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有) 영화 본 관객만을 위한 ‘기생충’ 속 현대사회의 실체

입력 2019.06.2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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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이 9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의 함의가 풍성한 만큼 그에 따른 해석과 토론도 풍부하게 이어집니다. 다양한 풀이와 해석이 이미 나온 만큼, 이 글에서는 '기생충'이 현대사회의 실체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도입부가 압축한 '기생충'의 세계관

'기생충'의 앞부분부터 보겠습니다. 완성도 높은 영화들의 도입부는 작품 전체의 설정을 밀도 있게 압축하곤 합니다. 기택(송강호) 가족의 주거 조건을 포함해 이들의 눅눅한 처지가 소개되는 첫장면도 그렇습니다. 이어 '피자시대' 점주가 등장합니다. 점주라고 해봐야 아버지 퇴직금에다 대출 얹어 개업한 가게를 맏딸이 떠맡은 것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젊은 점주는 피자상자 접이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10% 페널티"를 부과합니다. 이 숫자에 근거는 없습니다. 즉흥적이고 자의적입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규칙'은 줄곧 조롱당합니다. 문서는 쉽게 위조됩니다. 고용주가 적당한 사유를 만들어내면 하루아침에 해고당합니다. 고용은 '알음알음' 이뤄집니다. '기생충'이 배경 삼은 비정규직 시대의 풍경입니다.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 남매는 점주가 멋대로 만든 질서에 순응합니다. 기우는 10% 페널티는 좋으니 기존 아르바이트생을 쫓아내고 자신을 써달라고 조릅니다. 기정이 거듭니다. "그 오빠 평판 되게 안좋던데. 해고 페널티를 주시라고요." 점주의 자의적인 규칙을 활용해 자리를 차지하려 합니다.

화면 중앙에 '갑'(점주)을 배치하고 '을'의 가족들이 차례로 화면 안으로 들어온 다음, 화면에 보이지 않는 또다른 '을'을 몰아내려는 구도입니다. 이후 본론에서 펼쳐질 기택 가족의 취업 작전, 약자들끼리의 투쟁, 가맹사업 실패 사연, 보이지 않던 가족들과의 싸움 등을 압축적으로 예고하는 장면입니다. 화면 깊숙한 뒤편에 점주를 "누나"라고 부르는 직원도 있네요. 뭉칠 수 있는 건 가족밖에 없다는 이 영화 전체의 맥락이 한 화면에 담깁니다. 영화만의 얘기일까요.

가성비 좋은 월셋방이 나오면 약자끼리 경쟁해야 합니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항할 겨를은 없습니다. 경쟁자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 방을 구해 나부터 살고 봐야 합니다. 해고 통보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품위 있는 한 문장으로 날아옵니다.

나의 취업이 어려운 이유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때문인지, 중국 중소기업이 약진한 탓인지, 인공지능이 첨단 센서까지 장착한 때문인지, 아니면 내 실력이 부족해서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극 중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밟고 올라서야 합니다. 돈 없고 힘 없을수록 더 그렇습니다. 다음은 이 시대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상가 중 한 명인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의 말입니다.


'기생충'에 17세기 바로크 예술의 흔적이?

위의 책 제목『레트로토피아』(Retrotopia)는 17세기로 회귀·복고(retro)한 듯한 현대 질서를 칭한 말입니다. 토마스 홉스(1588~1679)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말하면서 이를 통제할 강력한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4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정치 계약은 국가 단위에 묶여있는데, 디지털과 금융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자본 권력은 전세계에 연결돼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글로벌 과잉연결의 시대에는 결과를 낳은 원인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바우만이 말한 '유동적 현대'(liquid modernity)의 실상입니다. 견고해서 믿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가운데 약자들끼리 경쟁합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 안전망의 역할이 가족에게 떠넘겨집니다. '기생충'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17세기 바로크풍으로 채운 건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기생충'은 가족희비극을 표방했습니다. 17세기 독일에는 '비애극'(Trauerspiels)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비극 안에 작은 희극들이 숨어있고 음모꾼들이 등장합니다. 상대적으로 단선적인 그리스 비극과 달리, 우스운 사건이 웃지못할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바로크 예술과 종종 접속해온 봉준호 감독이 이전 작품들에서 17~18세기 회화 이미지를 자주 차용했다면, 이번에 두드러지는 건 음악입니다. 정재일 음악감독은 대놓고 바로크 음악을 본따왔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음악적 패러디'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누군가 '기생충'을 보고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이 떠올랐다면, 현악기 중심의 바로크풍 음악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에서는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1악장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한 적도 있지요. 아래 음악을 한번 비교해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근대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세계에서 약자가 생존하는 길은 '순응의 달인'이 되는 것뿐이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송강호 배우가 "연체동물"에 비유한 이번 연기는, 칸국제영화제에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될 만했습니다.

