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꿈이 ‘노동자’인 사람들

입력 2019.06.1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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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매년 실시하는 '초중고 진로교육 현황조사'에는 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립니다. 달라지는 시대상 등이 학생들의 장래희망 순위에 반영되기 때문이죠. 초등학생들의 희망직업은 '교사'가 오래도록 1위 권좌를 유지해 왔는데, 지난해엔 '운동선수'가 그 자리를 빼앗았습니다. 손흥민, 류현진의 활약상이 멋져 보였을까요? 11년 만의 순위 변동입니다. 더 많은 시선을 모았던 직업도 있었는데, 바로 희망직업 5위에 링크된 '유튜버(인터넷방송 진행자)'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직업에 대한 시선들도 그만큼 달라졌다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 '의사', '경찰', '교수' 등이 여전히 상위권인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전문직 선호는 여전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직업군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별 인기를 못 얻어 왔습니다. '회사원, 직장인'은 중·고등학생 희망직업 15위 안팎에 겨우 발을 걸쳤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20위 안에도 못 꼽혔습니다. 전통적 직업군인 '농부', '어부' 등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몸을 쓰거나 힘들어 보이는 직업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인기 순위에서 밀려 왔습니다.

'노동자'가 되는 게 꿈인 사람들

물론 '노동자'는 워낙 광의의 개념이어서, 학생들의 장래희망 조사에는 '노동자' 항목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있다고 해도 인기가 높은 직업군은 아닐 것이라고 넉넉히 짐작할 수 있죠.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노동자'가 되겠다, '노동자'로 인정받겠다며 오랜 기간을 싸워온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노동3권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는 자동차 대리점 노조 조합원들노동3권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는 자동차 대리점 노조 조합원들

최근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선고가 하나 나왔습니다. 자동차 대리점에서 일하는 판매사원들을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판결입니다. 당사자들은 기뻐하며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노동력'을 제공하면서도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들

첫 번째 관문은 '근로기준법'입니다.


이 '임금'의 전제는 '근로계약'입니다. 표준계약서 등 '업무계약' 관계가 맺어져 있는 상태라면,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받더라도 그 돈은 '임금'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래서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하는 '특수고용직'들이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노동자 심사'에서 떨어집니다. 자동차 직영점의 '정직원'과 자동차 대리점의 '대리점 사원'이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법적으로 다른 지위에 놓이게 되는 이윱니다.

이 '노동자성' 인정 여부는 또 다른 나비효과로 이어집니다. 또 다른 관문인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근로자(노동자)'로 인정받은 사람만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또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등이 발생하면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조항도 있습니다. "해직자는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님 → 해직자가 가입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이 논리로 내려진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는 여전히 유지 중입니다.

어렵게 '노동자성'을 인정받더라도, 확대 적용까지는 또 다른 관문들을 넘어야 합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지난해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결론을 얻기까지 9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은 어디까지나 '재능교육' 학습지 노조에만 국한된 결론이라는 게 다른 학습지 회사들의 판단입니다. 재능교육에 대한 대법원 판단은 나왔지만, 대교·구몬 등 다른 학습지 교사 노조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동위원회와 법원 등의 문을 개별적으로 두드리고 있습니다.


앞서 거론됐던 '자동차 대리점 노조'의 사례도 마찬가집니다. 이번 판결의 대상은 현대자동차 인덕원·송산·신하남 대리점, 기아자동차 주례·동촌 대리점 등에서 불거진 교섭거부, 계약해지 건들이었습니다. 만약 다른 대리점에서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대리점주나 원청이 이번 대법의 판결을 준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면 또 다른 '각개전투'들이 진행돼야 합니다. 참으로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성' 새로운 정의 논의할 때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이런 개별 고민들에 대한 큰 방향의 해결책을 달라는 게 노동계의 오랜 소원입니다. '고용 관계와 관련 없이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제87호와 제98호 협약이 이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일단 정부가 이를 포함한 핵심 협약 3개의 '비준 추진'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만큼, 관련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은 유지되고 있는 듯합니다.

