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 불가’ 어쩔 수 없다? 항공권 환불 규정 제멋대로

입력 2019.06.25 (06:1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1년 중 해외여행객이 가장 많은 여름 성수기가 다가왔습니다. 항공업체들과 중개업체들은 '최저가', '특가' 마케팅을 치열하게 펼칩니다. 업체들은 각종 할인 혜택을 내세우며 당장 사야지만 가장 저렴한 것처럼 소비자를 초조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터무니없는 취소 규정을 마치 대가인양 받아들이게 합니다.

인터넷 중개사이트에서 항공권을 예매한 이 모 씨는 무려 여행일 5개월 전에 취소를 요청했지만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인터넷 중개사이트에서 항공권을 예매한 이 모 씨는 무려 여행일 5개월 전에 취소를 요청했지만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최저가 검색하니 나오는 '특가' 항공권의 진실?

11월에 출발하는 푸꾸옥행 항공권을 인터넷 중개사이트를 통해 지난 달 일찌감치 구입한 이 모 씨 가족. 구입한 지 2주 뒤, 여행일까지 다섯 달 이상 남긴 상태에서 취소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업체에서는 일명 '특가' 항공권이라며 1인당 40만 원의 결제 금액 중 취소 위약금과 보내지도 않은 화물 운송비를 포함한 22만 원은 환불이 불가하다고 통보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년 전 항공권의 과도한 취소수수료를 막기 위해 항공업체 등에 위약금 약관을 시정하도록 조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출발일보다 91일 전까지는 취소수수료를 물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정상운임의 70% 이상 저렴한 특가 항공권은 높은 위약금이 소비자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해석했는데요. 한국소비자원에서는 관련 분쟁이 접수될 경우 해당 날짜의 실제 항공권 금액들을 제출받아 평균치를 계산한다고 합니다.

그럼 위 사례의 항공권이 이에 해당할까요?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동일한 조건의 항공권 가격은 50만 원에서 32만 원가량입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40만 원이라는 금액은 '특가'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150여 일을 남긴 항공권에 대해 취소위약금을 부과하는 것도, 그 위약금에 화물 운송비까지 부담하라는 것도 지나친 요구입니다.


"법원 판결 인정할 수 없어" 법보다 위에 있는 약관?

지난달 말, 한 달 가까이 남은 후쿠오카행 항공권을 예약한 김미숙 씨는 2시간여 뒤 이를 취소하려고 다시 사이트에 접속했습니다. 업체의 업무 시간이 지나 다음 날 아침 일찍 취소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30만 원 중 2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만 환불이 가능하다고 통보했습니다.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은 계약 체결 뒤 7일 이내에는 청약 철회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용하거나 시간에 따라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는 예외인데요. 항공업체나 중개업체 등은 항공권이 후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항공권을 예외로 인정하지 않고 업체들에게 전액 환급을 명령했습니다. 법원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재판매 가능성, 즉 항공권의 가치를 떨어뜨릴만큼 긴 시간이 아니라고 판단한 겁니다. 해당 재판에서 소비자들을 변호했던 배선경 변호사(법무법인 여름) 역시 "전자상거래법은 소비자한테 불리한 것은 무효인 '편면적 강행규정'이기 때문에 약관이 법보다 불리할 때는 법을 우선으로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처:한국소비자원출처:한국소비자원

계속되는 항공권 관련 소비자 분쟁, 그 이유는?

지난해 소비자원에 접수된 항공권 관련 소비자 분쟁 1,400여 건 중 80%가 계약 해지와 관련한 내용이었습니다. 그중 700건은 상담으로만 끝났고 환불 등 합의가 성립된 경우는 500건 정도입니다. 한 피해자는 취재진에게 "여러 기관에 도움을 청했는데 단 한 곳도 제대로 도움을 못 주더라"라고 토로했습니다. 물론 공정위 조치나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등을 근거로 소비자원이 구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수수료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데다가 환불을 강제할 수도 없어 대부분 권고에 그칩니다.

