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원점으로…동남권 신공항의 ‘늪’

입력 2019.06.2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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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국토교통부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동남권 신공항 간담회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 깜짝 발표…들썩이는 여의도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 김해 신공항이 적정한지 총리실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그 결과를 따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가 어제 오후 동남권 신공항 관련 면담을 한 뒤 내놓은 합의문입니다. PK 지역 단체장들의 집요한 압박에도 김해 신공항 안을 고수해온 국토부가 두 손을 든 셈입니다. 신공항 재검증이 안 되면 국무총리실에 최종 판단을 맡기자는 건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요구였습니다.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재검토한다'는 한마디에 영남권은 들썩했습니다. 10년 넘게 PK와 TK가 극심한 갈등을 빚어온 '신공항' 이슈가 하루 만에 무덤에서 다시 소환됐습니다. 들썩한 건 영남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신공항 재검토 소식에 여의도도 들썩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동남권 신공항이 뭐기에…

'추진→백지화→추진→확장'…논란의 역사


동남권 신공항 논란의 역사는 16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처음 화두가 된 건 2003년 1월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인은 동남권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부산, 울산, 경남 지역 상공인들의 건의에 "적당한 위치를 찾겠다"고 답변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12월 공식 검토를 지시했고, 국토연구원은 "김해공항은 2025년 연간 활주로 운항횟수가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며 신공항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대선 후보로 나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후보지가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로 압축된 건 2009년 12월. 논란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불붙었습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밀양을 미는 TK와 가덕도를 미는 PK의 신공항 유치전이 격화된 겁니다. 결국, 2011년 3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 계획을 백지화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신공항 이슈는 이미 국토개발이나 경제적 필요성의 영역을 넘어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온 후였습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은 박근혜 전 대통령 후보의 공약집에 다시 포함됐습니다. 4년 뒤인 2016년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답은 '김해공항 확장'이었습니다. 사실상 신공항 건설이 백지화된 겁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이렇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처치하기 곤란한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왼쪽부터 송철호 울산시장,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왼쪽부터 송철호 울산시장,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문재인 정부 들어 동남권 신공항 이슈가 다시 본격적으로 떠오른 건 지난해 9월부터입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당 소속 부산, 울산, 경남 지역 단체장들은 자체 검증단을 꾸려 김해 신공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국토부는 "입지 변경은 반발이 크고 신공항 건설이 다시 지연될 수 있다"면서 김해 신공항 강행 방침을 굽히지 않았지만, 결국 8개월 만에 결정 권한을 총리실에 넘기겠다며 백기를 들었습니다.

"합의 뒤엎은 밀실 정치"…대구·경북 강력 반발

국토부 예상대로 대구, 경북 지역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는 공동 입장을 발표하고 심히 유감이라고 개탄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대구·경북발전협의회 의원들은 오늘(21일) 오전 국회에서 '가덕도 신공항 저지' 긴급회의를 열었고 기자회견도 했습니다.

한국당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은 "선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것"이냐면서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국론이 분열되고 영남권 주민들의 피해가 커지고 국가적 손실도 늘어날 거라고 경고하면서 이낙연 국무총리를 향해서도 "앞으로 이미 결정된 국책사업 재검증을 요구하면 다 들어줄 거냐"고 날을 세웠습니다.

자유한국당 대구경북발전협의회 의원들이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자유한국당 대구경북발전협의회 의원들이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반발은 한국당 의원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구 수성구갑이 지역구인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김해 신공항은 5개 지자체가 합의했던 사안인 만큼 5개 지자체장을 불러서 엄밀하게 절차를 따져야 한다"면서 "이 건은 자칫하면 큰 싸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마치 총리실이 전권을 가진 것처럼 착각하면 큰일 난다"면서 "이낙연 총리가 일을 그렇게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구 북구을이 지역구인 홍의락 민주당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국토부 장관한테 가서 어떻게 했길래 합의문이 나온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홍 의원은 SNS에 글을 올려 "5개 단체장의 합의 정신은 어디로 갔느냐"면서 "이런 것을 밀실 정치라고 한다"고 질타했습니다.

