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의원님들은 경찰 수사를 얼마나 물로 보시길래

입력 2019.07.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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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경찰서 입구…'감금 혐의' 한국당 의원 4명 출석 '불응'

서울 영등포경찰서에는 어제(4일) 오전 9시쯤부터 취재진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패스트트랙 처리를 둘러싼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하면서 자유한국당 엄용수, 여상규, 정갑윤, 이양수 의원에게 이날까지 출석하라고 소환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찰도 취재진도 경찰서 입구에서 기다리다 지쳐 돌아갔습니다. 결국 4명 의원들 모두 경찰의 소환 통보에 불응하고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4명의 의원들은 지난 4월 25일,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실에서 채 의원을 감금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소파로 의원실 문을 걸어놓고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국당 의원 13명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들은 채 의원이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채 의원은 꼼짝 없이 6시간 가까이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었습니다.

이날 불출석한 의원실 관계자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한 의원실 관계자는 "4명 다 안 나가는 것으로 얘기가 됐다"면서 "서면으로 조사하면 될 걸 굳이 출석하라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의원실의 관계자는 "출석에 불응하고, 불출석 사유서도 제출하지 않을 계획"이라면서 "지금까지 가만 있다가 (검찰총장) 청문회 앞두고 법사위원들 협박하는 거 아니냐"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바라보는 경찰 수사, 그 속내를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답변들입니다.


"내 수사자료 보내라"…외압 아니라고요?

채 의원을 감금한 혐의를 받는 자유한국당 이종배 의원은 경찰청에 '질의서'를 보냅니다. 질의서 내용을 볼까요. ▲향후 조사 계획된 의원들에게 언제 소환통지서를 보낼지, ▲향후 어떤 식으로 조사를 진행할지, 여기에 ▲조사 담당자와 연락처는 무엇인지까지 공식 질의서에 담았습니다.

비슷한 자료는 같은 당 이채익 의원실에서도 보냈습니다. 당연히 즉각 '외압'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고발당한 당사자가 경찰에 '수사 보고'를 올리라는 건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논란의 여지도 있습니다.

특히 이채익 의원은 경찰청을 소관 부처로 두고 있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간사입니다. 또 이채익 의원은 고발대상자 명단에도 올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에 '수사 보고'를 올리라고 한 게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종배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일반인들도 본인을 상대로 수사가 시작되면, 궁금증을 민원실을 통해 묻지 않느냐"면서 "질의서를 보낸 것이 외압은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채익 의원실 측에서도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로서 일상적인 업무의 일환"이라고 밝혔습니다.

국회 규칙인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을 찾아봤습니다. 3조에는 '공정을 의심받는 행동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10조를 봅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소명하고, 관련 활동에 참여하여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피고발인인 국회의원이 경찰청에 질의서를 보낸 것,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 위반인지 아닌지 따져볼 대목입니다.


이채익 "내가 경찰청장한테 전화해보니까 압력 아니라던데"

이틀 전(3일) 이채익 의원은 기자회견을 자청합니다.

이채익 의원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통상적 상임위 활동"이라고 밝혔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자료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졌는지 따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채익 의원은 경찰청장에게 직접 전화해 '외압이 맞느냐'고 물었다고 했습니다.

이채익 의원은 "경찰청장에게 '경찰이 이번 일에 대해 외압을 느꼈느냐'(고 물어봤는데) '전혀 안 느꼈습니다' 확인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상임위 야당 간사인 국회의원이 자신의 소관부처인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외압 여부'를 확인했더니 '외압이 아니었다'고 말했으면, 실제로 '외압'이 아니었던 걸까요?

물 건너간 '강제수사'…9월이면 '불체포 특권' 발동

상황이 이 정도까지 왔으니, 사실상 강제수사는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경찰 관계자는 "고발을 당하면 피의자 신분이라 서면 조사가 아니라 출석 조사를 요구하는 게 맞다"면서도 "출석을 계속 기다려본 뒤 그래도 출석하지 않으면 차후에 또 출석 통보를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벌써부터 9월 정기국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정기국회는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이 발동되는 시기라 강제 수사가 어렵다는 겁니다. 경찰은 피의자가 정당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기 중인 국회의원에게는 어렵습니다.

정기국회는 매년 9월 1일부터 100일간 열립니다. 9월까지 조사를 받지 않으면 12월까지 '강제 수사'는 쉽지 않은 셈입니다.

