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주기로 반복된 운명의 승부-일본 야구의 6월 25일

입력 2019.06.25 (13:46) 수정 2019.06.25 (14: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 프로야구에서 6월 25일은 시즌 중 하나의 날에 불과하지만, 일본프로야구에서 6월 25일은 뜻깊은 날이다. 30년의 세월을 두고 기이한 인연을 가진 최대 라이벌간 명승부가 반복된 운명과도 같은 승부가 펼쳐진 것이다.

관동 지역을 대표하는 요미우리와 관서 지역의 상징인 한신, 이 두 구단의 라이벌전은 '전통의 일전'이라고 불린다. 일부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관계에 비유할 정도로 요미우리와 한신은 숙명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둘의 관계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운명 같은 승부가 30년을 사이에 두고 반복된 것이다.

1959년 6월 25일, 도쿄 고라쿠엔 구장에서는 요미우리와 한신의 경기가 펼쳐졌다. 이날 경기는 전통의 라이벌전에다 일왕이 처음으로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한다는 사실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일본 프로야구의 상징, 나가시마의 신화는 바로 이 경기를 통해 시작되었다.

나가시마는 5회 한점 홈런을 때린 데 이어, 4대 4 동점이던 9회 말 좌측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터트려, 요미우리의 5대 4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일왕은 오후 9시 15분까지만 경기를 볼 예정이어서, 경기가 연장전으로 이어질 경우 자리를 뜰 가능성이 높았다. 대부분이 연장 승부를 예상하던 그 순간 나가시마의 타구가 왼쪽 폴대 쪽으로 향했고, 끝내기 홈런으로 이어져, 나가시마에 의한, 나가시마를 위한 경기로 마무리되었다.

당시 나가시마의 홈런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실제 끝내기 홈런을 맞은 한신의 투수 무라야마는 파울이라고 주장했으며, 은퇴해서도 이 주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이날 경기의 영웅은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 나가시마였고, 완투승을 거둔 후지타가 행복한 조연으로 두 명은 요미우리의 영웅 대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반면 끝내기 홈런을 맞은 무라야마는 영웅 나가시마를 위해 희생된 비련의 주인공처럼 여겨졌다.


1959년 6월 25일 경기가 일본프로야구의 전설로 남게 된 이후 정확히 30년 뒤인 1989년 6월 25일 이번에도 요미우리와 한신 전통의 일전이 성사되었다. 장소는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인 효고 현 고시엔 구장이었다. 이 둘의 운명 같은 승부의 상징은 바로 양 팀 감독이었다. 끝내기 홈런을 맞고 눈물을 흘렸던 무라야마는 한신 감독, 당시 완투승을 거둔 투수였던 후지타는 요미우리의 감독으로 정확히 3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1989년 6월 25일 경기의 영웅은 공교롭게도 30년 전 요미우리의 나가시마처럼 3루수를 맡고 있던 한신의 오카다였다. 오카다는 팀이 4대 1로 뒤진 8회 말 2사 만루에서 외국인 투수 걸릭슨으로부터 극적인 역전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그것도 30년 전 나가시마의 끝내기 홈런을 재연하는 거처럼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30년 전 승리 투수였던 요미우리의 후지타 감독을 상대로, 30년 전 패전 투수였던 소속팀의 무라야마 감독에게 30년 만에 승리를 안겨준 것이다.

마치 각본을 쓴 것처럼 스코어는 2경기 모두 5대 4였다. 일본 언론들은 '30년 만의 복수'라는 타이틀로 6월 25일 경기의 기이한 인연을 소개했다. 역전 홈런의 주인공인 오카다는 무라야마처럼 이후 한신 타이거스 감독으로 취임해, 라이벌 요미우리전에 더욱 결연한 자세로 임했고, 당시 요미우리에는 이승엽이 뛰었기 때문에 오카다 감독은 국내 팬들에게 낯익은 인물이다.


일본 프로야구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2019년 6월 25일 승부가 궁금했다. 1959년과 1989년에 이어 또다시 30년이 지난 2019년 6월 25일에는 그 어떤 드라마 같은 승부가 펼쳐질 것인지 기대를 하고 2019년 6월 25일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과거 30년과는 달리, 이번 30년에는 일본프로야구에 인터리그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가 인터리그를 진행하게 되면서, 2019년 6월 25일 프로야구는 요미우리와 한신 전통의 일전이 아닌 히로시마와 라쿠텐의 인터리그 한 경기만이 열린다.