홍의락 민주당 의원 SNS 게시글홍의락 민주당 의원 SNS 게시글

민주당의 총선 전략?…'공'은 이낙연 총리에게로

여권 안팎에서는 이번 발표가 사실 '예상된 결과'라는 반응도 나옵니다. 총선을 앞두고 부산, 경남, 울산 지역의 민심 이탈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얘기가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PK 민심을 다독일 필요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신공항 문제를 다시 정치와 선거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 여권에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하승수 녹색당 대표는 SNS에 글을 올려 "정책적으로도 타당성이 없지만, 정치적으로도 패착"이라면서 "부동산 정치를 부추기는 어리석은 행태"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이제 공은 총리실로 넘어갔습니다.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거론되지만 민주당 내 입지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낙연 총리가 이 시점에 어떤 묘수를 내놓을지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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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원점으로…동남권 신공항의 ‘늪’
    • 입력 2019-06-21 16:15:23
    취재K
20일 국토교통부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동남권 신공항 간담회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 깜짝 발표…들썩이는 여의도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 김해 신공항이 적정한지 총리실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그 결과를 따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가 어제 오후 동남권 신공항 관련 면담을 한 뒤 내놓은 합의문입니다. PK 지역 단체장들의 집요한 압박에도 김해 신공항 안을 고수해온 국토부가 두 손을 든 셈입니다. 신공항 재검증이 안 되면 국무총리실에 최종 판단을 맡기자는 건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요구였습니다.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재검토한다'는 한마디에 영남권은 들썩했습니다. 10년 넘게 PK와 TK가 극심한 갈등을 빚어온 '신공항' 이슈가 하루 만에 무덤에서 다시 소환됐습니다. 들썩한 건 영남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신공항 재검토 소식에 여의도도 들썩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동남권 신공항이 뭐기에…

'추진→백지화→추진→확장'…논란의 역사


동남권 신공항 논란의 역사는 16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처음 화두가 된 건 2003년 1월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인은 동남권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부산, 울산, 경남 지역 상공인들의 건의에 "적당한 위치를 찾겠다"고 답변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12월 공식 검토를 지시했고, 국토연구원은 "김해공항은 2025년 연간 활주로 운항횟수가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며 신공항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대선 후보로 나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후보지가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로 압축된 건 2009년 12월. 논란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불붙었습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밀양을 미는 TK와 가덕도를 미는 PK의 신공항 유치전이 격화된 겁니다. 결국, 2011년 3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 계획을 백지화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신공항 이슈는 이미 국토개발이나 경제적 필요성의 영역을 넘어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온 후였습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은 박근혜 전 대통령 후보의 공약집에 다시 포함됐습니다. 4년 뒤인 2016년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답은 '김해공항 확장'이었습니다. 사실상 신공항 건설이 백지화된 겁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이렇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처치하기 곤란한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왼쪽부터 송철호 울산시장,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문재인 정부 들어 동남권 신공항 이슈가 다시 본격적으로 떠오른 건 지난해 9월부터입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당 소속 부산, 울산, 경남 지역 단체장들은 자체 검증단을 꾸려 김해 신공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국토부는 "입지 변경은 반발이 크고 신공항 건설이 다시 지연될 수 있다"면서 김해 신공항 강행 방침을 굽히지 않았지만, 결국 8개월 만에 결정 권한을 총리실에 넘기겠다며 백기를 들었습니다.

"합의 뒤엎은 밀실 정치"…대구·경북 강력 반발

국토부 예상대로 대구, 경북 지역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는 공동 입장을 발표하고 심히 유감이라고 개탄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대구·경북발전협의회 의원들은 오늘(21일) 오전 국회에서 '가덕도 신공항 저지' 긴급회의를 열었고 기자회견도 했습니다.

한국당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은 "선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것"이냐면서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국론이 분열되고 영남권 주민들의 피해가 커지고 국가적 손실도 늘어날 거라고 경고하면서 이낙연 국무총리를 향해서도 "앞으로 이미 결정된 국책사업 재검증을 요구하면 다 들어줄 거냐"고 날을 세웠습니다.

자유한국당 대구경북발전협의회 의원들이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반발은 한국당 의원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구 수성구갑이 지역구인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김해 신공항은 5개 지자체가 합의했던 사안인 만큼 5개 지자체장을 불러서 엄밀하게 절차를 따져야 한다"면서 "이 건은 자칫하면 큰 싸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마치 총리실이 전권을 가진 것처럼 착각하면 큰일 난다"면서 "이낙연 총리가 일을 그렇게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구 북구을이 지역구인 홍의락 민주당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국토부 장관한테 가서 어떻게 했길래 합의문이 나온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홍 의원은 SNS에 글을 올려 "5개 단체장의 합의 정신은 어디로 갔느냐"면서 "이런 것을 밀실 정치라고 한다"고 질타했습니다.

홍의락 민주당 의원 SNS 게시글
민주당의 총선 전략?…'공'은 이낙연 총리에게로

여권 안팎에서는 이번 발표가 사실 '예상된 결과'라는 반응도 나옵니다. 총선을 앞두고 부산, 경남, 울산 지역의 민심 이탈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얘기가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PK 민심을 다독일 필요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신공항 문제를 다시 정치와 선거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 여권에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하승수 녹색당 대표는 SNS에 글을 올려 "정책적으로도 타당성이 없지만, 정치적으로도 패착"이라면서 "부동산 정치를 부추기는 어리석은 행태"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이제 공은 총리실로 넘어갔습니다.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거론되지만 민주당 내 입지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낙연 총리가 이 시점에 어떤 묘수를 내놓을지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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