교부에 출석하고 있다.
징계는 했지만, 징계 사유는 비밀?

징계 절차가 끝났는데도 외교부는 이 두 명에게 적용된 정확한 징계 사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있습니다. '보안업무 규정 위반'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밝힌 게 전부입니다.

기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규정을 위반한 것이냐고 물을 때마다 외교부는 "정확히 확인해서 알려주겠다"고 답변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비공개 자리에서 '아마 구체적으로 답변하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넌지시 말했습니다.

"사정 뻔한데 세게 징계하기 어려울 것"

많은 전·현직 외교관들은 약해진 징계 수위와 어정쩡한 외교부의 처신이 '애초에 징계감이 아니기 때문'일 거라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외국 정부를 상대하는 외교관 업무 특성을 고려하면, 기밀이라고 해도 업무 관련성이 있는 부분은 일정 부분 공유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특히 이번에 파면된 참사관은 미국 국회를 담당했기 때문에, 한미 정상의 통화내용을 알아야 업무 방향을 잡을 수 있었을 거라는 데 대부분 공감합니다. 이 때문에 해당 참사관에게 정상 간 통화내용을 보도록 용인한 두 명에게 중징계를 내리기 어렵다는 겁니다.

'기밀 유출'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나머지 2명의 '비밀 관리 소홀'에 대해서는 정상이 참작될 여지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25일 파리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기밀문서 공람 부분은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국회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에 출석해 ‘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 보고했다. (5월 28일)
유출됐다는 다른 기밀 2건은 어디로?

궁금한 건 또 있습니다. 외교부는 줄곧 "강효상 의원에게 유출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외교기밀은 3건"이라고 말해왔습니다. 한미 정상 통화내용에다 4월 정상회담 관련 내용, 3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볼턴 미국 안보보좌관의 만남이 무산된 경위 등 3건입니다.

지난 5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에도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출석해 '유출된 기밀은 모두 3건'이라고 재확인했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틀 뒤인 30일,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관련 조사는 일단락됐다'고 밝혔습니다. 주미 한국대사관에 대한 조사도 더이상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출에 대한 조사가 모두 끝났다는 거죠.

그런데 외교부 징계위 결과, 기밀을 유출한 주미대사관 참사관의 징계 사유에는 한미 정상의 통화내용 한 건만이 반영됐습니다. 파면된 참사관은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유출한 점은 인정했지만, 3월과 4월에 유출됐다는 다른 두 건의 기밀에 대해선 모른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외교부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던 나머지 기밀 2건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징계 절차가 마무리된 겁니다.

가장 큰 의혹을 받았던 참사관은 이미 파면해버렸으니 더 이상 외교부가 조사할 수 없습니다. 다른 2명의 외교관도 '보안업무 규정 위반'이라는 두루뭉술한 혐의와 경징계를 받은 점 등을 감안할 때 기밀유출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렇게 두 건은 슬쩍 없었던 것처럼 끝나는 걸까요?


'재발방지 대책' 난감 … 비밀 분류 기준부터 다시 세워야

뒤숭숭한 분위기에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외교부 직원들은 이번 징계에 대해 '징계위에 들어간 분께 여쭤보라. 당신은 안 보셨냐고' 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실무자가 관련 기밀사항을 보지 못하면서 업무 수행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서둘러 기밀 유출을 막을 대책을 내놓겠다던 외교부는 아직 구체적 개선책은 커녕 큰 틀에서의 방향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교 전문가들은 업무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관리자급이 아니면 기밀 자료를 못 보게 하는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비밀 등급을 지정하는 기준부터 다시 세우고, 업무 관련자들이 해당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촘촘한 대책을 만들어야 재발 방지가 가능할 거라는 겁니다.

곧 중앙징계위에서 남은 1명, 고위급 외교관에 대한 징계가 결정됩니다. 외교부가 너무 늦지 않게 실용적이고 강화된 보안규정을 내놓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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