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전격 석방된 홍콩 민주화 아이콘 ‘조슈아 웡’…“보고 있나, 시진핑?”

입력 2019.06.18 (07:01) 수정 2019.06.1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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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본토로 범죄인 송환이 가능하도록 한 '범죄인 인도 법안'. 친중파 행정 수반과 친중파가 장악한 홍콩 의회가 강행하려던 일명 '송환법'이 홍콩 도심을 가득 메운 두 번의 메가톤급 시위에 막혀 갈 곳을 잃었다.

시위대의 기세에 눌려 '법안 추진 보류' 입장을 밝힌 캐리 람 행정장관은 "(향후 법안 재추진을 위한)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투항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2014년 '우산 시위'를 주도한 학생운동가 조슈아 웡이 석방됐다. 홍콩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icon)' 웡의 갑작스러운 석방은 정부의 유화 제스처일까? 외부 또는 홍콩 내 반중 세력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일까?

웡이 곧 가세할 시위대는 '완전한 법안 철회'와 '캐리 람 퇴진'은 물론, 우산시위 때 요구했던 '행정장관 직선제'와 '홍콩 독립'까지 요구할 기세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들불처럼 일어난 홍콩인들의 열망은 주요 외신들이 송환법 추진의 '배후'로 지목하는 시진핑 주석까지 더욱 궁지로 내몰고 있다.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 '일국양제'라는 말로 포장된 중국화냐, '자유 민주주의'로의 회귀냐 갈림길에 선 홍콩인들의 대답이다. 시위대가 말했듯이 홍콩인들의 투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 '우산 시위' 투사 '조슈아 웡' 전격 석방 ... "자유·민주주의 위한 싸움"

지난 9일 100만 시위에 화들짝 놀란 캐리 람 행정장관은 2차 대규모 시위를 앞둔 지난 15일 '법안 처리 연기'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홍콩인들은 작은 승리에 도취하지 않았다. 법안 처리 연기 선언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인 16일 또다시 거리로 나왔다. 홍콩인들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 '완전한 법안 철회'와 '캐리 람 사퇴'이다.

행진에 나선 시위대는 '폭력은 그만.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홍콩 죽이기를 중단하라' 등의 푯말을 들었다. 경찰의 과잉 진압에 성난 민심까지 표출된 것이다. 주최 측은 16일 시위에 200만 명이 나왔다고 밝혔다. 법안 처리 연기 방침에도 시위 분위기가 더욱 달아오르자 람 장관은 긴급 성명을 통해 "홍콩 사회에 커다란 모순과 분쟁이 나타나게 하고, 많은 시민을 실망시키고 가슴 아프게 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조슈아 웡이 출소 직후 CNN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슈아 웡이 출소 직후 CNN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슈아 웡 CNN 인터뷰

이런 가운데 2014년 17살의 앳된 얼굴로 '우산 시위'를 주도하는 모습이 세계인들에게 각인됐던 22살 청년 조슈아 웡의 출소 소식이 들어왔다. 어제(17일) 오전이었다. 그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CNN은 웡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이라고 소개하면서 그와의 인터뷰 기사에 '조슈아 웡이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하루 만에 석방됐다'는 제목을 달았다. 또, "웡이 공동 설립한 정당 '데모시스토'가 이번 시위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웡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이번 시위에 참여할 수 없었다. 나보다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경찰이 어떻게 최루탄을 쏠 수 있을까 놀랐다"며 "(홍콩 경찰의 과잉 진압은) 일국양제가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번 시위의 의미에 대해 웡은 "200만 명의 홍콩인이 거리에 나온 것은 홍콩인들이 이 싸움이 장기전(long term battle)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홍콩인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싸우리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 '행정장관 직선제'까지? ... '캐리 람' 궁지 몰리자, 몸 사리는 친중파

