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투며 수업 불참해도 소풍은 함께?…국회의원 해외출장 실태보고

입력 2019.07.04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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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공방 중에도 사이좋게 해외출장

패스트트랙 공방으로 국회가 꽉 막혀 있던 지난 5월,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인 자유한국당 박순자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토교통위원 임종성 의원이 함께 7박 8일 일정으로 해외 시찰을 떠났습니다.

국토위가 회의 한번 열지 못하고 50일 가까이 멈춰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이들의 행선지는 인도양의 숨은 보석이라고 불리며 최근 인기 신혼여행 코스로 뜨고 있는 모리셔스란 섬나라였습니다.

두 의원은 이곳에서 한국도로공사가 수주한 도로 혼잡 완화 사업 현장을 시찰했습니다.

회전 교차로를 입체 교차로로 개량하는 공사에 도로공사가 컨설팅해주는 120억 원짜리 사업이었습니다.

국토위 관계자는 "한국에서라면 시의원의 눈길조차 끌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도양의 보석' 모리셔스가 아니었다면 국토위원장과 여당 국토위원이 나란히 출장을 갔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국토교통위원회 박순자 위원장과 임종성 의원이 아프리카 모리셔스에서 현지 시찰을 하고 있다국토교통위원회 박순자 위원장과 임종성 의원이 아프리카 모리셔스에서 현지 시찰을 하고 있다

해외출장을 떠난 건 이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한국당 유민봉 의원, 바른미래당 신용현, 정병국 의원은 비슷한 시기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사물인터넷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컨퍼런스는 4일 만에 끝났지만, 의원들은 이후에도 사나흘 더 현지에 머무르며 시찰을 이어갔습니다.

민주당 김영춘, 한국당 강석호, 성일종, 민주평화당 윤영일 의원은 독일 해양치유센터를 방문했고, 민주당 김성수·한국당 김성태(비례)·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은 5월 말 국제핵융합실험로 견학차 프랑스를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지난 5월과 6월, 여야가 함께 해외 출장을 다녀온 사례만 7건에 이릅니다.

이 기간 여야는 하루가 멀다 하고 패스트트랙 고소·고발로 서로 얼굴을 붉히고, 국회 파행 책임을 놓고 네 탓 공방을 벌였지만, 해외출장만큼은 찰떡궁합을 과시했습니다.


국회는 휴업…해외출장은 성업

올해 상반기 국회 본회의는 단 세 번 열렸습니다. 상임위 전체회의와 소위 회의가 열린 날을 합쳐도 64일에 그쳤습니다. 넉 달은 개점휴업을 한 셈입니다.

이 기간, 절반이 넘는 155명 의원이 국회 예산이나 외부 지원으로 63건의 해외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많게는 상반기에만 다섯 번이나 해외출장을 다녀온 의원도 있었습니다.

행정안전부와 경찰과 소방 등을 담당하는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인 한국당 유민봉 의원이었습니다.

유 의원 측이 밝힌 출장 목적은 4차 산업혁명을 위한 벤치마킹, 중국 지도층과의 교류 확대 등이었습니다.

이 63건의 의원 출장은 국회나 외부 기관이 돈을 댔습니다.

국회 예산이 얼마나 쓰였는지 분석해봤더니 의원 1인당 평균 1,526만 원가량이 지원됐습니다.

의원들에게는 비즈니스 왕복 항공권과 5성급 고급 호텔 기준으로 숙박료가 지급되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출장비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국회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예결산 자료 조사한다며 해외출장…다녀와선 회의 '0'

이렇게 세금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의원들의 경험이 의정 활동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단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국회 예결특위위원들이 대거 해외출장을 갔습니다.

민주당은 베트남과 미얀마, 한국당은 베트남·영국, 바른미래당은 인도로 향했습니다.

