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 보복에 대처하는 우리 외교부의 자세

입력 2019.07.0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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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무 부처인 산업부에 문의하세요"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그동안 비공개로 두 개의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했습니다. 하나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주축으로 하는 '통상팀'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부가 중심인 '외교팀'이었습니다.

경제 보복의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논의하는 건 통상팀의 역할이었습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현실화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무 부처가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향후 WTO 제소 등의 대응과 경제 피해 최소화 방안도 산업부가 마련하게 됩니다.

외교팀의 역할은 동향 수집과 물밑 접촉이었습니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일본 현지 분위기를 확인하고 보고했습니다. 다양한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 측과 접촉했고, 지난달에는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비공개로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도 추진했습니다.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선 '경제 보복' 조치만큼은 안 된다"고 꾸준히 밝혔고, 일본의 원칙적인 동의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외교팀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기습적으로 경제 보복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사전 예고도 전혀 없었습니다.

외교부는 나가미네 주한 일본 대사를 불러들여 항의한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일 국장급 협의 등 다양한 채널이 있긴 하지만 현재로선 접촉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교부는 이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문의가 오면 계속 "주무부처인 산업부에 문의해 달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경제 보복 조치를 예상하긴 했지만……"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팀은 꾸준히 경제 보복 시나리오를 검토해왔습니다. 이번에 일본이 내놓은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조치는 예상했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수개월 동안 시나리오만 만들었을 뿐, 조치를 미리 막지 못했고, 구체적인 대안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여기엔 두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하나는 '안일한 현실 인식'입니다. 취재 수첩을 뒤적여봤습니다. 지난 3월 12일 아소 다로 부총리가 "송금 정지, 비자 발급 등 여러 보복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날, 외교부 당국자는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보복 조치는 그에 따른 위험(risk)이 크기 때문에, 그렇게 쉽사리 현실화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지만 가능한 시나리오는 점검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후 일본에서 '경제 보복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문의했는데, 그때마다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일본 언론은 "이번 조치는 외무성뿐 아니라 복수의 정부 부처가 공동으로 장기간 극비리에 검토한 사안"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는 동안에도 외교부가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 못 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두 번째 배경은 외교부가 실제로 내놓을 수 있는 조치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왜 계속 무시 전략으로 일관해서 사태를 악화시켰느냐는 지적을 하시는데, 이 부분은 억울하다"고 말합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막기 위해 강제징용 배상을 결정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우리 사법 시스템을 부정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부와 사법 당국이 빠진 채,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안은 외교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앞으로도 우리 외교부가 취할 수 있는 행동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아 보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적 대응 방안이 몇 개 있지만,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는 정부 간에 조율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외교부는 일단 일본 측에 던진 중재안을 계속 수용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공식 외교 채널보다는 국정원 대일 라인 등을 동원해서 일본에 물밑 접촉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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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경제 보복에 대처하는 우리 외교부의 자세
    • 입력 2019-07-04 17:53:24
    취재K
"주무 부처인 산업부에 문의하세요"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그동안 비공개로 두 개의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했습니다. 하나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주축으로 하는 '통상팀'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부가 중심인 '외교팀'이었습니다.

경제 보복의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논의하는 건 통상팀의 역할이었습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현실화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무 부처가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향후 WTO 제소 등의 대응과 경제 피해 최소화 방안도 산업부가 마련하게 됩니다.

외교팀의 역할은 동향 수집과 물밑 접촉이었습니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일본 현지 분위기를 확인하고 보고했습니다. 다양한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 측과 접촉했고, 지난달에는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비공개로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도 추진했습니다.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선 '경제 보복' 조치만큼은 안 된다"고 꾸준히 밝혔고, 일본의 원칙적인 동의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외교팀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기습적으로 경제 보복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사전 예고도 전혀 없었습니다.

외교부는 나가미네 주한 일본 대사를 불러들여 항의한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일 국장급 협의 등 다양한 채널이 있긴 하지만 현재로선 접촉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교부는 이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문의가 오면 계속 "주무부처인 산업부에 문의해 달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경제 보복 조치를 예상하긴 했지만……"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팀은 꾸준히 경제 보복 시나리오를 검토해왔습니다. 이번에 일본이 내놓은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조치는 예상했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수개월 동안 시나리오만 만들었을 뿐, 조치를 미리 막지 못했고, 구체적인 대안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여기엔 두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하나는 '안일한 현실 인식'입니다. 취재 수첩을 뒤적여봤습니다. 지난 3월 12일 아소 다로 부총리가 "송금 정지, 비자 발급 등 여러 보복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날, 외교부 당국자는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보복 조치는 그에 따른 위험(risk)이 크기 때문에, 그렇게 쉽사리 현실화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지만 가능한 시나리오는 점검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후 일본에서 '경제 보복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문의했는데, 그때마다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일본 언론은 "이번 조치는 외무성뿐 아니라 복수의 정부 부처가 공동으로 장기간 극비리에 검토한 사안"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는 동안에도 외교부가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 못 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두 번째 배경은 외교부가 실제로 내놓을 수 있는 조치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왜 계속 무시 전략으로 일관해서 사태를 악화시켰느냐는 지적을 하시는데, 이 부분은 억울하다"고 말합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막기 위해 강제징용 배상을 결정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우리 사법 시스템을 부정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부와 사법 당국이 빠진 채,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안은 외교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앞으로도 우리 외교부가 취할 수 있는 행동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아 보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적 대응 방안이 몇 개 있지만,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는 정부 간에 조율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외교부는 일단 일본 측에 던진 중재안을 계속 수용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공식 외교 채널보다는 국정원 대일 라인 등을 동원해서 일본에 물밑 접촉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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