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일로 걷는 한일 관계…“민간 교류 ‘지렛대’로”

입력 2019.06.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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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악화일로'

한일 관계가 말 그대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군 위안부나 독도 문제 등을 둘러싼 오랜 갈등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초계기·레이더 충돌이 더해졌다. 일본의 거센 반발은 증폭을 키웠다. 한국언론진흥재단·한일미래포럼 주최로 7일 도쿄 게이오대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에서 한·일 학자와 언론인들은 경고등이 켜진 한일 관계 상황에 대해 공감하며 다양한 진단과 해법을 내놓았다.

7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에 양국 학자와 언론인들이 참석해 한일 관계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7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에 양국 학자와 언론인들이 참석해 한일 관계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징용공 판결'로 더욱 대립 첨예

최근 한일 관계 악화에 큰 영향을 준 사안으로 일본 측 언론인과 전문가들은 '강제 징용공 배상 판결'을 꼽았다. 5월 1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전범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절차에 착수했는데, 그 근거가 된 것이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이다. 일본은 이 판결로 '1965년 국교 정상화 체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국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하며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아와쿠라 요시카쓰 교도통신 기자는 "징용공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요구에) 한국 정부의 대응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징용 피해자들이) 승소 판결로 얻은 권익을 (한국) 국가가 뺏는 행보를 보이기는 어렵지 않겠냐"고 예상했다.

대법원대법원

일제 강제징용 피해보상 촉구집회일제 강제징용 피해보상 촉구집회

중요도·협력도↓… 관계에도 영향

한일 관계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은 일본 측이 더 커 보였다. 산업화와 경제 발전이 한창이던 한국에 일본은 매우 중요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중국보다 가치나 중요도가 떨어져 관계 악화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한국의 자신감이 상승한 점도 일부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었다.

오쿠노조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냉전이 종식되면서 과거사라는 원심력이 커지고, (안보·경제 같은) 구심력이 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줄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2012년 8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도 이전과는 다르다'고 발언한 일을 "일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상징적 사건"으로 언급했다.

지난해 6월까지 2년간 요미우리신문 서울 지국장을 지낸 나카지마 켄타로 기자는 "귀국 후 외무성을 출입하면서 (일본) 정부 관계자를 접촉할 기회가 많았는데, 귀국 전보다 한국을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줄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안보협력은 양국 의견을 일치시킬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상호 필요성도 있었다"면서도 "자위함 욱일기 문제와 초계기 레이더 문제 등 안보협력에 타격을 받는 일들이 있었고, 이것이 정부 관계자 생각에 악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G20 계기 정상회담' 하나, 안 하나?

한국 측 참가자들은 일본을 향해 전향적인 해법 찾기를 촉구했다. 당장 이달 말이면 일본 오사카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비록 징용공 이슈 등으로 갈등이 첨예하더라도 '한일 정상회담이 없을 수 있다'고 협박하는 듯한 일본의 태도는 상식적이지 않다고 일침을 놓았다.

현 정부의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이었던 김현철 교수(서울대 일본연구소장) 역시,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이 G20 회의에 안 와도 좋다는 메시지가 일본에서 나온 것을 보고 굉장히 실망했고, 아소 다로 부총리 입에서 '경제 보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추규호 한일미래포럼 대표(前 주영국대사)는 "초청받은 나라가 회담을 하고 싶다는데 의장국이 거부하는 것은 외교관 생활 오래 하면서 들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간 교류 확대를 '지렛대'로

선명한 시각차를 드러내던 토론 참가자들이었지만 관계가 어려울수록 냉정을 찾고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을 나타냈다. 중심엔 민간 교류 활성화가 있었다.

미네기시 히로시 닛케이신문 편집위원은 "한일 관계에 있어 안보, 경제, 민간이라는 3개의 '안전핀'이 있다"며 "안보와 경제 분야조차 어렵다면 민간 교류를 더욱 활성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역시 "과거 같은 한일 관계의 복원력을 회복하려면 양국 국민이 자주 만나고 가까워져야 한다"면서 "청소년 학생을 교류시켜 상호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을 기성세대들이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한일 언론인 심포지엄

"'협력 없인 둘 다 손해' 인식해야"
무엇보다 미중 무역의 장기화와 패권 다툼, 북한·한반도 문제 등을 감안할 경우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협력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중요해졌다고 참가자들은 강조했다. 미국의 통상이나 방위비 인상 압력, 중국의 강대국 부상 등이 대표적인 예다.

