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촉발한 캐리 람은 누구?

입력 2019.06.13 (16:51) 수정 2019.06.1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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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공부로 인생 역전한 가난한 노동자의 딸
철거 강행하며 ‘거친 싸움꾼’ 별명 얻어
2014년 ‘우산 시위’ 진압하며 중국 지도부에 각인

▲홍콩 도심 시위 참여자들이 캐리 람 행정장관의 퇴진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홍콩 도심 시위가 경찰과 충돌 양상을 띠는 등 격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법안 추진부터 강경 진압에 나서고 있는 홍콩 최고지도자인 캐리 람 행정장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캐리 람(Carrie Lam) 홍콩 행정장관은 가난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공부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람 행정장관은 1957년 홍콩 서민 거주지 완차이의 저소득층 가정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책상이 없어 침대 한쪽에 쪼그려 앉아 공부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학창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명문 홍콩대 재학시절에는 학생회 시위에 참석하는 운동권 학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졸업 후인 1980년 홍콩 정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며 성향이 달라집니다.

198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연수를 떠나 수학자 남편 시우포 람을 만나 1984년 결혼했고(두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남편과 아들들 모두 영국 국적이라고 합니다), 귀국 후에는 행정청의 예산부, 재무부, 사회복지부 등 요직을 거쳤습니다.

람은 50세에 행정청의 장관 격인 개발국장에 발탁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때 홍콩의 랜드마크였지만 노후화된 에든버러 플레이스 페리 부두 철거를 강행합니다. 당시 라파엘 후이 홍콩 행정청 정무사장은 그에게 '거친 싸움꾼(tough fighter)'이란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2012년에는 행정청 2인자인 정무사장에 취임합니다. 2014년에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던 '우산 시위'을 주도한 대학생 등 약 1천 명을 체포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섭니다. 이때 '철의 여인' '홍콩판 마러릿 대처'라는 별칭으로 중국 지도부에 각인됐습니다.

2017년에는 홍콩 최고지도자인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합니다. 당시 다른 후보에 비해 대중적 지지도는 떨어졌는데, 선거인단 1천200명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친중파의 몰표를 얻어 행정장관에 취임하게 됩니다.

당선 이후 홍콩 내 비판 여론을 의식하듯 "나는 '1국 2체제'를 유지하고 우리의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취임식에는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시진핑 주석이 참석했습니다.

시진핑 방문, 당시 주석을 상석에 앉히고 람 장관은 마치 부하 직원처럼 보고하는 사진이 공개됐는데 달라진 중국과 홍콩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한 장면이었습니다.

5년 전 후진타오 주석이 방문했을 때는 동등한 관계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마치 갑을관계처럼 보였거든요.


▲2017년(위)과 2012년(아래) 사진. 첫 번째 사진 왼쪽이 람 장관이고, 두 번째 사진 왼쪽이 전임 행정장관(렁춘잉)이다. 중국 주석과 홍콩 행정장관의 달라진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2017년(위)과 2012년(아래) 사진. 첫 번째 사진 왼쪽이 람 장관이고, 두 번째 사진 왼쪽이 전임 행정장관(렁춘잉)이다. 중국 주석과 홍콩 행정장관의 달라진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친중 강경 노선을 바탕으로 홍콩 행정장관으로 부상한 그에게 오늘날의 행보는 어느 정도 예견된 모습이지 않을까요.

시위 진압에 물대포가 등장하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어제, 캐리 람은 동영상 성명에서 "노골적으로 조직된 폭동의 선동으로, 홍콩을 사랑하는 행동이 아닌 보통 사람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행동"이라며 시위 참여자들을 격하게 비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친중 강경 노선을 걸어왔던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 나갈까요.



[사진 출처 : 연합뉴스=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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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시위 촉발한 캐리 람은 누구?
    • 입력 2019-06-13 16:51:47
    • 수정2019-06-13 17:39:24
    취재K
공부로 인생 역전한 가난한 노동자의 딸<br />철거 강행하며 ‘거친 싸움꾼’ 별명 얻어<br />2014년 ‘우산 시위’ 진압하며 중국 지도부에 각인
▲홍콩 도심 시위 참여자들이 캐리 람 행정장관의 퇴진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홍콩 도심 시위가 경찰과 충돌 양상을 띠는 등 격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법안 추진부터 강경 진압에 나서고 있는 홍콩 최고지도자인 캐리 람 행정장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캐리 람(Carrie Lam) 홍콩 행정장관은 가난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공부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람 행정장관은 1957년 홍콩 서민 거주지 완차이의 저소득층 가정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책상이 없어 침대 한쪽에 쪼그려 앉아 공부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학창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명문 홍콩대 재학시절에는 학생회 시위에 참석하는 운동권 학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졸업 후인 1980년 홍콩 정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며 성향이 달라집니다. 198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연수를 떠나 수학자 남편 시우포 람을 만나 1984년 결혼했고(두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남편과 아들들 모두 영국 국적이라고 합니다), 귀국 후에는 행정청의 예산부, 재무부, 사회복지부 등 요직을 거쳤습니다. 람은 50세에 행정청의 장관 격인 개발국장에 발탁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때 홍콩의 랜드마크였지만 노후화된 에든버러 플레이스 페리 부두 철거를 강행합니다. 당시 라파엘 후이 홍콩 행정청 정무사장은 그에게 '거친 싸움꾼(tough fighter)'이란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2012년에는 행정청 2인자인 정무사장에 취임합니다. 2014년에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던 '우산 시위'을 주도한 대학생 등 약 1천 명을 체포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섭니다. 이때 '철의 여인' '홍콩판 마러릿 대처'라는 별칭으로 중국 지도부에 각인됐습니다. 2017년에는 홍콩 최고지도자인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합니다. 당시 다른 후보에 비해 대중적 지지도는 떨어졌는데, 선거인단 1천200명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친중파의 몰표를 얻어 행정장관에 취임하게 됩니다. 당선 이후 홍콩 내 비판 여론을 의식하듯 "나는 '1국 2체제'를 유지하고 우리의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취임식에는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시진핑 주석이 참석했습니다. 시진핑 방문, 당시 주석을 상석에 앉히고 람 장관은 마치 부하 직원처럼 보고하는 사진이 공개됐는데 달라진 중국과 홍콩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한 장면이었습니다. 5년 전 후진타오 주석이 방문했을 때는 동등한 관계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마치 갑을관계처럼 보였거든요. ▲2017년(위)과 2012년(아래) 사진. 첫 번째 사진 왼쪽이 람 장관이고, 두 번째 사진 왼쪽이 전임 행정장관(렁춘잉)이다. 중국 주석과 홍콩 행정장관의 달라진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친중 강경 노선을 바탕으로 홍콩 행정장관으로 부상한 그에게 오늘날의 행보는 어느 정도 예견된 모습이지 않을까요. 시위 진압에 물대포가 등장하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어제, 캐리 람은 동영상 성명에서 "노골적으로 조직된 폭동의 선동으로, 홍콩을 사랑하는 행동이 아닌 보통 사람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행동"이라며 시위 참여자들을 격하게 비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친중 강경 노선을 걸어왔던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 나갈까요. [사진 출처 : 연합뉴스=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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