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공개’ 양승태 검찰조서 보니…“임종헌 능력자, 이규진 거짓말쟁이”?

입력 2019.06.14 (21:16) 수정 2019.10.25 (15:1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그가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이 적힌 피의자신문조서가 최근 재판 서증조사 과정에서 일부분 공개됐습니다. 기존에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후배 법관들이 알아서 한 일이고 자신은 몰랐다는 취지의 진술이 빼곡했습니다.

다만 검찰조서를 통해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관련자들의 개인적인 관계나 그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대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재판에서 검찰이 공개한 양 전 대법원장 피의자신문조서의 일부 내용을, '인물' 중심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이규진 진술 들은 양승태,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올 1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를 놓고 열린 영장심사에서는 한 후배 법관의 수첩이 화제가 됐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심복'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의 업무수첩 얘기입니다.

검찰은 이규진 전 양형실장이 2015~2017년 대법원에서 일하며 쓴 3년치 업무수첩에 적힌 메모들이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뒷받침한다며 이를 주요 증거로 내세웠습니다. 업무수첩 곳곳에 적힌 "大(대)" "長(장)"이라는 한자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의 지시사항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러 나온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실장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러 나온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실장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구속영장심사에서 이 수첩에 대해 "(나중에 '大'자를 적어넣는 식으로)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 "모함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라며 방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됐습니다.

이 사건의 또 다른 피고인이자 '핵심 증인'이라 할 이 전 실장이 검찰 조사에서 어떤 진술을 했고, 수첩에는 무엇을 적었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이 양 전 대법원장의 피의자신문조서에서 일부 확인됐습니다.

- 검사: (해산된 통합진보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지위확인 청구 소송에 대한) 서울행정법원 13부의 소각하 판결과 관련해서 이규진은 "그 판결 결과를 보고받고 피의자(양승태)가 혀를 차면서 '어떻게 이런 판결이 있을 수 있느냐'고 크게 화를 냈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 양승태: 다소 놀랍고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건 사실입니다. 이런 사건은 법원에 재판권이 있는 거 아닌가. 제1감(感)으로 생각했고, 당연히 다른 법관들도 그런 생각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가 이런 결과 나온 것에 대해 다소 의아스런 반응을 보였을 수 있지만 '어떻게 이런 판결 있을 수 있느냐'라고까지 얘기했겠습니까.

- 검사: 이규진은 "실장회의 끝나고 피의자를 찾아가 소각하 판결 사실 및 처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논의된 헌법교육 강화방안을 보고하자 피의자가 '법관들 상대로 사법기능과 헌법재판소 기능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도록 집중적인 교육을 신속히 준비하라'고 하면서, '특히 (서울행정법원 13부) 반정우 부장판사의 소각하 판결을 지나치게 헌법재판소 입장에 경도된 판결로 평가해 교육 과정에 언급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하는데 정말로 그런 진술을 한 적이 없습니까?
- 양승태: 그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기억나는 거 없습니다.

올해 1월 구속영장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취재진을 등지고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올해 1월 구속영장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취재진을 등지고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검사가 서증조사 과정에서 읽은 위 조서 내용을 보면, 이 전 실장은 양 전 대법원장이 통진당 국회의원들의 행정소송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정무적' 지시를 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런 지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사법부가 다시 심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에서 대법원의 위상을 상대적으로 강화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다소 황당하다는 듯 이 전 실장의 진술을 부인했습니다. 두 사람의 엇갈린 진술은 계속 이어집니다.

- 검사: [2016년 3월 이규진 업무일지 제시하며] 피의자는 이규진에게 "헌법재판관 지명권 삭제 가능성"을 언급하며 "헌법재판소보다 대법원이 규모나 인적 자원 면에서 우위이니 잘 활용하고 은밀히 공격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고 지시한 걸로 확인됐는데, 어떤가요?
- 양승태: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저는 잘 내용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 검사: 이규진은 기재 내용에 대해 "피의자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피의자의 지시사항을 그렇게 받아적은 거고, '헌법재판소에 대해 은밀히 공격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멘트는 피의자의 직접적 워딩"이라고 진술하는데 어떤가요?
- 양승태: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기억이 없다"는 양 전 대법원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심복이라던 이 전 실장은 거짓말을 한 셈이 됩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앞으로 재판에서 가려져야 할 부분입니다.

