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도 김관진도 “위헌”이라는데…말 많은 ‘직권남용’ 왜?

입력 2019.06.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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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죄 위헌법률심판 제청 속출…왜?

"직권 남용죄는 위헌이다."
최근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잇따라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 가운데 직권남용죄가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달라고 자신의 항소심 재판부에 신청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軍 사이버 댓글 공작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 역시 같은 신청을 했습니다. 만일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 등의 신청을 받아들이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날 때까지 재판은 정지됩니다. 피고인들은 무슨 근거로 헌법에서 정한 직권남용죄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까다로운 직권남용 적용 무혐의 무죄 잇따라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 등은 '공무원의 직권'과 '의무 없는 일'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제출한 위헌법률심판제청서 신청서를 보면, "고위직 공무원의 경우에는 직무의 성질상 그 직권은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부여될 수밖에 없고, 그 권한의 행사는 정책적 재량에 속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공적인 활동은 물론 사적인 활동까지 모두 직권을 이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애초에 '직권'이 무엇인지 특정해 놓지 않아,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어 '정치 보복'의 수단으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아리송함 때문에 수사기관도 피고인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는 것을 꺼려왔습니다. 정작 재판에서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권 남용죄가 인정되려면, ①공무원이 하급자에게 직무에 속한 일을 지시하는데, ②지시가 하급자의 의무를 넘어서는 부당한 것이어야 합니다.

'공관병 갑질' 논란을 일으킨 박찬주 전 장군의 경우, 공관병에게 잡일을 시키는 것은 장군의 '직무'에 속하는 일이 아니므로 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군 검찰은 박 전 장군이 무혐의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도 1심 재판에서 '김경준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청구 검토를 지시했다'며 검찰이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가 무죄로 선고됐습니다. ②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직권남용에 대한 국민 법 감정과 법원의 실제 판단은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2006년엔 8대1 합헌… 대법 국정농단 심리가 변수

직권남용죄는 이미 한 차례 헌재의 판단을 받았습니다. 지난 2006년 헌재는 지금과 비슷한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신청된 직권남용죄에 대해 8대1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만일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 등의 신청을 받아들이고, 헌재가 과거 결정을 뒤집는다면 현재 진행 중인 '사법 농단' 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주요 피고인들이 모두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있기 때문입니다. 임 전 차장은 이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직권남용 혐의가 무죄 판결 난 사례를 들며 적극적인 방어에 나선 상태입니다.

변수는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이른바 '국정농단' 재판입니다. 대법원은 현재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 사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화이트·블랙 리스트 사건에 대해 다음 달 중순쯤 결과를 낼 예정입니다.

만일 대법원이 이들의 혐의를 인정하면, 직권남용죄가 13년 만에 다시 헌재의 판단을 받을 가능성은 적어집니다. 하지만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면, 과거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장을 기소시킨 큰 축이 부러지는 것이어서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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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8 15:20:54
    취재K
직권남용죄 위헌법률심판 제청 속출…왜?

"직권 남용죄는 위헌이다."
최근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잇따라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 가운데 직권남용죄가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달라고 자신의 항소심 재판부에 신청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軍 사이버 댓글 공작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 역시 같은 신청을 했습니다. 만일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 등의 신청을 받아들이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날 때까지 재판은 정지됩니다. 피고인들은 무슨 근거로 헌법에서 정한 직권남용죄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까다로운 직권남용 적용 무혐의 무죄 잇따라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 등은 '공무원의 직권'과 '의무 없는 일'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제출한 위헌법률심판제청서 신청서를 보면, "고위직 공무원의 경우에는 직무의 성질상 그 직권은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부여될 수밖에 없고, 그 권한의 행사는 정책적 재량에 속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공적인 활동은 물론 사적인 활동까지 모두 직권을 이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애초에 '직권'이 무엇인지 특정해 놓지 않아,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어 '정치 보복'의 수단으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아리송함 때문에 수사기관도 피고인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는 것을 꺼려왔습니다. 정작 재판에서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권 남용죄가 인정되려면, ①공무원이 하급자에게 직무에 속한 일을 지시하는데, ②지시가 하급자의 의무를 넘어서는 부당한 것이어야 합니다.

'공관병 갑질' 논란을 일으킨 박찬주 전 장군의 경우, 공관병에게 잡일을 시키는 것은 장군의 '직무'에 속하는 일이 아니므로 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군 검찰은 박 전 장군이 무혐의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도 1심 재판에서 '김경준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청구 검토를 지시했다'며 검찰이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가 무죄로 선고됐습니다. ②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직권남용에 대한 국민 법 감정과 법원의 실제 판단은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2006년엔 8대1 합헌… 대법 국정농단 심리가 변수

직권남용죄는 이미 한 차례 헌재의 판단을 받았습니다. 지난 2006년 헌재는 지금과 비슷한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신청된 직권남용죄에 대해 8대1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만일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 등의 신청을 받아들이고, 헌재가 과거 결정을 뒤집는다면 현재 진행 중인 '사법 농단' 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주요 피고인들이 모두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있기 때문입니다. 임 전 차장은 이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직권남용 혐의가 무죄 판결 난 사례를 들며 적극적인 방어에 나선 상태입니다.

변수는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이른바 '국정농단' 재판입니다. 대법원은 현재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 사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화이트·블랙 리스트 사건에 대해 다음 달 중순쯤 결과를 낼 예정입니다.

만일 대법원이 이들의 혐의를 인정하면, 직권남용죄가 13년 만에 다시 헌재의 판단을 받을 가능성은 적어집니다. 하지만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면, 과거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장을 기소시킨 큰 축이 부러지는 것이어서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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