효율적인 예, 결산 심사제도 확립을 위한 자료 조사가 출장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위원들의 출장 일정표를 확인해봤더니 대사관, KOICA, 교민 등과의 만남이 대부분이고, 예산 관련 일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애당초 우리나라 연간 예산의 1/5, 1/10에 불과한 베트남과 미얀마에서 효율적인 예·결산 심사제도와 관련한 자료를 조사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영국을 방문한 한국당도 예,결산과 관련 없는 국제해사기구와 한국선급 지부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정은 같은 날 농해수위 여야위원들의 출장 일정과 정확히 겹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혹시나 해서 출장 뒤 낸 보고서를 확인해봤더니 역시나 두 보고서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습니다.

올해 초 국회 예결위와 농해수위의 영국 출장 일정 중 일부가 정확히 겹치는 것으로 드러났다올해 초 국회 예결위와 농해수위의 영국 출장 일정 중 일부가 정확히 겹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해외출장에 동행했던 국회 직원은 "연말이라 일정 잡기가 어려우니까 (예결위와 농해수위가) 같이 일정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일부 겹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렇게 자료조사를 위해 출장을 갔다는 예결위원들은 출장 이후 한 번도 모이지 않은 채 지난 5월 말 임기를 마쳤습니다.

"수업은 거부하며 소풍만 가겠다?"…적절성 심사 제대로 이뤄지나?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자체가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정부를 대신한 의원 외교 활동의 영역이 존재하고, 차별화된 전문성과 인맥을 갖춘 의원들의 외교 역량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엄연히 사실입니다.

문제는, 본업인 입법 활동을 거의 놓다시피 하고 상임위 회의보다도 더 많이 해외출장을 다녔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의정 활동에 도움이 되는지 의심되는 출장이었다는 겁니다.

학생에 비유하자면, 교내 수업 출석은 거부하면서 소풍 같은 야외 활동에는 열심인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의원들의 외유성 출장 논란이 계속되자 국회는 지난해 8월 국외 활동 심사자문위원회를 꾸려 외부 기관의 지원을 받는 해외출장의 적절성 여부를 사전 심사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부턴 국회 예산으로 가는 해외출장의 적절성 여부 역시 의원 외교활동 심사자문위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출장 심사 내역을 확인해봤더니, 외부기관 지원 출장의 경우 부적합 결정을 받은 게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심사의 유효성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자체 예산으로 나간 해외출장 심사내역에 대해선 정보공개를 거부해 그마저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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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투며 수업 불참해도 소풍은 함께?…국회의원 해외출장 실태보고
    • 입력 2019-07-04 07:04:36
    취재K
패스트트랙 공방 중에도 사이좋게 해외출장

패스트트랙 공방으로 국회가 꽉 막혀 있던 지난 5월,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인 자유한국당 박순자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토교통위원 임종성 의원이 함께 7박 8일 일정으로 해외 시찰을 떠났습니다.

국토위가 회의 한번 열지 못하고 50일 가까이 멈춰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이들의 행선지는 인도양의 숨은 보석이라고 불리며 최근 인기 신혼여행 코스로 뜨고 있는 모리셔스란 섬나라였습니다.

두 의원은 이곳에서 한국도로공사가 수주한 도로 혼잡 완화 사업 현장을 시찰했습니다.

회전 교차로를 입체 교차로로 개량하는 공사에 도로공사가 컨설팅해주는 120억 원짜리 사업이었습니다.

국토위 관계자는 "한국에서라면 시의원의 눈길조차 끌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도양의 보석' 모리셔스가 아니었다면 국토위원장과 여당 국토위원이 나란히 출장을 갔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국토교통위원회 박순자 위원장과 임종성 의원이 아프리카 모리셔스에서 현지 시찰을 하고 있다
해외출장을 떠난 건 이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한국당 유민봉 의원, 바른미래당 신용현, 정병국 의원은 비슷한 시기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사물인터넷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컨퍼런스는 4일 만에 끝났지만, 의원들은 이후에도 사나흘 더 현지에 머무르며 시찰을 이어갔습니다.

민주당 김영춘, 한국당 강석호, 성일종, 민주평화당 윤영일 의원은 독일 해양치유센터를 방문했고, 민주당 김성수·한국당 김성태(비례)·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은 5월 말 국제핵융합실험로 견학차 프랑스를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지난 5월과 6월, 여야가 함께 해외 출장을 다녀온 사례만 7건에 이릅니다.

