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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빈곤층이 가장 힘들어 하는 건 냄새가 아니다
입력 2019.06.23 (09:00) 수정 2019.06.23 (09:56) 취재K
현실판 빈곤층이 가장 힘들어 하는 건 냄새가 아니다
"김기사 그 양반. 선을 넘을 듯 말 듯하면서 절대 넘지 않아.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 집 특유의 냄새가 몸에 밴 송강호를 두고 이선균이 하는 대사다. 주거빈곤층을 계층화한 이 대사는 이선균이 비록 영화 내에서 그 사실을 몰랐을지라도 관객들이 "아! 반지하 냄새"하고 떠올리게 만든 대사이다. 영화에서 냄새로 빗대어진 반지하 집의 삶은 실제로도 주거빈곤을 대표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 집을 포함해 옥탑방, 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주거빈곤 가구는 227만 6,5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2%가 열악한 거주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토교통부의 2018년 주거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전국 가구의 1.9%가 지하나 반지하, 옥탑방에 살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가구수로는 38만 가구로 2010년 4.0% 때와 비교하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사는 가구가 크게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수치는 지하나 옥탑방 가구의 변화만을 볼 수 있는 수치이다. 예전에 반지하나 옥탑방으로 대표되는 주거빈곤가구는 최근 급격히 늘어난 쪽방이나 고시원, 비닐하우스 같은 주거빈곤 거주공간을 포함하면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집은 집인데 집으로 분류되지 않는 집(비주택)'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바로 고시원이다.

■ 주택 이외의 장소에서 사는 주거빈곤층…고시원에 가장 많이 산다

국토부의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주택 이외의 장소에서 사는 가구 가운데‘고시원·고시텔’에 거주하는 가구는 15만 1,553가구(41.0%)로 가장 거주 비율이 높았다. 이어서 ‘일터의 일부 공간과 찜질방 같은 다중이용업소’에 14만 4,130가구(39.0%), 숙박업소의 객실에 30,411가구(8.2%), 판잣집·비닐하우스에 6,601가구(1.8%)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가 이들 주거장소를 비주택으로 분류하는 건 그만큼 주택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열악한 거주환경도 이유 중 하나다. 고시원, 고시텔의 실거주 평균 면적은 고작 13.5㎡, 평으로 따지면 4평으로 잠자고 나오는 용도 외에는 물건을 비치하기도 어렵다.

■ "너무 좁아요"…누우면 더 이상 짐을 놓을 곳이 없는 주거공간

한국도시연구소가 고시원이나 숙박업소의 쪽방 등 비주택에서 거주하는 203가구를 대상으로 현재 살고 있는 곳의 물리적인 상태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5점 만점으로 면접조사했다. 그랬더니 살고 있는 곳이 비좁다는 게 2.39점으로 가장 안 좋은 점수를 받았고, 이어서 해충이나 위생상태가 2.69점으로 좋지 않은 점수를 받았다. 현재 사는 곳이 조금만 더 넓었으면, 그리고 조금만 위생상태가 좋았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던 것이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그래프 숫자가 적을수록 거주 환경이 안좋다는 뜻이다.


한국도시연구소가 면접조사한 24살 고시원 거주 여성의 말을 들어보자.

김 모 씨(24세 여성, 고시원/교회 거주)
"고시원 들어가면 같은 층에 여자, 남자 구분 없이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어요. 50가구 정도가 살았는데 방문을 완전히 젖히기가 어려울 정도로 복도가 좁았어요. 방도 너무 작아서 제 짐을 넣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갖고 있던 짐들도 다 버리고 교복, 책가방, 티셔츠, 속옷 몇 벌 정도로만 생활했죠.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소량 구매했어요."


(자료사진: 비좁은 고시원 내부 전경)(자료사진: 비좁은 고시원 내부 전경)

지난해 5월 이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을 갖고 있는 고시원을 방문한 UN 주거권특보는 "고시원 거주민은 국제적인 기준으로는 홈리스(Homeless)다"라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대해 정부도 인식을 하고 있는 듯하다. 21일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은 서울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열린 취약계층 주거지원 간담회에서 "최소한의 주거 여건을 갖추지 못한 곳에 거주하는 어려운 이웃이 많다"며 "주거지원이 절실한 이들에게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위해서는 현장에서 NGO 등과 협력을 강화하고 최우선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곳부터 속도감있게 정책을 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9월쯤 세밀한 지원대책을 담은 '지원방안 2.0'을 발표하겠다"고 말해 비주택 거주민들의 삶에 변화가 올 수 있음을 암시했다.