◆ '능력자' 임종헌, 지시 없이 알아서 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러 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기자들을 밀치며 검찰청사로 향하고 있다.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러 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기자들을 밀치며 검찰청사로 향하고 있다.

양승태 사법부 '재판 거래' 의혹의 중심에 있는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한일관계라는 민감한 사안이 걸린 판결에 외교부의 요구를 반영해주고, 그 대가로 사법부는 외교부에 주UN대표부 등 재외공관에 파견되는 법관을 늘려달라는 '거래'가 있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와 관련된 과정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습니다. 모두 "유능한" 후배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겁니다.

- 검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청와대 관계자 진술에 의하면, 2016년 4~5월쯤 임종헌 실장의 요청에 따라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등에서 외교부에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관련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이 더 늦어지면 안 된다"라고 독촉한 사실이 있는데. 피고인이 임종헌에게 지시한 것입니까?
- 양승태: 임 차장이 굉장히 유능한 사람입니다. 제가 챙겨보라는 지시를 별도로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보다 임 차장이 그런 사람들하고 오히려 직접 접촉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의견서 내기로 했는데 왜 안내냐고 임 차장이 그랬을 수는 있습니다. 저와 직접 연관할 사안은 아닙니다.


임 차장이 알아서 한 것이다, 나와는 관계가 없다. 이런 양 전 대법원장의 말을 듣다 보면, 양승태 사법부를 실질적으로 움직였던 사람은 임 전 차장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 검사: 임종헌이 2013년 9월 25일 김규현 외교부 1차관을 만나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 대한) 외교부의 입장을 전달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 양승태: 금시초문입니다.

- 검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정다주 심의관이 작성한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을 본 적 있습니까?
- 양승태: 전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 검사: 임종헌은 정다주 심의관에게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면서 이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는데, 그런 지시를 임종헌에게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있습니까?
- 양승태: 없습니다.

그렇다면 양 전 대법원장이 대단한 능력자라고 평가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입장은 어떨까요?

임 전 차장은 지난 3월 열린 자신의 첫 재판에서, 양 전 원장 등 상급자들과의 공모관계에 대해 부인했습니다. 그는 공소사실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 등으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받거나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 적이 전혀 없느냐고 묻는 검사의 질문에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전혀 기억이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 당한 사람은 무서웠다는데…박병대 "강요·강권한 적 없어"

마지막으로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박병대 전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의 피의자신문조서 중 공개된 일부분을 살펴보려 합니다. 박 전 대법관과, 이 사건의 '피해자'로 공소장에 적시된 법관들의 생각이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서인데요.

- 검사: 법원행정처가 구체적 사건에 관해 재판부에 특정 의견을 전달할 경우, 법관으로서는 선뜻 그 의견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 박병대: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행정소송 사건 1심 판결이 재판부의 판단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사례이지요. 절대적인 기속력을 갖는다고 볼 수 없습니다.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부에 검토 문건을 전달했더라도, 실제로는 그 문건의 방향과 정반대되는 판결이 났으니 재판부가 부당한 '개입'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그러자 검사는 이 사건 '피해자'들의 진술 내용을 박 전 대법관에게 설명했습니다.

- 검사: 하지만 법원행정처로부터 (행정처 검토 문건의 내용을 담당 재판부에 전달해달라는) 요구받은 조한창 전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인사권이 있는 상태에서 요구를 이행하지 못하면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진술했고, 전주지법 방창현 부장판사 역시 "선고 연기를 요청받고 원고들과의 관계에서는 부적절하지만 행정처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진술했습니다. 광주지법 행정1부 재판장이었던 박길성, 박강회 역시 '인사를 앞둔 상황에서 행정처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통진당 행정소송 사건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의사를 전달할 경우, 그 내용을 전달받은 법관들이 심적 부담 가질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았나요?
- 박병대: 강요하거나 강권하라고 이야기한 적은 없습니다.

박병대 전 대법관이 자신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박병대 전 대법관이 자신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실 이 부분 진술은 박 전 대법관의 주요 혐의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즉 법관들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법관의 독립된 재판권 행사를 방해했다는 혐의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검사는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법관윤리강령'까지 인용했습니다.

