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황제 의전’ 벌인 북한, 중국의 ‘동생’ 국가일까?

입력 2019.06.2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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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의전'이란 바로 이런 거!

10만 군중의 환호와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 오직 두 사람에게만 쏠린 눈. 그들은 시진핑과 김정은이었다. 지난 20일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열린 집단체조는 시진핑 주석 부부 두 사람만을 위해 북한이 마련한 연회였다.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 전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김 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만남 영상까지 띄워, 대를 이어 이어지는 두 집안의 유대를 강조했다.

시 주석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던 거 같다. 조선중앙TV가 공개한 당일 영상을 보면 연단을 내려온 시 주석은 지휘자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가며 '好 好(하오 하오), 좋다'를 연발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갈 때도 25만 군중은 시 주석을 배웅했다. '황제 의전'이라는 평가가 나온 게 당연할 정도였다.

중국 매체는 연일 대서특필했다. 시 주석을 대하는 북한의 각별한 의전에 중국은 1박 2일 내내 떠들썩했다. 북한의 '황제 의전'은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으로 해석됐다. 중국 관영방송사인 CCTV는 17분짜리 편집 영상을 매시간 내보냈다. 기사 댓글에는 가슴 뿌듯한 중국 인민들의 '좋아요'가 쏟아졌다.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고, (경제) 발전을 하는 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시진핑의 이 한마디는 절정이었다. 14년 만에 동생 집 찾아 선물 보따리 한 아름 전해준 큰 형의 배포를 중국은 즐기는 듯했다.


우리 국정원도 북한의 시진핑 주석 의전과 환대가 대단했다고 평가했다. 이례적으로 '국빈 방문' 형식을 갖추었고, 노동신문에 시 주석 기고문도 실었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시 주석이 평양을 찾은 20일에도 1면에 시 주석 방북 소식을 배치했다. 시 주석의 약력을 소개하는 박스 기사 옆에는 '형제적 중국 인민의 친선 사절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사설도 실었다.

북한 의전 이전과 달랐나?

북한은 과거 평양을 찾은 중국 최고지도자들을 어떻게 환대했을까? 가장 가까운 후진타오 주석과 장쩌민 주석 방북 당시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2005년 10월 31일 후진타오 전 주석의 방북을 전한 중앙일보 기사다.

"평양 공항의 28일 환영행사는 물론 30일 환송 행사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섰다. 연도에 수십만 시민이 늘어서 '조중친선'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후 주석은 29일 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대집단체조와 아리랑을 관람했다." 그때 풍경도 이번 시진핑 주석 방북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거 같다.

장쩌민 주석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기사를 보면 1990년 3월 첫 방문 때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공항에서 장 주석을 영접했고, 2001년 9월 두 번째 방북 때도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까지 나가 극진히 영접했다. 노동신문이 중국 최고 지도자의 평양 방문을 전한 형식도 같다.



시 주석 방북 때와 마찬가지로 1면에 기사를 실었다. 형식도 같게 약력과 사설을 게재했다. 후진타오 주석 방북 때는 오히려 기사 분량이 더 많다. '전통적인 친선의 화원' '세기를 이어 오면서' '굳게 맺어진 전통적 우의'라는 별도 해설 기사를 게재했다. 드러난 모습으로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북한의 영접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달라진 것을 굳이 찾자면 중국 매체들이 앞다퉈 이전보다 더 시 주석의 방북을 대서특필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마치 큰 형님의 통 큰 방문인듯한 뉘앙스로.

북한은 중국의 '동생' 국가일까?

북한이 중국에 '의존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예로 가장 많이 드는 것이 경제적 종속이다. 실제 2017년 북한 대외무역 동향(코트라 발행)을 보면 남북 교역을 제외한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는 55.5억 달러에 불과하다. 수출이 17.7억 달러, 수입은 37.8억 달러로 무역수지 적자가 20.1억 달러에 이른다.

