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에 이례적 ‘충실성’ 강조…무슨 일 있었나?

입력 2019.06.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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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에서 발표한 연설문의 표지

"간부의 첫째가는 표징은
당과 수령, 혁명에 대한 충실성입니다.
당과 수령, 혁명에 대한 충실성은
공산주의 혁명가의 가장 기본적인 품성입니다.

간부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와 당의 결정, 지시를
무조건 끝까지 관철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며
어떤 역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수령님과 당을 믿고 따르며
수령님과 당을 위해서는 목숨도 기꺼이 바치며
영원히 대를 이어 수령님과 당에 충성 다하여야 합니다."


김정일이 말한 간부의 조건은?

40년 전인 1979년 4월 28일, 김정일 당시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위원회 위원이 노동당 중앙위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책임 일군 협의회에서 한 연설이다. 김일성 중심의 영도 체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간부가 중요하다며 간부의 조건을 나열했다. 그 첫 번째는 '충실성'이었다.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는 노동당에서 핵심 중의 핵심 부서. 그 부서의 간부들을 모아 놓고 아무리 계급적 토대와 가정환경이 좋아도 충실성이 없으면 간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말 사전인 조선어 사전에는 충실성이라는 단어는 없다. 다만 '충실하다'라는 단어만 있다. 뜻은 '충직하고 성실하다'로 돼 있다. 즉 '충실성'은 '충성'이라는 뜻에 '성실함'까지 더해 강조한 정도로 풀이될 듯하다. 북측 간부의 첫 번째 조건은 '얼마나 성실히 충성을 다하는가'인 셈이다.

어제(6월 14일) 자 노동신문 2면 왼쪽 아래에 ‘수령에 대한 혁명가의 진실한 충실성’이라는 글이 실렸다.어제(6월 14일) 자 노동신문 2면 왼쪽 아래에 ‘수령에 대한 혁명가의 진실한 충실성’이라는 글이 실렸다.

'충실성'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글이 14일 자 노동신문에 논설의 형태로 등장했다. '수령에 대한 혁명가의 진정한 충실성'이라는 제목이다. 당원과 근로자 모두가 충실성을 지니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즉 김정은 위원장과 뜻과 숨결, 발걸음을 같이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도 인용됐다.

"진정한 충실성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자기 령도자를 자그마한 가식도 없이 진심으로 받드는 충실성,
대를 이어가며 변함없이 끝까지 받드는 충실성입니다."


충실성에 대해 약간의 해석도 덧붙였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혁명가들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품성이며, 혁명 전사들의 마땅한 본분이며 도리라고 강조했다. 특별한 시기에 위급한 정황 속에서만 발휘되고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업과 생활에서 발현된다고도 했다.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빠진 것만 제외하고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연설과 동일하다.

'충실성' 단어 25번 언급

유일 영도 체제를 헌법보다 앞세우고 있다는 북한임을 감안하면 새삼스럽지 않다. 다만 전달 방식은 이례적이다. '충실성'이라는 단어를 제목에서부터 무려 25차례나 반복해 사용했다. 글 자체가 '충실성'으로 시작해 '충실성'으로 끝났다. 통상 노동신문 글에서 충실성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글이 올라오는 것은 드물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근 노동신문에서는 유독 충실성을 강조하는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30일, '량심은 인간의 도덕적 풍모를 규정하는 척도'라는 제목의 글에서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의무이기 전에 량심이고 실천이어야 한다"며 충성을 강조했다. 같은 달 4일에는 '인민 생활 향상과 당에 대한 일군들의 충실성'이라는 글에서는 '당에 대한 충실성은 일군들의 제일 생명'이라면서 유일 영도체계를 세우기 위한 것, 당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것 모두 충실성의 발현이라고 썼다. 김정은 위원장뿐 아니라 노동당에 대한 충실성도 강조한 셈이다.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고 이희호 여사에 대한 조의와 조화를 전달하면서 남측 고위급 인사와 9개월 만에 만났다.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고 이희호 여사에 대한 조의와 조화를 전달하면서 남측 고위급 인사와 9개월 만에 만났다.

이런 노동신문의 ;'충성심' 강조 글은 최근 일부 언론이 '숙청설'을 제기하며 정황 증거로 내놓기도 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책임을 물어 간부들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면서, 이 같은 노동신문의 글들이 그런 사실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보도 이후 징계 대상으로 명시됐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잇따라 공식 석상에 등장함으로써 북측이 보도 내용을 사실상 부인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북, 내부 정비의 이유는?

숙청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노이 회담 결렬 뒤 북한이 내부적으로 조직과 인사 등에 대해 정비를 진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남 사업을 담당하는 통일전선부 부장이 김영철에서 장금철로 바뀐 것이 대표적이다. 북미정상회담 실패에 대한 문책인지, 아니면 반대로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인지, 비핵화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것인지, 내부 비리를 단속하기 위한 것인지 의견도 분분하다. 하지만 북한이 이유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단 이처럼 북한 매체에서 최근 충실성을 극도로 강조하는 글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충실성이 부족한 사례가 발생했거나 예방할 필요성이 제기됐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어쨌든 이런 '충실성' 글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내부를 향해 '나를 따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방향은 정한 듯하다. 김 위원장을 어디로 향할 것인가. 멈춰 섰던 비핵화 시계는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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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에 이례적 ‘충실성’ 강조…무슨 일 있었나?
    • 입력 2019-06-15 10:00:27
    취재K
1979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에서 발표한 연설문의 표지

"간부의 첫째가는 표징은
당과 수령, 혁명에 대한 충실성입니다.
당과 수령, 혁명에 대한 충실성은
공산주의 혁명가의 가장 기본적인 품성입니다.

