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서연이가 노인 병원 가는 까닭은

입력 2019.06.16 (06:01) 수정 2019.06.1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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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뇌 병변을 앓고 있는 장서연(오른쪽)양과 어머니 김현정 씨

노인 병원에 치료받으러 다니는 14살 서연이

1급 뇌 병변 판정을 받은 장서연 양의 어머니 김현정 씨는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릅니다. 서연이가 정기적으로 재활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입니다. 전신마비로 누워만 있어야 하는 서연이는, 재활 치료를 받지 않으면 근육이 굳고 배가 부풀어 올라 생명이 위독해질 수 있습니다. 치료일마다 10여 종의 약과 이동 보조기, 각종 응급조치 도구들을 챙기느라 김 씨는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합니다.

13년째 계속된 투병 생활에 지칠 법도 하지만, 김 씨는 지금의 상황도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서연이가 정기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넉 달 전에야 겨우 찾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떨어진 노인재활 요양병원입니다. 김 씨 가족이 사는 인천 남동구엔 서연이가 통원 치료가 가능한 어린이 재활병원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이런 사정을 읍소한 끝에 한 노인재활 요양병원의 허락을 가까스로 받아낸 것이죠.


'재활 난민' 최소 3만 명…점점 문 닫는 병원들

보건복지부는 재활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하는 장애 아동을 7만 2천여 명으로 추산합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재활치료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전국 223곳(2017년 기준)인데요. 공공에서 운영하는 병원은 한 군데도 없고, 모두 민간에서 운영합니다. 그마저도 종합병원의 작은 과(科) 형태이거나 의원급 시설입니다. 수요를 맞출 수준에 한참 못 미치다 보니 아무런 재활 치료도 못 받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뇌성마비와 발달지연을 겪는 아동 46,468명 중 재활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아동은 16,231명(35%)에 불과합니다. 65%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은 재활치료도 받지 못한 채 병원을 전전하는 '재활 난민'이란 셈입니다. 다른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아동까지 포함하면 실제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장애 아동 재활치료 기관들이 점점 문을 닫고 있다는 건데요. 지난해 9월 인천의 올림피아병원, 올해 4월 동국대 일산병원이 소아 재활 병동을 폐쇄했습니다.

국내 유일의 어린이 재활전문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국내 유일의 어린이 재활전문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어린이 재활 전문병원 전국에 단 한 곳…"환자 보면 볼수록 적자"

민간 병원들이 문을 닫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죠. 전국 유일의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병원'은 2017년 31억 원, 지난해 26억 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홍지연 부원장은 "소아 재활 치료는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기 힘들고 인건비도 높은 데다, 예약을 하고도 병원에 나오지 않는 아동 비율이 높아 운영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또 "재활 의료 수가 자체가 낮은 데다 소아 환자의 수가는 더욱 낮다 보니, 환자를 볼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병원에는 재활 치료를 받으려는 장애 아동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병원에 입원하려고 1년 넘게 대기하고 있는 아동 환자만 500명 수준입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장애 아동의 재활 치료 문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정부도 문제는 인정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에 '권역별 어린이 재활병원 확충'을 포함시킨 배경이기도 합니다. 2022년까지 전국 9개 권역별로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한 곳씩 건립한다는 게 당초 계획이었습니다.

지난 12일 맹성규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중증장애인 어린이의 재활치료 현황파악 및 대안 모색 토론회’지난 12일 맹성규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중증장애인 어린이의 재활치료 현황파악 및 대안 모색 토론회’

공공병원 설립 시늉만?…민간·지자체에 책임 떠넘기는 복지부

하지만 거창했던 계획은 흐지부지되어 버리는 모양새입니다. 정부는 공약 제시 불과 1년여 만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경남·충남·전남 권역 세 곳에만 짓고, 수도권과 제주는 아예 사업 대상에서 제외하는 쪽으로 계획을 축소했습니다. 이 계획마저도 불투명합니다. 복지부는 지난 4월까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공모를 진행했지만, 경남권과 전남권에선 어떤 곳도 신청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건립 비용이 400억 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하는데, 국비 지원액을 78억 원으로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넥슨으로부터 100억 원을 기부받기로 하고 신청서를 낸 대전(충남권)에서만 유일하게 공공병원 건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애 아동 단체들과 부모들은 수도권을 사업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복지부는 민간 소아재활 의료기관 40.2%가 서울·경기·인천에 소재한다는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증 장애 아동인 김건우 군의 아버지이자 시민단체 토닥토닥의 대표인 김동석 씨는 "재활치료가 필요한 어린이 환자 51.5%가 수도권에 산다는 현실은 완전히 무시되어 버렸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상당수 어린이 환자들이 다른 지역에서 수도권 병원을 찾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수도권 공공병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김 대표는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복지부가 정한 필수 병동 기준(50병상)도 권역별 거점 병원이란 이름을 붙이기에는 민망한 정도이고, 최소 100병상 이상의 병원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공공 어린이 재활병원 정책의 문제점을 기자에게 설명하는 김동석 토닥토닥 대표공공 어린이 재활병원 정책의 문제점을 기자에게 설명하는 김동석 토닥토닥 대표

중증 장애 아동들이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

장애인 건강권법은 장애인들이 장애를 이유로 건강관리와 보건의료에서 차별대우를 받지 않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아동에 대한 공공 의료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도 이러한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 탄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단지 생색내기에 그친다면, 장애 아동들과 부모들은 큰 절망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걷고, 말하고, 먹는 것조차 버거운 아이들이 존엄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사회, 서연이 같은 중증 장애 아동들이 꿈꾸는 세상입니다. 자신을 치료해 줄 재활병원을 찾아 중증 장애 아동들이 전국을 전전하는 현실을, 정부가 끝내 외면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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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6 06:01:39
    • 수정2019-06-17 10:21:47
    취재K
1급 뇌 병변을 앓고 있는 장서연(오른쪽)양과 어머니 김현정 씨