- 검사: 법관윤리강령에서도 재판에 영향을 미치거나 공정성을 의심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 법률적 조언을 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특정 사건 재판부에 대한 행정처 의사 전달은 그 규정에 위반되는 거 아닌가요?
- 박병대: 평가와 판단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끝내 인정하지 않은 박 전 대법관. 결국, 검사와 피고인 측은 재판부에 합당한 평가와 판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재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최초공개’ 양승태 검찰조서 보니…“임종헌 능력자, 이규진 거짓말쟁이”?
    • 입력 2019-06-14 21:16:00
    • 수정2019-10-25 15:11:35
    취재K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그가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이 적힌 피의자신문조서가 최근 재판 서증조사 과정에서 일부분 공개됐습니다. 기존에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후배 법관들이 알아서 한 일이고 자신은 몰랐다는 취지의 진술이 빼곡했습니다.

다만 검찰조서를 통해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관련자들의 개인적인 관계나 그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대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재판에서 검찰이 공개한 양 전 대법원장 피의자신문조서의 일부 내용을, '인물' 중심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이규진 진술 들은 양승태,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올 1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를 놓고 열린 영장심사에서는 한 후배 법관의 수첩이 화제가 됐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심복'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의 업무수첩 얘기입니다.

검찰은 이규진 전 양형실장이 2015~2017년 대법원에서 일하며 쓴 3년치 업무수첩에 적힌 메모들이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뒷받침한다며 이를 주요 증거로 내세웠습니다. 업무수첩 곳곳에 적힌 "大(대)" "長(장)"이라는 한자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의 지시사항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러 나온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실장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구속영장심사에서 이 수첩에 대해 "(나중에 '大'자를 적어넣는 식으로)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 "모함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라며 방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됐습니다.

이 사건의 또 다른 피고인이자 '핵심 증인'이라 할 이 전 실장이 검찰 조사에서 어떤 진술을 했고, 수첩에는 무엇을 적었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이 양 전 대법원장의 피의자신문조서에서 일부 확인됐습니다.

- 검사: (해산된 통합진보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지위확인 청구 소송에 대한) 서울행정법원 13부의 소각하 판결과 관련해서 이규진은 "그 판결 결과를 보고받고 피의자(양승태)가 혀를 차면서 '어떻게 이런 판결이 있을 수 있느냐'고 크게 화를 냈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 양승태: 다소 놀랍고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건 사실입니다. 이런 사건은 법원에 재판권이 있는 거 아닌가. 제1감(感)으로 생각했고, 당연히 다른 법관들도 그런 생각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가 이런 결과 나온 것에 대해 다소 의아스런 반응을 보였을 수 있지만 '어떻게 이런 판결 있을 수 있느냐'라고까지 얘기했겠습니까.

- 검사: 이규진은 "실장회의 끝나고 피의자를 찾아가 소각하 판결 사실 및 처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논의된 헌법교육 강화방안을 보고하자 피의자가 '법관들 상대로 사법기능과 헌법재판소 기능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도록 집중적인 교육을 신속히 준비하라'고 하면서, '특히 (서울행정법원 13부) 반정우 부장판사의 소각하 판결을 지나치게 헌법재판소 입장에 경도된 판결로 평가해 교육 과정에 언급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하는데 정말로 그런 진술을 한 적이 없습니까?
- 양승태: 그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기억나는 거 없습니다.

올해 1월 구속영장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취재진을 등지고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검사가 서증조사 과정에서 읽은 위 조서 내용을 보면, 이 전 실장은 양 전 대법원장이 통진당 국회의원들의 행정소송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정무적' 지시를 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런 지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사법부가 다시 심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에서 대법원의 위상을 상대적으로 강화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다소 황당하다는 듯 이 전 실장의 진술을 부인했습니다. 두 사람의 엇갈린 진술은 계속 이어집니다.

- 검사: [2016년 3월 이규진 업무일지 제시하며] 피의자는 이규진에게 "헌법재판관 지명권 삭제 가능성"을 언급하며 "헌법재판소보다 대법원이 규모나 인적 자원 면에서 우위이니 잘 활용하고 은밀히 공격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고 지시한 걸로 확인됐는데, 어떤가요?
- 양승태: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저는 잘 내용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 검사: 이규진은 기재 내용에 대해 "피의자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피의자의 지시사항을 그렇게 받아적은 거고, '헌법재판소에 대해 은밀히 공격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멘트는 피의자의 직접적 워딩"이라고 진술하는데 어떤가요?
- 양승태: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기억이 없다"는 양 전 대법원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심복이라던 이 전 실장은 거짓말을 한 셈이 됩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앞으로 재판에서 가려져야 할 부분입니다.

