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 국회에 당정만 풍년

입력 2019.06.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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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이·통장 처우개선 및 책임성 강화 당정 협의’ 기념촬영

"이·통장 수당 10만 원 올려드립니다"…오늘의 주요 정치 뉴스

오늘 아침 국회에서 열린 '이·통장 처우 개선 및 책임성 강화' 당정협의회. 소박한 이름이지만 참석자 면면은 화려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이인영 원내대표와 조정식 정책위의장, 인재근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비롯해 행안위원과 원내부대표단 등 18명의 의원이 참석했고, 정부에서는 진영 행안부 장관, 김순은 자치분권 위원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당정 협의 내용은 2004년 이후 15년간 동결됐던 이장과 통장 기본 수당을 10만 원 인상할 수 있도록 행안부 훈령을 개정하겠다는 것. 이장과 통장이 지원받는 활동비가 월 20만 원에서 30만 원이 되는 겁니다.

오늘 당정 협의 결과는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직접 브리핑했고, 일부 매체는 '1보', '속보'로 긴급 뉴스를 송고하기도 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는 이 소식이 오늘 아침 정치면 주요 뉴스 1, 2위에 오르내렸습니다.

물론 지방자치 시대, 실생활과 밀접한 뉴스임은 틀림없습니다. 동네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전국의 이장님들과 통장님들께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다만 이번 결정으로 소요되는 예산이 어느 정도 될까, 따져봤습니다. 전국의 이장과 통장 9만 5천여 명에게 10만 원씩을 인상해주면 한 달에 95억여 원, 1년이면 대략 1,140억 원 정도가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 돈을 전국 228개 지방 정부가 나눠서 부담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아침부터 정치면 주요 뉴스로 송고될 만한 규모의 정책 결정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정치 뉴스가 오죽 없었으면…….

어제도 당정, 오늘도 당정…릴레이 당정 진풍경

이번 주 들어 열린 당정 협의회 모습이번 주 들어 열린 당정 협의회 모습

요즘 국회는 그야말로 당정협의가 '풍년'입니다. 정당의 '당', 정부의 '정'을 따서 당정협의라하는데, 말 그대로 여당인 민주당과 정부의 회의입니다. 이번 주 들어서만 10일에 추경안과 관련한 확대 고위 당·정·청(민주당, 정부, 청와대) 협의회가 열렸고, 11일에는 가업상속 공제 개편과 관련한 당정 협의회가 열렸습니다.

어제는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당정 협의회, 공정거래위원회와 국가보훈처, 국가권익위원회 현안 점검을 위한 국회 정무위원회 당정 협의회, 인보사 사태 대응 점검을 위한 국회 복지위원회 비공개 당정 협의회, 문체부 추진 사업과 예산 점검 등을 위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비공개 당정 협의회가 무더기로 열렸습니다.

오늘은 이·통장 처우개선 당정 협의회와 방송통신위원회 현안 점검을 위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비공개 당정 협의회, 2개가 열렸습니다.

지난주에도 국민취업지원제도와 관련한 당정 협의회, 주세 개편 관련 당정 협의회, 전기 누진세 개편 관련 당정 협의회가 잇따라 열렸었습니다.

이렇게 하루에도 여러 개의 당정 협의회가 동시다발로 개최되는 건, 좀처럼 보기 드문 진풍경입니다. 언론에 모두발언과 논의 결과를 공개하는 공개회의를 중심으로 지난해와 올해 당정 협의회 개최 건수를 비교해 봤더니 5, 6월 기준으로 지난해가 2건, 올해는 8건입니다. 무려 4배가 늘었습니다.

개점휴업 국회에 고육지책?…"당정 협의회라도 해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이개호 농림축산식품·조명래 환경·김현미 국토교통·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오찬을 하는 모습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이개호 농림축산식품·조명래 환경·김현미 국토교통·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오찬을 하는 모습

'릴레이 당정'은 국회의 '개점휴업' 사태에 민주당이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행보로 해석됩니다. 국회의원들이 세비는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데, 여당으로서 할 일은 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민주당 지도부는 각 상임위에 "정부와 소통하라", "당정 협의를 강화하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해찬 당 대표가 이달 들어 18개 부처 장관들과 4차례에 걸쳐 '릴레이 오찬'을 한 것도 '당정 협의 강화'와 같은 맥락입니다.

상임위 별로 줄줄이 개최되고 있는 당정 협의회에서는 부처별 현안 보고가 주로 이뤄지지만, 보고를 받는다고 해도 여당에서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예산이나 법안 심의와 관련한 '신세 한탄'도 심심찮게 오갑니다.