나라별 교역 비중을 보면 대중국 수출이 16.5억 달러, 수입은 36.1억 달러다. 중국 의존도가 94.8%에 이른다. 중국 의존도는 2014년 90.2%, 2015년 91.3%, 2016년 92.7%로 매년 증가추세다. 한마디로 북한 경제는 중국 손아귀 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이를 두고 북한이 중국에 외교 안보적으로도 '종속'됐을 것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북한 전문가인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북한의 주체 외교는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체 외교는 중화 사대주의에 대한 배척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도 북한의 이런 외교 노선이 분명히 드러난다. 좋은 말로 중재자지, 실제로는 협상 판에 숟가락 얹어서 미국에 대한 발언권을 키워보려는 중국의 의도를 북한이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황제 의전'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극진히 대접하긴 했지만, 북한은 비핵화 협상의 키(key)를 중국에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진핑 주석이 베이징으로 돌아가고 이틀 뒤 북미 양 정상이 편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중국의 의도를 산통 내 버렸다. 당사자인 북미 양국이 교착을 깨고 대화 국면을 만들어 가는 판에 중국이 끼어들 여지가 과연 있을까?

문일현 교수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비핵화 협상이 잘 마무리돼 한반도에 영원한 안정이 찾아올 때를 가정해 보자고 했다. 그때 북한의 가장 큰 위협 국가는 어디일까? 문 교수는 "지금은 중국이 북한의 안전을 담보하는 거로 돼 있지만, 비핵화 타결로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받았을 때는 북한으로선 중국이 가장 큰 위협 요인입니다."

미국이라는 주적이 없어진 상황에서 그만큼 선택지가 넓어진 북한을 상대로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골적인 압박을 해올 거라는 거다. 절대적으로 종속된 경제도 중국으로선 그때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왔을 때 북한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나라는 사실 '남한'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 그리고 DMZ 방문 소식이 들려온다. 하노이 회담 이후 교착 국면이던 북미 대화에도 순풍이 불어올 거라는 기대가 높다. 그동안의 비핵화 협상은 지극히 자국의 이익 입장에서 판을 만들고 깨기를 반복해 왔다. 좌파 우파 이념 프레임으로는 당면한 협상도, 미래 한반도 밑그림도 그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비핵화 협상을 보다 전략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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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6 16:24:23
    특파원 리포트
'황제 의전'이란 바로 이런 거!

10만 군중의 환호와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 오직 두 사람에게만 쏠린 눈. 그들은 시진핑과 김정은이었다. 지난 20일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열린 집단체조는 시진핑 주석 부부 두 사람만을 위해 북한이 마련한 연회였다.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 전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김 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만남 영상까지 띄워, 대를 이어 이어지는 두 집안의 유대를 강조했다.

시 주석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던 거 같다. 조선중앙TV가 공개한 당일 영상을 보면 연단을 내려온 시 주석은 지휘자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가며 '好 好(하오 하오), 좋다'를 연발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갈 때도 25만 군중은 시 주석을 배웅했다. '황제 의전'이라는 평가가 나온 게 당연할 정도였다.

중국 매체는 연일 대서특필했다. 시 주석을 대하는 북한의 각별한 의전에 중국은 1박 2일 내내 떠들썩했다. 북한의 '황제 의전'은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으로 해석됐다. 중국 관영방송사인 CCTV는 17분짜리 편집 영상을 매시간 내보냈다. 기사 댓글에는 가슴 뿌듯한 중국 인민들의 '좋아요'가 쏟아졌다.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고, (경제) 발전을 하는 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시진핑의 이 한마디는 절정이었다. 14년 만에 동생 집 찾아 선물 보따리 한 아름 전해준 큰 형의 배포를 중국은 즐기는 듯했다.


우리 국정원도 북한의 시진핑 주석 의전과 환대가 대단했다고 평가했다. 이례적으로 '국빈 방문' 형식을 갖추었고, 노동신문에 시 주석 기고문도 실었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시 주석이 평양을 찾은 20일에도 1면에 시 주석 방북 소식을 배치했다. 시 주석의 약력을 소개하는 박스 기사 옆에는 '형제적 중국 인민의 친선 사절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사설도 실었다.

북한 의전 이전과 달랐나?

