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 쫄지 마세요!…베테랑 변호사들의 ‘꿀팁’

입력 2019.06.06 (12:00) 수정 2019.06.0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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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판사 생활 동안 다른 종류의 재판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굳이 형사재판에 주목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재판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다른 재판은 '사건'을 재판하지만 형사재판은 '사람'을 재판합니다. 다른 재판은 '돈'을 다루지만, 형사재판은 '정의'를 다룹니다. 다른 재판은 '법적 효력'을 밝히지만, 형사재판은 '진실'을 밝힙니다." (정재민,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2018) 中)

형사재판을 방청하다보면 아무래도 피고인석에 눈길이 가기 마련입니다. 고개를 떨군 채 세상으로부터 숨으려는 듯 웅크리고 앉은 중년 남성. 연신 눈물을 훔치는 건장한 청년. 소리 내 엉엉 우는 10대 소녀까지.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된다는 건 분명 꽤나 힘들고 위축되는 경험일 겁니다. 언제, 어떤 일로 이 무시무시해 보이는 형사법정에 불려올지 모르는 시민들을 위해, 법조경력 10년 이상의 변호사들이 주축이 돼 300쪽이 넘는 두툼한 책 한 권을 내놨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변호사 9명이 함께 집필한 형사재판 '꿀팁', 『쫄지마 형사절차-재판편』의 일부 내용을 맛보기로 소개합니다.

국민참여재판을 다룬 영화 ‘배심원들’(2019)의 한 장면.국민참여재판을 다룬 영화 ‘배심원들’(2019)의 한 장면.

Q.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야 할까요? 어떤 사건에 유리한가요?
A. '국민의 상식과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사건은 일반 재판보단 참여재판을 신청하는 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장발장 사건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병들어 누워있는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대형마트에 들어가 물품을 훔친 남편이 피고인인 사건 같은 거요. 실제로 비슷한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열려 배심원들에게 '습관성 절도가 아니라 가난 때문에 벌인 절도'라는 취지로 주장해, 죄명을 기존의 상습절도죄에서 법정형이 더 낮은 단순절도죄로 변경한 사례가 있었는데요. 험난한 세상사를 이해해준 나이 지긋한 배심원들 덕분에 피고인이 형량을 절반 이상 깎을 수 있었습니다. 단, 배심원 의견은 판사에게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배심원들의 결정과 판사의 선고는 다를 수 있음을 유념하세요.

Q. 집행유예가 나왔으면 이제 안심해도 되나요?
A. 집행유예 기간을 문제없이 보내면 상관없는데, 그 이후 또 별건으로 형사처벌을 받으면 문제가 됩니다. 예전에 집행이 유예됐던 형까지 더해져서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절도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집행유예 기간인 2년 내에 다시 강도죄를 저질러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면, 강도죄 3년과 기존에 유예됐던 절도죄 1년을 합한 4년 동안 감옥생활을 해야 합니다. 집행이 유예됐던 형이 다시 살아나는 겁니다.

Q. 약식명령으로 벌금을 내라는데, 전과 안 남나요?
A. 약식이라도 벌금형 전과가 남습니다. 금융회사 직원, 교직원, 공무원 등 형사 전과가 해고나 징계의 불이익을 줄 위험이 있는 직종에 종사하신다면, 벌금이라고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정식재판을 받아서 다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약식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통지받은 뒤 일주일 안에 법원에 정식재판 청구를 해야 하는데요. 단 정식재판에서 무죄가 나올 수도 있지만, 오히려 벌금 액수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하세요.

Q. 곧 선고를 앞둔 피고인입니다. 제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A. 대법원 양형위원회 홈페이지의 양형기준을 살펴보세요. 특히 '형종 및 형량의 기준' 항목의 '감경요소'와, '집행유예 기준' 항목의 '긍정적 요소' 부분의 각 사유를 꼭 챙겨보세요. 자신에게 해당되는 사유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만약 있다면 그에 관한 서류를 재판부에 제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와 합의했다면 합의서, 공탁했으면 공탁서, 농아자에 해당한다면 장애인증명서, 진지한 반성의 말을 담은 반성문, 가족들이나 지인들의 탄원서 등 종류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늦어도 선고기일 일주일 전에는 재판부에 제출해야 합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살인범죄 양형기준’의 일부. 대법원 양형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살인범죄 양형기준’의 일부.