국회 정무위원장인 민병두 의원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앉혀놓고 "지난 정기국회 이후 국회에서 예산과 법안 심의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답답한 마음뿐"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김상조 위원장도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안이 많다"며 "국회 논의가 시급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응수했습니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당정 협의회를 해도 국회가 돌아가지 않으니 특별히 진척되는 사안도 없다"면서도 "상임위가 너무 오랫동안 열리지 않아 당정협의회라도 하지 않으면 현안을 챙길 방법이 없어 고육지책으로 여는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한국당은 "총선 앞두고 공무원 줄 세우기" 비판

여당 설명은 이렇게라도 일 좀 해보겠다는 건데, 한국당은 민감합니다. 강원도 산불피해 후속조치 대책회의를 하겠다며 각 부처 차관들에게 참석을 요청했지만 을지훈련을 이유로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 나경원 원내대표가 눈물까지 보인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당은 잇단 당정 협의회와 여당 대표의 장관 오찬 회동 등을 놓고 총선을 앞두고 공무원 줄 세우기에 나섰다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오늘 이·통장 기본수당을 인상하기로 한 당정 협의회 결과를 놓고도 "그것도 다 총선용"이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당정 협의회 하나 갖고도 이렇게 시각이 엇갈리는 게 지금의 여당과 야당입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럼 이장님과 통장님들은 오늘 당정 협의회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일하는 여당이라고 할까요, 총선용 선심 쓰기라고 할까요?

홍일성 전국 이·통장 연합회 회장은 KBS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달에 10만 원 올려주는 거, 그거 얼마나 된다고 그래요. 어차피 경조사 한두 번 챙기면 다 없어질 돈이에요.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건 지방자치 일 하는 이장, 통장들이 지금 사실상 행정기관에서 임명되는 형식인데 선출제로 바꿔 달라는 거예요. 또 돈 없는 지자체에 수당 올려주라고 하지 말고 국비로 지원해 달라는 거예요."

이런 요구 사항을 국회나 정부에 전달해봤냐고 물었더니 홍 회장은 "당연히 했다"고 했습니다. 관련법 개정안도 12건이나 발의돼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이 법 개정안이 지금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등에 계류 중인데, 국회가 열리지 않아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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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3 16:47:47
    취재K
오늘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이·통장 처우개선 및 책임성 강화 당정 협의’ 기념촬영

"이·통장 수당 10만 원 올려드립니다"…오늘의 주요 정치 뉴스

오늘 아침 국회에서 열린 '이·통장 처우 개선 및 책임성 강화' 당정협의회. 소박한 이름이지만 참석자 면면은 화려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이인영 원내대표와 조정식 정책위의장, 인재근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비롯해 행안위원과 원내부대표단 등 18명의 의원이 참석했고, 정부에서는 진영 행안부 장관, 김순은 자치분권 위원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당정 협의 내용은 2004년 이후 15년간 동결됐던 이장과 통장 기본 수당을 10만 원 인상할 수 있도록 행안부 훈령을 개정하겠다는 것. 이장과 통장이 지원받는 활동비가 월 20만 원에서 30만 원이 되는 겁니다.

오늘 당정 협의 결과는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직접 브리핑했고, 일부 매체는 '1보', '속보'로 긴급 뉴스를 송고하기도 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는 이 소식이 오늘 아침 정치면 주요 뉴스 1, 2위에 오르내렸습니다.

물론 지방자치 시대, 실생활과 밀접한 뉴스임은 틀림없습니다. 동네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전국의 이장님들과 통장님들께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다만 이번 결정으로 소요되는 예산이 어느 정도 될까, 따져봤습니다. 전국의 이장과 통장 9만 5천여 명에게 10만 원씩을 인상해주면 한 달에 95억여 원, 1년이면 대략 1,140억 원 정도가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 돈을 전국 228개 지방 정부가 나눠서 부담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아침부터 정치면 주요 뉴스로 송고될 만한 규모의 정책 결정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정치 뉴스가 오죽 없었으면…….

어제도 당정, 오늘도 당정…릴레이 당정 진풍경

이번 주 들어 열린 당정 협의회 모습
요즘 국회는 그야말로 당정협의가 '풍년'입니다. 정당의 '당', 정부의 '정'을 따서 당정협의라하는데, 말 그대로 여당인 민주당과 정부의 회의입니다. 이번 주 들어서만 10일에 추경안과 관련한 확대 고위 당·정·청(민주당, 정부, 청와대) 협의회가 열렸고, 11일에는 가업상속 공제 개편과 관련한 당정 협의회가 열렸습니다.

