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훈의 시사본부] 김원봉 조카 “왜 김원봉을 현충원에서 언급 못합니까?”

입력 2019.06.10 (16:08) 수정 2019.06.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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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대통령은 역사의 팩트를 말씀하신 것, 왜 그렇게 야단법석 떠는지 모르겠어
- 김: 자유한국당에서는 또 다시 빨갱이 프레임 들고 나와, 심하게 이념 논쟁으로 가는 듯
- 김: 대통령이 언급한 건 애국, 단합, 평화...특별히 김원봉을 영웅시하지도 않아
- 김: 김원봉을 왜 현충원에서 언급 못합니까? 김원봉은 김구보다 더 치열하게 산 사람
- 김: 북한에 가고 싶어서 간 것 아니야, 남한에 정착 못해 도망가다시피 떠난 것
- 김: 북에서 숙청? 본격적인 김일성 독재 체제를 위해 껄끄러운 상대에게 누명 씌운 것
- 김: 김원봉이 공산주의자? 공산당 가입도 안하고 교류도 많지 않아
- 김: 김원봉 기념사업회 발족 준비 중... 의열단 창단 100주년인 11월 9일이 목표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이슈
■ 방송시간 : 6월 10일(월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김태영 씨(약산 김원봉 선생의 조카)



▷ 오태훈 :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주 현충일 추념사를 놓고 여러 의견들이 지금 뜨겁습니다.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의 행적을 언급했기 때문인데요. 전에 서훈 논란이 한 번 있었죠. 그리고 또 현충원에서 대통령이 거론했다는 점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저희가 지난 4월에 한 번 연결을 해서 말씀을 좀 나눠봤었는데요. 약산 김원봉 선생의 조카, 김태영 씨 연결해서 의견 듣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김태영 : 안녕하세요. 김태영입니다. 반갑습니다.

▷ 오태훈 :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직접 들어보셨나요?

▶ 김태영 : 네, 들어봤습니다.

▷ 오태훈 : 어떠셨습니까?

▶ 김태영 : 제가 보기에는 역사의 팩트를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뭐 없었던 일도 아니고. 그런데 왜 그렇게 야단법석을 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은 또다시 빨갱이 프레임을 들고 나와야 하니까. 지난 70여 년을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현충일이 물론 6.25전쟁에 희생되신 분들에 대한 추념일이기도 하지만 독립운동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념일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언급을 딱 한 번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당시 임시정부의 광복군 자체가 또 어떤 식으로 통합이 됐다 이런 말씀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좀 너무 심하게 이념 논쟁으로 가는 것 같네요.

▷ 오태훈 : 그 추념사에서 핵심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진지공작대에 이어서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습니다. 여기서 김원봉 선생의 공적을 대통령이 언급을 왜 했다고 생각하세요?

▶ 김태영 : 우리가 지난 70여 년을 너무 오랫동안 좌우 그리고 남북의 이념 그런 것으로 반목하고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내가 볼 때는 그래서 또다시 그런 비극적인 일이 없어야겠다. 좌우든 여야든 이념이 어떻든 힘을 합쳐 애국하고. 대통령이 왜 그런 언급을 못합니까? 대통령이 언급한 건 애국, 단합, 평화 뭐 이런 의도로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그게 꼭 김원봉, 그거는 역사의 팩트고 꼭 그런 걸 갖고 또 빨갱이 이야기가 나오는지. 그리고 특별히 김원봉을 영웅시하는 그런 이야기는 내가 볼 때는 아니라고 봅니다.

▷ 오태훈 : 그러니까 반대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부분들이 이겁니다. 현충원에서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해 고위직까지 오른 인물을 추켜세웠고 대통령이 정치 갈등을 부추긴다 이런 이야기거든요. 김원봉 선생의 조카로서 어떠신지요.

▶ 김태영 : 현충원에서 우리 국군의 뿌리, 그거는 부인할 수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해방 후에는 친일매국노가 다수가 된 뿌리였죠, 군인들이. 그런데 우리 독립운동사가 상당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화합적인 차원에서 말씀을 하셨는데 실제로 그 사실 자체가 팩트가 아니라면 모르지만 팩트고 또다시 우리가 이데올로기로 너무 여태까지 반목하고 살았으니까 평화의 말씀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김원봉을 왜 현충원에서 언급을 못합니까? 김원봉은 사실 독립운동사에서는 김구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런 분을 또 북한에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고 그분이 결국은 도망가다시피 떠나가서 김일성이 홀대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아닙니까? 물론 그것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가. 굉장히 깊숙이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굳이 뭐 임시정부 쪽만 이야기할 수도 없는 거고 많은 분들이 희생을 당했는데 현충원에서라고 말씀을 하지 못하면 현충원에는 왜 그렇게 친일파들의 묘가 많습니까?