조양현 교수는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한·일 양국이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쌍방이 모두 손해를 보는 관계에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며 "안정적인 지역·세계 질서 구축이라는 다자적 관점에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쿠노조 교수 역시 "미국과 중국이 각각 자국 중심 질서를 구축하려고 하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일본과 한국은 전략적 관점에서, 그리고 동북아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게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거고, 한·일 모두 효과적인 레버리지(지렛대)를 가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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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화일로 걷는 한일 관계…“민간 교류 ‘지렛대’로”
    • 입력 2019-06-10 17:55:11
    취재K
한·일 관계 '악화일로'

한일 관계가 말 그대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군 위안부나 독도 문제 등을 둘러싼 오랜 갈등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초계기·레이더 충돌이 더해졌다. 일본의 거센 반발은 증폭을 키웠다. 한국언론진흥재단·한일미래포럼 주최로 7일 도쿄 게이오대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에서 한·일 학자와 언론인들은 경고등이 켜진 한일 관계 상황에 대해 공감하며 다양한 진단과 해법을 내놓았다.

7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에 양국 학자와 언론인들이 참석해 한일 관계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징용공 판결'로 더욱 대립 첨예

최근 한일 관계 악화에 큰 영향을 준 사안으로 일본 측 언론인과 전문가들은 '강제 징용공 배상 판결'을 꼽았다. 5월 1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전범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절차에 착수했는데, 그 근거가 된 것이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이다. 일본은 이 판결로 '1965년 국교 정상화 체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국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하며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아와쿠라 요시카쓰 교도통신 기자는 "징용공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요구에) 한국 정부의 대응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징용 피해자들이) 승소 판결로 얻은 권익을 (한국) 국가가 뺏는 행보를 보이기는 어렵지 않겠냐"고 예상했다.

대법원
일제 강제징용 피해보상 촉구집회
중요도·협력도↓… 관계에도 영향

한일 관계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은 일본 측이 더 커 보였다. 산업화와 경제 발전이 한창이던 한국에 일본은 매우 중요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중국보다 가치나 중요도가 떨어져 관계 악화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한국의 자신감이 상승한 점도 일부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었다.

오쿠노조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냉전이 종식되면서 과거사라는 원심력이 커지고, (안보·경제 같은) 구심력이 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줄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2012년 8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도 이전과는 다르다'고 발언한 일을 "일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상징적 사건"으로 언급했다.

지난해 6월까지 2년간 요미우리신문 서울 지국장을 지낸 나카지마 켄타로 기자는 "귀국 후 외무성을 출입하면서 (일본) 정부 관계자를 접촉할 기회가 많았는데, 귀국 전보다 한국을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줄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안보협력은 양국 의견을 일치시킬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상호 필요성도 있었다"면서도 "자위함 욱일기 문제와 초계기 레이더 문제 등 안보협력에 타격을 받는 일들이 있었고, 이것이 정부 관계자 생각에 악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G20 계기 정상회담' 하나, 안 하나?

한국 측 참가자들은 일본을 향해 전향적인 해법 찾기를 촉구했다. 당장 이달 말이면 일본 오사카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비록 징용공 이슈 등으로 갈등이 첨예하더라도 '한일 정상회담이 없을 수 있다'고 협박하는 듯한 일본의 태도는 상식적이지 않다고 일침을 놓았다.

현 정부의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이었던 김현철 교수(서울대 일본연구소장) 역시,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이 G20 회의에 안 와도 좋다는 메시지가 일본에서 나온 것을 보고 굉장히 실망했고, 아소 다로 부총리 입에서 '경제 보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추규호 한일미래포럼 대표(前 주영국대사)는 "초청받은 나라가 회담을 하고 싶다는데 의장국이 거부하는 것은 외교관 생활 오래 하면서 들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간 교류 확대를 '지렛대'로

선명한 시각차를 드러내던 토론 참가자들이었지만 관계가 어려울수록 냉정을 찾고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을 나타냈다. 중심엔 민간 교류 활성화가 있었다.

미네기시 히로시 닛케이신문 편집위원은 "한일 관계에 있어 안보, 경제, 민간이라는 3개의 '안전핀'이 있다"며 "안보와 경제 분야조차 어렵다면 민간 교류를 더욱 활성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역시 "과거 같은 한일 관계의 복원력을 회복하려면 양국 국민이 자주 만나고 가까워져야 한다"면서 "청소년 학생을 교류시켜 상호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을 기성세대들이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
"'협력 없인 둘 다 손해' 인식해야"
무엇보다 미중 무역의 장기화와 패권 다툼, 북한·한반도 문제 등을 감안할 경우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협력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중요해졌다고 참가자들은 강조했다. 미국의 통상이나 방위비 인상 압력, 중국의 강대국 부상 등이 대표적인 예다.

조양현 교수는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한·일 양국이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쌍방이 모두 손해를 보는 관계에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며 "안정적인 지역·세계 질서 구축이라는 다자적 관점에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쿠노조 교수 역시 "미국과 중국이 각각 자국 중심 질서를 구축하려고 하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일본과 한국은 전략적 관점에서, 그리고 동북아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게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거고, 한·일 모두 효과적인 레버리지(지렛대)를 가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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