Q.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가해자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무서운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법정에서 증인으로 진술할 때는, 먼저 자신에게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는 사람(신뢰관계인)과 함께 법정에 나와 동석할 수 있습니다. 가족, 동거인, 친구, 이웃, 상담가 등 당사자가 법정에서 증언을 잘할 수 있도록 옆에 앉아 버팀목이 돼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또 재판부에 '증인지원절차'를 신청하면 피고인과 마주칠 필요가 없는 다른 경로의 문을 통해 법정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증언을 할 때 가해자를 법정에서 퇴정하도록 한다든지, 피고인이 증인을 볼 수 없도록 피고인석과 증인석 사이에 가림막을 설치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국선변호사 지원을 받는 게 큰 도움이 되는데요. 경찰, 검찰 조사과정부터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심사, 증거보전절차, 재판 절차에 변호사가 출석해 피해자를 대변하는 의견을 진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을 원하면 경찰서나 검찰청 등 수사기관에 신고를 하면서 말이나 서면으로 이를 요청하면 됩니다. 성폭력 피해상담소를 통해서도 국선변호사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Q. 실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책에 없는 내용, 기자 질의응답 중)
A. 흔히 하는 실수를 짚어볼까요? 우선 일반적으로 '전관' 변호사를 많이 선호하시는데요. 전관을 쓰는 이유는 보통 내 사건을 맡은 판사와 친할 거 같아서죠. 재판장과 내 변호사가 판사 시절에 배석판사-부장판사 관계였다든지, 같은 법원에서 근무한 사이라든지, 사법연수원 동기라든지. 그런 것들 때문에 전관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선임하곤 하시는데요.

하지만 실제 전관 출신 변호인이 재판 결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는 검증이 되지 않고, 검증될 수도 없습니다. 사건 담당 판사가 청탁을 받고 사건을 잘 봐줬던 게 적발돼 법원에서 '잘릴' 경우, 그 이후 그 판사의 생계를 보장해줄 수 있을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면…담당 판사가 전관의 영향으로 유죄를 무죄로 바꾸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전관을 소개해주겠다"는 브로커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거짓말일 가능성이 태반입니다. 또 방송에 자주 나오는 유명한 변호사들을 선호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당연히 실력이 출중한 분들도 계시지만 맹신은 금물입니다. 방송 출연을 그렇게 많이 하면, 대체 재판 준비는 언제 할까. 그렇게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빠르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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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사재판, 쫄지 마세요!…베테랑 변호사들의 ‘꿀팁’
    • 입력 2019-06-06 12:00:28
    • 수정2019-06-06 12:11:40
    취재K
"십여 년 판사 생활 동안 다른 종류의 재판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굳이 형사재판에 주목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재판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다른 재판은 '사건'을 재판하지만 형사재판은 '사람'을 재판합니다. 다른 재판은 '돈'을 다루지만, 형사재판은 '정의'를 다룹니다. 다른 재판은 '법적 효력'을 밝히지만, 형사재판은 '진실'을 밝힙니다." (정재민,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2018) 中)

형사재판을 방청하다보면 아무래도 피고인석에 눈길이 가기 마련입니다. 고개를 떨군 채 세상으로부터 숨으려는 듯 웅크리고 앉은 중년 남성. 연신 눈물을 훔치는 건장한 청년. 소리 내 엉엉 우는 10대 소녀까지.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된다는 건 분명 꽤나 힘들고 위축되는 경험일 겁니다. 언제, 어떤 일로 이 무시무시해 보이는 형사법정에 불려올지 모르는 시민들을 위해, 법조경력 10년 이상의 변호사들이 주축이 돼 300쪽이 넘는 두툼한 책 한 권을 내놨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변호사 9명이 함께 집필한 형사재판 '꿀팁', 『쫄지마 형사절차-재판편』의 일부 내용을 맛보기로 소개합니다.

국민참여재판을 다룬 영화 ‘배심원들’(2019)의 한 장면.
Q.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야 할까요? 어떤 사건에 유리한가요?
A. '국민의 상식과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사건은 일반 재판보단 참여재판을 신청하는 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장발장 사건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병들어 누워있는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대형마트에 들어가 물품을 훔친 남편이 피고인인 사건 같은 거요. 실제로 비슷한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열려 배심원들에게 '습관성 절도가 아니라 가난 때문에 벌인 절도'라는 취지로 주장해, 죄명을 기존의 상습절도죄에서 법정형이 더 낮은 단순절도죄로 변경한 사례가 있었는데요. 험난한 세상사를 이해해준 나이 지긋한 배심원들 덕분에 피고인이 형량을 절반 이상 깎을 수 있었습니다. 단, 배심원 의견은 판사에게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배심원들의 결정과 판사의 선고는 다를 수 있음을 유념하세요.