▷ 오태훈 : 독립운동가 김원봉 선생의 조카, 김태영 씨와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선생의 업적을 좀 정리하면서 말씀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 조직해서 이후 중국 국민당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계셨던 분이고 그 이후에 친일 경찰의 고문을 참다못해 월북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에 가서 숙청을 당하셨잖아요. 김원봉 선생이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 정부의 고위 관계자였다, 남침에 앞장선 인물이다 이렇게 비판하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좀 있으실 것 같습니다.

▶ 김태영 : 남침에 앞장선 그런 분은 아니고 그 당시에 북한에 올라가시다 보니까 이미 아니, 김일성인들. 김일성이야 남침을 하고 싶었겠죠. 뭐 그 당시는 실제로 남한이라는 데는 친일매국노의 세상이었다 아닙니까, 솔직히 우리가 말씀을 하자면. 그리고 남북을 갈라놓은 존재 자체는 강대국이란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나는 북한 쪽에서 볼 적에는 저 남한은 친일파들의 세상이 되었으니까 너무 증오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서 침략이 가능한 거지 그리고 김일성 개인의 어떤 그 당시에는 예를 들어 북한에도 여러 당이 존재를 했었죠, 파벌들도 많았고. 그랬는데 1948년도에 늦게 북한으로 피신을 한 김원봉의 세력이 있었겠습니까? 세력이 있어야만 전쟁에 앞장설 수 있는 상황 아닙니까? 그 당시에 세력이란, 마땅한 세력이라는 건 결국은 김일성이 그 세력을 다 장악하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스탈린의 꼭두각시였죠. 그런 역사적인 어떤 통찰력이 없으면서도 다짜고짜 앞장섰다 그렇게 이야기하기로는 좀 어패가 있는 이야기죠.

▷ 오태훈 : 독립운동의 여러 가지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도 김원봉 선생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김원봉 선생은 여기서 올라간 사람이기 때문에 세력도 없었고 그래서 그쪽에서 큰 역할을 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 되겠습니까?

▶ 김태영 : 네, 그렇죠.

▷ 오태훈 : 그러면 그 이후에 이제 북에서도 숙청을 당하시잖아요. 그 부분을 좀 말씀을 듣겠습니다, 왜 숙청을 당했는지에 대해서.

▶ 김태영 : 그 당시에 납북된 분 그다음에 그런 우리나라의 지도자급들분이죠. 그분들과 남북 화해에 대해서 그리고 중립적인 국가 이런 거에 대해서 관여한 것도 있고 또한 내가 볼 때는 김일성이 그때부터 본격적인 권력 체제를, 김일성 중심 권력 체제를 확보하기 위해서 또한 사실 대만의 장제스 총통 쪽하고 국민당하고 굉장한 친분이 있었고 그랬으니까 김일성 입장에서 볼 때는 굉장히 껄끄러운 상대죠. 자기보다 독립운동을 근 20년 정도 많이 했고 그다음에 그러니까 김일성이 본격적인 김일성 독재 체제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한참 누명도 씌우고 그랬던 것 같아요.

▷ 오태훈 : 알겠습니다.

▶ 김태영 : 그런데 뭐 많은 분들이 대충 일부분들이 나경원 의원 같은 양반이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고 이야기하고 그러는데 사실 공산주의자라 그러면 공산당에 가입을 해야 공산주의자 아닙니까. 그분은 공산당에 가입한 일도 없고 또 공산당하고 그렇게 교류가 많았던 분도 아닙니다. 굉장히 긴 스토리가 있는데 오히려 대만의 국민당 쪽에 가까웠죠. 가까웠는데 도저히 친일파들 틈에는, 한국에 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는 거 아닙니까? 계속 테러를 감행하려고 그러고 그랬으니까 노덕술에게 그렇게 당하고 여러 가지 남한에 정착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친일파들 때문에.

▷ 오태훈 : 말씀하신 것처럼 남과 북 어디에서도, 현재까지도 독립운동의 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요. 조카로서 지금 약산 김원봉 기념사업회 발족 준비하신다고 지난번에 말씀 들었습니다.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 김태영 : 진행되고 있습니다.

▷ 오태훈 : 언제 발족 예정인지 끝으로 말씀 듣겠습니다.

▶ 김태영 : 의열단 창단 100주년에 11월 9일에 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이만열 교수님과 한홍구 교수님하고 지금 의논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틀림없이 발족을 하려고 생각을 합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때가 되면 그때 좀 다시 스튜디오에서 직접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 김태영 : 감사합니다.

