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엉터리 데이터에, 설명회서 졸기까지…자위대 수준이

입력 2019.06.12 (07:01) 수정 2019.06.12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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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어쇼어.

이름도 낯선 이 군사 시스템의 도입 배경에는 사실 북한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가 이어지고, 일본 열도 상공을 가로질러 태평양에까지 날아가 미사일이 떨어지자 화들짝 놀란 일본 정부는 미사일을 막기 위한 요격 시스템을 찾게 됐고, 그래서 도입이 결정된 것이 '이지스 어쇼어'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바다의 방패'라고 불리는 이지스함에 구축된 최첨단 레이더와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지상에 설치해 외부의 미사일 공격을 막겠다는 구상으로 지난 2017년 12월 도입이 결정됐다.

2기의 이지스 어쇼어 시스템을 갖추는데 드는 비용은 모두 2,404억 엔. 우리 돈 2조 4천억 원이 훌쩍 넘는 고가의 장비. 게다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인 만큼 도입과 배치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일본 전역을 방어한다는 목적을 내세워 일본 방위성은 지난해 6월, 북부 아키다 현과 남부 야마구치 현 두 곳을 배치 후보지로 최종 지정하고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당초 '북한 미사일 위협'을 설치 이유로 들었지만, 북미 대화 모드 등으로 북한이 더 이상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으면서 이를 갖춰야 할 근거가 상당히 약해졌다는 데 있다.

특히 주민들 반발이 심하다. 원래 군사 시설이라는 것이 유사시 1차 공격 목표가 되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는 데다, 북한의 위협이 약해지는 상황까지 겹쳐지자 왜 우리 지역에 '요격 미사일'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또 전자파로 인한 피해 우려 또한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방위성은 그래서 아키타 현 아라야 연습장에 이지스 어쇼를 배치하는 것과 관련해, 이곳 외에도 모두 19곳을 조사해, 그 결과 그중 9곳은 탄도미사일을 추적하는 레이더가 주변의 산에 막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보고서까지 공개했다. 이른바 설치 장소에서 주변 산 정상까지의 각도가 높아 레이더를 막는다는 것으로 현재 정해진 장소가 최적의 장소임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또 그 밖의 지역은 평탄지 비율, 전기·도로·수도 등 기본 인프라 상황이 조건에 충족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사히 신문은 오늘 방위성이 공개한 보고서의 데이터 가운데 후보지와 인근의 산 정상까지의 각도가 모두 실제 각도보다 큰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예를 들어 아키타 현의 또 다른 후보지의 경우 후보지 서쪽에 있는 산까지의 각도를 15도라고 해 부적합 판정을 내렸지만, 실제 각도는 4도밖에 되지 않아 설치가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곳도 후보지가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당장 해당 지역에서는 현재 지정된 곳에 이지스 어쇼어 배치를 밀어붙이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반발이 튀어나왔다.

이와 관련해 방위성은 후보지를 실측하지 않고 구글에서 제공하는지도 애플리케이션인 '구글 어스'를 사용해 오류가 났다고 해명했다. 실측을 하지 않은 것도 놀랍지만, 범용 애플리케이션을 군사용 보고서 작성에 사용한 경위도 불가사의할 정도다.

아사히 신문은 방위성 간부가 "조사 전체의 신뢰성을 실추시켰다"며 해당 지역 의회 등에 사과했다고 전했다. 가장 정확해야 할 군사 시설 후보지 관련 조사 데이터가 엉터리로 드러나면서 과연 자위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보여준 상황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지난 8일 해당 지역 주민 설명회에서 방위성이 이에 대해 사과했는데, 이번에는 설명회 자리에 배석한 방위성 간부가 졸다가 주민의 지적을 받으면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우리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입니다."라는 주민의 목소리에 설명회장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설명회장에서 자위대 간부가 졸자 주민이 이를 질타하고 있다설명회장에서 자위대 간부가 졸자 주민이 이를 질타하고 있다

이와야 방위상은 이와 관련 "긴장감이 결여된 극히 부적절한 행위"라며 사과했고, 스가 관방장관 또한 정례 기자회견에서 "긴장감을 갖고 대응해줬으면 좋겠다"며 방위성을 질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일련의 흐름 속에 이미 방위성에 대한 지역민들의 신뢰도는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 결국, 아키타현의 사다케 지사는 아키타현 의회에서 방위성과의 협의를 백지화할 생각을 밝혔다. 그는 "정말로 유감"이라며 "방위성의 기본자세에 매우 의문이 있어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여기에 또 다른 후보지 인접 지역인 야마구치현 아부초에서도 철회를 요구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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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2 07:01:54
    • 수정2019-06-12 07: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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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어쇼어.

