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수천억 원 아파트 분양가 심사…명단도 내역도 ‘깜깜이’

입력 2019.06.11 (17:20) 수정 2019.06.1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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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0분 동안 수천억 원 분양원가 '뚝딱' 심사

3월 18일 오후 3시. 서울 송파구청 신관 8층 아카데미실에서는 '2019년 제1차 분양가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모인 분양가심사위원들은 송파구청 직원 1명, LH 직원 1명, 감정평가사와 주택관리사, 대학교수, 세무사까지 모두 6명이었다.

심사위원 6명 앞에 놓인 안건은 위례지구 A1-6BL 공동주택 신축공사, 외부에는 '북위례 계룡 리슈빌'로 알려진 아파트 단지의 분양가 심사였다. 공공택지 개발로는 흔치 않은 서울 지역인 데다가 입지가 좋아 일찌감치 인기가 예상됐던 단지다.

건설사 측이 제시한 '북위례 계룡리슈빌'의 사업비(분양원가)는 4,481억 1,167만 6,666원. 3.3㎡당 2,179만 3,024원이었다. 1시간 30분이 지났다. 건설사가 제시한 사업비는 4,481억 1,167만 6,666원.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분양가 심사위원회는 그렇게 끝났다.

궁금했다. 1시간 30분 동안 어떤 심사가 이뤄졌을까. 왜 건설사가 제시한 건축비가 하나도 바뀌지 않았을까. 송파구청을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송파구청은 '분양가심사위원회 규정' 가운데 제4조6 "위원회의 회의진행은 공개하지 아니한다. 다만, 위원회의 의결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공개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들어 공개를 거부했다.

같은 북위례 신도시인 위례지구 A3-4A, 경기도 하남시 북위례힐스테이트도 사정은 비슷했다. 건설사인 현대엔지니어링에 제시한 7,738억 8천여만 원 가운데 심사과정에서 깎인 건 고작 128억 원 남짓. 3.3㎡당 분양가가 1,864만 원에서 1,833만 원으로 30만 원 줄어드는 데 그쳤다.

1시간 30분 만에 회의가 끝난 것도,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분양가심사위원회 회의 내용을 공개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것도 송파구와 하남시 모두 똑같았다.


허술한 분양가 심사규정…심사위원 요건은?

짧은 심사시간도 문제지만 회의에 참석한 심사위원들의 면면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택법 시행령에 명시된 분양가심사위원회 규정을 보면 분양가 심사위원은 10명 이내로 구성하되 민간위원이 6명 이상 포함돼야 한다. 민간위원 6명은 4가지 전문 분야에 해당하는 전문가들이 각 1명씩 반드시 있어야 한다.

분야별로 보면 주택 관련 전공 교수 1명, 변호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세무사 1년 이상 종사자 1명, 토목, 건축 주택분야 5년 이상 종사자 1명, 주택관리사로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5년 이상 종사자 1명이다.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다각도로 분양가의 적정성을 검토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문제는 전체 심사위원과 실제로 심사에 참석하는 심사위원 사이에 구성상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송파구 분양가심사위의 경우 위원회 구성상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4개의 전문분야 가운데 3개 분야의 전문가는 참석했지만 토목, 건축 주택분야 5년 이상 종사자는 없었다.

분양가 심사위원 10명 가운데 민간위원 4명이 참석한 하남시의 경우는 편중이 더 심했다. 원가 분석사 2명과 건축사 1명, 주택관리사 1명이 참석했는데 주택 관련 교수와 변호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세무사 등의 전문가는 없었다.

심사위원 10명 가운데 과반 참석에 그 중 과반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도록 했지만, 참석 요건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이 없다 보니 회의 자체가 부실해질 위험이 크다는 이야기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분양가심사위원회에 공무원 4명과 주택관리사 2명만 참석해도 분양가 심사에는 절차적 문제가 없게 된다.

더구나, 심의위원회 전체명단이나 참석자 구성이 공개되지 않다 보니 심사위원 구성이나 과정이 부실해지거나, 이해당사자가 개입해도 이를 감시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도 문제다.