▷ 오태훈 :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김태영 :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 오태훈 : 독립운동가 김원봉 선생의 조카, 김태영 씨와 함께 말씀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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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태훈의 시사본부] 김원봉 조카 “왜 김원봉을 현충원에서 언급 못합니까?”
    • 입력 2019-06-10 16:08:15
    • 수정2019-06-11 10:08:51
    최영일의 시사본부
- 김: 대통령은 역사의 팩트를 말씀하신 것, 왜 그렇게 야단법석 떠는지 모르겠어
- 김: 자유한국당에서는 또 다시 빨갱이 프레임 들고 나와, 심하게 이념 논쟁으로 가는 듯
- 김: 대통령이 언급한 건 애국, 단합, 평화...특별히 김원봉을 영웅시하지도 않아
- 김: 김원봉을 왜 현충원에서 언급 못합니까? 김원봉은 김구보다 더 치열하게 산 사람
- 김: 북한에 가고 싶어서 간 것 아니야, 남한에 정착 못해 도망가다시피 떠난 것
- 김: 북에서 숙청? 본격적인 김일성 독재 체제를 위해 껄끄러운 상대에게 누명 씌운 것
- 김: 김원봉이 공산주의자? 공산당 가입도 안하고 교류도 많지 않아
- 김: 김원봉 기념사업회 발족 준비 중... 의열단 창단 100주년인 11월 9일이 목표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이슈
■ 방송시간 : 6월 10일(월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김태영 씨(약산 김원봉 선생의 조카)



▷ 오태훈 :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주 현충일 추념사를 놓고 여러 의견들이 지금 뜨겁습니다.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의 행적을 언급했기 때문인데요. 전에 서훈 논란이 한 번 있었죠. 그리고 또 현충원에서 대통령이 거론했다는 점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저희가 지난 4월에 한 번 연결을 해서 말씀을 좀 나눠봤었는데요. 약산 김원봉 선생의 조카, 김태영 씨 연결해서 의견 듣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김태영 : 안녕하세요. 김태영입니다. 반갑습니다.

▷ 오태훈 :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직접 들어보셨나요?

▶ 김태영 : 네, 들어봤습니다.

▷ 오태훈 : 어떠셨습니까?

▶ 김태영 : 제가 보기에는 역사의 팩트를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뭐 없었던 일도 아니고. 그런데 왜 그렇게 야단법석을 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은 또다시 빨갱이 프레임을 들고 나와야 하니까. 지난 70여 년을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현충일이 물론 6.25전쟁에 희생되신 분들에 대한 추념일이기도 하지만 독립운동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념일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언급을 딱 한 번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당시 임시정부의 광복군 자체가 또 어떤 식으로 통합이 됐다 이런 말씀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좀 너무 심하게 이념 논쟁으로 가는 것 같네요.

▷ 오태훈 : 그 추념사에서 핵심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진지공작대에 이어서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습니다. 여기서 김원봉 선생의 공적을 대통령이 언급을 왜 했다고 생각하세요?

▶ 김태영 : 우리가 지난 70여 년을 너무 오랫동안 좌우 그리고 남북의 이념 그런 것으로 반목하고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내가 볼 때는 그래서 또다시 그런 비극적인 일이 없어야겠다. 좌우든 여야든 이념이 어떻든 힘을 합쳐 애국하고. 대통령이 왜 그런 언급을 못합니까? 대통령이 언급한 건 애국, 단합, 평화 뭐 이런 의도로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그게 꼭 김원봉, 그거는 역사의 팩트고 꼭 그런 걸 갖고 또 빨갱이 이야기가 나오는지. 그리고 특별히 김원봉을 영웅시하는 그런 이야기는 내가 볼 때는 아니라고 봅니다.

▷ 오태훈 : 그러니까 반대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부분들이 이겁니다. 현충원에서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해 고위직까지 오른 인물을 추켜세웠고 대통령이 정치 갈등을 부추긴다 이런 이야기거든요. 김원봉 선생의 조카로서 어떠신지요.

▶ 김태영 : 현충원에서 우리 국군의 뿌리, 그거는 부인할 수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해방 후에는 친일매국노가 다수가 된 뿌리였죠, 군인들이. 그런데 우리 독립운동사가 상당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화합적인 차원에서 말씀을 하셨는데 실제로 그 사실 자체가 팩트가 아니라면 모르지만 팩트고 또다시 우리가 이데올로기로 너무 여태까지 반목하고 살았으니까 평화의 말씀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김원봉을 왜 현충원에서 언급을 못합니까? 김원봉은 사실 독립운동사에서는 김구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런 분을 또 북한에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고 그분이 결국은 도망가다시피 떠나가서 김일성이 홀대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아닙니까? 물론 그것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가. 굉장히 깊숙이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굳이 뭐 임시정부 쪽만 이야기할 수도 없는 거고 많은 분들이 희생을 당했는데 현충원에서라고 말씀을 하지 못하면 현충원에는 왜 그렇게 친일파들의 묘가 많습니까?