웡의 CNN 인터뷰 내용을 보면 앞으로 홍콩 시위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해볼 수 있다. 조슈아 웡은 "700만 명이 사는 작은 국제도시 홍콩에서 200만 명이 거리로 나온 것은 그만큼 공감대를 가진 것"이라면서 "이제는 캐리 람이 물러나야 할 시간"이라며 람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캐리 람은 왜 100만 명이 거리로 나올 때까지 법안을 추진했을까? 그녀가 홍콩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친중국 성향의 선거인단을 장악한 지금의 체제로는 람 행정장관이 사퇴하더라도 새로 선출될 인물이 홍콩인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중국과의 갈등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홍콩인들이 여전히 많다. 실패로 끝난 '우산 시위'는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했던 시위다. 그런 만큼 '더 이상의 중국화는 안된다'는 위기감에 거리로 나온 홍콩인들은 앞으로 람 장관의 사퇴에 이어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를 다시 꺼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캐리 람 장관이 송환법 추진 연기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15일)캐리 람 장관이 송환법 추진 연기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15일)

[연관기사] [글로벌 돋보기] 100만 ‘자유’ 물결에 긴장한 중국…시진핑의 선택은?

출소 뒤 첫 일정으로 고공 농성으로 사망한 시위 참가자의 추모 현장을 찾은 웡은 "송환법이 완전히 철회되지 않고 주요 관리들이 사임하지 않는다면 홍콩 반환 기념일인 7월 1일까지 시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시위가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웡의 발언은 데모시스토 등 시위 주도 세력들이 두 번에 걸친 대규모 시위를 발판으로 홍콩 민주화 운동을 계속 이어갈 것을 암시한다.

친중파가 장악한 입법회(홍콩 의회)에도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홍콩 언론들은 "일부 친중파 의원들 사이에 캐리 람 장관이 사태 수습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 "정부가 송환법을 재추진할 시간표가 없다고 밝힌 이상 입법회 의원 임기가 끝나는 내년 7월 송환법은 '자연사'하게 될 것"이라든가 "람 장관이 쓴 '보류'라는 표현은 사실상 법안이 '폐기'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지지자들은 범죄인 인도 법안을 지지하지만, 항상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캐리 람의 태도는 싫어한다" 등의 친중파 의원들의 언급을 실었다. 람 장관의 법안 추진 연기 발표에도 이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 '캐리 람'과 거리 두는 중국 ... "지지한다"지만 '교체설'도 솔솔

하지만 홍콩인들은 캐리 람 장관 1인의 책임론으로 몰아가는 것을 경계한다. '홍콩 자유(Free Hong Kong)',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Hong Kong is not China)' 등의 주요 시위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홍콩인들은 송환법 추진의 주체를 중국 중앙정부로 규정하고 있다. 홍콩 업무를 총괄하는 한정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홍콩과 인접한 선전에 직접 내려와 대책회의를 했으며 캐리 람 장관을 만나 법안 연기를 지시했다는 홍콩 매체의 보도까지 나왔다.

세계 주요 외신도 마찬가지다. 홍콩의 행정 수반이 송환법 추진을 단독으로 밀어붙였다고 보는 매체는 없는듯하다. 류샤오밍 영국 주재 중국대사는 "중국 중앙 정부는 (송환법과 관련해) 홍콩 정부에 어떠한 지시나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적으로 홍콩 정부의 결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홍콩 정부로 하여금 법안을 포기하게 할 수는 없냐'는 질문에도 "왜 우리가 그것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류샤오밍 영국 주재 중국 대사가 BBC와 인터뷰하고 있다류샤오밍 영국 주재 중국 대사가 BBC와 인터뷰하고 있다

