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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불 꺼진 주민센터, 밤 9시가 되자 공무원들이 돌아왔다
입력 2019.06.26 (13:56) 수정 2019.06.26 (13:57) 취재후
[취재후] 불 꺼진 주민센터, 밤 9시가 되자 공무원들이 돌아왔다
■ 불 꺼진 주민센터에 공무원 5명 돌아와

서초구 주민센터의 공무원들이 초과근무수당을 부정하게 신청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제보가 들어와 현장 확인에 나선 건 지난 18일 밤이었습니다. 취재진은 서초구내 주민센터 이곳 저곳을 돌다가, 8시 20분쯤 방배본동 주민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주민센터의 불은 꺼져있었고, 문은 굳게 잠겨있었습니다. 당연히 모두가 퇴근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밤 9시가 되자, 주민센터 공무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밤늦게 사무실로 돌아온 공무원은 총 5명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은 주민센터 문을 열고 불을 켰습니다. TV로 야구 경기를 보는가 하면, 양치를 하려고 화장실을 오가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5명 가운데 2명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짐을 챙겨 퇴근했습니다.

퇴근해 주민센터를 나서는 직원에게 취재 중인 사실을 밝히며 "여기서 일하냐. 무슨 일 때문에 밤늦게 들렀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직원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주민센터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 “무인민원발급기 때문에”…“책상 정리하려고” 말바꾸기

주민센터 직원들은 처음에 "무인민원발급기가 밤 9시까지 운영되기 때문에 돌아왔다. 보안을 위해 9시까지 일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각 주민센터마다 보통 '보안'을 담당하는 당직 직원이 있습니다. 밤 9시 또는 10시까지 직원 한 명이 남아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날 보안 직원은 취재진이 주민센터에 도착한 8시 20분부터는 자리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돌아온 직원들은 보안 당직 직원뿐만 아니라 4명이 더 있었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밤 8시 조금 넘어왔는데, 불도 꺼져있고 아무도 없었는데요?" 그러자 이들은 말을 바꾸었습니다. '책상 정리'를 하러 돌아왔다는 겁니다.

이날은 월례 주민자치회의가 저녁 6시 반부터 열린 날입니다. 직원들은 6시 반부터 8시까지 회의를 하고 정리할 새 없이 사무실을 떠나, 저녁 식사를 한 뒤 뒷정리를 위해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회의 시간과 이후 주민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도 근무의 일환이라고 봐야 하며, 책상 정리만 하고 금방 갈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한 직원에게 취재진이 "술 냄새가 난다"고 말하자, "주민자치위원들과 술을 마셨다"고 말했습니다.

서초구청 측은 "주민자치회의 이후 식사 자리까지 근무의 일환이기 때문에 수당을 받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주민과 맞닿아있는 주민센터의 업무 특성상, 주민자치회의는 주민센터의 '가장 중요한 일정' 중 하나라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 회의는 잘 이뤄졌는지 당시 참석한 주민자치위 위원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해당 위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업무라고 볼 순 없고요. 왜냐하면, 회의 끝나고 가는 사람은 그냥 가고...업무얘기 할 것도 아닌 거고. 세상 사는 것도 힘든데 거기서 업무 얘기를 해요? 사적인 얘기들도 하고 그러죠."


해당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가장 마지막으로 올라온 방배본동 주민자치회의록은 2016년 1월입니다. 지난 3년 6개월 동안, 회의록조차 올라오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구청들을 확인해 보면 주민센터가 작성한 주민자치회의록을 꼬박꼬박 올리는 곳, 많이 있습니다. 왜 '가장 중요한 일정'이라면서 회의록은 올리지 않은 걸까요?

■ 과연 오비이락일까? 출퇴근 내역 공개 거부

이날 주민센터로 돌아온 공무원 5명은 9시 전후로 초과근무를 미리 신청한 뒤, 지문을 찍고 퇴근했습니다. 방배본동 주민센터 측은 이날 밤 9시쯤 공무원들이 사무실로 돌아온 것은 '오비이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이런 일이 없는데, 취재팀이 방문한 날 공교롭게 '주민자치회의'가 열려 기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취재팀은 해당 주민센터에서 상습적으로 초과근무 수당을 부정하게 신청한다는 의혹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갔기 때문에 이 같은 해명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당 직원들의 한 달 치 초과근무 실적을 요구했습니다. 개개인의 이름은 가려도 좋고 출퇴근 시간 내역만이라도 보여 달라고 한 것이죠. 그러나 서초구청 측은 '개인정보'라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 “그런데 다른 구청들도 다 나가는 거죠?”

서초구청 측은 취재가 시작되자, 잘못된 건 바꾸어야 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서초구 공무원들만의 일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공무원 조직에도 이런 일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은연중에 토로했습니다.