▷ 오태훈 : 독립운동가 김원봉 선생의 조카, 김태영 씨와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선생의 업적을 좀 정리하면서 말씀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 조직해서 이후 중국 국민당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계셨던 분이고 그 이후에 친일 경찰의 고문을 참다못해 월북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에 가서 숙청을 당하셨잖아요. 김원봉 선생이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 정부의 고위 관계자였다, 남침에 앞장선 인물이다 이렇게 비판하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좀 있으실 것 같습니다.

▶ 김태영 : 남침에 앞장선 그런 분은 아니고 그 당시에 북한에 올라가시다 보니까 이미 아니, 김일성인들. 김일성이야 남침을 하고 싶었겠죠. 뭐 그 당시는 실제로 남한이라는 데는 친일매국노의 세상이었다 아닙니까, 솔직히 우리가 말씀을 하자면. 그리고 남북을 갈라놓은 존재 자체는 강대국이란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나는 북한 쪽에서 볼 적에는 저 남한은 친일파들의 세상이 되었으니까 너무 증오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서 침략이 가능한 거지 그리고 김일성 개인의 어떤 그 당시에는 예를 들어 북한에도 여러 당이 존재를 했었죠, 파벌들도 많았고. 그랬는데 1948년도에 늦게 북한으로 피신을 한 김원봉의 세력이 있었겠습니까? 세력이 있어야만 전쟁에 앞장설 수 있는 상황 아닙니까? 그 당시에 세력이란, 마땅한 세력이라는 건 결국은 김일성이 그 세력을 다 장악하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스탈린의 꼭두각시였죠. 그런 역사적인 어떤 통찰력이 없으면서도 다짜고짜 앞장섰다 그렇게 이야기하기로는 좀 어패가 있는 이야기죠.

▷ 오태훈 : 독립운동의 여러 가지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도 김원봉 선생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김원봉 선생은 여기서 올라간 사람이기 때문에 세력도 없었고 그래서 그쪽에서 큰 역할을 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 되겠습니까?

▶ 김태영 : 네, 그렇죠.

▷ 오태훈 : 그러면 그 이후에 이제 북에서도 숙청을 당하시잖아요. 그 부분을 좀 말씀을 듣겠습니다, 왜 숙청을 당했는지에 대해서.

▶ 김태영 : 그 당시에 납북된 분 그다음에 그런 우리나라의 지도자급들분이죠. 그분들과 남북 화해에 대해서 그리고 중립적인 국가 이런 거에 대해서 관여한 것도 있고 또한 내가 볼 때는 김일성이 그때부터 본격적인 권력 체제를, 김일성 중심 권력 체제를 확보하기 위해서 또한 사실 대만의 장제스 총통 쪽하고 국민당하고 굉장한 친분이 있었고 그랬으니까 김일성 입장에서 볼 때는 굉장히 껄끄러운 상대죠. 자기보다 독립운동을 근 20년 정도 많이 했고 그다음에 그러니까 김일성이 본격적인 김일성 독재 체제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한참 누명도 씌우고 그랬던 것 같아요.

▷ 오태훈 : 알겠습니다.

▶ 김태영 : 그런데 뭐 많은 분들이 대충 일부분들이 나경원 의원 같은 양반이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고 이야기하고 그러는데 사실 공산주의자라 그러면 공산당에 가입을 해야 공산주의자 아닙니까. 그분은 공산당에 가입한 일도 없고 또 공산당하고 그렇게 교류가 많았던 분도 아닙니다. 굉장히 긴 스토리가 있는데 오히려 대만의 국민당 쪽에 가까웠죠. 가까웠는데 도저히 친일파들 틈에는, 한국에 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는 거 아닙니까? 계속 테러를 감행하려고 그러고 그랬으니까 노덕술에게 그렇게 당하고 여러 가지 남한에 정착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친일파들 때문에.

▷ 오태훈 : 말씀하신 것처럼 남과 북 어디에서도, 현재까지도 독립운동의 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요. 조카로서 지금 약산 김원봉 기념사업회 발족 준비하신다고 지난번에 말씀 들었습니다.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 김태영 : 진행되고 있습니다.

▷ 오태훈 : 언제 발족 예정인지 끝으로 말씀 듣겠습니다.

▶ 김태영 : 의열단 창단 100주년에 11월 9일에 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이만열 교수님과 한홍구 교수님하고 지금 의논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틀림없이 발족을 하려고 생각을 합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때가 되면 그때 좀 다시 스튜디오에서 직접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 김태영 : 감사합니다.

▷ 오태훈 :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김태영 :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 오태훈 : 독립운동가 김원봉 선생의 조카, 김태영 씨와 함께 말씀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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