류샤오밍 대사 BBC 인터뷰

류샤오밍 대사는 특히 "모든 외신이 홍콩이 중국의 지시를 받아서 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BBC도 왜곡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캐리 람과 거리를 두고 있는 중국이지만 오늘 외교부 공식 브리핑에서 "캐리 람 장관을 계속해서 확고히 지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중국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레임덕에 빠진 람 장관을 대신할 인사를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스티브 창 런던대 중국연구소 소장은 "중국 정부가 굴복한다는 인상을 주기 싫어 당장 캐리 람을 버리진 않겠지만, 앞으로 적당한 교체의 구실을 찾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캐리 람의 '법안 처리 무기한 연기'는 캐리 람 행정부와 그 뒤를 바치고 있는 베이징마저 굴복시킨 홍콩인들의 승리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주만 해도 '법안 지지' 의사를 밝혔던 중국 정부가 2차 대규모 시위 이후 '캐리 람 지지' 입장을 밝힌 것에서도 중국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송환법' 얘기는 온데간데없어졌다. 한정 상무위원과 람 장관이 은밀히 만났다는 보도에 대해 중국 정부는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 홍콩 시위 '무기화'하려는 미국 ... 시위대도 '미·중 경쟁' 적극 활용할 듯

법안을 밀어붙이면 대규모 유혈사태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고, 법안을 포기하자니 '홍콩 독립'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는 고민 사이에서 시진핑 주석은 '법안의 무기한 연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법안을 완전히 철회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전망한다. 중앙정부의 완벽한 패배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법안 철회가 아닌 이상 불씨는 항상 남아 있다. 이를 간파한 듯 조슈아 웡은 이번 시위를 계기로 "홍콩인들이 더는 침묵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시진핑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독립성향의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은 "홍콩 상황이 일국양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해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 시위로 타이완 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는 가운데 중국으로서는 홍콩의 총선은 물론 내년 1월 타이완 총통 선거까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3천억 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를 무기로 사실상 백기 투항을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 문제를 G20 정상회의 의제에 올릴 태세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타이완과 홍콩을 끌어안으며 '하나의 중국' 원칙까지 흔들고 있다.


조슈아 웡은 "시진핑이 미·중 무역전쟁으로 골치가 아픈 상황에서 홍콩의 혼돈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패권 전쟁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앞으로 시위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랬을까? 웡은 CNN과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다소 흥분한듯한 목소리로 "지금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동참하기 정말 좋은 시점"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에 중국이 '강 대 강' 대치로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에 나선 홍콩인들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미·중 패권 전쟁의 결과와 맞물릴 수밖에 없는 사안인 만큼, 전 세계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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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8 07:01:58
    • 수정2019-06-18 09: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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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본토로 범죄인 송환이 가능하도록 한 '범죄인 인도 법안'. 친중파 행정 수반과 친중파가 장악한 홍콩 의회가 강행하려던 일명 '송환법'이 홍콩 도심을 가득 메운 두 번의 메가톤급 시위에 막혀 갈 곳을 잃었다.

시위대의 기세에 눌려 '법안 추진 보류' 입장을 밝힌 캐리 람 행정장관은 "(향후 법안 재추진을 위한)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투항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2014년 '우산 시위'를 주도한 학생운동가 조슈아 웡이 석방됐다. 홍콩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icon)' 웡의 갑작스러운 석방은 정부의 유화 제스처일까? 외부 또는 홍콩 내 반중 세력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일까?

웡이 곧 가세할 시위대는 '완전한 법안 철회'와 '캐리 람 퇴진'은 물론, 우산시위 때 요구했던 '행정장관 직선제'와 '홍콩 독립'까지 요구할 기세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들불처럼 일어난 홍콩인들의 열망은 주요 외신들이 송환법 추진의 '배후'로 지목하는 시진핑 주석까지 더욱 궁지로 내몰고 있다.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 '일국양제'라는 말로 포장된 중국화냐, '자유 민주주의'로의 회귀냐 갈림길에 선 홍콩인들의 대답이다. 시위대가 말했듯이 홍콩인들의 투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 '우산 시위' 투사 '조슈아 웡' 전격 석방 ... "자유·민주주의 위한 싸움"

지난 9일 100만 시위에 화들짝 놀란 캐리 람 행정장관은 2차 대규모 시위를 앞둔 지난 15일 '법안 처리 연기'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홍콩인들은 작은 승리에 도취하지 않았다. 법안 처리 연기 선언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인 16일 또다시 거리로 나왔다. 홍콩인들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 '완전한 법안 철회'와 '캐리 람 사퇴'이다.