노인 병원에 치료받으러 다니는 14살 서연이

1급 뇌 병변 판정을 받은 장서연 양의 어머니 김현정 씨는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릅니다. 서연이가 정기적으로 재활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입니다. 전신마비로 누워만 있어야 하는 서연이는, 재활 치료를 받지 않으면 근육이 굳고 배가 부풀어 올라 생명이 위독해질 수 있습니다. 치료일마다 10여 종의 약과 이동 보조기, 각종 응급조치 도구들을 챙기느라 김 씨는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합니다.

13년째 계속된 투병 생활에 지칠 법도 하지만, 김 씨는 지금의 상황도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서연이가 정기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넉 달 전에야 겨우 찾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떨어진 노인재활 요양병원입니다. 김 씨 가족이 사는 인천 남동구엔 서연이가 통원 치료가 가능한 어린이 재활병원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이런 사정을 읍소한 끝에 한 노인재활 요양병원의 허락을 가까스로 받아낸 것이죠.


'재활 난민' 최소 3만 명…점점 문 닫는 병원들

보건복지부는 재활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하는 장애 아동을 7만 2천여 명으로 추산합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재활치료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전국 223곳(2017년 기준)인데요. 공공에서 운영하는 병원은 한 군데도 없고, 모두 민간에서 운영합니다. 그마저도 종합병원의 작은 과(科) 형태이거나 의원급 시설입니다. 수요를 맞출 수준에 한참 못 미치다 보니 아무런 재활 치료도 못 받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뇌성마비와 발달지연을 겪는 아동 46,468명 중 재활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아동은 16,231명(35%)에 불과합니다. 65%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은 재활치료도 받지 못한 채 병원을 전전하는 '재활 난민'이란 셈입니다. 다른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아동까지 포함하면 실제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장애 아동 재활치료 기관들이 점점 문을 닫고 있다는 건데요. 지난해 9월 인천의 올림피아병원, 올해 4월 동국대 일산병원이 소아 재활 병동을 폐쇄했습니다.

국내 유일의 어린이 재활전문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어린이 재활 전문병원 전국에 단 한 곳…"환자 보면 볼수록 적자"

민간 병원들이 문을 닫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죠. 전국 유일의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병원'은 2017년 31억 원, 지난해 26억 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홍지연 부원장은 "소아 재활 치료는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기 힘들고 인건비도 높은 데다, 예약을 하고도 병원에 나오지 않는 아동 비율이 높아 운영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또 "재활 의료 수가 자체가 낮은 데다 소아 환자의 수가는 더욱 낮다 보니, 환자를 볼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병원에는 재활 치료를 받으려는 장애 아동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병원에 입원하려고 1년 넘게 대기하고 있는 아동 환자만 500명 수준입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장애 아동의 재활 치료 문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정부도 문제는 인정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에 '권역별 어린이 재활병원 확충'을 포함시킨 배경이기도 합니다. 2022년까지 전국 9개 권역별로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한 곳씩 건립한다는 게 당초 계획이었습니다.

지난 12일 맹성규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중증장애인 어린이의 재활치료 현황파악 및 대안 모색 토론회’
공공병원 설립 시늉만?…민간·지자체에 책임 떠넘기는 복지부

하지만 거창했던 계획은 흐지부지되어 버리는 모양새입니다. 정부는 공약 제시 불과 1년여 만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경남·충남·전남 권역 세 곳에만 짓고, 수도권과 제주는 아예 사업 대상에서 제외하는 쪽으로 계획을 축소했습니다. 이 계획마저도 불투명합니다. 복지부는 지난 4월까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공모를 진행했지만, 경남권과 전남권에선 어떤 곳도 신청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건립 비용이 400억 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하는데, 국비 지원액을 78억 원으로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넥슨으로부터 100억 원을 기부받기로 하고 신청서를 낸 대전(충남권)에서만 유일하게 공공병원 건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애 아동 단체들과 부모들은 수도권을 사업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복지부는 민간 소아재활 의료기관 40.2%가 서울·경기·인천에 소재한다는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증 장애 아동인 김건우 군의 아버지이자 시민단체 토닥토닥의 대표인 김동석 씨는 "재활치료가 필요한 어린이 환자 51.5%가 수도권에 산다는 현실은 완전히 무시되어 버렸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상당수 어린이 환자들이 다른 지역에서 수도권 병원을 찾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수도권 공공병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김 대표는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복지부가 정한 필수 병동 기준(50병상)도 권역별 거점 병원이란 이름을 붙이기에는 민망한 정도이고, 최소 100병상 이상의 병원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공공 어린이 재활병원 정책의 문제점을 기자에게 설명하는 김동석 토닥토닥 대표
중증 장애 아동들이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

장애인 건강권법은 장애인들이 장애를 이유로 건강관리와 보건의료에서 차별대우를 받지 않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아동에 대한 공공 의료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도 이러한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 탄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단지 생색내기에 그친다면, 장애 아동들과 부모들은 큰 절망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걷고, 말하고, 먹는 것조차 버거운 아이들이 존엄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사회, 서연이 같은 중증 장애 아동들이 꿈꾸는 세상입니다. 자신을 치료해 줄 재활병원을 찾아 중증 장애 아동들이 전국을 전전하는 현실을, 정부가 끝내 외면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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