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검역견 ‘태백’은 왜 폐기물과 함께 소각됐을까?

입력 2019.06.24 (07:00) 수정 2019.06.2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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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검역본부 검역탐지견센터의 냉동고 안에는 소시지와 과일, 생선류, 장류, 견과류, 건어물 등이 상자나 밀폐용기에 담겨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검역탐지견들의 교육·훈련용 교보재입니다.

그런데 냉동고 한쪽 구석에 '태백'이라고 이름 적힌 큰 상자 하나가 보였습니다. 다름 아닌 지난달 2일 폐사한, 잉글리쉬 스프링거 스파니엘종 검역탐지견 태백이었습니다.

죽은 개를 왜 냉동고에 넣어 놓은 건지 물었더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소각 날짜를 기다리기 위해 냉동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소각은 검역탐지견센터 옆에 있는 인천 영종도 검역 계류장에서 이뤄졌습니다.

검역탐지견을 도입한 2001년 이래로, 이곳 검역탐지견센터에서 폐사한 개들은 모두 '불합격 검역물'과 함께 소각장의 재가 됐습니다. 인간을 위해 길게는 13년 동안 일해온 개들이지만, 말 그대로 쓰임이 다한 '도구'나 '장비'처럼 버려졌습니다.

[연관기사] [단독] “국가 위해 평생 일해도 죽으면 쓰레기”

■ 은퇴하면 '실험견'으로, 죽으면 '불합격 검역물'과 함께 소각장으로


"나이가 들어 쓸모가 없어지면, 견사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거예요. 죽으면 냉동고에 들어갔다가, 또 계류장 소각 날짜를 기다리는 거죠. 평생 거기서 일만 한 애들인데, 이렇게 취급하는 건 좀 너무 하잖아요. 고생한 애들 잘 좀 보내줬으면 해요."

제보자 A 씨는 평생 인간을 위해 일한 검역탐지견들이 햄, 소시지, 육포 등 검역에 통과하지 못한 '불합격 검역물'과 함께 폐기처리 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면서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처음 검역탐지견이 폐사했던 2011년부터 9년간, 이런 방식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소각해왔다는 겁니다. 편의와 효율 외에 다른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 기관이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을 소관하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지난 4월 KBS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일부 검역탐지견들은 은퇴 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병천 교수 연구실로 옮겨져 실험동물로 이용됐고, 그중 비글종 '메이'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국가에 봉사한 사역견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 "사역견은 가족 이상이죠"…경찰·소방은 최대한 '예우'

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 소속돼 체취증거견으로 활동했던 ‘래리’와 핸들러 안성헌 순경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 소속돼 체취증거견으로 활동했던 ‘래리’와 핸들러 안성헌 순경

래리가 죽은 뒤 과학수사계에는 추모 동판이 걸렸습니다.래리가 죽은 뒤 과학수사계에는 추모 동판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모든 정부 기관이 사역견을 이렇게 취급하는 건 아닙니다. 경찰과 소방, 관세청 등에선 사역견이 죽으면 전문 장묘업체를 통해 화장장, 수목장을 지내주고 동판을 만들거나 추모비를 세우는 등 최대한의 예우를 합니다.

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 소속돼 체취증거견으로 활동해왔던 셰퍼드종 '래리'는 지난해 8월 산속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독사에 물려 폐사했습니다. 경찰은 순직한 래리가 그동안 쌓은 공을 고려해 경북 청도에 있는 반려동물 전문장례식장에서 사체를 화장하고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또 래리의 사진과 공적 등을 기록한 추모 동판을 만들어 과학수사계 입구에 달았습니다.

래리의 핸들러였던 안성헌 순경은 KBS와의 통화에서 가족 이상으로 생각하던 래리가 목숨을 잃었으니 예우를 해주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고 밝혔습니다. 래리가 떠난 지 거의 1년이 지났지만, 안 순경의 목소리에서는 아직도 슬픔이 묻어났습니다.

"제가 래리 마지막 핸들러거든요. 래리는 그동안 7~8년 가까이 돌아다니면서 좋은 일, 의로운 일만 했어요. 정말로 저희는 출동 나가면 '파트너'예요. 의지할 사람이 래리한테는 저고, 저는 래리밖에 없거든요. 산속에 들어가 보면 그렇게 되기 때문에 단순히 동물이 아니고 진짜 파트너로 생각했죠. 그래서 동판이든, 추모식이든 저희가 할 수 있는 예우를 다 해준 겁니다."