그런데 2019년 6월 25일에 요미우리와 한신전이 잡히지 않은 것은 인터리그 때문이 아니라, 지난 2번의 명승부를 전설로 남기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19년 6월 25일에 경기가 열리지 않으면서, 1959년 6월 25일 경기와 1989년 6월 25일 경기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에 남는 명승부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30년 주기로 반복된 운명의 승부-일본 야구의 6월 25일
    • 입력 2019-06-25 13:46:46
    • 수정2019-06-25 14:01:14
    스포츠K
미국이나 한국 프로야구에서 6월 25일은 시즌 중 하나의 날에 불과하지만, 일본프로야구에서 6월 25일은 뜻깊은 날이다. 30년의 세월을 두고 기이한 인연을 가진 최대 라이벌간 명승부가 반복된 운명과도 같은 승부가 펼쳐진 것이다.

관동 지역을 대표하는 요미우리와 관서 지역의 상징인 한신, 이 두 구단의 라이벌전은 '전통의 일전'이라고 불린다. 일부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관계에 비유할 정도로 요미우리와 한신은 숙명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둘의 관계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운명 같은 승부가 30년을 사이에 두고 반복된 것이다.

1959년 6월 25일, 도쿄 고라쿠엔 구장에서는 요미우리와 한신의 경기가 펼쳐졌다. 이날 경기는 전통의 라이벌전에다 일왕이 처음으로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한다는 사실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일본 프로야구의 상징, 나가시마의 신화는 바로 이 경기를 통해 시작되었다.

나가시마는 5회 한점 홈런을 때린 데 이어, 4대 4 동점이던 9회 말 좌측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터트려, 요미우리의 5대 4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일왕은 오후 9시 15분까지만 경기를 볼 예정이어서, 경기가 연장전으로 이어질 경우 자리를 뜰 가능성이 높았다. 대부분이 연장 승부를 예상하던 그 순간 나가시마의 타구가 왼쪽 폴대 쪽으로 향했고, 끝내기 홈런으로 이어져, 나가시마에 의한, 나가시마를 위한 경기로 마무리되었다.

당시 나가시마의 홈런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실제 끝내기 홈런을 맞은 한신의 투수 무라야마는 파울이라고 주장했으며, 은퇴해서도 이 주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이날 경기의 영웅은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 나가시마였고, 완투승을 거둔 후지타가 행복한 조연으로 두 명은 요미우리의 영웅 대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반면 끝내기 홈런을 맞은 무라야마는 영웅 나가시마를 위해 희생된 비련의 주인공처럼 여겨졌다.


1959년 6월 25일 경기가 일본프로야구의 전설로 남게 된 이후 정확히 30년 뒤인 1989년 6월 25일 이번에도 요미우리와 한신 전통의 일전이 성사되었다. 장소는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인 효고 현 고시엔 구장이었다. 이 둘의 운명 같은 승부의 상징은 바로 양 팀 감독이었다. 끝내기 홈런을 맞고 눈물을 흘렸던 무라야마는 한신 감독, 당시 완투승을 거둔 투수였던 후지타는 요미우리의 감독으로 정확히 3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1989년 6월 25일 경기의 영웅은 공교롭게도 30년 전 요미우리의 나가시마처럼 3루수를 맡고 있던 한신의 오카다였다. 오카다는 팀이 4대 1로 뒤진 8회 말 2사 만루에서 외국인 투수 걸릭슨으로부터 극적인 역전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그것도 30년 전 나가시마의 끝내기 홈런을 재연하는 거처럼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30년 전 승리 투수였던 요미우리의 후지타 감독을 상대로, 30년 전 패전 투수였던 소속팀의 무라야마 감독에게 30년 만에 승리를 안겨준 것이다.

마치 각본을 쓴 것처럼 스코어는 2경기 모두 5대 4였다. 일본 언론들은 '30년 만의 복수'라는 타이틀로 6월 25일 경기의 기이한 인연을 소개했다. 역전 홈런의 주인공인 오카다는 무라야마처럼 이후 한신 타이거스 감독으로 취임해, 라이벌 요미우리전에 더욱 결연한 자세로 임했고, 당시 요미우리에는 이승엽이 뛰었기 때문에 오카다 감독은 국내 팬들에게 낯익은 인물이다.


일본 프로야구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2019년 6월 25일 승부가 궁금했다. 1959년과 1989년에 이어 또다시 30년이 지난 2019년 6월 25일에는 그 어떤 드라마 같은 승부가 펼쳐질 것인지 기대를 하고 2019년 6월 25일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과거 30년과는 달리, 이번 30년에는 일본프로야구에 인터리그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가 인터리그를 진행하게 되면서, 2019년 6월 25일 프로야구는 요미우리와 한신 전통의 일전이 아닌 히로시마와 라쿠텐의 인터리그 한 경기만이 열린다.

그런데 2019년 6월 25일에 요미우리와 한신전이 잡히지 않은 것은 인터리그 때문이 아니라, 지난 2번의 명승부를 전설로 남기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19년 6월 25일에 경기가 열리지 않으면서, 1959년 6월 25일 경기와 1989년 6월 25일 경기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에 남는 명승부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