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흑해 도달 전 찾아야”…다뉴브 강 비극의 역사는?

입력 2019.06.08 (07:06) 수정 2019.06.0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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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 참사가 발생한 다뉴브 강은 총 길이 2,860km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입니다. 헝가리 구간만 417km에 이릅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도나우'라고 부르고, 헝가리에서는 '두너'이라고 발음합니다.

이렇게 매우 길기 때문에 시신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다뉴브 강물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가로질러 가다 흑해로 빠지며 긴 여정을 마칩니다.


"흑해 도달 전 찾아야"…'아이언 게이트' 길목

실종자의 시신이 흑해까지 흘러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외교부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루마니에 협조를 구한 상태입니다. 세르비아의 경우 최대 15명의 전문 잠수 인력을 동원해 수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다페스트를 지나면 강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카르파티아산맥과 발칸 사이를 통과하는 데 이 협곡을 아이언 게이트(Iron Gate)라고 부릅니다.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라고 합니다. 현재 실종자 수색은 이 아이언 게이트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루마니아 지역의 다뉴브 강에는 댐이 있습니다. 이 댐에서 과거 실종자가 발견된 적이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실종자를 찾을 수 있는 길목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언 게이트(Iron Gate) 아이언 게이트(Iron Gate)

다뉴브 비극의 역사…산업혁명 이후 본격화

다뉴브 강에서는 증기기관의 시대가 열리면서 사고의 위험은 항상 존재하면서 또 커져만 갔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에 이르러 경제 교류가 확대되면서 1만 4천여 척의 배가 헝가리 구간을 오고 갔습니다. 배들의 정체는 일상이 됐습니다.

헝가리 언론 24.hu의 보도를 보면, 농업국가인 헝가리는 농산물들을 주로 서유럽으로 수출했습니다. 뱃길이 이용됐습니다. 헝가리에서는 증기 기관을 이용한 배가 1830년에 처음 도입됐습니다. 산업혁명 이전 빈과 부다페스트까지는 40시간이 걸렸지만, 증기선의 도입 이후 12시간에서 14시간으로 단축됐습니다.

증기선의 도입은 헝가리 여행 지도도 바꿨습니다. 유럽인들은 동쪽으로는 빈까지만 여행했지만 1930년 이후부터는 부다페스트까지 여행 영역을 넓힌 것입니다. 동화작가 안데르센도 그때 처음으로 헝가리를 방문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머그리트 다리 부근에 유람선도 그때부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늘면서 정박할 항구도 새로 정비됐습니다. 20세기 들어서는 다뉴브 강의 배는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이번 사고가 났던 시간에 폭 4백 미터에 불과한 다뉴브 강에 70여 척의 배가 떠 있었다고 합니다. 낮까지 포함하면 사고 구간에는 수백 척의 배들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체인 브리지의 프란츠 조셉 부두. 출처 : 부다페스트 아카이브 HU.BFL.XV.19.d.1.07.146체인 브리지의 프란츠 조셉 부두. 출처 : 부다페스트 아카이브 HU.BFL.XV.19.d.1.07.146

헝가리 다뉴브 강 유역 최대 사고는 1917년…140명 사망

헝가리 역사가 포너지 졸탄(Fónagy Zoltán) 는 헝가리 다뉴브강에서의 났던 큰 사고로 3개를 꼽았습니다.

1905년 11월 10일, 에르지베트(Erzsebet) 다리에서 얼루떠(Alutta) 증기선이 다른 배와 충돌해 11명이 숨졌습니다.

1917년 4월 10일 자정에 빅토리아 호가 즈리니(Zrínyi)여객선을 들이받으면서 배 옆부분이 크게 손상되면서 140명이 숨졌습니다. 다뉴브 강의 헝가리 유역에서 발생한 사고로는 가장 큰 인명피해를 냈습니다.

1918년 4월 7일 새벽 3시에는 라쩔마쉬(Racalmas)지역에서 소피(Sophie) 증기선이 '드리너(Drina)'라는 배와 충돌한 뒤 침몰했습니다. 이 사고로 60명이 숨졌습니다.

다뉴브 강 하류 수색 확대…아래에서부터 위로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은 한국 측 수색요원들을 버스로 다뉴브 강 하류 100㎞ 지점까지 이동시켜 실종자 수색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고 지점 100km 지역에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오는 방식입니다.

3일 오전에 사고 지점에서 102km 떨어진 다뉴브 강 하류 허르쩌(harta)지역에서 시신 1구가 주민의 신고로 수습됐기 때문에 수색의 출발점을 그곳으로 잡은 것입니다.

헝가리 측은 군경 헬기 3대를 동원해 다뉴브 강을 매일 훑어가고 있습니다.

인접국에서는 수색견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민간단체는 8일 수색견 5마리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실종자 선미에 있을 듯…유실 방지 최선

물론 침몰한 허블레아니 호 안에도 실종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선수 부분은 창고입니다. 사람이 탑승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실종자가 있다면 주로 선미에 있을 것으로 대응팀은 보고 있습니다.