행진에 나선 시위대는 '폭력은 그만.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홍콩 죽이기를 중단하라' 등의 푯말을 들었다. 경찰의 과잉 진압에 성난 민심까지 표출된 것이다. 주최 측은 16일 시위에 200만 명이 나왔다고 밝혔다. 법안 처리 연기 방침에도 시위 분위기가 더욱 달아오르자 람 장관은 긴급 성명을 통해 "홍콩 사회에 커다란 모순과 분쟁이 나타나게 하고, 많은 시민을 실망시키고 가슴 아프게 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조슈아 웡이 출소 직후 CNN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슈아 웡 CNN 인터뷰

이런 가운데 2014년 17살의 앳된 얼굴로 '우산 시위'를 주도하는 모습이 세계인들에게 각인됐던 22살 청년 조슈아 웡의 출소 소식이 들어왔다. 어제(17일) 오전이었다. 그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CNN은 웡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이라고 소개하면서 그와의 인터뷰 기사에 '조슈아 웡이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하루 만에 석방됐다'는 제목을 달았다. 또, "웡이 공동 설립한 정당 '데모시스토'가 이번 시위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웡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이번 시위에 참여할 수 없었다. 나보다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경찰이 어떻게 최루탄을 쏠 수 있을까 놀랐다"며 "(홍콩 경찰의 과잉 진압은) 일국양제가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번 시위의 의미에 대해 웡은 "200만 명의 홍콩인이 거리에 나온 것은 홍콩인들이 이 싸움이 장기전(long term battle)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홍콩인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싸우리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 '행정장관 직선제'까지? ... '캐리 람' 궁지 몰리자, 몸 사리는 친중파

웡의 CNN 인터뷰 내용을 보면 앞으로 홍콩 시위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해볼 수 있다. 조슈아 웡은 "700만 명이 사는 작은 국제도시 홍콩에서 200만 명이 거리로 나온 것은 그만큼 공감대를 가진 것"이라면서 "이제는 캐리 람이 물러나야 할 시간"이라며 람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캐리 람은 왜 100만 명이 거리로 나올 때까지 법안을 추진했을까? 그녀가 홍콩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친중국 성향의 선거인단을 장악한 지금의 체제로는 람 행정장관이 사퇴하더라도 새로 선출될 인물이 홍콩인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중국과의 갈등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홍콩인들이 여전히 많다. 실패로 끝난 '우산 시위'는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했던 시위다. 그런 만큼 '더 이상의 중국화는 안된다'는 위기감에 거리로 나온 홍콩인들은 앞으로 람 장관의 사퇴에 이어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를 다시 꺼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캐리 람 장관이 송환법 추진 연기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15일)
[연관기사] [글로벌 돋보기] 100만 ‘자유’ 물결에 긴장한 중국…시진핑의 선택은?

출소 뒤 첫 일정으로 고공 농성으로 사망한 시위 참가자의 추모 현장을 찾은 웡은 "송환법이 완전히 철회되지 않고 주요 관리들이 사임하지 않는다면 홍콩 반환 기념일인 7월 1일까지 시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시위가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웡의 발언은 데모시스토 등 시위 주도 세력들이 두 번에 걸친 대규모 시위를 발판으로 홍콩 민주화 운동을 계속 이어갈 것을 암시한다.