북한은 과거 평양을 찾은 중국 최고지도자들을 어떻게 환대했을까? 가장 가까운 후진타오 주석과 장쩌민 주석 방북 당시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2005년 10월 31일 후진타오 전 주석의 방북을 전한 중앙일보 기사다.

"평양 공항의 28일 환영행사는 물론 30일 환송 행사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섰다. 연도에 수십만 시민이 늘어서 '조중친선'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후 주석은 29일 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대집단체조와 아리랑을 관람했다." 그때 풍경도 이번 시진핑 주석 방북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거 같다.

장쩌민 주석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기사를 보면 1990년 3월 첫 방문 때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공항에서 장 주석을 영접했고, 2001년 9월 두 번째 방북 때도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까지 나가 극진히 영접했다. 노동신문이 중국 최고 지도자의 평양 방문을 전한 형식도 같다.



시 주석 방북 때와 마찬가지로 1면에 기사를 실었다. 형식도 같게 약력과 사설을 게재했다. 후진타오 주석 방북 때는 오히려 기사 분량이 더 많다. '전통적인 친선의 화원' '세기를 이어 오면서' '굳게 맺어진 전통적 우의'라는 별도 해설 기사를 게재했다. 드러난 모습으로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북한의 영접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달라진 것을 굳이 찾자면 중국 매체들이 앞다퉈 이전보다 더 시 주석의 방북을 대서특필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마치 큰 형님의 통 큰 방문인듯한 뉘앙스로.

북한은 중국의 '동생' 국가일까?

북한이 중국에 '의존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예로 가장 많이 드는 것이 경제적 종속이다. 실제 2017년 북한 대외무역 동향(코트라 발행)을 보면 남북 교역을 제외한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는 55.5억 달러에 불과하다. 수출이 17.7억 달러, 수입은 37.8억 달러로 무역수지 적자가 20.1억 달러에 이른다.

나라별 교역 비중을 보면 대중국 수출이 16.5억 달러, 수입은 36.1억 달러다. 중국 의존도가 94.8%에 이른다. 중국 의존도는 2014년 90.2%, 2015년 91.3%, 2016년 92.7%로 매년 증가추세다. 한마디로 북한 경제는 중국 손아귀 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이를 두고 북한이 중국에 외교 안보적으로도 '종속'됐을 것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북한 전문가인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북한의 주체 외교는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체 외교는 중화 사대주의에 대한 배척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도 북한의 이런 외교 노선이 분명히 드러난다. 좋은 말로 중재자지, 실제로는 협상 판에 숟가락 얹어서 미국에 대한 발언권을 키워보려는 중국의 의도를 북한이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황제 의전'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극진히 대접하긴 했지만, 북한은 비핵화 협상의 키(key)를 중국에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진핑 주석이 베이징으로 돌아가고 이틀 뒤 북미 양 정상이 편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중국의 의도를 산통 내 버렸다. 당사자인 북미 양국이 교착을 깨고 대화 국면을 만들어 가는 판에 중국이 끼어들 여지가 과연 있을까?

문일현 교수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비핵화 협상이 잘 마무리돼 한반도에 영원한 안정이 찾아올 때를 가정해 보자고 했다. 그때 북한의 가장 큰 위협 국가는 어디일까? 문 교수는 "지금은 중국이 북한의 안전을 담보하는 거로 돼 있지만, 비핵화 타결로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받았을 때는 북한으로선 중국이 가장 큰 위협 요인입니다."

미국이라는 주적이 없어진 상황에서 그만큼 선택지가 넓어진 북한을 상대로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골적인 압박을 해올 거라는 거다. 절대적으로 종속된 경제도 중국으로선 그때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왔을 때 북한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나라는 사실 '남한'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 그리고 DMZ 방문 소식이 들려온다. 하노이 회담 이후 교착 국면이던 북미 대화에도 순풍이 불어올 거라는 기대가 높다. 그동안의 비핵화 협상은 지극히 자국의 이익 입장에서 판을 만들고 깨기를 반복해 왔다. 좌파 우파 이념 프레임으로는 당면한 협상도, 미래 한반도 밑그림도 그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비핵화 협상을 보다 전략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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