소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특수구조단의 서태호 핸들러는 폐사한 인명 구조견들을 위해 만든 추모비를 보여주며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위험한 지역도 같이 다니고, 같이 훈련도 하고, 놀아주기도 했는데... 여기서 힘든 일만 하다 죽었으니 저희도 이름이나마 기리기 위해 작은 공간을 마련해서 비석을 만들게 됐습니다. 동료같이, 가족같이 생각하니까요."

■ 법적으론 완전히 '합법'?…제도와 인식의 괴리 드러나


사실 검역본부의 사체 처리 방식은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동물의 사체는 엄연히 '폐기물'로 분류됩니다. 동물이 죽으면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종량제 봉투에 담아 폐기물로 처리하거나, 동물병원 등을 통해 의료폐기물과 함께 처리해야 합니다.

동물보호법상 장묘 시설에 맡겨 화장 처리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현재 국내에 등록된 합법적인 동물 장묘업체는 단 36곳뿐입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죽은 동물을 땅에 묻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으로 과태료 부과 대상입니다.

하지만 제도와 인식 사이에는 괴리가 있습니다. 2017년 농림축산검역본부의 국민의식조사 결과, 반려동물이 죽으면 장묘시설을 이용해 처리하겠다는 반려인이 약 60%에 달했고, 24%는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주거지나 야산에 매립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쓰레기봉투에 담아 처리하겠다는 반려인은 1.7%에 불과했습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쓰레기와 함께 소각시키고 싶은 반려인은 없다는 것,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하겠죠.

해외 선진국들의 경우 우리나라보다는 동물 장례 문화가 조금 더 보편화해 있습니다. 미국은 2017년 기준으로 전문 장례 시설만 600곳을 넘어섰고,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사유지에 매립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프랑스는 저가의 공공 장례 시설과 고가의 사설 장례 시설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에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동식 동물 장묘업체'만 200여 곳이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동물권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기사를 쓸 때도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인지, '사람부터 챙겨야 한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진 않을지 한 번 더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 기사에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국민도 대우를 받지 못하는데, 동물도 마찬가지인 게 당연하다", "사람 이야기인 줄 알았다"는 댓글이 참 많았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물권과 인권을 거울처럼 맞닿아 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겁니다. 국민 인식과 정서에 맞지 않은 현 제도를 반드시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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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검역견 ‘태백’은 왜 폐기물과 함께 소각됐을까?
    • 입력 2019-06-24 07:00:35
    • 수정2019-06-24 08:15:14
    취재후·사건후
농림축산검역본부 검역탐지견센터의 냉동고 안에는 소시지와 과일, 생선류, 장류, 견과류, 건어물 등이 상자나 밀폐용기에 담겨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검역탐지견들의 교육·훈련용 교보재입니다.

그런데 냉동고 한쪽 구석에 '태백'이라고 이름 적힌 큰 상자 하나가 보였습니다. 다름 아닌 지난달 2일 폐사한, 잉글리쉬 스프링거 스파니엘종 검역탐지견 태백이었습니다.

죽은 개를 왜 냉동고에 넣어 놓은 건지 물었더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소각 날짜를 기다리기 위해 냉동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소각은 검역탐지견센터 옆에 있는 인천 영종도 검역 계류장에서 이뤄졌습니다.

검역탐지견을 도입한 2001년 이래로, 이곳 검역탐지견센터에서 폐사한 개들은 모두 '불합격 검역물'과 함께 소각장의 재가 됐습니다. 인간을 위해 길게는 13년 동안 일해온 개들이지만, 말 그대로 쓰임이 다한 '도구'나 '장비'처럼 버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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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하면 '실험견'으로, 죽으면 '불합격 검역물'과 함께 소각장으로


"나이가 들어 쓸모가 없어지면, 견사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거예요. 죽으면 냉동고에 들어갔다가, 또 계류장 소각 날짜를 기다리는 거죠. 평생 거기서 일만 한 애들인데, 이렇게 취급하는 건 좀 너무 하잖아요. 고생한 애들 잘 좀 보내줬으면 해요."