시청자들도 보도가 나간 뒤, "○○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할 때 많이 목격했다", "군대 행정반에서 근무할 때도 흔히 봤다" 등의 제보 메일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일을 목격했다는 기사 댓글도 여럿 달렸습니다. 초과근무 수당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서초구청만의 일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직급마다 다르지만, 공무원 초과수당은 한 시간에 보통 7,000원에서 11,000원 사이입니다. 적은 돈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듯 조금씩 새는 돈도 모이면 큰돈이고, 이는 모두 국민의 소중한 세금입니다. 박봉에도 성실히 근무하고 있는 대다수의 공무원까지 불신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합니다.
  • [취재후] 불 꺼진 주민센터, 밤 9시가 되자 공무원들이 돌아왔다
    • 입력 2019.06.26 (13:56)
    • 수정 2019.06.2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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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불 꺼진 주민센터, 밤 9시가 되자 공무원들이 돌아왔다
■ 불 꺼진 주민센터에 공무원 5명 돌아와

서초구 주민센터의 공무원들이 초과근무수당을 부정하게 신청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제보가 들어와 현장 확인에 나선 건 지난 18일 밤이었습니다. 취재진은 서초구내 주민센터 이곳 저곳을 돌다가, 8시 20분쯤 방배본동 주민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주민센터의 불은 꺼져있었고, 문은 굳게 잠겨있었습니다. 당연히 모두가 퇴근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밤 9시가 되자, 주민센터 공무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밤늦게 사무실로 돌아온 공무원은 총 5명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은 주민센터 문을 열고 불을 켰습니다. TV로 야구 경기를 보는가 하면, 양치를 하려고 화장실을 오가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5명 가운데 2명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짐을 챙겨 퇴근했습니다.

퇴근해 주민센터를 나서는 직원에게 취재 중인 사실을 밝히며 "여기서 일하냐. 무슨 일 때문에 밤늦게 들렀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직원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주민센터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 “무인민원발급기 때문에”…“책상 정리하려고” 말바꾸기

주민센터 직원들은 처음에 "무인민원발급기가 밤 9시까지 운영되기 때문에 돌아왔다. 보안을 위해 9시까지 일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각 주민센터마다 보통 '보안'을 담당하는 당직 직원이 있습니다. 밤 9시 또는 10시까지 직원 한 명이 남아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날 보안 직원은 취재진이 주민센터에 도착한 8시 20분부터는 자리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돌아온 직원들은 보안 당직 직원뿐만 아니라 4명이 더 있었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밤 8시 조금 넘어왔는데, 불도 꺼져있고 아무도 없었는데요?" 그러자 이들은 말을 바꾸었습니다. '책상 정리'를 하러 돌아왔다는 겁니다.

이날은 월례 주민자치회의가 저녁 6시 반부터 열린 날입니다. 직원들은 6시 반부터 8시까지 회의를 하고 정리할 새 없이 사무실을 떠나, 저녁 식사를 한 뒤 뒷정리를 위해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회의 시간과 이후 주민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도 근무의 일환이라고 봐야 하며, 책상 정리만 하고 금방 갈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한 직원에게 취재진이 "술 냄새가 난다"고 말하자, "주민자치위원들과 술을 마셨다"고 말했습니다.

서초구청 측은 "주민자치회의 이후 식사 자리까지 근무의 일환이기 때문에 수당을 받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주민과 맞닿아있는 주민센터의 업무 특성상, 주민자치회의는 주민센터의 '가장 중요한 일정' 중 하나라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 회의는 잘 이뤄졌는지 당시 참석한 주민자치위 위원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해당 위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업무라고 볼 순 없고요. 왜냐하면, 회의 끝나고 가는 사람은 그냥 가고...업무얘기 할 것도 아닌 거고. 세상 사는 것도 힘든데 거기서 업무 얘기를 해요? 사적인 얘기들도 하고 그러죠."


해당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가장 마지막으로 올라온 방배본동 주민자치회의록은 2016년 1월입니다. 지난 3년 6개월 동안, 회의록조차 올라오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구청들을 확인해 보면 주민센터가 작성한 주민자치회의록을 꼬박꼬박 올리는 곳, 많이 있습니다. 왜 '가장 중요한 일정'이라면서 회의록은 올리지 않은 걸까요?

■ 과연 오비이락일까? 출퇴근 내역 공개 거부

이날 주민센터로 돌아온 공무원 5명은 9시 전후로 초과근무를 미리 신청한 뒤, 지문을 찍고 퇴근했습니다. 방배본동 주민센터 측은 이날 밤 9시쯤 공무원들이 사무실로 돌아온 것은 '오비이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이런 일이 없는데, 취재팀이 방문한 날 공교롭게 '주민자치회의'가 열려 기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취재팀은 해당 주민센터에서 상습적으로 초과근무 수당을 부정하게 신청한다는 의혹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갔기 때문에 이 같은 해명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당 직원들의 한 달 치 초과근무 실적을 요구했습니다. 개개인의 이름은 가려도 좋고 출퇴근 시간 내역만이라도 보여 달라고 한 것이죠. 그러나 서초구청 측은 '개인정보'라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 “그런데 다른 구청들도 다 나가는 거죠?”

서초구청 측은 취재가 시작되자, 잘못된 건 바꾸어야 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서초구 공무원들만의 일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공무원 조직에도 이런 일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은연중에 토로했습니다.


시청자들도 보도가 나간 뒤, "○○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할 때 많이 목격했다", "군대 행정반에서 근무할 때도 흔히 봤다" 등의 제보 메일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일을 목격했다는 기사 댓글도 여럿 달렸습니다. 초과근무 수당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서초구청만의 일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직급마다 다르지만, 공무원 초과수당은 한 시간에 보통 7,000원에서 11,000원 사이입니다. 적은 돈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듯 조금씩 새는 돈도 모이면 큰돈이고, 이는 모두 국민의 소중한 세금입니다. 박봉에도 성실히 근무하고 있는 대다수의 공무원까지 불신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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