어제는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당정 협의회, 공정거래위원회와 국가보훈처, 국가권익위원회 현안 점검을 위한 국회 정무위원회 당정 협의회, 인보사 사태 대응 점검을 위한 국회 복지위원회 비공개 당정 협의회, 문체부 추진 사업과 예산 점검 등을 위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비공개 당정 협의회가 무더기로 열렸습니다.

오늘은 이·통장 처우개선 당정 협의회와 방송통신위원회 현안 점검을 위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비공개 당정 협의회, 2개가 열렸습니다.

지난주에도 국민취업지원제도와 관련한 당정 협의회, 주세 개편 관련 당정 협의회, 전기 누진세 개편 관련 당정 협의회가 잇따라 열렸었습니다.

이렇게 하루에도 여러 개의 당정 협의회가 동시다발로 개최되는 건, 좀처럼 보기 드문 진풍경입니다. 언론에 모두발언과 논의 결과를 공개하는 공개회의를 중심으로 지난해와 올해 당정 협의회 개최 건수를 비교해 봤더니 5, 6월 기준으로 지난해가 2건, 올해는 8건입니다. 무려 4배가 늘었습니다.

개점휴업 국회에 고육지책?…"당정 협의회라도 해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이개호 농림축산식품·조명래 환경·김현미 국토교통·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오찬을 하는 모습
'릴레이 당정'은 국회의 '개점휴업' 사태에 민주당이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행보로 해석됩니다. 국회의원들이 세비는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데, 여당으로서 할 일은 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민주당 지도부는 각 상임위에 "정부와 소통하라", "당정 협의를 강화하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해찬 당 대표가 이달 들어 18개 부처 장관들과 4차례에 걸쳐 '릴레이 오찬'을 한 것도 '당정 협의 강화'와 같은 맥락입니다.

상임위 별로 줄줄이 개최되고 있는 당정 협의회에서는 부처별 현안 보고가 주로 이뤄지지만, 보고를 받는다고 해도 여당에서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예산이나 법안 심의와 관련한 '신세 한탄'도 심심찮게 오갑니다.

국회 정무위원장인 민병두 의원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앉혀놓고 "지난 정기국회 이후 국회에서 예산과 법안 심의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답답한 마음뿐"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김상조 위원장도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안이 많다"며 "국회 논의가 시급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응수했습니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당정 협의회를 해도 국회가 돌아가지 않으니 특별히 진척되는 사안도 없다"면서도 "상임위가 너무 오랫동안 열리지 않아 당정협의회라도 하지 않으면 현안을 챙길 방법이 없어 고육지책으로 여는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한국당은 "총선 앞두고 공무원 줄 세우기" 비판

여당 설명은 이렇게라도 일 좀 해보겠다는 건데, 한국당은 민감합니다. 강원도 산불피해 후속조치 대책회의를 하겠다며 각 부처 차관들에게 참석을 요청했지만 을지훈련을 이유로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 나경원 원내대표가 눈물까지 보인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당은 잇단 당정 협의회와 여당 대표의 장관 오찬 회동 등을 놓고 총선을 앞두고 공무원 줄 세우기에 나섰다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오늘 이·통장 기본수당을 인상하기로 한 당정 협의회 결과를 놓고도 "그것도 다 총선용"이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당정 협의회 하나 갖고도 이렇게 시각이 엇갈리는 게 지금의 여당과 야당입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럼 이장님과 통장님들은 오늘 당정 협의회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일하는 여당이라고 할까요, 총선용 선심 쓰기라고 할까요?

홍일성 전국 이·통장 연합회 회장은 KBS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달에 10만 원 올려주는 거, 그거 얼마나 된다고 그래요. 어차피 경조사 한두 번 챙기면 다 없어질 돈이에요.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건 지방자치 일 하는 이장, 통장들이 지금 사실상 행정기관에서 임명되는 형식인데 선출제로 바꿔 달라는 거예요. 또 돈 없는 지자체에 수당 올려주라고 하지 말고 국비로 지원해 달라는 거예요."

이런 요구 사항을 국회나 정부에 전달해봤냐고 물었더니 홍 회장은 "당연히 했다"고 했습니다. 관련법 개정안도 12건이나 발의돼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이 법 개정안이 지금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등에 계류 중인데, 국회가 열리지 않아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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