국회의원 109명이 연루된 패스트트랙 사건, 현직 의원의 3분의 1이 넘는 숫자입니다. 정기 국회가 시작될 때까지 경찰이 모든 수사를 마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도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경찰 소환 불응, 경찰청에 질의서 송부, 경찰청장에 직접 전화, 불체포 특권까지. 자신을 상대로 수사가 시작되면 국회의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국민들은 이번 기회에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법과 경찰 수사를 '물로 보는' 의원님들이 아니라면, 패스트트랙 관련 조사에 당당히 임하는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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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당 의원님들은 경찰 수사를 얼마나 물로 보시길래
    • 입력 2019-07-05 07:00:31
    취재K
텅 빈 경찰서 입구…'감금 혐의' 한국당 의원 4명 출석 '불응'

서울 영등포경찰서에는 어제(4일) 오전 9시쯤부터 취재진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패스트트랙 처리를 둘러싼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하면서 자유한국당 엄용수, 여상규, 정갑윤, 이양수 의원에게 이날까지 출석하라고 소환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찰도 취재진도 경찰서 입구에서 기다리다 지쳐 돌아갔습니다. 결국 4명 의원들 모두 경찰의 소환 통보에 불응하고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4명의 의원들은 지난 4월 25일,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실에서 채 의원을 감금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소파로 의원실 문을 걸어놓고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국당 의원 13명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들은 채 의원이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채 의원은 꼼짝 없이 6시간 가까이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었습니다.

이날 불출석한 의원실 관계자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한 의원실 관계자는 "4명 다 안 나가는 것으로 얘기가 됐다"면서 "서면으로 조사하면 될 걸 굳이 출석하라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의원실의 관계자는 "출석에 불응하고, 불출석 사유서도 제출하지 않을 계획"이라면서 "지금까지 가만 있다가 (검찰총장) 청문회 앞두고 법사위원들 협박하는 거 아니냐"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바라보는 경찰 수사, 그 속내를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답변들입니다.


"내 수사자료 보내라"…외압 아니라고요?

채 의원을 감금한 혐의를 받는 자유한국당 이종배 의원은 경찰청에 '질의서'를 보냅니다. 질의서 내용을 볼까요. ▲향후 조사 계획된 의원들에게 언제 소환통지서를 보낼지, ▲향후 어떤 식으로 조사를 진행할지, 여기에 ▲조사 담당자와 연락처는 무엇인지까지 공식 질의서에 담았습니다.

비슷한 자료는 같은 당 이채익 의원실에서도 보냈습니다. 당연히 즉각 '외압'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고발당한 당사자가 경찰에 '수사 보고'를 올리라는 건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논란의 여지도 있습니다.

특히 이채익 의원은 경찰청을 소관 부처로 두고 있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간사입니다. 또 이채익 의원은 고발대상자 명단에도 올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에 '수사 보고'를 올리라고 한 게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종배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일반인들도 본인을 상대로 수사가 시작되면, 궁금증을 민원실을 통해 묻지 않느냐"면서 "질의서를 보낸 것이 외압은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채익 의원실 측에서도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로서 일상적인 업무의 일환"이라고 밝혔습니다.

국회 규칙인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을 찾아봤습니다. 3조에는 '공정을 의심받는 행동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10조를 봅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소명하고, 관련 활동에 참여하여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피고발인인 국회의원이 경찰청에 질의서를 보낸 것,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 위반인지 아닌지 따져볼 대목입니다.


이채익 "내가 경찰청장한테 전화해보니까 압력 아니라던데"

이틀 전(3일) 이채익 의원은 기자회견을 자청합니다.

이채익 의원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통상적 상임위 활동"이라고 밝혔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자료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졌는지 따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채익 의원은 경찰청장에게 직접 전화해 '외압이 맞느냐'고 물었다고 했습니다.

이채익 의원은 "경찰청장에게 '경찰이 이번 일에 대해 외압을 느꼈느냐'(고 물어봤는데) '전혀 안 느꼈습니다' 확인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상임위 야당 간사인 국회의원이 자신의 소관부처인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외압 여부'를 확인했더니 '외압이 아니었다'고 말했으면, 실제로 '외압'이 아니었던 걸까요?

물 건너간 '강제수사'…9월이면 '불체포 특권' 발동

상황이 이 정도까지 왔으니, 사실상 강제수사는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경찰 관계자는 "고발을 당하면 피의자 신분이라 서면 조사가 아니라 출석 조사를 요구하는 게 맞다"면서도 "출석을 계속 기다려본 뒤 그래도 출석하지 않으면 차후에 또 출석 통보를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벌써부터 9월 정기국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정기국회는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이 발동되는 시기라 강제 수사가 어렵다는 겁니다. 경찰은 피의자가 정당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기 중인 국회의원에게는 어렵습니다.

정기국회는 매년 9월 1일부터 100일간 열립니다. 9월까지 조사를 받지 않으면 12월까지 '강제 수사'는 쉽지 않은 셈입니다.

국회의원 109명이 연루된 패스트트랙 사건, 현직 의원의 3분의 1이 넘는 숫자입니다. 정기 국회가 시작될 때까지 경찰이 모든 수사를 마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도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경찰 소환 불응, 경찰청에 질의서 송부, 경찰청장에 직접 전화, 불체포 특권까지. 자신을 상대로 수사가 시작되면 국회의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국민들은 이번 기회에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법과 경찰 수사를 '물로 보는' 의원님들이 아니라면, 패스트트랙 관련 조사에 당당히 임하는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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