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좀 살려주세요”…대법원 판결 앞둔 軍 간부의 호소

입력 2019.06.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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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억울합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기자회견장. 가림막 뒤에 앉은 군인 A씨의 첫 마디는 '살려달라'는 호소였습니다. 현역 육군 간부인 A씨는 2017년 이른바 '성 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을 통해 강제로 성적 지향이 밝혀진 23명 중 한 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동성 상대와 사적 공간에서 성관계를 나눴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A씨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지금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A씨 외에도 현역 군인 1명, 전역한 민간인 2명 등 3명이 같은 혐의로 최종 선고를 기다립니다.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 군형법 92조의 6항(추행)을 어겼다는 이유입니다. 군인권센터(이하 센터)는 이들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한편, 헌법재판소가 해당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날 센터는 12명의 전·현직 군인들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보내는 탄원서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참조 : 군 인권센터 기자회견문 전체 보기) 센터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가해자 없는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동성애자인 상대방과 합의하고 관계를 맺더라도, 군 형법은 군대 내 동성 간의 모든 성적 행위를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센터는 해당 사건의 밑바닥에는 '합의된 성관계를 국가가 처벌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공소장을 보면 기자분들은 경악할 것"이라며, "일반적인 성범죄 공소장에는 'a가 b를 추행했다'고 나오지만, 이들 사건에는 'a가 b를 추행하고 b가 a를 추행했다'고 돼 있다. (군형법 92조 6항은) 피해자 없이 a와 b를 모두 가해자로 만드는 이상한 법률"이라고 말했습니다.

A씨 역시 '한 줄짜리 법 때문에 군 기강을 어지럽힌 동성애자가 됐다'고 호소했습니다. "아무도 몰라봐요, 저 동성애자인 거. 그만큼 우리 존재가 당연하다는 뜻이겠죠." 누구에게 피해를 준 적도 상처를 입힌 적도 없다며, A씨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임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너 동성애자지?' 세상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성범죄자가, 문란한 성도착증 환자가, 정신병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라는 이유로…." 다짜고짜 성적 지향을 따져 묻던 수사관의 질문을 떠올리며, A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참조 : A씨 발언 전체 보기)

군형법상 추행죄는 지금까지 세 차례 헌법재판소에서 살아남았습니다. 2002년에는 6대 2로 합헌 판결이 나왔고, 2011년에는 합헌 5명에 위헌 3명, 한정위헌 1명으로 조항이 유지됐습니다. 2016년에는 4명이 위헌에, 5명이 위헌에 표를 던졌습니다.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헌법 재판관이 조금씩 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판관 대부분이 교체된 지금 어떤 판결이 나올지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국민 여론도 크게 엇갈립니다. 국가 안보와 병영 질서 유지를 위해 해당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처벌 기준이 자의적이고 광범위해 인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이 맞섭니다. 가장 최근 내려진 2016년 7월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군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전투력을 지키려고 동성 군인을 차별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2019년 6월 현재, 헌법재판소는 2년째 해당 조항에 대한 심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센터는 "헌법재판소가 빨리 위헌 선고를 하지 않으면 추행죄로 기소된 이들이 진급 누락 등으로 군에서 퇴출당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각각 위헌 결정과 무죄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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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4 17:22:27
    취재K
"저는 억울합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기자회견장. 가림막 뒤에 앉은 군인 A씨의 첫 마디는 '살려달라'는 호소였습니다. 현역 육군 간부인 A씨는 2017년 이른바 '성 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을 통해 강제로 성적 지향이 밝혀진 23명 중 한 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동성 상대와 사적 공간에서 성관계를 나눴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A씨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지금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A씨 외에도 현역 군인 1명, 전역한 민간인 2명 등 3명이 같은 혐의로 최종 선고를 기다립니다.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 군형법 92조의 6항(추행)을 어겼다는 이유입니다. 군인권센터(이하 센터)는 이들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한편, 헌법재판소가 해당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날 센터는 12명의 전·현직 군인들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보내는 탄원서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참조 : 군 인권센터 기자회견문 전체 보기) 센터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가해자 없는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동성애자인 상대방과 합의하고 관계를 맺더라도, 군 형법은 군대 내 동성 간의 모든 성적 행위를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센터는 해당 사건의 밑바닥에는 '합의된 성관계를 국가가 처벌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공소장을 보면 기자분들은 경악할 것"이라며, "일반적인 성범죄 공소장에는 'a가 b를 추행했다'고 나오지만, 이들 사건에는 'a가 b를 추행하고 b가 a를 추행했다'고 돼 있다. (군형법 92조 6항은) 피해자 없이 a와 b를 모두 가해자로 만드는 이상한 법률"이라고 말했습니다.

A씨 역시 '한 줄짜리 법 때문에 군 기강을 어지럽힌 동성애자가 됐다'고 호소했습니다. "아무도 몰라봐요, 저 동성애자인 거. 그만큼 우리 존재가 당연하다는 뜻이겠죠." 누구에게 피해를 준 적도 상처를 입힌 적도 없다며, A씨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임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너 동성애자지?' 세상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성범죄자가, 문란한 성도착증 환자가, 정신병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라는 이유로…." 다짜고짜 성적 지향을 따져 묻던 수사관의 질문을 떠올리며, A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참조 : A씨 발언 전체 보기)

군형법상 추행죄는 지금까지 세 차례 헌법재판소에서 살아남았습니다. 2002년에는 6대 2로 합헌 판결이 나왔고, 2011년에는 합헌 5명에 위헌 3명, 한정위헌 1명으로 조항이 유지됐습니다. 2016년에는 4명이 위헌에, 5명이 위헌에 표를 던졌습니다.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헌법 재판관이 조금씩 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판관 대부분이 교체된 지금 어떤 판결이 나올지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국민 여론도 크게 엇갈립니다. 국가 안보와 병영 질서 유지를 위해 해당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처벌 기준이 자의적이고 광범위해 인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이 맞섭니다. 가장 최근 내려진 2016년 7월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군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전투력을 지키려고 동성 군인을 차별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2019년 6월 현재, 헌법재판소는 2년째 해당 조항에 대한 심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센터는 "헌법재판소가 빨리 위헌 선고를 하지 않으면 추행죄로 기소된 이들이 진급 누락 등으로 군에서 퇴출당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각각 위헌 결정과 무죄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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