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패스’…장관님 취임사를 기억하시나요?

입력 2019.06.13 (14:25) 수정 2019.06.1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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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발표 이후 장관과의 별도의 질의·응답 시간은 마련되지 않을 예정이며…"

12일 오후 1시 13분 법무부 대변인실 카톡방에 공지 메시지가 올라왔습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브리핑은 오후 2시 30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청사로 이동하려던 기자들이 이 메시지를 받고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장관이 발표하려는 내용은 '검찰 과거사 진상 조사 활동 종료 관련'이었습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밝혀낸 과거 검찰의 과오에 대해 장관이 직접 언급하고, 나아가 검찰 개혁 방안을 밝히는 자리였습니다.

앞으로는 검찰 수사 때문에 억울한 국민이 없도록 구체적으로 어떤 개혁을 할지, 어떤 점을 고쳐나갈지, 과거엔 무엇이 문제였는지, 기자들은 물을 게 많았습니다. 기자가 물어야 구체적인 내용을 독자와 시청자들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관이 읽기로 예정된 발표 자료에는 그런 세세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 장관은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했습니다. 물을 게 있으면 대변인에게 물으라고 했습니다. 답이 정해져 있더라도, '누가 말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잘못했다'고 답변했습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검찰이 잘못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이 두 문장은 주어 하나로 의미가 달라집니다. 기자단은 이에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박 장관은 기자가 없는 브리핑실에 들어가 홀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8분 동안 자료를 읽고 허공에 인사하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장관이 생각하는 구체적인 검찰 개혁 방안을 알지 못하게 됐습니다.


한 번도 질문받지 않은 박상기 장관

돌이켜보면 박 장관은 취임 뒤 한 번도 기자 질문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 2월입니다. 당시 상황은 이랬습니다.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박 장관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알렸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장관은 처음엔 "이메일을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메일을 받았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때문에 박 장관이 직접 검찰 내 성추행 사건에 대한 조치가 미흡했다는 것을 사과하고, 성범죄 대책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미투 운동이 힘을 얻고 있던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기자들은 물을 게 많았습니다. 검찰 내 성범죄를 법무부 장관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직접 답을 해준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가 남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들, 그리고 국민들도 장관이 직접 답을 구체적으로 해주면 조금이나마 안심을 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때도 법무부는 장관 입장을 생중계하는 것도, 질문하는 것도 안된다고 막았습니다. 기자들은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법무부는 '생중계는 가능, 질의응답은 법무부 인권국장이 대신 받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왜 그랬을까

박 장관이 어제(12일) 질문을 받지 않은 공식 이유는 "발표 자료에 내용이 다 담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안을 잘 몰라서'였다고 전해졌습니다.

구체적으로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담당자가 함께 대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1년 넘게 장관 휘하에 있었던 과거사위원회 활동 내용을 구체적으로 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지난달 문무일 검찰총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1시간 45분 동안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았습니다. 받아적은 내용만 A4 용지로 15장이었습니다.

질의응답을 길게 하다 보니, 속내도 드러나고, 진정성도 엿보였지만 허점도 드러났습니다. 그 모든 걸 전달하기 위해 기자들은 질문하려고 합니다.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질문하지 못해서, 질문하지 않아서, 혼났던 기자들입니다. 그때는 안 묻고 지금은 캐물으려 하냐고 혼내셔도 할 말이 없지요.

하지만 그때 묻지 않았던 결과는 처참했고, 그 실패를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묻고 물으려고 합니다. 허점이 있다면 빨리 찾아내서 고치고, 좋은 정책은 알려서 성공해야 하니까요. 기자의 질문과 수장의 답은 그 필수 과정입니다. 기자회견이 장관의 '낭독회'가 되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새 정부의 초대 법무 장관인 박상기 장관도 그렇게 소통해서 성공하는 장관이 되고 싶었을 겁니다. 취임사 일부를 다시 새기며 옮겨두겠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변화된 법무부의 모습을 이제는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때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소통하면서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중략)
오늘부터 저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여정을 우리 법무부 구성원 여러분과 함께 시작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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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은 ‘패스’…장관님 취임사를 기억하시나요?
    • 입력 2019-06-13 14:25:27
    • 수정2019-06-13 14:34:48
    취재K
"장관 발표 이후 장관과의 별도의 질의·응답 시간은 마련되지 않을 예정이며…"

