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홍콩 시위에서 발견한 한국 촛불

입력 2019.06.19 (15:20) 수정 2019.06.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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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민들이 정부가 추진하던 송환법의 사실상 철회를 끌어냈다. 홍콩 사태는 이제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를 두고 2라운드에 접어든 분위기다.

람 장관은 홍콩의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처럼 추진력은 있지만, 권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람 장관의 지도력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의문은 이번 송환법 처리를 계기로 폭발했다. 행정 수반의 퇴진을 요구하는 홍콩 시위는 2016~2017년 '한국의 촛불'을 닮았다. 홍콩 시민 30%에 해당하는 200만 명이 참여한 지난 16일 검은 대행진, 그날 거리의 모습을 보자


한국의 촛불 때 그랬듯이 대행진이 열린 지난 16일 홍콩 도심 지하철역은 인산인해였다. 행진 출발 장소인 빅토리아 공원으로 가려는 시민들이다. 한국 촛불이 광화문에서 만들어낸 장관처럼 이들은 도심에 거대한 검은 물결을 만들어 냈다.


행정 수반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 집회였지만 분위기는 축제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 단위로 참여한 시민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행진이 한창이던 밤 10시 무렵, 정부 청사 앞 왕복 8차선 도로에 갑자기 저 멀리서 응급차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응급 환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 순간 그 많던 인파가 순식간에 두 갈래로 갈라졌다. 홍콩에도 '홍해'는 있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한국 촛불 때 광화문에선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홍콩 시위에서도 농성 중 추락해 숨진 양 모 씨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가 이어졌다. 시민들은 사고 장소에 국화를 가져다 놓고, 찬송가를 부르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시민들은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오롯이 평가받는 날이 올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토론! 토론! 토론! 거리는 시민들의 토론 광장으로 변했다. 수백 명 단위로 곳곳에 모여 이번 사태에 대해 자기 의견을 발표하며 동질감을, 동지애를 나눴다. 우리의 국회 격인 입법회 건물 벽과 진입로 육교 위는 시민들이 써 놓은 글로 빼곡했다.


지난 12일과 달리 경찰 강제 진압이 없어 시민들은 입법회 건물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한국 촛불 때 시민들이 청와대를 에워 쌓듯이 정부 청사를 포위했다. 시민들은 밤새 송환법 철회, 캐리 람 행정장관 사퇴를 외쳤다. 한국 촛불 당시 가처분 소송을 내며 하루하루 청와대에 가까워졌듯이 홍콩 시민들도 이 장소까지 도착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시민들을 맞이 한 건 그때 청와대처럼 불 꺼진 홍콩 정부 청사였다.


성숙한 시민 문화는 한국뿐 아니라 홍콩에서도 빛났다. 행진 뒤 거리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자원봉사자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완차이 대로와 입법회 청사 주변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져다 놓은 기부 물품으로 넘쳐 났다. 습하고 덥기로 유명한 홍콩 날씨에 집에서 일부러 얼려 온 것으로 보이는 음료수도 많았다.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고 외치던 시민들은 '경찰이 폭도(테러리스트)'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지난 12일 있었던 경찰과 시민의 충돌을 비꼬아 경찰의 강경 진압을 성토한 것이다. 이날 홍콩 경찰청은 청사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쳤고, 청사 주변을 삥 둘러 경찰관들을 배치했다. 홍콩 경찰이 이날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시민들이 행진할 수 있도록 교통을 통제하고, 거침없이 쏟아지는 시민의 비판을 듣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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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홍콩 시위에서 발견한 한국 촛불
    • 입력 2019-06-19 15:20:55
    • 수정2019-06-19 15:32:04
    특파원 리포트
홍콩 시민들이 정부가 추진하던 송환법의 사실상 철회를 끌어냈다. 홍콩 사태는 이제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를 두고 2라운드에 접어든 분위기다.

람 장관은 홍콩의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처럼 추진력은 있지만, 권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람 장관의 지도력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의문은 이번 송환법 처리를 계기로 폭발했다. 행정 수반의 퇴진을 요구하는 홍콩 시위는 2016~2017년 '한국의 촛불'을 닮았다. 홍콩 시민 30%에 해당하는 200만 명이 참여한 지난 16일 검은 대행진, 그날 거리의 모습을 보자


한국의 촛불 때 그랬듯이 대행진이 열린 지난 16일 홍콩 도심 지하철역은 인산인해였다. 행진 출발 장소인 빅토리아 공원으로 가려는 시민들이다. 한국 촛불이 광화문에서 만들어낸 장관처럼 이들은 도심에 거대한 검은 물결을 만들어 냈다.


행정 수반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 집회였지만 분위기는 축제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 단위로 참여한 시민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행진이 한창이던 밤 10시 무렵, 정부 청사 앞 왕복 8차선 도로에 갑자기 저 멀리서 응급차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응급 환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 순간 그 많던 인파가 순식간에 두 갈래로 갈라졌다. 홍콩에도 '홍해'는 있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한국 촛불 때 광화문에선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홍콩 시위에서도 농성 중 추락해 숨진 양 모 씨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가 이어졌다. 시민들은 사고 장소에 국화를 가져다 놓고, 찬송가를 부르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시민들은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오롯이 평가받는 날이 올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토론! 토론! 토론! 거리는 시민들의 토론 광장으로 변했다. 수백 명 단위로 곳곳에 모여 이번 사태에 대해 자기 의견을 발표하며 동질감을, 동지애를 나눴다. 우리의 국회 격인 입법회 건물 벽과 진입로 육교 위는 시민들이 써 놓은 글로 빼곡했다.


지난 12일과 달리 경찰 강제 진압이 없어 시민들은 입법회 건물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한국 촛불 때 시민들이 청와대를 에워 쌓듯이 정부 청사를 포위했다. 시민들은 밤새 송환법 철회, 캐리 람 행정장관 사퇴를 외쳤다. 한국 촛불 당시 가처분 소송을 내며 하루하루 청와대에 가까워졌듯이 홍콩 시민들도 이 장소까지 도착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시민들을 맞이 한 건 그때 청와대처럼 불 꺼진 홍콩 정부 청사였다.


성숙한 시민 문화는 한국뿐 아니라 홍콩에서도 빛났다. 행진 뒤 거리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자원봉사자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완차이 대로와 입법회 청사 주변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져다 놓은 기부 물품으로 넘쳐 났다. 습하고 덥기로 유명한 홍콩 날씨에 집에서 일부러 얼려 온 것으로 보이는 음료수도 많았다.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고 외치던 시민들은 '경찰이 폭도(테러리스트)'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지난 12일 있었던 경찰과 시민의 충돌을 비꼬아 경찰의 강경 진압을 성토한 것이다. 이날 홍콩 경찰청은 청사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쳤고, 청사 주변을 삥 둘러 경찰관들을 배치했다. 홍콩 경찰이 이날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시민들이 행진할 수 있도록 교통을 통제하고, 거침없이 쏟아지는 시민의 비판을 듣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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