이와 함께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마치기 위해 '노동자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논의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대법원에서 특수고용직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는 점은, '기존 법령 해석'만으로는 끌어안지 못하는 '예외적 고용 형태'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특히 플랫폼노동자 등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급증할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직업군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등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합니다. 개별적 소송전들로 답을 찾기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으로 불필요한 사회적 마찰들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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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K]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꿈이 ‘노동자’인 사람들
    • 입력 2019-06-14 08:06:27
    취재K
교육부가 매년 실시하는 '초중고 진로교육 현황조사'에는 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립니다. 달라지는 시대상 등이 학생들의 장래희망 순위에 반영되기 때문이죠. 초등학생들의 희망직업은 '교사'가 오래도록 1위 권좌를 유지해 왔는데, 지난해엔 '운동선수'가 그 자리를 빼앗았습니다. 손흥민, 류현진의 활약상이 멋져 보였을까요? 11년 만의 순위 변동입니다. 더 많은 시선을 모았던 직업도 있었는데, 바로 희망직업 5위에 링크된 '유튜버(인터넷방송 진행자)'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직업에 대한 시선들도 그만큼 달라졌다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 '의사', '경찰', '교수' 등이 여전히 상위권인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전문직 선호는 여전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직업군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별 인기를 못 얻어 왔습니다. '회사원, 직장인'은 중·고등학생 희망직업 15위 안팎에 겨우 발을 걸쳤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20위 안에도 못 꼽혔습니다. 전통적 직업군인 '농부', '어부' 등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몸을 쓰거나 힘들어 보이는 직업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인기 순위에서 밀려 왔습니다.

'노동자'가 되는 게 꿈인 사람들

물론 '노동자'는 워낙 광의의 개념이어서, 학생들의 장래희망 조사에는 '노동자' 항목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있다고 해도 인기가 높은 직업군은 아닐 것이라고 넉넉히 짐작할 수 있죠.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노동자'가 되겠다, '노동자'로 인정받겠다며 오랜 기간을 싸워온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노동3권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는 자동차 대리점 노조 조합원들
최근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선고가 하나 나왔습니다. 자동차 대리점에서 일하는 판매사원들을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판결입니다. 당사자들은 기뻐하며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노동력'을 제공하면서도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들

첫 번째 관문은 '근로기준법'입니다.


이 '임금'의 전제는 '근로계약'입니다. 표준계약서 등 '업무계약' 관계가 맺어져 있는 상태라면,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받더라도 그 돈은 '임금'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래서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하는 '특수고용직'들이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노동자 심사'에서 떨어집니다. 자동차 직영점의 '정직원'과 자동차 대리점의 '대리점 사원'이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법적으로 다른 지위에 놓이게 되는 이윱니다.

이 '노동자성' 인정 여부는 또 다른 나비효과로 이어집니다. 또 다른 관문인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근로자(노동자)'로 인정받은 사람만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또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등이 발생하면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조항도 있습니다. "해직자는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님 → 해직자가 가입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이 논리로 내려진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는 여전히 유지 중입니다.

어렵게 '노동자성'을 인정받더라도, 확대 적용까지는 또 다른 관문들을 넘어야 합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지난해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결론을 얻기까지 9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은 어디까지나 '재능교육' 학습지 노조에만 국한된 결론이라는 게 다른 학습지 회사들의 판단입니다. 재능교육에 대한 대법원 판단은 나왔지만, 대교·구몬 등 다른 학습지 교사 노조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동위원회와 법원 등의 문을 개별적으로 두드리고 있습니다.


앞서 거론됐던 '자동차 대리점 노조'의 사례도 마찬가집니다. 이번 판결의 대상은 현대자동차 인덕원·송산·신하남 대리점, 기아자동차 주례·동촌 대리점 등에서 불거진 교섭거부, 계약해지 건들이었습니다. 만약 다른 대리점에서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대리점주나 원청이 이번 대법의 판결을 준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면 또 다른 '각개전투'들이 진행돼야 합니다. 참으로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성' 새로운 정의 논의할 때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이런 개별 고민들에 대한 큰 방향의 해결책을 달라는 게 노동계의 오랜 소원입니다. '고용 관계와 관련 없이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제87호와 제98호 협약이 이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일단 정부가 이를 포함한 핵심 협약 3개의 '비준 추진'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만큼, 관련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은 유지되고 있는 듯합니다.

이와 함께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마치기 위해 '노동자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논의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대법원에서 특수고용직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는 점은, '기존 법령 해석'만으로는 끌어안지 못하는 '예외적 고용 형태'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특히 플랫폼노동자 등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급증할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직업군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등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합니다. 개별적 소송전들로 답을 찾기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으로 불필요한 사회적 마찰들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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