기택은 소독약이 퍼지는 방 안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상자 접기를 금세 따라합니다. 벤츠 매장에서 첨단 기능을 후딱 익힌 다음 매끄러운 운전 실력을 발휘합니다. 충숙(장혜진)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보란 듯 '짜파구리'를 요리합니다. 애초에 먹을 생각 없던 연교(조여정)가 그릇을 뚝딱 비울 만큼 맛있습니다.

강자는 세상을 자신에 맞추지만 약자는 자신을 세상에 맞춰야 살 수 있습니다. 말할 것 없이, 이들의 즉흥적인 계획은 외부의 작은 힘에 의해 쉽사리 무너집니다.

근대를 부정하니 전근대로 돌아가네

기택 가족들은 틈만 나면 "계획"을 말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에서 계획이나 서류, 규칙 같은 것들은 유동적인 현대 이전의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리킬 때가 많았습니다. 산업사회에서는 기계 부속품들이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면 예측 가능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설국열차'에서 기차는 대표적인 근대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차의 머리칸 인물 메이슨(틸다 스윈튼)은 "가만히 있으라(Keep your place)"라며 꼬리칸 사람들을 억압합니다. 현대의 질서는 근대적인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대만 카스테라 사업이 선정적인 고발 프로그램에 의해 몰락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예기치 않게 개입한 다른 힘에 의해 계획은 틀어집니다. 누군가에겐 미세먼지를 없애주는 집중호우에 생의 의지를 잃은 기택은 일그러진 얼굴로 말합니다. "그러니까 계획이 없어야 돼 사람은."

‘레트로토피아’의 세상을 화두 삼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품들‘레트로토피아’의 세상을 화두 삼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품들

계획, 규칙, 혹은 구조로부터 내팽개쳐진 인물들은 시스템 밖으로 떨궈집니다. 제도권 밖으로 내몰린 인물은 지하세계를 택함으로써 스스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살인사건을 보도하는 방송뉴스는 당사자의 처절한 모멸감에서 비롯된 공격성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알 수도 없고 보여주지도 못합니다.

시스템 밖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가족의 이야기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2018,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도 담겼습니다. 만인이 투쟁하는 세상에서 노동자들끼리 고용의 딜레마를 해결해야 하는 '내일을 위한 시간'(2016, 다르덴 형제 감독)이나, 이 같은 문제를 통제할 시스템은 죽었다고 말하는 '리바이어던'(2016,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현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신분사회 '행복한 라짜로'(2018,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 국내 개봉 중) 등, '레트로토피아'의 세상은 현재 세계 예술영화의 주요한 화두 중 하나입니다(모두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입니다).