이름도 낯선 이 군사 시스템의 도입 배경에는 사실 북한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가 이어지고, 일본 열도 상공을 가로질러 태평양에까지 날아가 미사일이 떨어지자 화들짝 놀란 일본 정부는 미사일을 막기 위한 요격 시스템을 찾게 됐고, 그래서 도입이 결정된 것이 '이지스 어쇼어'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바다의 방패'라고 불리는 이지스함에 구축된 최첨단 레이더와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지상에 설치해 외부의 미사일 공격을 막겠다는 구상으로 지난 2017년 12월 도입이 결정됐다.

2기의 이지스 어쇼어 시스템을 갖추는데 드는 비용은 모두 2,404억 엔. 우리 돈 2조 4천억 원이 훌쩍 넘는 고가의 장비. 게다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인 만큼 도입과 배치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일본 전역을 방어한다는 목적을 내세워 일본 방위성은 지난해 6월, 북부 아키다 현과 남부 야마구치 현 두 곳을 배치 후보지로 최종 지정하고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당초 '북한 미사일 위협'을 설치 이유로 들었지만, 북미 대화 모드 등으로 북한이 더 이상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으면서 이를 갖춰야 할 근거가 상당히 약해졌다는 데 있다.

특히 주민들 반발이 심하다. 원래 군사 시설이라는 것이 유사시 1차 공격 목표가 되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는 데다, 북한의 위협이 약해지는 상황까지 겹쳐지자 왜 우리 지역에 '요격 미사일'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또 전자파로 인한 피해 우려 또한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방위성은 그래서 아키타 현 아라야 연습장에 이지스 어쇼를 배치하는 것과 관련해, 이곳 외에도 모두 19곳을 조사해, 그 결과 그중 9곳은 탄도미사일을 추적하는 레이더가 주변의 산에 막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보고서까지 공개했다. 이른바 설치 장소에서 주변 산 정상까지의 각도가 높아 레이더를 막는다는 것으로 현재 정해진 장소가 최적의 장소임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또 그 밖의 지역은 평탄지 비율, 전기·도로·수도 등 기본 인프라 상황이 조건에 충족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사히 신문은 오늘 방위성이 공개한 보고서의 데이터 가운데 후보지와 인근의 산 정상까지의 각도가 모두 실제 각도보다 큰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예를 들어 아키타 현의 또 다른 후보지의 경우 후보지 서쪽에 있는 산까지의 각도를 15도라고 해 부적합 판정을 내렸지만, 실제 각도는 4도밖에 되지 않아 설치가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곳도 후보지가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당장 해당 지역에서는 현재 지정된 곳에 이지스 어쇼어 배치를 밀어붙이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반발이 튀어나왔다.

이와 관련해 방위성은 후보지를 실측하지 않고 구글에서 제공하는지도 애플리케이션인 '구글 어스'를 사용해 오류가 났다고 해명했다. 실측을 하지 않은 것도 놀랍지만, 범용 애플리케이션을 군사용 보고서 작성에 사용한 경위도 불가사의할 정도다.

아사히 신문은 방위성 간부가 "조사 전체의 신뢰성을 실추시켰다"며 해당 지역 의회 등에 사과했다고 전했다. 가장 정확해야 할 군사 시설 후보지 관련 조사 데이터가 엉터리로 드러나면서 과연 자위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보여준 상황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지난 8일 해당 지역 주민 설명회에서 방위성이 이에 대해 사과했는데, 이번에는 설명회 자리에 배석한 방위성 간부가 졸다가 주민의 지적을 받으면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우리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입니다."라는 주민의 목소리에 설명회장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설명회장에서 자위대 간부가 졸자 주민이 이를 질타하고 있다
이와야 방위상은 이와 관련 "긴장감이 결여된 극히 부적절한 행위"라며 사과했고, 스가 관방장관 또한 정례 기자회견에서 "긴장감을 갖고 대응해줬으면 좋겠다"며 방위성을 질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일련의 흐름 속에 이미 방위성에 대한 지역민들의 신뢰도는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 결국, 아키타현의 사다케 지사는 아키타현 의회에서 방위성과의 협의를 백지화할 생각을 밝혔다. 그는 "정말로 유감"이라며 "방위성의 기본자세에 매우 의문이 있어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여기에 또 다른 후보지 인접 지역인 야마구치현 아부초에서도 철회를 요구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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