실제로, 지난해 8월에는 과천시 지식정보타운에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짓는 아파트의 분양가심사위에 해당 아파트의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금호산업 직원이 위원으로 위촉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부동산ㆍ국책사업감시팀 최승섭 부장은 "분양가심사위는 투입되는 금액과 맞게 돼 있는지 적절한 이윤이 들어가 있는지 전혀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부장은 또 "분양가심사위원 명단조차 공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리라든가 청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데다가 분양가를 얼마나 어떻게 책정했는지 공개하지 않아 소비자들은 전혀 판단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꼼꼼한 심사' 우선인데…제도 개선 손 놓은 국토부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 방안 가운데 하나로 분양원가 공개항목 확대를 내세우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 역시 여러 차례 분양원가 공개 확대에 대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특히 김 장관은 공공분양 아파트의 고분양가 논란과 관련해 분양가의 적정성을 재점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원가 공개만으로 비전문가인 일반 시민들이 복잡하게 결정되는 분양원가의 적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 시민들을 대신해 전문가인 분양가 심사위원들이 분양가의 적정성을 분석하고 검토하라는 것이 주택법을 통해 분양가심사위원회를 만들어 놓은 취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분양가심사위가 실효성 있는 심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주택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부는 심사제도 운영에 큰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이명섭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많은 위원회나 회의들도 비공개로 진행되는 것들이 있다"면서, "국회가 예산안 심사를 굉장히 짧은 시간에 처리하는 것이나 법안심사소위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명섭 과장은 "해당 분야에 식견들이 충분히 있는 사람들이 선정되도록 제도를 만들어 놓았으니까 그 제도대로만 운영된다고 하면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면서도 "일부 지자체에서 건축비 적산 전문가가 들어오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그 부분은 검토중"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난달 3기 신도시 전체에 대한 '큰 그림'을 내놓았다. 하지만 분양가심사위 명단과 회의록 공개 등을 통한 분양가 심사제도의 내실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수십조 원의 혈세가 투입될 3기 신도시가 건설사 배불리기에만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와 관련해 법안 발의 등을 통해 분양원가 공개 확대를 주장해왔던 정동영 의원(국회 국토교통위)은 "현재의 분양가심사위원회 제도는 형식적으로 승인해주는 허수아비인 셈"이라면서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국토부가 서민들에게 불리하고 건설사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왜 비호하는지 국토부 관료들에 대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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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수천억 원 아파트 분양가 심사…명단도 내역도 ‘깜깜이’
    • 입력 2019-06-11 17:20:25
    • 수정2019-06-11 17:26:49
    취재후·사건후
1시간 30분 동안 수천억 원 분양원가 '뚝딱' 심사

3월 18일 오후 3시. 서울 송파구청 신관 8층 아카데미실에서는 '2019년 제1차 분양가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모인 분양가심사위원들은 송파구청 직원 1명, LH 직원 1명, 감정평가사와 주택관리사, 대학교수, 세무사까지 모두 6명이었다.

심사위원 6명 앞에 놓인 안건은 위례지구 A1-6BL 공동주택 신축공사, 외부에는 '북위례 계룡 리슈빌'로 알려진 아파트 단지의 분양가 심사였다. 공공택지 개발로는 흔치 않은 서울 지역인 데다가 입지가 좋아 일찌감치 인기가 예상됐던 단지다.

건설사 측이 제시한 '북위례 계룡리슈빌'의 사업비(분양원가)는 4,481억 1,167만 6,666원. 3.3㎡당 2,179만 3,024원이었다. 1시간 30분이 지났다. 건설사가 제시한 사업비는 4,481억 1,167만 6,666원.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분양가 심사위원회는 그렇게 끝났다.

궁금했다. 1시간 30분 동안 어떤 심사가 이뤄졌을까. 왜 건설사가 제시한 건축비가 하나도 바뀌지 않았을까. 송파구청을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송파구청은 '분양가심사위원회 규정' 가운데 제4조6 "위원회의 회의진행은 공개하지 아니한다. 다만, 위원회의 의결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공개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들어 공개를 거부했다.

같은 북위례 신도시인 위례지구 A3-4A, 경기도 하남시 북위례힐스테이트도 사정은 비슷했다. 건설사인 현대엔지니어링에 제시한 7,738억 8천여만 원 가운데 심사과정에서 깎인 건 고작 128억 원 남짓. 3.3㎡당 분양가가 1,864만 원에서 1,833만 원으로 30만 원 줄어드는 데 그쳤다.

1시간 30분 만에 회의가 끝난 것도,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분양가심사위원회 회의 내용을 공개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것도 송파구와 하남시 모두 똑같았다.