이처럼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기생충'은 지역적인 디테일과 장르 법칙의 절묘한 활용 등을 통해 칸영화제를 사로잡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생충'은 희망을 말하지 않습니다. 현실만 말합니다. '기생충'은 예술가의 직관으로 바라본 현대사회의 실체입니다. 누군가가 '영화에 왜 이토록 희망이 보이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 영화는 '없는 희망을 말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는 답을 돌려줄 것 같습니다. 아름답다거나 추악하다거나 하는 판단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논의의 출발선을 세우도록 도와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예술의 쓸모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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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有) 영화 본 관객만을 위한 ‘기생충’ 속 현대사회의 실체
    • 입력 2019-06-22 10:03:53
    취재K
영화 '기생충'이 9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의 함의가 풍성한 만큼 그에 따른 해석과 토론도 풍부하게 이어집니다. 다양한 풀이와 해석이 이미 나온 만큼, 이 글에서는 '기생충'이 현대사회의 실체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도입부가 압축한 '기생충'의 세계관

'기생충'의 앞부분부터 보겠습니다. 완성도 높은 영화들의 도입부는 작품 전체의 설정을 밀도 있게 압축하곤 합니다. 기택(송강호) 가족의 주거 조건을 포함해 이들의 눅눅한 처지가 소개되는 첫장면도 그렇습니다. 이어 '피자시대' 점주가 등장합니다. 점주라고 해봐야 아버지 퇴직금에다 대출 얹어 개업한 가게를 맏딸이 떠맡은 것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젊은 점주는 피자상자 접이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10% 페널티"를 부과합니다. 이 숫자에 근거는 없습니다. 즉흥적이고 자의적입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규칙'은 줄곧 조롱당합니다. 문서는 쉽게 위조됩니다. 고용주가 적당한 사유를 만들어내면 하루아침에 해고당합니다. 고용은 '알음알음' 이뤄집니다. '기생충'이 배경 삼은 비정규직 시대의 풍경입니다.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 남매는 점주가 멋대로 만든 질서에 순응합니다. 기우는 10% 페널티는 좋으니 기존 아르바이트생을 쫓아내고 자신을 써달라고 조릅니다. 기정이 거듭니다. "그 오빠 평판 되게 안좋던데. 해고 페널티를 주시라고요." 점주의 자의적인 규칙을 활용해 자리를 차지하려 합니다.

화면 중앙에 '갑'(점주)을 배치하고 '을'의 가족들이 차례로 화면 안으로 들어온 다음, 화면에 보이지 않는 또다른 '을'을 몰아내려는 구도입니다. 이후 본론에서 펼쳐질 기택 가족의 취업 작전, 약자들끼리의 투쟁, 가맹사업 실패 사연, 보이지 않던 가족들과의 싸움 등을 압축적으로 예고하는 장면입니다. 화면 깊숙한 뒤편에 점주를 "누나"라고 부르는 직원도 있네요. 뭉칠 수 있는 건 가족밖에 없다는 이 영화 전체의 맥락이 한 화면에 담깁니다. 영화만의 얘기일까요.

가성비 좋은 월셋방이 나오면 약자끼리 경쟁해야 합니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항할 겨를은 없습니다. 경쟁자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 방을 구해 나부터 살고 봐야 합니다. 해고 통보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품위 있는 한 문장으로 날아옵니다.

나의 취업이 어려운 이유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때문인지, 중국 중소기업이 약진한 탓인지, 인공지능이 첨단 센서까지 장착한 때문인지, 아니면 내 실력이 부족해서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극 중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밟고 올라서야 합니다. 돈 없고 힘 없을수록 더 그렇습니다. 다음은 이 시대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상가 중 한 명인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의 말입니다.


'기생충'에 17세기 바로크 예술의 흔적이?