이 기간 여야는 하루가 멀다 하고 패스트트랙 고소·고발로 서로 얼굴을 붉히고, 국회 파행 책임을 놓고 네 탓 공방을 벌였지만, 해외출장만큼은 찰떡궁합을 과시했습니다.


국회는 휴업…해외출장은 성업

올해 상반기 국회 본회의는 단 세 번 열렸습니다. 상임위 전체회의와 소위 회의가 열린 날을 합쳐도 64일에 그쳤습니다. 넉 달은 개점휴업을 한 셈입니다.

이 기간, 절반이 넘는 155명 의원이 국회 예산이나 외부 지원으로 63건의 해외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많게는 상반기에만 다섯 번이나 해외출장을 다녀온 의원도 있었습니다.

행정안전부와 경찰과 소방 등을 담당하는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인 한국당 유민봉 의원이었습니다.

유 의원 측이 밝힌 출장 목적은 4차 산업혁명을 위한 벤치마킹, 중국 지도층과의 교류 확대 등이었습니다.

이 63건의 의원 출장은 국회나 외부 기관이 돈을 댔습니다.

국회 예산이 얼마나 쓰였는지 분석해봤더니 의원 1인당 평균 1,526만 원가량이 지원됐습니다.

의원들에게는 비즈니스 왕복 항공권과 5성급 고급 호텔 기준으로 숙박료가 지급되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출장비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국회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예결산 자료 조사한다며 해외출장…다녀와선 회의 '0'

이렇게 세금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의원들의 경험이 의정 활동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단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국회 예결특위위원들이 대거 해외출장을 갔습니다.

민주당은 베트남과 미얀마, 한국당은 베트남·영국, 바른미래당은 인도로 향했습니다.

효율적인 예, 결산 심사제도 확립을 위한 자료 조사가 출장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위원들의 출장 일정표를 확인해봤더니 대사관, KOICA, 교민 등과의 만남이 대부분이고, 예산 관련 일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애당초 우리나라 연간 예산의 1/5, 1/10에 불과한 베트남과 미얀마에서 효율적인 예·결산 심사제도와 관련한 자료를 조사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영국을 방문한 한국당도 예,결산과 관련 없는 국제해사기구와 한국선급 지부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정은 같은 날 농해수위 여야위원들의 출장 일정과 정확히 겹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혹시나 해서 출장 뒤 낸 보고서를 확인해봤더니 역시나 두 보고서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습니다.

올해 초 국회 예결위와 농해수위의 영국 출장 일정 중 일부가 정확히 겹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해외출장에 동행했던 국회 직원은 "연말이라 일정 잡기가 어려우니까 (예결위와 농해수위가) 같이 일정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일부 겹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렇게 자료조사를 위해 출장을 갔다는 예결위원들은 출장 이후 한 번도 모이지 않은 채 지난 5월 말 임기를 마쳤습니다.

"수업은 거부하며 소풍만 가겠다?"…적절성 심사 제대로 이뤄지나?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자체가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정부를 대신한 의원 외교 활동의 영역이 존재하고, 차별화된 전문성과 인맥을 갖춘 의원들의 외교 역량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엄연히 사실입니다.

문제는, 본업인 입법 활동을 거의 놓다시피 하고 상임위 회의보다도 더 많이 해외출장을 다녔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의정 활동에 도움이 되는지 의심되는 출장이었다는 겁니다.

학생에 비유하자면, 교내 수업 출석은 거부하면서 소풍 같은 야외 활동에는 열심인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의원들의 외유성 출장 논란이 계속되자 국회는 지난해 8월 국외 활동 심사자문위원회를 꾸려 외부 기관의 지원을 받는 해외출장의 적절성 여부를 사전 심사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부턴 국회 예산으로 가는 해외출장의 적절성 여부 역시 의원 외교활동 심사자문위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출장 심사 내역을 확인해봤더니, 외부기관 지원 출장의 경우 부적합 결정을 받은 게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심사의 유효성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자체 예산으로 나간 해외출장 심사내역에 대해선 정보공개를 거부해 그마저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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