헝가리 측의 반대로 선내 수색은 지금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중 수색 결과 중간 부분 출입문 일부가 파손돼 이 부분은 그물망을 설치하고, 아래쪽의 큰 유리창은 튼튼한 바나 체인을 고정해 시신이 나오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남은 실종자를 빨리 찾는 일, 가족들의 눈물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뉴브 강의 비극은 이제 더는 생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참고기사]
1. Death ships took victims on the Danube, https://24.hu/tudomany/2019/06/06/dunai-hajobaleset-duna-gozha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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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돋보기] “흑해 도달 전 찾아야”…다뉴브 강 비극의 역사는?
    • 입력 2019-06-08 07:06:26
    • 수정2019-06-08 11: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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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 참사가 발생한 다뉴브 강은 총 길이 2,860km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입니다. 헝가리 구간만 417km에 이릅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도나우'라고 부르고, 헝가리에서는 '두너'이라고 발음합니다.

이렇게 매우 길기 때문에 시신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다뉴브 강물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가로질러 가다 흑해로 빠지며 긴 여정을 마칩니다.


"흑해 도달 전 찾아야"…'아이언 게이트' 길목

실종자의 시신이 흑해까지 흘러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외교부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루마니에 협조를 구한 상태입니다. 세르비아의 경우 최대 15명의 전문 잠수 인력을 동원해 수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다페스트를 지나면 강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카르파티아산맥과 발칸 사이를 통과하는 데 이 협곡을 아이언 게이트(Iron Gate)라고 부릅니다.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라고 합니다. 현재 실종자 수색은 이 아이언 게이트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루마니아 지역의 다뉴브 강에는 댐이 있습니다. 이 댐에서 과거 실종자가 발견된 적이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실종자를 찾을 수 있는 길목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언 게이트(Iron Gate)
다뉴브 비극의 역사…산업혁명 이후 본격화

다뉴브 강에서는 증기기관의 시대가 열리면서 사고의 위험은 항상 존재하면서 또 커져만 갔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에 이르러 경제 교류가 확대되면서 1만 4천여 척의 배가 헝가리 구간을 오고 갔습니다. 배들의 정체는 일상이 됐습니다.

헝가리 언론 24.hu의 보도를 보면, 농업국가인 헝가리는 농산물들을 주로 서유럽으로 수출했습니다. 뱃길이 이용됐습니다. 헝가리에서는 증기 기관을 이용한 배가 1830년에 처음 도입됐습니다. 산업혁명 이전 빈과 부다페스트까지는 40시간이 걸렸지만, 증기선의 도입 이후 12시간에서 14시간으로 단축됐습니다.

증기선의 도입은 헝가리 여행 지도도 바꿨습니다. 유럽인들은 동쪽으로는 빈까지만 여행했지만 1930년 이후부터는 부다페스트까지 여행 영역을 넓힌 것입니다. 동화작가 안데르센도 그때 처음으로 헝가리를 방문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머그리트 다리 부근에 유람선도 그때부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늘면서 정박할 항구도 새로 정비됐습니다. 20세기 들어서는 다뉴브 강의 배는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이번 사고가 났던 시간에 폭 4백 미터에 불과한 다뉴브 강에 70여 척의 배가 떠 있었다고 합니다. 낮까지 포함하면 사고 구간에는 수백 척의 배들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체인 브리지의 프란츠 조셉 부두. 출처 : 부다페스트 아카이브 HU.BFL.XV.19.d.1.07.146
헝가리 다뉴브 강 유역 최대 사고는 1917년…140명 사망

헝가리 역사가 포너지 졸탄(Fónagy Zoltán) 는 헝가리 다뉴브강에서의 났던 큰 사고로 3개를 꼽았습니다.

1905년 11월 10일, 에르지베트(Erzsebet) 다리에서 얼루떠(Alutta) 증기선이 다른 배와 충돌해 11명이 숨졌습니다.

1917년 4월 10일 자정에 빅토리아 호가 즈리니(Zrínyi)여객선을 들이받으면서 배 옆부분이 크게 손상되면서 140명이 숨졌습니다. 다뉴브 강의 헝가리 유역에서 발생한 사고로는 가장 큰 인명피해를 냈습니다.

1918년 4월 7일 새벽 3시에는 라쩔마쉬(Racalmas)지역에서 소피(Sophie) 증기선이 '드리너(Drina)'라는 배와 충돌한 뒤 침몰했습니다. 이 사고로 60명이 숨졌습니다.

다뉴브 강 하류 수색 확대…아래에서부터 위로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은 한국 측 수색요원들을 버스로 다뉴브 강 하류 100㎞ 지점까지 이동시켜 실종자 수색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고 지점 100km 지역에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오는 방식입니다.

3일 오전에 사고 지점에서 102km 떨어진 다뉴브 강 하류 허르쩌(harta)지역에서 시신 1구가 주민의 신고로 수습됐기 때문에 수색의 출발점을 그곳으로 잡은 것입니다.

헝가리 측은 군경 헬기 3대를 동원해 다뉴브 강을 매일 훑어가고 있습니다.

인접국에서는 수색견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민간단체는 8일 수색견 5마리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실종자 선미에 있을 듯…유실 방지 최선

물론 침몰한 허블레아니 호 안에도 실종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선수 부분은 창고입니다. 사람이 탑승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실종자가 있다면 주로 선미에 있을 것으로 대응팀은 보고 있습니다.

헝가리 측의 반대로 선내 수색은 지금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중 수색 결과 중간 부분 출입문 일부가 파손돼 이 부분은 그물망을 설치하고, 아래쪽의 큰 유리창은 튼튼한 바나 체인을 고정해 시신이 나오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남은 실종자를 빨리 찾는 일, 가족들의 눈물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뉴브 강의 비극은 이제 더는 생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참고기사]
1. Death ships took victims on the Danube, https://24.hu/tudomany/2019/06/06/dunai-hajobaleset-duna-gozha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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