위의 책 제목『레트로토피아』(Retrotopia)는 17세기로 회귀·복고(retro)한 듯한 현대 질서를 칭한 말입니다. 토마스 홉스(1588~1679)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말하면서 이를 통제할 강력한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4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정치 계약은 국가 단위에 묶여있는데, 디지털과 금융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자본 권력은 전세계에 연결돼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글로벌 과잉연결의 시대에는 결과를 낳은 원인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바우만이 말한 '유동적 현대'(liquid modernity)의 실상입니다. 견고해서 믿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가운데 약자들끼리 경쟁합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 안전망의 역할이 가족에게 떠넘겨집니다. '기생충'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17세기 바로크풍으로 채운 건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기생충'은 가족희비극을 표방했습니다. 17세기 독일에는 '비애극'(Trauerspiels)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비극 안에 작은 희극들이 숨어있고 음모꾼들이 등장합니다. 상대적으로 단선적인 그리스 비극과 달리, 우스운 사건이 웃지못할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바로크 예술과 종종 접속해온 봉준호 감독이 이전 작품들에서 17~18세기 회화 이미지를 자주 차용했다면, 이번에 두드러지는 건 음악입니다. 정재일 음악감독은 대놓고 바로크 음악을 본따왔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음악적 패러디'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누군가 '기생충'을 보고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이 떠올랐다면, 현악기 중심의 바로크풍 음악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에서는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1악장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한 적도 있지요. 아래 음악을 한번 비교해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근대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세계에서 약자가 생존하는 길은 '순응의 달인'이 되는 것뿐이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송강호 배우가 "연체동물"에 비유한 이번 연기는, 칸국제영화제에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될 만했습니다.

기택은 소독약이 퍼지는 방 안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상자 접기를 금세 따라합니다. 벤츠 매장에서 첨단 기능을 후딱 익힌 다음 매끄러운 운전 실력을 발휘합니다. 충숙(장혜진)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보란 듯 '짜파구리'를 요리합니다. 애초에 먹을 생각 없던 연교(조여정)가 그릇을 뚝딱 비울 만큼 맛있습니다.

강자는 세상을 자신에 맞추지만 약자는 자신을 세상에 맞춰야 살 수 있습니다. 말할 것 없이, 이들의 즉흥적인 계획은 외부의 작은 힘에 의해 쉽사리 무너집니다.

근대를 부정하니 전근대로 돌아가네

기택 가족들은 틈만 나면 "계획"을 말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에서 계획이나 서류, 규칙 같은 것들은 유동적인 현대 이전의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리킬 때가 많았습니다. 산업사회에서는 기계 부속품들이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면 예측 가능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설국열차'에서 기차는 대표적인 근대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차의 머리칸 인물 메이슨(틸다 스윈튼)은 "가만히 있으라(Keep your place)"라며 꼬리칸 사람들을 억압합니다. 현대의 질서는 근대적인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대만 카스테라 사업이 선정적인 고발 프로그램에 의해 몰락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예기치 않게 개입한 다른 힘에 의해 계획은 틀어집니다. 누군가에겐 미세먼지를 없애주는 집중호우에 생의 의지를 잃은 기택은 일그러진 얼굴로 말합니다. "그러니까 계획이 없어야 돼 사람은."

‘레트로토피아’의 세상을 화두 삼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품들
계획, 규칙, 혹은 구조로부터 내팽개쳐진 인물들은 시스템 밖으로 떨궈집니다. 제도권 밖으로 내몰린 인물은 지하세계를 택함으로써 스스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살인사건을 보도하는 방송뉴스는 당사자의 처절한 모멸감에서 비롯된 공격성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알 수도 없고 보여주지도 못합니다.

시스템 밖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가족의 이야기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2018,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도 담겼습니다. 만인이 투쟁하는 세상에서 노동자들끼리 고용의 딜레마를 해결해야 하는 '내일을 위한 시간'(2016, 다르덴 형제 감독)이나, 이 같은 문제를 통제할 시스템은 죽었다고 말하는 '리바이어던'(2016,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현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신분사회 '행복한 라짜로'(2018,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 국내 개봉 중) 등, '레트로토피아'의 세상은 현재 세계 예술영화의 주요한 화두 중 하나입니다(모두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입니다).

이처럼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기생충'은 지역적인 디테일과 장르 법칙의 절묘한 활용 등을 통해 칸영화제를 사로잡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생충'은 희망을 말하지 않습니다. 현실만 말합니다. '기생충'은 예술가의 직관으로 바라본 현대사회의 실체입니다. 누군가가 '영화에 왜 이토록 희망이 보이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 영화는 '없는 희망을 말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는 답을 돌려줄 것 같습니다. 아름답다거나 추악하다거나 하는 판단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논의의 출발선을 세우도록 도와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예술의 쓸모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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