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입맛대로 환자 골라 진료? 업무정지 처분의 허점

입력 2019.06.20 (17:00) 수정 2019.06.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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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정지 당해서 한 달 반인가? 영업을 못 한다네요.'

얼마 전 서울 영등포구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입니다. 처음 이 글을 보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유수의 대학병원 여의도성모병원이 문을 닫다니. 그럼 병원에 다니는 환자들은 어떡하지? 병원이 문을 닫는다는데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왜 가만히 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얼마 뒤 글이 수정됩니다. 의료급여 대상자에 한해서만 '영업정지'를 한다는 겁니다. 더 이상했습니다. 저소득층인 의료급여 대상자에 한해서만 진료를 할 수 없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게 의료 혜택을 받도록 의료비를 지원해드려요"

의료급여, 대부분 생소할 겁니다. 저도 보건복지부를 취재하기 전까진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잘 몰랐습니다.

이전엔 '의료보호'라고 불렸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의료에서 소외되는 것을 막는다는(보호) 의미입니다. 저소득층이 돈을 내지 못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만들어졌습니다. 의료급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장애인 등 의료취약계층을 위한 제도입니다.

건강보험료를 거둬 운영하는 건강보험과 달리 의료급여는 재정을 국고로 충당해 보험료 부담이 없습니다. 의료급여 대상자는 몇천 원만 내면 대학병원에서도 얼마든지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의도 성모병원 행정처분서 (자료제공: 최도자 의원실)여의도 성모병원 행정처분서 (자료제공: 최도자 의원실)

복지부 행정처분, '건보 환자 대상 업무정지 35일, 의료급여 환자 대상으론 47일'

지난 3월 여의도성모병원은 복지부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았습니다. 2006년 백혈병 환자 진료비를 부당청구한 게 적발된 이후 법정공방 끝에 부당청구액이 최종 확정된 겁니다.

행정처분은 6월 24일부터 해당 병원이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환자에 대해 각각 35일, 47일 동안 업무정지가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업무정지 처분을 받으면 병원은 그 기간 환자 진료를 하지 못합니다.

업무정지가 되면 병원은 막대한 손해를 봅니다. 병원에 다니는 환자도 피해를 볼 수 있어서 병원이 과징금을 내겠다고 하면 업무정지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업무정지냐 과징금이냐를 병원이 선택할 수 있는 겁니다.

여의도성모병원은 업무정지 처분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보험 환자에 대한 업무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대신하겠다는 신청서를 냅니다. 30억 원의 과징금을 내더라도 환자 진료는 계속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건강보험 환자들에게 심한 불편을 준다'는 게 신청 사유였습니다. 하지만 의료급여 환자들에 대해선 업무정지를 선택했습니다.


여의도 성모병원, '의료 급여 환자 이미 전원 조치 완료, 만약 와도 무료로 진료하겠다.'

업무정지 날짜가 다가오자 병원은 예약된 의료급여 환자 5백여 명에게 연락합니다. 예약을 취소하니 다른 병원에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환자들에게 미안했던 걸까요? 병원 측은 굳이 병원에 오는 의료급여환자는 기부금으로 무상 진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건강보험 환자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낸 이유에 대해선, 업무정지를 하면 건강보험 환자 8만 명가량이 진료를 받지 못하는 등 진료 마비가 우려돼 취한 조처라고 설명했습니다. 의료급여 환자는 하루 평균 10명 남짓에 불과해 병원에서 마련한 대응책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병원의 입장이었습니다.


뒤늦게 나선 복지부, '과징금 강행 처분해 업무 정지 없도록 하겠다'

의료급여 환자들만 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 자칫 의료 차별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는데도 복지부는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막연히 병원의 결정만 기다렸습니다.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복지부는 병원과 협의를 하겠다고 나섭니다. 재발 방지 대책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복지부는 오늘(20일) 직권으로 여의도성모병원에 업무정지 취소를 통보했습니다. 대신 과징금을 내라고 명령했습니다. 의료급여 환자 진료 공백 위기는 일단 모면한 것으로 보입니다. 병원은 다음 달 중순까지 과징금 납부 처분을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다시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 공백이 생길지가 판가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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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원 입맛대로 환자 골라 진료? 업무정지 처분의 허점
    • 입력 2019-06-20 17:00:34
    • 수정2019-06-20 17:31:48
    취재K
'영업정지 당해서 한 달 반인가? 영업을 못 한다네요.'