12일 오후 1시 13분 법무부 대변인실 카톡방에 공지 메시지가 올라왔습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브리핑은 오후 2시 30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청사로 이동하려던 기자들이 이 메시지를 받고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장관이 발표하려는 내용은 '검찰 과거사 진상 조사 활동 종료 관련'이었습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밝혀낸 과거 검찰의 과오에 대해 장관이 직접 언급하고, 나아가 검찰 개혁 방안을 밝히는 자리였습니다.

앞으로는 검찰 수사 때문에 억울한 국민이 없도록 구체적으로 어떤 개혁을 할지, 어떤 점을 고쳐나갈지, 과거엔 무엇이 문제였는지, 기자들은 물을 게 많았습니다. 기자가 물어야 구체적인 내용을 독자와 시청자들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관이 읽기로 예정된 발표 자료에는 그런 세세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 장관은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했습니다. 물을 게 있으면 대변인에게 물으라고 했습니다. 답이 정해져 있더라도, '누가 말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잘못했다'고 답변했습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검찰이 잘못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이 두 문장은 주어 하나로 의미가 달라집니다. 기자단은 이에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박 장관은 기자가 없는 브리핑실에 들어가 홀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8분 동안 자료를 읽고 허공에 인사하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장관이 생각하는 구체적인 검찰 개혁 방안을 알지 못하게 됐습니다.


한 번도 질문받지 않은 박상기 장관

돌이켜보면 박 장관은 취임 뒤 한 번도 기자 질문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 2월입니다. 당시 상황은 이랬습니다.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박 장관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알렸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장관은 처음엔 "이메일을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메일을 받았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때문에 박 장관이 직접 검찰 내 성추행 사건에 대한 조치가 미흡했다는 것을 사과하고, 성범죄 대책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미투 운동이 힘을 얻고 있던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기자들은 물을 게 많았습니다. 검찰 내 성범죄를 법무부 장관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직접 답을 해준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가 남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들, 그리고 국민들도 장관이 직접 답을 구체적으로 해주면 조금이나마 안심을 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때도 법무부는 장관 입장을 생중계하는 것도, 질문하는 것도 안된다고 막았습니다. 기자들은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법무부는 '생중계는 가능, 질의응답은 법무부 인권국장이 대신 받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왜 그랬을까

박 장관이 어제(12일) 질문을 받지 않은 공식 이유는 "발표 자료에 내용이 다 담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안을 잘 몰라서'였다고 전해졌습니다.

구체적으로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담당자가 함께 대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1년 넘게 장관 휘하에 있었던 과거사위원회 활동 내용을 구체적으로 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지난달 문무일 검찰총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1시간 45분 동안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았습니다. 받아적은 내용만 A4 용지로 15장이었습니다.

질의응답을 길게 하다 보니, 속내도 드러나고, 진정성도 엿보였지만 허점도 드러났습니다. 그 모든 걸 전달하기 위해 기자들은 질문하려고 합니다.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질문하지 못해서, 질문하지 않아서, 혼났던 기자들입니다. 그때는 안 묻고 지금은 캐물으려 하냐고 혼내셔도 할 말이 없지요.

하지만 그때 묻지 않았던 결과는 처참했고, 그 실패를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묻고 물으려고 합니다. 허점이 있다면 빨리 찾아내서 고치고, 좋은 정책은 알려서 성공해야 하니까요. 기자의 질문과 수장의 답은 그 필수 과정입니다. 기자회견이 장관의 '낭독회'가 되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새 정부의 초대 법무 장관인 박상기 장관도 그렇게 소통해서 성공하는 장관이 되고 싶었을 겁니다. 취임사 일부를 다시 새기며 옮겨두겠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변화된 법무부의 모습을 이제는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때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소통하면서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중략)
오늘부터 저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여정을 우리 법무부 구성원 여러분과 함께 시작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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