Q. 집행유예가 나왔으면 이제 안심해도 되나요?
A. 집행유예 기간을 문제없이 보내면 상관없는데, 그 이후 또 별건으로 형사처벌을 받으면 문제가 됩니다. 예전에 집행이 유예됐던 형까지 더해져서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절도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집행유예 기간인 2년 내에 다시 강도죄를 저질러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면, 강도죄 3년과 기존에 유예됐던 절도죄 1년을 합한 4년 동안 감옥생활을 해야 합니다. 집행이 유예됐던 형이 다시 살아나는 겁니다.

Q. 약식명령으로 벌금을 내라는데, 전과 안 남나요?
A. 약식이라도 벌금형 전과가 남습니다. 금융회사 직원, 교직원, 공무원 등 형사 전과가 해고나 징계의 불이익을 줄 위험이 있는 직종에 종사하신다면, 벌금이라고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정식재판을 받아서 다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약식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통지받은 뒤 일주일 안에 법원에 정식재판 청구를 해야 하는데요. 단 정식재판에서 무죄가 나올 수도 있지만, 오히려 벌금 액수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하세요.

Q. 곧 선고를 앞둔 피고인입니다. 제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A. 대법원 양형위원회 홈페이지의 양형기준을 살펴보세요. 특히 '형종 및 형량의 기준' 항목의 '감경요소'와, '집행유예 기준' 항목의 '긍정적 요소' 부분의 각 사유를 꼭 챙겨보세요. 자신에게 해당되는 사유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만약 있다면 그에 관한 서류를 재판부에 제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와 합의했다면 합의서, 공탁했으면 공탁서, 농아자에 해당한다면 장애인증명서, 진지한 반성의 말을 담은 반성문, 가족들이나 지인들의 탄원서 등 종류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늦어도 선고기일 일주일 전에는 재판부에 제출해야 합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살인범죄 양형기준’의 일부.
Q.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가해자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무서운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법정에서 증인으로 진술할 때는, 먼저 자신에게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는 사람(신뢰관계인)과 함께 법정에 나와 동석할 수 있습니다. 가족, 동거인, 친구, 이웃, 상담가 등 당사자가 법정에서 증언을 잘할 수 있도록 옆에 앉아 버팀목이 돼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또 재판부에 '증인지원절차'를 신청하면 피고인과 마주칠 필요가 없는 다른 경로의 문을 통해 법정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증언을 할 때 가해자를 법정에서 퇴정하도록 한다든지, 피고인이 증인을 볼 수 없도록 피고인석과 증인석 사이에 가림막을 설치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국선변호사 지원을 받는 게 큰 도움이 되는데요. 경찰, 검찰 조사과정부터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심사, 증거보전절차, 재판 절차에 변호사가 출석해 피해자를 대변하는 의견을 진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을 원하면 경찰서나 검찰청 등 수사기관에 신고를 하면서 말이나 서면으로 이를 요청하면 됩니다. 성폭력 피해상담소를 통해서도 국선변호사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Q. 실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책에 없는 내용, 기자 질의응답 중)
A. 흔히 하는 실수를 짚어볼까요? 우선 일반적으로 '전관' 변호사를 많이 선호하시는데요. 전관을 쓰는 이유는 보통 내 사건을 맡은 판사와 친할 거 같아서죠. 재판장과 내 변호사가 판사 시절에 배석판사-부장판사 관계였다든지, 같은 법원에서 근무한 사이라든지, 사법연수원 동기라든지. 그런 것들 때문에 전관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선임하곤 하시는데요.

하지만 실제 전관 출신 변호인이 재판 결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는 검증이 되지 않고, 검증될 수도 없습니다. 사건 담당 판사가 청탁을 받고 사건을 잘 봐줬던 게 적발돼 법원에서 '잘릴' 경우, 그 이후 그 판사의 생계를 보장해줄 수 있을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면…담당 판사가 전관의 영향으로 유죄를 무죄로 바꾸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전관을 소개해주겠다"는 브로커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거짓말일 가능성이 태반입니다. 또 방송에 자주 나오는 유명한 변호사들을 선호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당연히 실력이 출중한 분들도 계시지만 맹신은 금물입니다. 방송 출연을 그렇게 많이 하면, 대체 재판 준비는 언제 할까. 그렇게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빠르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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