얼마 전 서울 영등포구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입니다. 처음 이 글을 보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유수의 대학병원 여의도성모병원이 문을 닫다니. 그럼 병원에 다니는 환자들은 어떡하지? 병원이 문을 닫는다는데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왜 가만히 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얼마 뒤 글이 수정됩니다. 의료급여 대상자에 한해서만 '영업정지'를 한다는 겁니다. 더 이상했습니다. 저소득층인 의료급여 대상자에 한해서만 진료를 할 수 없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게 의료 혜택을 받도록 의료비를 지원해드려요"

의료급여, 대부분 생소할 겁니다. 저도 보건복지부를 취재하기 전까진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잘 몰랐습니다.

이전엔 '의료보호'라고 불렸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의료에서 소외되는 것을 막는다는(보호) 의미입니다. 저소득층이 돈을 내지 못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만들어졌습니다. 의료급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장애인 등 의료취약계층을 위한 제도입니다.

건강보험료를 거둬 운영하는 건강보험과 달리 의료급여는 재정을 국고로 충당해 보험료 부담이 없습니다. 의료급여 대상자는 몇천 원만 내면 대학병원에서도 얼마든지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의도 성모병원 행정처분서 (자료제공: 최도자 의원실)
복지부 행정처분, '건보 환자 대상 업무정지 35일, 의료급여 환자 대상으론 47일'

지난 3월 여의도성모병원은 복지부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았습니다. 2006년 백혈병 환자 진료비를 부당청구한 게 적발된 이후 법정공방 끝에 부당청구액이 최종 확정된 겁니다.

행정처분은 6월 24일부터 해당 병원이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환자에 대해 각각 35일, 47일 동안 업무정지가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업무정지 처분을 받으면 병원은 그 기간 환자 진료를 하지 못합니다.

업무정지가 되면 병원은 막대한 손해를 봅니다. 병원에 다니는 환자도 피해를 볼 수 있어서 병원이 과징금을 내겠다고 하면 업무정지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업무정지냐 과징금이냐를 병원이 선택할 수 있는 겁니다.

여의도성모병원은 업무정지 처분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보험 환자에 대한 업무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대신하겠다는 신청서를 냅니다. 30억 원의 과징금을 내더라도 환자 진료는 계속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건강보험 환자들에게 심한 불편을 준다'는 게 신청 사유였습니다. 하지만 의료급여 환자들에 대해선 업무정지를 선택했습니다.


여의도 성모병원, '의료 급여 환자 이미 전원 조치 완료, 만약 와도 무료로 진료하겠다.'

업무정지 날짜가 다가오자 병원은 예약된 의료급여 환자 5백여 명에게 연락합니다. 예약을 취소하니 다른 병원에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환자들에게 미안했던 걸까요? 병원 측은 굳이 병원에 오는 의료급여환자는 기부금으로 무상 진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건강보험 환자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낸 이유에 대해선, 업무정지를 하면 건강보험 환자 8만 명가량이 진료를 받지 못하는 등 진료 마비가 우려돼 취한 조처라고 설명했습니다. 의료급여 환자는 하루 평균 10명 남짓에 불과해 병원에서 마련한 대응책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병원의 입장이었습니다.


뒤늦게 나선 복지부, '과징금 강행 처분해 업무 정지 없도록 하겠다'

의료급여 환자들만 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 자칫 의료 차별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는데도 복지부는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막연히 병원의 결정만 기다렸습니다.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복지부는 병원과 협의를 하겠다고 나섭니다. 재발 방지 대책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복지부는 오늘(20일) 직권으로 여의도성모병원에 업무정지 취소를 통보했습니다. 대신 과징금을 내라고 명령했습니다. 의료급여 환자 진료 공백 위기는 일단 모면한 것으로 보입니다. 병원은 다음 달 중순까지 과징금 납부 처분을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다시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 공백이 생길지가 판가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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