정부의 지원대책에는 어떤 게 담길지,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지, 정책 추진과정에서 복지에 반대하는 세력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뛰어넘을지 등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많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야만 영화 '기생충' 속 반지하 거주민과 현실 속 또 다른 반지하 거주민을 아우르는 주거빈곤층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희망의 빛이 비칠 수 있을 것이다.
  • 현실판 빈곤층이 가장 힘들어 하는 건 냄새가 아니다
    • 입력 2019.06.23 (09:00)
    • 수정 2019.06.23 (09:56)
    취재K
현실판 빈곤층이 가장 힘들어 하는 건 냄새가 아니다
"김기사 그 양반. 선을 넘을 듯 말 듯하면서 절대 넘지 않아.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 집 특유의 냄새가 몸에 밴 송강호를 두고 이선균이 하는 대사다. 주거빈곤층을 계층화한 이 대사는 이선균이 비록 영화 내에서 그 사실을 몰랐을지라도 관객들이 "아! 반지하 냄새"하고 떠올리게 만든 대사이다. 영화에서 냄새로 빗대어진 반지하 집의 삶은 실제로도 주거빈곤을 대표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 집을 포함해 옥탑방, 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주거빈곤 가구는 227만 6,5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2%가 열악한 거주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토교통부의 2018년 주거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전국 가구의 1.9%가 지하나 반지하, 옥탑방에 살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가구수로는 38만 가구로 2010년 4.0% 때와 비교하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사는 가구가 크게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수치는 지하나 옥탑방 가구의 변화만을 볼 수 있는 수치이다. 예전에 반지하나 옥탑방으로 대표되는 주거빈곤가구는 최근 급격히 늘어난 쪽방이나 고시원, 비닐하우스 같은 주거빈곤 거주공간을 포함하면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집은 집인데 집으로 분류되지 않는 집(비주택)'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바로 고시원이다.

■ 주택 이외의 장소에서 사는 주거빈곤층…고시원에 가장 많이 산다

국토부의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주택 이외의 장소에서 사는 가구 가운데‘고시원·고시텔’에 거주하는 가구는 15만 1,553가구(41.0%)로 가장 거주 비율이 높았다. 이어서 ‘일터의 일부 공간과 찜질방 같은 다중이용업소’에 14만 4,130가구(39.0%), 숙박업소의 객실에 30,411가구(8.2%), 판잣집·비닐하우스에 6,601가구(1.8%)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가 이들 주거장소를 비주택으로 분류하는 건 그만큼 주택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열악한 거주환경도 이유 중 하나다. 고시원, 고시텔의 실거주 평균 면적은 고작 13.5㎡, 평으로 따지면 4평으로 잠자고 나오는 용도 외에는 물건을 비치하기도 어렵다.

■ "너무 좁아요"…누우면 더 이상 짐을 놓을 곳이 없는 주거공간

한국도시연구소가 고시원이나 숙박업소의 쪽방 등 비주택에서 거주하는 203가구를 대상으로 현재 살고 있는 곳의 물리적인 상태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5점 만점으로 면접조사했다. 그랬더니 살고 있는 곳이 비좁다는 게 2.39점으로 가장 안 좋은 점수를 받았고, 이어서 해충이나 위생상태가 2.69점으로 좋지 않은 점수를 받았다. 현재 사는 곳이 조금만 더 넓었으면, 그리고 조금만 위생상태가 좋았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던 것이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그래프 숫자가 적을수록 거주 환경이 안좋다는 뜻이다.


한국도시연구소가 면접조사한 24살 고시원 거주 여성의 말을 들어보자.

김 모 씨(24세 여성, 고시원/교회 거주)
"고시원 들어가면 같은 층에 여자, 남자 구분 없이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어요. 50가구 정도가 살았는데 방문을 완전히 젖히기가 어려울 정도로 복도가 좁았어요. 방도 너무 작아서 제 짐을 넣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갖고 있던 짐들도 다 버리고 교복, 책가방, 티셔츠, 속옷 몇 벌 정도로만 생활했죠.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소량 구매했어요."


(자료사진: 비좁은 고시원 내부 전경)(자료사진: 비좁은 고시원 내부 전경)

지난해 5월 이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을 갖고 있는 고시원을 방문한 UN 주거권특보는 "고시원 거주민은 국제적인 기준으로는 홈리스(Homeless)다"라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대해 정부도 인식을 하고 있는 듯하다. 21일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은 서울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열린 취약계층 주거지원 간담회에서 "최소한의 주거 여건을 갖추지 못한 곳에 거주하는 어려운 이웃이 많다"며 "주거지원이 절실한 이들에게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위해서는 현장에서 NGO 등과 협력을 강화하고 최우선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곳부터 속도감있게 정책을 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9월쯤 세밀한 지원대책을 담은 '지원방안 2.0'을 발표하겠다"고 말해 비주택 거주민들의 삶에 변화가 올 수 있음을 암시했다.

정부의 지원대책에는 어떤 게 담길지,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지, 정책 추진과정에서 복지에 반대하는 세력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뛰어넘을지 등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많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야만 영화 '기생충' 속 반지하 거주민과 현실 속 또 다른 반지하 거주민을 아우르는 주거빈곤층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희망의 빛이 비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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