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에게 질책받은 과기정통부…비공개 회의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19.06.2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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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 306호실. 이른 아침부터 과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과기정통부 장·차관, 실국장 등이 모였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함께 정책을 논의하는 '비공개 당정 협의'. 이 자리에서 정부는 최근 진행된 기초과학연구원(IBS)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과기정통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입니다.

그런데 보고를 마치자마자 여당 의원들로부터 호된 질책이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감사가 되겠나" "'자체 감사'가 말이 되냐", "다시 검토해라" 등의 지적이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여당 관계자는 "과기부가 당시 대꾸를 제대로 못했다. 외부 전문기관을 껴서 다시 감사를 하라는 얘기가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요?

당시 문제가 됐던 부분은 이것이었습니다. "분할 수의계약, 연말 집중 구매 등 비리 개연성이 많은 연구단은 IBS 자체 감사 후 보고 조치." 과기부 감사도 아닌, IBS 자체 감사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운영상 문제가 드러난 조직에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보라고 한 셈입니다. 당시 회의에서 이를 지적한 여당 의원은 "그건 (과기부가 IBS를) 봐주겠단 얘기 아니냐" 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과기부 감사 인원은 한정돼 있는데 관련 내용이 방대해서 이번에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했다더라"라고 전했습니다.

과기부가 '내용이 방대해서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건 바로 '분할 수의계약'과 연말 집중 구매 등입니다. 수의 계약은 업체를 임의로 선정할 수 있는 계약을 말합니다. 연구단은 실험에 필요한 시약, 장비를 구입할 때 일일이 계약을 하는데요. 물품 구매금액이 2천만 원 이상이면 경쟁입찰을 해야 하지만, 2천만 원 이하이면 수의계약이 가능합니다. 다만 동일한 건으로 취급되면 분할 계약을 못 하도록 돼 있습니다. (근거: 기초과학연구원(IBS) '계약업무규칙' 제27조 및 제84조)


과기부가 조사해보니, IBS의 30개 연구단 중 16개 연구단이 6년간 총 35억 원어치를 특정 업체와 분할 수의계약을 했습니다. "경쟁입찰을 통해 구매가 가능한데도 특정 업체와 분할수의계약을 해 회계질서를 훼손시켰다"는 게 과기부의 판단입니다.

종합감사에 앞서 과기부는 IBS에 대해 운영 전반을 특별점검하기도 했는데요. 특별점검에서도 이 부분은 똑같이 지적됐습니다. 같은 물품을 4, 5개월 단위로 반복적으로 사들였는데 구매금액이 1,930만 원, 880만 원, 1,760만 원, 880만 원씩입니다. (표1 참조) 2천만 원을 안 넘겨 입찰을 피하기 위해 이른바 '쪼개기'를 했다는 겁니다. '쪼개기' 수의계약에 대해 IBS측은 "한 연구단에서도 소규모 연구그룹이 여러 개가 있다 보니, 거기서 같은 제품을 각기 다른 날짜에 산 것일 뿐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더 진행하지 않은 과기부도, IBS의 해명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한편에서는, "연구개발에 몰두하다 보면 절차나 서류를 빠뜨릴 수도 있다. 행정을 잘 모르는 과학자들도 많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국가의 R&D 예산을 집행하는 문젭니다. 과학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록 IBS라는 운영 조직이 있는 거고요.

이미 IBS의 방만한 운영 문제는 작년 10월 국회 과방위의 국정감사 때부터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제 식구 챙기기식 정책위원·전문위원 제도, 불공정한 연구직 처우 문제, 성과급 부실 관리, 중이온가속기 사업 지연 등 많은 문제들이 지적됐습니다. 여야 의원들에게서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윤리 경영', '비리 종합세트' 등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결국 감사원 감사 필요성이 제기됐는데 과기정통부가 특별점검으로 추진했고, 점검결과 위법 등 중대한 문제에 대해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종합 감사를 진행한 겁니다.

그 감사 결과가 지난 10일 국회에 보고된 겁니다. 국감 당시 제보 수준이었던 문제점들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연구개발비 편취, 권한을 남용한 채용 부당개입, 허술한 계약, 논문 중복 게재 등 연구윤리 위반 등이 적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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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부는 현재 IBS측에 관련한 징계와 수사의뢰, 개선 조치 등을 통보한 상태고, 당사자들의 소명을 받아 재심의를 거친 뒤 감사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번 종합감사는 이례적입니다. 당초 IBS는 과기부 정기감사 차례가 아니었지만,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점검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IBS는 현재 과기부가 지적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도와 규정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추가 감사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과기정통부는 국회 요구에 따라 조만간 회계법인을 선정해 '분할 수의계약' 등을 포함해 연구비 부정 집행과 채용 비리, 논문 표절 등에 대해 감사를 더 하기로 했습니다.

국내 최대 국책연구기관인 IBS는 지난 2011년 설립됐습니다.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하기 어려운 도전적인 기초과학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교수진과 연구 환경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 IBS 감사에 대해 "생긴 지 얼마 안 돼 아직 정착이 안 돼서 그렇다" "예산이 몰리다 보니 주변의 시기 질투가 많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같은 감사가 연구원들의 사기를 흔들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초 설립 취지대로 '기초과학 발전을 통한 미래 성장 동력 육성' 취지를 살리려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예산 집행과 연구 자율성 보장 사이에서 과기정통부와 IBS의 고민이 더 깊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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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당에게 질책받은 과기정통부…비공개 회의에서 무슨 일이
    • 입력 2019-06-24 09:26:39
    취재K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 306호실. 이른 아침부터 과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과기정통부 장·차관, 실국장 등이 모였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함께 정책을 논의하는 '비공개 당정 협의'. 이 자리에서 정부는 최근 진행된 기초과학연구원(IBS)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과기정통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입니다.