허술한 분양가 심사규정…심사위원 요건은?

짧은 심사시간도 문제지만 회의에 참석한 심사위원들의 면면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택법 시행령에 명시된 분양가심사위원회 규정을 보면 분양가 심사위원은 10명 이내로 구성하되 민간위원이 6명 이상 포함돼야 한다. 민간위원 6명은 4가지 전문 분야에 해당하는 전문가들이 각 1명씩 반드시 있어야 한다.

분야별로 보면 주택 관련 전공 교수 1명, 변호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세무사 1년 이상 종사자 1명, 토목, 건축 주택분야 5년 이상 종사자 1명, 주택관리사로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5년 이상 종사자 1명이다.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다각도로 분양가의 적정성을 검토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문제는 전체 심사위원과 실제로 심사에 참석하는 심사위원 사이에 구성상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송파구 분양가심사위의 경우 위원회 구성상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4개의 전문분야 가운데 3개 분야의 전문가는 참석했지만 토목, 건축 주택분야 5년 이상 종사자는 없었다.

분양가 심사위원 10명 가운데 민간위원 4명이 참석한 하남시의 경우는 편중이 더 심했다. 원가 분석사 2명과 건축사 1명, 주택관리사 1명이 참석했는데 주택 관련 교수와 변호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세무사 등의 전문가는 없었다.

심사위원 10명 가운데 과반 참석에 그 중 과반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도록 했지만, 참석 요건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이 없다 보니 회의 자체가 부실해질 위험이 크다는 이야기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분양가심사위원회에 공무원 4명과 주택관리사 2명만 참석해도 분양가 심사에는 절차적 문제가 없게 된다.

더구나, 심의위원회 전체명단이나 참석자 구성이 공개되지 않다 보니 심사위원 구성이나 과정이 부실해지거나, 이해당사자가 개입해도 이를 감시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도 문제다.

실제로, 지난해 8월에는 과천시 지식정보타운에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짓는 아파트의 분양가심사위에 해당 아파트의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금호산업 직원이 위원으로 위촉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부동산ㆍ국책사업감시팀 최승섭 부장은 "분양가심사위는 투입되는 금액과 맞게 돼 있는지 적절한 이윤이 들어가 있는지 전혀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부장은 또 "분양가심사위원 명단조차 공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리라든가 청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데다가 분양가를 얼마나 어떻게 책정했는지 공개하지 않아 소비자들은 전혀 판단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꼼꼼한 심사' 우선인데…제도 개선 손 놓은 국토부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 방안 가운데 하나로 분양원가 공개항목 확대를 내세우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 역시 여러 차례 분양원가 공개 확대에 대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특히 김 장관은 공공분양 아파트의 고분양가 논란과 관련해 분양가의 적정성을 재점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원가 공개만으로 비전문가인 일반 시민들이 복잡하게 결정되는 분양원가의 적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 시민들을 대신해 전문가인 분양가 심사위원들이 분양가의 적정성을 분석하고 검토하라는 것이 주택법을 통해 분양가심사위원회를 만들어 놓은 취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분양가심사위가 실효성 있는 심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주택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부는 심사제도 운영에 큰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이명섭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많은 위원회나 회의들도 비공개로 진행되는 것들이 있다"면서, "국회가 예산안 심사를 굉장히 짧은 시간에 처리하는 것이나 법안심사소위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명섭 과장은 "해당 분야에 식견들이 충분히 있는 사람들이 선정되도록 제도를 만들어 놓았으니까 그 제도대로만 운영된다고 하면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면서도 "일부 지자체에서 건축비 적산 전문가가 들어오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그 부분은 검토중"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난달 3기 신도시 전체에 대한 '큰 그림'을 내놓았다. 하지만 분양가심사위 명단과 회의록 공개 등을 통한 분양가 심사제도의 내실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수십조 원의 혈세가 투입될 3기 신도시가 건설사 배불리기에만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와 관련해 법안 발의 등을 통해 분양원가 공개 확대를 주장해왔던 정동영 의원(국회 국토교통위)은 "현재의 분양가심사위원회 제도는 형식적으로 승인해주는 허수아비인 셈"이라면서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국토부가 서민들에게 불리하고 건설사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왜 비호하는지 국토부 관료들에 대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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