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쓸모] ‘모름’의 쓸모?…영화 ‘배심원들’

입력 2019.06.13 (08:45) 수정 2019.06.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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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를 통해 우리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코너, 영화의 쓸모 순서입니다.

송형국 기자 나와있습니다.

송 기자, 오늘은 법정영화 가지고 나오셨다고요.

[기자]

예, 법정 재판을 다룬 영화나 법정드라마는 우리가 그동안 많이 봐왔는데요.

대부분은 검사나 혹은 변호사인 주인공이 진실을 추적하고, 그러면서 정의로운 판결을 이끌어낸다, 이런 내용이 많았죠.

오늘 다룰 영화는 좀 다릅니다.

배심원들이 주인공인 국민참여재판을 다뤘는데요.

굉장히 의미있는 작품인데 칸영화제라든지 큰 이슈에 묻힌 탓인지 흥행성적이 저조한 편입니다.

묻히기에는 좀 아까운 작품입니다.

함께 말씀 나눠보기로 하겠습니다.

영화 속 배경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2008년, 그 첫 재판이 진행된 날입니다.

["배심원 입장!"]

연령도 직업도 다양한 8명의 시민들이 배심원석에 들어섭니다.

["우리 아빠 절대 안죽였어요"]

["다들 유죄라고 확인할 수 있어요? 전 모르겠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누가 봐도 패륜범죄를 저지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고인이 등장하는데, 배심원 중 한명이 검찰 수사결과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중형이 선고되고 금세 끝날 줄로만 알았던 재판이 계속 길어지기만 하는데요.

["그냥 실험만 한번 해보면 되잖아요."]

["글씨도 썼는데 망치라고 못휘둘러?"]

["근데 이 힘하고 이 힘하고는 다르지 않아요?"]

이 대목에서 실제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제가 갖는 중요한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나라 판사 1명이 감당하는 재판 분량이 일주일에 수십 건에 달하고요 한 건당 수백 페이지에서 많게는 수만 페이지에 이르는 사건 기록을 검토해야 하거든요.

기록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증인신문이라든지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진행할 만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들이 의심하거나 궁금해하는 부분을 해결 해주고 넘어가야 하니까 사태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 이런 점을 영화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논의할 게 없으면 이제 그만 결론 내리시죠."]

["저기 판사님, 제가요 제 평생에 누구를 심판해본 게 처음이라서."]

["네, 처음이라서 많이 어려우시죠?"]

["처음이라 잘하고 싶어서 그래요."]

결국 한 사람을 판단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도 누군가를 겉모습만 보고, 몇가지 언행만 보고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해버린 적은 없었는지 그 어설픈 판단만 가지고 누군가를 뒷담화하거나 비난한 적은 없는지, 이 영화를 보면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앵커]

그렇군요.

사실 형사재판이라는 게 유죄냐 무죄냐, 얼마나 큰 범죄냐, 이런 걸 따진다는 게 결국에는 사람을 판단하는 문제니까 정말 신중해야 하는 걸 텐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실제로 국민참여재판제도 도입 이래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이 일반 재판보다 해마다 2배가 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법을 잘 모르는 일반시민들로 이뤄진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했을때 무죄판결이 훨씬 많이 나온다는 얘기인데요.

이 대목에 이 영화에서 생각해볼 두 번째 핵심 주제가 있습니다.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유죄 결론을 내리려 하는데 배심원 1명이 계속해서 의심을 합니다.

["베란다에서 떨어뜨려 죽였잖습니까."]

["맞아요, 안맞아요?"]

["싫어요!"]

["싫어?"]

["나까지 유죄라고 하면 다 끝나는데요? 다들 유죄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난 모르겠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영화에서 주인공이 잘 모르겠다, 나 모른다, 이 대사를 아주 많이 합니다.

이 주인공의 '모름'이 결국 재판의 향방을 바꾸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모른다, 이런 걸 잘 인정을 안 하려고 하죠.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그 현장에서 모든 걸 보지 않고서는 결코 사건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점을 관객은 보게 됩니다.

공자가 이런 말을 남겼죠.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게 진정 아는 것이다.

논어 가운데 위정편, 그러니까 학습 관련 챕터가 아니라 정치를 논하는 챕터에 나옵니다.

정치하시는 분들, 판사님들, 이런 높으신 분들이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이런 뜻이고요,

역시 정치인과 지도자를 위한 챕터인 안연편에서는 나아가서 진정한 앎이란, 다름아닌 사람을 아는 것이라는 말을 공자가 제자에게 합니다.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진정한 앎이다라는 얘기고 우리가 타인의 사정을, 타인이 겪은 일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는 모른다 이런 보편적인 질문을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실제로 한 현직 판사는 국민참여 배심원들이 상식적인 정서에 의해 문제제기한 내용을 재판부가 받아들이면서 형량이 바뀐 사례가 많다고 전했는데요.

법을 잘 알고 그에 따른 원칙을 결코 무너뜨리지 않는 판사와 달리 우린 판사보다 잘 모른다, 이걸 인정하고 들어가는 시민의 상식이 종종 사태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앵커]

네, 관객들이 아직 많이 찾은 작품이 아닌데 이렇게 숨은 의미가 풍부한 작품이었군요.