그런데 보고를 마치자마자 여당 의원들로부터 호된 질책이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감사가 되겠나" "'자체 감사'가 말이 되냐", "다시 검토해라" 등의 지적이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여당 관계자는 "과기부가 당시 대꾸를 제대로 못했다. 외부 전문기관을 껴서 다시 감사를 하라는 얘기가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요?

당시 문제가 됐던 부분은 이것이었습니다. "분할 수의계약, 연말 집중 구매 등 비리 개연성이 많은 연구단은 IBS 자체 감사 후 보고 조치." 과기부 감사도 아닌, IBS 자체 감사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운영상 문제가 드러난 조직에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보라고 한 셈입니다. 당시 회의에서 이를 지적한 여당 의원은 "그건 (과기부가 IBS를) 봐주겠단 얘기 아니냐" 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과기부 감사 인원은 한정돼 있는데 관련 내용이 방대해서 이번에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했다더라"라고 전했습니다.

과기부가 '내용이 방대해서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건 바로 '분할 수의계약'과 연말 집중 구매 등입니다. 수의 계약은 업체를 임의로 선정할 수 있는 계약을 말합니다. 연구단은 실험에 필요한 시약, 장비를 구입할 때 일일이 계약을 하는데요. 물품 구매금액이 2천만 원 이상이면 경쟁입찰을 해야 하지만, 2천만 원 이하이면 수의계약이 가능합니다. 다만 동일한 건으로 취급되면 분할 계약을 못 하도록 돼 있습니다. (근거: 기초과학연구원(IBS) '계약업무규칙' 제27조 및 제84조)


과기부가 조사해보니, IBS의 30개 연구단 중 16개 연구단이 6년간 총 35억 원어치를 특정 업체와 분할 수의계약을 했습니다. "경쟁입찰을 통해 구매가 가능한데도 특정 업체와 분할수의계약을 해 회계질서를 훼손시켰다"는 게 과기부의 판단입니다.

종합감사에 앞서 과기부는 IBS에 대해 운영 전반을 특별점검하기도 했는데요. 특별점검에서도 이 부분은 똑같이 지적됐습니다. 같은 물품을 4, 5개월 단위로 반복적으로 사들였는데 구매금액이 1,930만 원, 880만 원, 1,760만 원, 880만 원씩입니다. (표1 참조) 2천만 원을 안 넘겨 입찰을 피하기 위해 이른바 '쪼개기'를 했다는 겁니다. '쪼개기' 수의계약에 대해 IBS측은 "한 연구단에서도 소규모 연구그룹이 여러 개가 있다 보니, 거기서 같은 제품을 각기 다른 날짜에 산 것일 뿐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더 진행하지 않은 과기부도, IBS의 해명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한편에서는, "연구개발에 몰두하다 보면 절차나 서류를 빠뜨릴 수도 있다. 행정을 잘 모르는 과학자들도 많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국가의 R&D 예산을 집행하는 문젭니다. 과학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록 IBS라는 운영 조직이 있는 거고요.

이미 IBS의 방만한 운영 문제는 작년 10월 국회 과방위의 국정감사 때부터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제 식구 챙기기식 정책위원·전문위원 제도, 불공정한 연구직 처우 문제, 성과급 부실 관리, 중이온가속기 사업 지연 등 많은 문제들이 지적됐습니다. 여야 의원들에게서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윤리 경영', '비리 종합세트' 등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결국 감사원 감사 필요성이 제기됐는데 과기정통부가 특별점검으로 추진했고, 점검결과 위법 등 중대한 문제에 대해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종합 감사를 진행한 겁니다.

그 감사 결과가 지난 10일 국회에 보고된 겁니다. 국감 당시 제보 수준이었던 문제점들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연구개발비 편취, 권한을 남용한 채용 부당개입, 허술한 계약, 논문 중복 게재 등 연구윤리 위반 등이 적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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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부는 현재 IBS측에 관련한 징계와 수사의뢰, 개선 조치 등을 통보한 상태고, 당사자들의 소명을 받아 재심의를 거친 뒤 감사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번 종합감사는 이례적입니다. 당초 IBS는 과기부 정기감사 차례가 아니었지만,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점검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IBS는 현재 과기부가 지적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도와 규정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추가 감사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과기정통부는 국회 요구에 따라 조만간 회계법인을 선정해 '분할 수의계약' 등을 포함해 연구비 부정 집행과 채용 비리, 논문 표절 등에 대해 감사를 더 하기로 했습니다.

국내 최대 국책연구기관인 IBS는 지난 2011년 설립됐습니다.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하기 어려운 도전적인 기초과학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교수진과 연구 환경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 IBS 감사에 대해 "생긴 지 얼마 안 돼 아직 정착이 안 돼서 그렇다" "예산이 몰리다 보니 주변의 시기 질투가 많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같은 감사가 연구원들의 사기를 흔들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초 설립 취지대로 '기초과학 발전을 통한 미래 성장 동력 육성' 취지를 살리려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예산 집행과 연구 자율성 보장 사이에서 과기정통부와 IBS의 고민이 더 깊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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