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이들을 찾아라…‘원영이’ 이후 시작된 변화

입력 2019.06.3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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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밖과 달리 건물 안은 서늘하고 조용했습니다. 8살 현주(가명)의 흔적을 쫓아 울산의 한 모텔 건물에 들어서던 참이었습니다. 혼자 점심을 먹고 있던 모텔 사장님은 현주의 이름을 듣자 반가운 기색을 보였습니다. 1년 가까이 그곳에서 먹고 자던 현주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문밖을 안 나오는 거에요 아기하고 엄마하고 문밖을 일절 안 나와요."


● "초등학교에 오지 않아요"…2011년생 '현주 찾기'

현주는 2011년생입니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했을 나이죠. 하지만 예비소집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현주를 데리고 나갔다고 증언했는데, 엄마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현주가 입학했어야 할 초등학교의 교장은 현주가 실종됐다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렇게 2018년 1월 울산 동부경찰서가 '현주 찾기'에 나섰습니다.

현주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단서는 2017년 단 한 차례 병원을 찾은 기록이었습니다. 경찰은 현주 얼굴을 알지 못했지만, 병원과 인근 약국의 CCTV를 통해 현주로 보이는 여자 어린이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일대를 샅샅이 뒤져 모텔에 살던 현주를 발견했습니다. 수사에 착수한 지 두 달 만이었습니다.


●4년 전 단 한 통의 전화로 수색…주소지 250km밖에?

같은 해 현주보다 더 애를 태운 실종 아동도 있습니다. 태어났다는 기록 하나만 있다고 할 정도로, 병원 한 번 찾은 적 없는 남자 어린이였습니다. 주소지로 되어 있는 곳은 오래전 재개발돼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부모 모두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습니다.

경찰은 친척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오래된 것도 좋으니 아이 부모와 통화한 기억이 있냐"라고 물었습니다. 4년 전 통화한 적이 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통신기록을 추적한 결과 아이 엄마가 행인의 전화를 빌려 쓴 거였습니다. 게다가 지역은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250km 떨어진 청주시 상당구였습니다. 그래도 경찰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아이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을 단서로 시장 주변부터 수소문하길 백여 차례,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를 발견합니다. 1월에 시작된 수사가 끝난 건 10월이었습니다.

●'첩첩산중' 실종 어린이 찾기, 방법은 '탐문 수사'뿐

두 사례는 부모와 함께 자취를 감춘 어린이를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가족이나 친구, 친척 등 도움을 줄 수 있는 신고자가 없습니다. 성인이 아니니 금융거래기록도 있을 리 없습니다. 주민등록도 운전면허도 없는 아이의 사진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죠. 그야말로 무턱대고 일일이 찾아다닐 수밖에요.


●왜 애타게 현주를 찾았을까? 변화의 시작은 '원영이 사건'

이렇게 어려운 수사가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2017년 도입된 '취학대상 아동 소재 파악' 제도부텁니다. 2016년 이른바 '원영이 사건' 등 잇따른 아동 학대가 드러났죠. 원영이처럼 아이 대부분은 학교에 갈 나이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갇힌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들, 특히 예비소집에 나타나지 않는 아이들은 학교장이 신고하도록 법을 고쳤습니다. 교육청에서도 관련 기록을 조회하고, 직접 탐문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줬습니다. 그전까지는 아이가 학교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학교에서 하는 건 교육청과 주민센터에 보고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더래요. 우리 일하는 아주머니한테, 아줌마 나도 친구 가지고 싶어요.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더래"

지난해 경찰이 찾아낸 두 어린이는 1년 늦었지만, 올해 입학했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게 쉽진 않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국가가 보장하는 교육의 권리를 누리게 됐죠. 주민센터와 복지기관으로부터 적게나마 지원도 받고 있습니다.

●아동 학대를 방치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찾는다"

물론 '해피엔딩'만 있는 건 아닙니다. 2017년에는 한 어린이를 끝내 찾지 못해 '실종'으로 분류했습니다. 올해도 경남 경찰이 한 명의 어린이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회에서 가장 약한 존재,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이 아이들을 경찰이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더는 제2, 제3의 원영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취재를 하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 예비소집 점검으로 아이들을 구해낼 수 있다면 더 일찍 대처하는 방법은 없을까?