간부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와 당의 결정, 지시를
무조건 끝까지 관철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며
어떤 역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수령님과 당을 믿고 따르며
수령님과 당을 위해서는 목숨도 기꺼이 바치며
영원히 대를 이어 수령님과 당에 충성 다하여야 합니다."


김정일이 말한 간부의 조건은?

40년 전인 1979년 4월 28일, 김정일 당시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위원회 위원이 노동당 중앙위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책임 일군 협의회에서 한 연설이다. 김일성 중심의 영도 체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간부가 중요하다며 간부의 조건을 나열했다. 그 첫 번째는 '충실성'이었다.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는 노동당에서 핵심 중의 핵심 부서. 그 부서의 간부들을 모아 놓고 아무리 계급적 토대와 가정환경이 좋아도 충실성이 없으면 간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말 사전인 조선어 사전에는 충실성이라는 단어는 없다. 다만 '충실하다'라는 단어만 있다. 뜻은 '충직하고 성실하다'로 돼 있다. 즉 '충실성'은 '충성'이라는 뜻에 '성실함'까지 더해 강조한 정도로 풀이될 듯하다. 북측 간부의 첫 번째 조건은 '얼마나 성실히 충성을 다하는가'인 셈이다.

어제(6월 14일) 자 노동신문 2면 왼쪽 아래에 ‘수령에 대한 혁명가의 진실한 충실성’이라는 글이 실렸다.
'충실성'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글이 14일 자 노동신문에 논설의 형태로 등장했다. '수령에 대한 혁명가의 진정한 충실성'이라는 제목이다. 당원과 근로자 모두가 충실성을 지니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즉 김정은 위원장과 뜻과 숨결, 발걸음을 같이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도 인용됐다.

"진정한 충실성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자기 령도자를 자그마한 가식도 없이 진심으로 받드는 충실성,
대를 이어가며 변함없이 끝까지 받드는 충실성입니다."


충실성에 대해 약간의 해석도 덧붙였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혁명가들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품성이며, 혁명 전사들의 마땅한 본분이며 도리라고 강조했다. 특별한 시기에 위급한 정황 속에서만 발휘되고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업과 생활에서 발현된다고도 했다.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빠진 것만 제외하고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연설과 동일하다.

'충실성' 단어 25번 언급

유일 영도 체제를 헌법보다 앞세우고 있다는 북한임을 감안하면 새삼스럽지 않다. 다만 전달 방식은 이례적이다. '충실성'이라는 단어를 제목에서부터 무려 25차례나 반복해 사용했다. 글 자체가 '충실성'으로 시작해 '충실성'으로 끝났다. 통상 노동신문 글에서 충실성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글이 올라오는 것은 드물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근 노동신문에서는 유독 충실성을 강조하는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30일, '량심은 인간의 도덕적 풍모를 규정하는 척도'라는 제목의 글에서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의무이기 전에 량심이고 실천이어야 한다"며 충성을 강조했다. 같은 달 4일에는 '인민 생활 향상과 당에 대한 일군들의 충실성'이라는 글에서는 '당에 대한 충실성은 일군들의 제일 생명'이라면서 유일 영도체계를 세우기 위한 것, 당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것 모두 충실성의 발현이라고 썼다. 김정은 위원장뿐 아니라 노동당에 대한 충실성도 강조한 셈이다.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고 이희호 여사에 대한 조의와 조화를 전달하면서 남측 고위급 인사와 9개월 만에 만났다.
이런 노동신문의 ;'충성심' 강조 글은 최근 일부 언론이 '숙청설'을 제기하며 정황 증거로 내놓기도 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책임을 물어 간부들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면서, 이 같은 노동신문의 글들이 그런 사실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보도 이후 징계 대상으로 명시됐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잇따라 공식 석상에 등장함으로써 북측이 보도 내용을 사실상 부인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북, 내부 정비의 이유는?

숙청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노이 회담 결렬 뒤 북한이 내부적으로 조직과 인사 등에 대해 정비를 진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남 사업을 담당하는 통일전선부 부장이 김영철에서 장금철로 바뀐 것이 대표적이다. 북미정상회담 실패에 대한 문책인지, 아니면 반대로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인지, 비핵화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것인지, 내부 비리를 단속하기 위한 것인지 의견도 분분하다. 하지만 북한이 이유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단 이처럼 북한 매체에서 최근 충실성을 극도로 강조하는 글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충실성이 부족한 사례가 발생했거나 예방할 필요성이 제기됐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어쨌든 이런 '충실성' 글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내부를 향해 '나를 따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방향은 정한 듯하다. 김 위원장을 어디로 향할 것인가. 멈춰 섰던 비핵화 시계는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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