◆ '능력자' 임종헌, 지시 없이 알아서 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러 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기자들을 밀치며 검찰청사로 향하고 있다.
양승태 사법부 '재판 거래' 의혹의 중심에 있는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한일관계라는 민감한 사안이 걸린 판결에 외교부의 요구를 반영해주고, 그 대가로 사법부는 외교부에 주UN대표부 등 재외공관에 파견되는 법관을 늘려달라는 '거래'가 있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와 관련된 과정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습니다. 모두 "유능한" 후배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겁니다.

- 검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청와대 관계자 진술에 의하면, 2016년 4~5월쯤 임종헌 실장의 요청에 따라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등에서 외교부에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관련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이 더 늦어지면 안 된다"라고 독촉한 사실이 있는데. 피고인이 임종헌에게 지시한 것입니까?
- 양승태: 임 차장이 굉장히 유능한 사람입니다. 제가 챙겨보라는 지시를 별도로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보다 임 차장이 그런 사람들하고 오히려 직접 접촉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의견서 내기로 했는데 왜 안내냐고 임 차장이 그랬을 수는 있습니다. 저와 직접 연관할 사안은 아닙니다.


임 차장이 알아서 한 것이다, 나와는 관계가 없다. 이런 양 전 대법원장의 말을 듣다 보면, 양승태 사법부를 실질적으로 움직였던 사람은 임 전 차장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 검사: 임종헌이 2013년 9월 25일 김규현 외교부 1차관을 만나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 대한) 외교부의 입장을 전달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 양승태: 금시초문입니다.

- 검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정다주 심의관이 작성한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을 본 적 있습니까?
- 양승태: 전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 검사: 임종헌은 정다주 심의관에게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면서 이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는데, 그런 지시를 임종헌에게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있습니까?
- 양승태: 없습니다.

그렇다면 양 전 대법원장이 대단한 능력자라고 평가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입장은 어떨까요?

임 전 차장은 지난 3월 열린 자신의 첫 재판에서, 양 전 원장 등 상급자들과의 공모관계에 대해 부인했습니다. 그는 공소사실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 등으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받거나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 적이 전혀 없느냐고 묻는 검사의 질문에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전혀 기억이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 당한 사람은 무서웠다는데…박병대 "강요·강권한 적 없어"

마지막으로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박병대 전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의 피의자신문조서 중 공개된 일부분을 살펴보려 합니다. 박 전 대법관과, 이 사건의 '피해자'로 공소장에 적시된 법관들의 생각이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서인데요.

- 검사: 법원행정처가 구체적 사건에 관해 재판부에 특정 의견을 전달할 경우, 법관으로서는 선뜻 그 의견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 박병대: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행정소송 사건 1심 판결이 재판부의 판단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사례이지요. 절대적인 기속력을 갖는다고 볼 수 없습니다.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부에 검토 문건을 전달했더라도, 실제로는 그 문건의 방향과 정반대되는 판결이 났으니 재판부가 부당한 '개입'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그러자 검사는 이 사건 '피해자'들의 진술 내용을 박 전 대법관에게 설명했습니다.

- 검사: 하지만 법원행정처로부터 (행정처 검토 문건의 내용을 담당 재판부에 전달해달라는) 요구받은 조한창 전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인사권이 있는 상태에서 요구를 이행하지 못하면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진술했고, 전주지법 방창현 부장판사 역시 "선고 연기를 요청받고 원고들과의 관계에서는 부적절하지만 행정처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진술했습니다. 광주지법 행정1부 재판장이었던 박길성, 박강회 역시 '인사를 앞둔 상황에서 행정처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통진당 행정소송 사건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의사를 전달할 경우, 그 내용을 전달받은 법관들이 심적 부담 가질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았나요?
- 박병대: 강요하거나 강권하라고 이야기한 적은 없습니다.

박병대 전 대법관이 자신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실 이 부분 진술은 박 전 대법관의 주요 혐의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즉 법관들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법관의 독립된 재판권 행사를 방해했다는 혐의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검사는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법관윤리강령'까지 인용했습니다.

- 검사: 법관윤리강령에서도 재판에 영향을 미치거나 공정성을 의심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 법률적 조언을 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특정 사건 재판부에 대한 행정처 의사 전달은 그 규정에 위반되는 거 아닌가요?
- 박병대: 평가와 판단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끝내 인정하지 않은 박 전 대법관. 결국, 검사와 피고인 측은 재판부에 합당한 평가와 판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재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