사라지기 전에 '이상 징후'를 보이는 아이들을 미리 관리하면 어떨까요? 예방접종도 하지 않고 병원에도 안 가고, 어린이집·유치원 모두 안 다니는 아이들. 주소지에 살지 않으면서 친척들도 생사를 잘 모르는 아이들을 따로 떼어내 주시하는 겁니다. 제도를 개선해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 구하는 게 우리 어른들의 책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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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라…‘원영이’ 이후 시작된 변화
    • 입력 2019-06-30 09:04:38
    취재K
무더운 밖과 달리 건물 안은 서늘하고 조용했습니다. 8살 현주(가명)의 흔적을 쫓아 울산의 한 모텔 건물에 들어서던 참이었습니다. 혼자 점심을 먹고 있던 모텔 사장님은 현주의 이름을 듣자 반가운 기색을 보였습니다. 1년 가까이 그곳에서 먹고 자던 현주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문밖을 안 나오는 거에요 아기하고 엄마하고 문밖을 일절 안 나와요."


● "초등학교에 오지 않아요"…2011년생 '현주 찾기'

현주는 2011년생입니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했을 나이죠. 하지만 예비소집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현주를 데리고 나갔다고 증언했는데, 엄마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현주가 입학했어야 할 초등학교의 교장은 현주가 실종됐다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렇게 2018년 1월 울산 동부경찰서가 '현주 찾기'에 나섰습니다.

현주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단서는 2017년 단 한 차례 병원을 찾은 기록이었습니다. 경찰은 현주 얼굴을 알지 못했지만, 병원과 인근 약국의 CCTV를 통해 현주로 보이는 여자 어린이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일대를 샅샅이 뒤져 모텔에 살던 현주를 발견했습니다. 수사에 착수한 지 두 달 만이었습니다.


●4년 전 단 한 통의 전화로 수색…주소지 250km밖에?

같은 해 현주보다 더 애를 태운 실종 아동도 있습니다. 태어났다는 기록 하나만 있다고 할 정도로, 병원 한 번 찾은 적 없는 남자 어린이였습니다. 주소지로 되어 있는 곳은 오래전 재개발돼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부모 모두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습니다.

경찰은 친척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오래된 것도 좋으니 아이 부모와 통화한 기억이 있냐"라고 물었습니다. 4년 전 통화한 적이 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통신기록을 추적한 결과 아이 엄마가 행인의 전화를 빌려 쓴 거였습니다. 게다가 지역은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250km 떨어진 청주시 상당구였습니다. 그래도 경찰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아이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을 단서로 시장 주변부터 수소문하길 백여 차례,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를 발견합니다. 1월에 시작된 수사가 끝난 건 10월이었습니다.

●'첩첩산중' 실종 어린이 찾기, 방법은 '탐문 수사'뿐

두 사례는 부모와 함께 자취를 감춘 어린이를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가족이나 친구, 친척 등 도움을 줄 수 있는 신고자가 없습니다. 성인이 아니니 금융거래기록도 있을 리 없습니다. 주민등록도 운전면허도 없는 아이의 사진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죠. 그야말로 무턱대고 일일이 찾아다닐 수밖에요.


●왜 애타게 현주를 찾았을까? 변화의 시작은 '원영이 사건'

이렇게 어려운 수사가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2017년 도입된 '취학대상 아동 소재 파악' 제도부텁니다. 2016년 이른바 '원영이 사건' 등 잇따른 아동 학대가 드러났죠. 원영이처럼 아이 대부분은 학교에 갈 나이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갇힌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들, 특히 예비소집에 나타나지 않는 아이들은 학교장이 신고하도록 법을 고쳤습니다. 교육청에서도 관련 기록을 조회하고, 직접 탐문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줬습니다. 그전까지는 아이가 학교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학교에서 하는 건 교육청과 주민센터에 보고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더래요. 우리 일하는 아주머니한테, 아줌마 나도 친구 가지고 싶어요.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더래"

지난해 경찰이 찾아낸 두 어린이는 1년 늦었지만, 올해 입학했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게 쉽진 않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국가가 보장하는 교육의 권리를 누리게 됐죠. 주민센터와 복지기관으로부터 적게나마 지원도 받고 있습니다.

●아동 학대를 방치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찾는다"

물론 '해피엔딩'만 있는 건 아닙니다. 2017년에는 한 어린이를 끝내 찾지 못해 '실종'으로 분류했습니다. 올해도 경남 경찰이 한 명의 어린이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회에서 가장 약한 존재,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이 아이들을 경찰이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더는 제2, 제3의 원영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취재를 하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 예비소집 점검으로 아이들을 구해낼 수 있다면 더 일찍 대처하는 방법은 없을까?

사라지기 전에 '이상 징후'를 보이는 아이들을 미리 관리하면 어떨까요? 예방접종도 하지 않고 병원에도 안 가고, 어린이집·유치원 모두 안 다니는 아이들. 주소지에 살지 않으면서 친척들도 생사를 잘 모르는 아이들을 따로 떼어내 주시하는 겁니다. 제도를 개선해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 구하는 게 우리 어른들의 책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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