항공 비용을 이미 지급한 경우 이를 돌려받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소송이나 구제를 신청해야 합니다. 돌려받을 금액의 크기를 고려할 때 지속해서 시간과 노력, 때로는 비용을 들여 문제를 제기할 소비자가 많지 않다는 걸 업체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 중개업체 관계자는 "법원 판결은 있었지만 업체들은 여전히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올 한 해 해외여행객 수는 3천만 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법 위에서 배짱 영업 중인 항공사와 여행 중개업체들, 여전히 서로에게 책임을 떠밀며 항의하는 소비자가 제풀에 지치길 기다릴 뿐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환불 불가’ 어쩔 수 없다? 항공권 환불 규정 제멋대로
    • 입력 2019-06-25 06:14:50
    취재K
1년 중 해외여행객이 가장 많은 여름 성수기가 다가왔습니다. 항공업체들과 중개업체들은 '최저가', '특가' 마케팅을 치열하게 펼칩니다. 업체들은 각종 할인 혜택을 내세우며 당장 사야지만 가장 저렴한 것처럼 소비자를 초조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터무니없는 취소 규정을 마치 대가인양 받아들이게 합니다.

인터넷 중개사이트에서 항공권을 예매한 이 모 씨는 무려 여행일 5개월 전에 취소를 요청했지만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최저가 검색하니 나오는 '특가' 항공권의 진실?

11월에 출발하는 푸꾸옥행 항공권을 인터넷 중개사이트를 통해 지난 달 일찌감치 구입한 이 모 씨 가족. 구입한 지 2주 뒤, 여행일까지 다섯 달 이상 남긴 상태에서 취소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업체에서는 일명 '특가' 항공권이라며 1인당 40만 원의 결제 금액 중 취소 위약금과 보내지도 않은 화물 운송비를 포함한 22만 원은 환불이 불가하다고 통보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년 전 항공권의 과도한 취소수수료를 막기 위해 항공업체 등에 위약금 약관을 시정하도록 조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출발일보다 91일 전까지는 취소수수료를 물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정상운임의 70% 이상 저렴한 특가 항공권은 높은 위약금이 소비자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해석했는데요. 한국소비자원에서는 관련 분쟁이 접수될 경우 해당 날짜의 실제 항공권 금액들을 제출받아 평균치를 계산한다고 합니다.

그럼 위 사례의 항공권이 이에 해당할까요?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동일한 조건의 항공권 가격은 50만 원에서 32만 원가량입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40만 원이라는 금액은 '특가'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150여 일을 남긴 항공권에 대해 취소위약금을 부과하는 것도, 그 위약금에 화물 운송비까지 부담하라는 것도 지나친 요구입니다.


"법원 판결 인정할 수 없어" 법보다 위에 있는 약관?

지난달 말, 한 달 가까이 남은 후쿠오카행 항공권을 예약한 김미숙 씨는 2시간여 뒤 이를 취소하려고 다시 사이트에 접속했습니다. 업체의 업무 시간이 지나 다음 날 아침 일찍 취소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30만 원 중 2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만 환불이 가능하다고 통보했습니다.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은 계약 체결 뒤 7일 이내에는 청약 철회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용하거나 시간에 따라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는 예외인데요. 항공업체나 중개업체 등은 항공권이 후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항공권을 예외로 인정하지 않고 업체들에게 전액 환급을 명령했습니다. 법원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재판매 가능성, 즉 항공권의 가치를 떨어뜨릴만큼 긴 시간이 아니라고 판단한 겁니다. 해당 재판에서 소비자들을 변호했던 배선경 변호사(법무법인 여름) 역시 "전자상거래법은 소비자한테 불리한 것은 무효인 '편면적 강행규정'이기 때문에 약관이 법보다 불리할 때는 법을 우선으로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처:한국소비자원
계속되는 항공권 관련 소비자 분쟁, 그 이유는?

지난해 소비자원에 접수된 항공권 관련 소비자 분쟁 1,400여 건 중 80%가 계약 해지와 관련한 내용이었습니다. 그중 700건은 상담으로만 끝났고 환불 등 합의가 성립된 경우는 500건 정도입니다. 한 피해자는 취재진에게 "여러 기관에 도움을 청했는데 단 한 곳도 제대로 도움을 못 주더라"라고 토로했습니다. 물론 공정위 조치나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등을 근거로 소비자원이 구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수수료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데다가 환불을 강제할 수도 없어 대부분 권고에 그칩니다.

항공 비용을 이미 지급한 경우 이를 돌려받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소송이나 구제를 신청해야 합니다. 돌려받을 금액의 크기를 고려할 때 지속해서 시간과 노력, 때로는 비용을 들여 문제를 제기할 소비자가 많지 않다는 걸 업체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 중개업체 관계자는 "법원 판결은 있었지만 업체들은 여전히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올 한 해 해외여행객 수는 3천만 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법 위에서 배짱 영업 중인 항공사와 여행 중개업체들, 여전히 서로에게 책임을 떠밀며 항의하는 소비자가 제풀에 지치길 기다릴 뿐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