친중파가 장악한 입법회(홍콩 의회)에도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홍콩 언론들은 "일부 친중파 의원들 사이에 캐리 람 장관이 사태 수습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 "정부가 송환법을 재추진할 시간표가 없다고 밝힌 이상 입법회 의원 임기가 끝나는 내년 7월 송환법은 '자연사'하게 될 것"이라든가 "람 장관이 쓴 '보류'라는 표현은 사실상 법안이 '폐기'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지지자들은 범죄인 인도 법안을 지지하지만, 항상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캐리 람의 태도는 싫어한다" 등의 친중파 의원들의 언급을 실었다. 람 장관의 법안 추진 연기 발표에도 이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 '캐리 람'과 거리 두는 중국 ... "지지한다"지만 '교체설'도 솔솔

하지만 홍콩인들은 캐리 람 장관 1인의 책임론으로 몰아가는 것을 경계한다. '홍콩 자유(Free Hong Kong)',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Hong Kong is not China)' 등의 주요 시위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홍콩인들은 송환법 추진의 주체를 중국 중앙정부로 규정하고 있다. 홍콩 업무를 총괄하는 한정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홍콩과 인접한 선전에 직접 내려와 대책회의를 했으며 캐리 람 장관을 만나 법안 연기를 지시했다는 홍콩 매체의 보도까지 나왔다.

세계 주요 외신도 마찬가지다. 홍콩의 행정 수반이 송환법 추진을 단독으로 밀어붙였다고 보는 매체는 없는듯하다. 류샤오밍 영국 주재 중국대사는 "중국 중앙 정부는 (송환법과 관련해) 홍콩 정부에 어떠한 지시나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적으로 홍콩 정부의 결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홍콩 정부로 하여금 법안을 포기하게 할 수는 없냐'는 질문에도 "왜 우리가 그것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류샤오밍 영국 주재 중국 대사가 BBC와 인터뷰하고 있다
류샤오밍 대사 BBC 인터뷰

류샤오밍 대사는 특히 "모든 외신이 홍콩이 중국의 지시를 받아서 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BBC도 왜곡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캐리 람과 거리를 두고 있는 중국이지만 오늘 외교부 공식 브리핑에서 "캐리 람 장관을 계속해서 확고히 지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중국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레임덕에 빠진 람 장관을 대신할 인사를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스티브 창 런던대 중국연구소 소장은 "중국 정부가 굴복한다는 인상을 주기 싫어 당장 캐리 람을 버리진 않겠지만, 앞으로 적당한 교체의 구실을 찾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캐리 람의 '법안 처리 무기한 연기'는 캐리 람 행정부와 그 뒤를 바치고 있는 베이징마저 굴복시킨 홍콩인들의 승리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주만 해도 '법안 지지' 의사를 밝혔던 중국 정부가 2차 대규모 시위 이후 '캐리 람 지지' 입장을 밝힌 것에서도 중국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송환법' 얘기는 온데간데없어졌다. 한정 상무위원과 람 장관이 은밀히 만났다는 보도에 대해 중국 정부는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 홍콩 시위 '무기화'하려는 미국 ... 시위대도 '미·중 경쟁' 적극 활용할 듯

법안을 밀어붙이면 대규모 유혈사태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고, 법안을 포기하자니 '홍콩 독립'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는 고민 사이에서 시진핑 주석은 '법안의 무기한 연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법안을 완전히 철회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전망한다. 중앙정부의 완벽한 패배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법안 철회가 아닌 이상 불씨는 항상 남아 있다. 이를 간파한 듯 조슈아 웡은 이번 시위를 계기로 "홍콩인들이 더는 침묵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시진핑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독립성향의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은 "홍콩 상황이 일국양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해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 시위로 타이완 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는 가운데 중국으로서는 홍콩의 총선은 물론 내년 1월 타이완 총통 선거까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3천억 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를 무기로 사실상 백기 투항을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 문제를 G20 정상회의 의제에 올릴 태세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타이완과 홍콩을 끌어안으며 '하나의 중국' 원칙까지 흔들고 있다.


조슈아 웡은 "시진핑이 미·중 무역전쟁으로 골치가 아픈 상황에서 홍콩의 혼돈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패권 전쟁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앞으로 시위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랬을까? 웡은 CNN과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다소 흥분한듯한 목소리로 "지금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동참하기 정말 좋은 시점"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에 중국이 '강 대 강' 대치로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에 나선 홍콩인들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미·중 패권 전쟁의 결과와 맞물릴 수밖에 없는 사안인 만큼, 전 세계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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