제보자 A 씨는 평생 인간을 위해 일한 검역탐지견들이 햄, 소시지, 육포 등 검역에 통과하지 못한 '불합격 검역물'과 함께 폐기처리 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면서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처음 검역탐지견이 폐사했던 2011년부터 9년간, 이런 방식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소각해왔다는 겁니다. 편의와 효율 외에 다른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 기관이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을 소관하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지난 4월 KBS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일부 검역탐지견들은 은퇴 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병천 교수 연구실로 옮겨져 실험동물로 이용됐고, 그중 비글종 '메이'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국가에 봉사한 사역견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 "사역견은 가족 이상이죠"…경찰·소방은 최대한 '예우'

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 소속돼 체취증거견으로 활동했던 ‘래리’와 핸들러 안성헌 순경
래리가 죽은 뒤 과학수사계에는 추모 동판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모든 정부 기관이 사역견을 이렇게 취급하는 건 아닙니다. 경찰과 소방, 관세청 등에선 사역견이 죽으면 전문 장묘업체를 통해 화장장, 수목장을 지내주고 동판을 만들거나 추모비를 세우는 등 최대한의 예우를 합니다.

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 소속돼 체취증거견으로 활동해왔던 셰퍼드종 '래리'는 지난해 8월 산속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독사에 물려 폐사했습니다. 경찰은 순직한 래리가 그동안 쌓은 공을 고려해 경북 청도에 있는 반려동물 전문장례식장에서 사체를 화장하고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또 래리의 사진과 공적 등을 기록한 추모 동판을 만들어 과학수사계 입구에 달았습니다.

래리의 핸들러였던 안성헌 순경은 KBS와의 통화에서 가족 이상으로 생각하던 래리가 목숨을 잃었으니 예우를 해주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고 밝혔습니다. 래리가 떠난 지 거의 1년이 지났지만, 안 순경의 목소리에서는 아직도 슬픔이 묻어났습니다.

"제가 래리 마지막 핸들러거든요. 래리는 그동안 7~8년 가까이 돌아다니면서 좋은 일, 의로운 일만 했어요. 정말로 저희는 출동 나가면 '파트너'예요. 의지할 사람이 래리한테는 저고, 저는 래리밖에 없거든요. 산속에 들어가 보면 그렇게 되기 때문에 단순히 동물이 아니고 진짜 파트너로 생각했죠. 그래서 동판이든, 추모식이든 저희가 할 수 있는 예우를 다 해준 겁니다."

소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특수구조단의 서태호 핸들러는 폐사한 인명 구조견들을 위해 만든 추모비를 보여주며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위험한 지역도 같이 다니고, 같이 훈련도 하고, 놀아주기도 했는데... 여기서 힘든 일만 하다 죽었으니 저희도 이름이나마 기리기 위해 작은 공간을 마련해서 비석을 만들게 됐습니다. 동료같이, 가족같이 생각하니까요."

■ 법적으론 완전히 '합법'?…제도와 인식의 괴리 드러나


사실 검역본부의 사체 처리 방식은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동물의 사체는 엄연히 '폐기물'로 분류됩니다. 동물이 죽으면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종량제 봉투에 담아 폐기물로 처리하거나, 동물병원 등을 통해 의료폐기물과 함께 처리해야 합니다.

동물보호법상 장묘 시설에 맡겨 화장 처리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현재 국내에 등록된 합법적인 동물 장묘업체는 단 36곳뿐입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죽은 동물을 땅에 묻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으로 과태료 부과 대상입니다.

하지만 제도와 인식 사이에는 괴리가 있습니다. 2017년 농림축산검역본부의 국민의식조사 결과, 반려동물이 죽으면 장묘시설을 이용해 처리하겠다는 반려인이 약 60%에 달했고, 24%는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주거지나 야산에 매립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쓰레기봉투에 담아 처리하겠다는 반려인은 1.7%에 불과했습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쓰레기와 함께 소각시키고 싶은 반려인은 없다는 것,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하겠죠.

해외 선진국들의 경우 우리나라보다는 동물 장례 문화가 조금 더 보편화해 있습니다. 미국은 2017년 기준으로 전문 장례 시설만 600곳을 넘어섰고,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사유지에 매립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프랑스는 저가의 공공 장례 시설과 고가의 사설 장례 시설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에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동식 동물 장묘업체'만 200여 곳이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동물권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기사를 쓸 때도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인지, '사람부터 챙겨야 한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진 않을지 한 번 더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 기사에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국민도 대우를 받지 못하는데, 동물도 마찬가지인 게 당연하다", "사람 이야기인 줄 알았다"는 댓글이 참 많았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물권과 인권을 거울처럼 맞닿아 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겁니다. 국민 인식과 정서에 맞지 않은 현 제도를 반드시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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