송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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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 쓸모] ‘모름’의 쓸모?…영화 ‘배심원들’
    • 입력 2019-06-13 08:47:01
    • 수정2019-06-13 09: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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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를 통해 우리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코너, 영화의 쓸모 순서입니다.

송형국 기자 나와있습니다.

송 기자, 오늘은 법정영화 가지고 나오셨다고요.

[기자]

예, 법정 재판을 다룬 영화나 법정드라마는 우리가 그동안 많이 봐왔는데요.

대부분은 검사나 혹은 변호사인 주인공이 진실을 추적하고, 그러면서 정의로운 판결을 이끌어낸다, 이런 내용이 많았죠.

오늘 다룰 영화는 좀 다릅니다.

배심원들이 주인공인 국민참여재판을 다뤘는데요.

굉장히 의미있는 작품인데 칸영화제라든지 큰 이슈에 묻힌 탓인지 흥행성적이 저조한 편입니다.

묻히기에는 좀 아까운 작품입니다.

함께 말씀 나눠보기로 하겠습니다.

영화 속 배경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2008년, 그 첫 재판이 진행된 날입니다.

["배심원 입장!"]

연령도 직업도 다양한 8명의 시민들이 배심원석에 들어섭니다.

["우리 아빠 절대 안죽였어요"]

["다들 유죄라고 확인할 수 있어요? 전 모르겠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누가 봐도 패륜범죄를 저지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고인이 등장하는데, 배심원 중 한명이 검찰 수사결과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중형이 선고되고 금세 끝날 줄로만 알았던 재판이 계속 길어지기만 하는데요.

["그냥 실험만 한번 해보면 되잖아요."]

["글씨도 썼는데 망치라고 못휘둘러?"]

["근데 이 힘하고 이 힘하고는 다르지 않아요?"]

이 대목에서 실제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제가 갖는 중요한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나라 판사 1명이 감당하는 재판 분량이 일주일에 수십 건에 달하고요 한 건당 수백 페이지에서 많게는 수만 페이지에 이르는 사건 기록을 검토해야 하거든요.

기록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증인신문이라든지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진행할 만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들이 의심하거나 궁금해하는 부분을 해결 해주고 넘어가야 하니까 사태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 이런 점을 영화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논의할 게 없으면 이제 그만 결론 내리시죠."]

["저기 판사님, 제가요 제 평생에 누구를 심판해본 게 처음이라서."]

["네, 처음이라서 많이 어려우시죠?"]

["처음이라 잘하고 싶어서 그래요."]

결국 한 사람을 판단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도 누군가를 겉모습만 보고, 몇가지 언행만 보고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해버린 적은 없었는지 그 어설픈 판단만 가지고 누군가를 뒷담화하거나 비난한 적은 없는지, 이 영화를 보면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앵커]

그렇군요.

사실 형사재판이라는 게 유죄냐 무죄냐, 얼마나 큰 범죄냐, 이런 걸 따진다는 게 결국에는 사람을 판단하는 문제니까 정말 신중해야 하는 걸 텐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실제로 국민참여재판제도 도입 이래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이 일반 재판보다 해마다 2배가 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법을 잘 모르는 일반시민들로 이뤄진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했을때 무죄판결이 훨씬 많이 나온다는 얘기인데요.

이 대목에 이 영화에서 생각해볼 두 번째 핵심 주제가 있습니다.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유죄 결론을 내리려 하는데 배심원 1명이 계속해서 의심을 합니다.

["베란다에서 떨어뜨려 죽였잖습니까."]

["맞아요, 안맞아요?"]

["싫어요!"]

["싫어?"]

["나까지 유죄라고 하면 다 끝나는데요? 다들 유죄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난 모르겠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영화에서 주인공이 잘 모르겠다, 나 모른다, 이 대사를 아주 많이 합니다.

이 주인공의 '모름'이 결국 재판의 향방을 바꾸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모른다, 이런 걸 잘 인정을 안 하려고 하죠.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그 현장에서 모든 걸 보지 않고서는 결코 사건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점을 관객은 보게 됩니다.

공자가 이런 말을 남겼죠.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게 진정 아는 것이다.

논어 가운데 위정편, 그러니까 학습 관련 챕터가 아니라 정치를 논하는 챕터에 나옵니다.

정치하시는 분들, 판사님들, 이런 높으신 분들이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이런 뜻이고요,

역시 정치인과 지도자를 위한 챕터인 안연편에서는 나아가서 진정한 앎이란, 다름아닌 사람을 아는 것이라는 말을 공자가 제자에게 합니다.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진정한 앎이다라는 얘기고 우리가 타인의 사정을, 타인이 겪은 일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는 모른다 이런 보편적인 질문을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실제로 한 현직 판사는 국민참여 배심원들이 상식적인 정서에 의해 문제제기한 내용을 재판부가 받아들이면서 형량이 바뀐 사례가 많다고 전했는데요.

법을 잘 알고 그에 따른 원칙을 결코 무너뜨리지 않는 판사와 달리 우린 판사보다 잘 모른다, 이걸 인정하고 들어가는 시민의 상식이 종종 사태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앵커]

네, 관객들이 아직 많이 찾은 작품이 아닌데 이렇게 숨은 의미가 풍부한 작품이었군요.

송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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