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더 시간 끌면 ‘병역대란’ 현실화 된다

입력 2019.07.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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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 조항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위해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헌재는 다만 현행 병역법의 효력이 곧바로 상실될 경우, 병무행정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에 2019년 12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을 통해 '대체복무제'를 병역법 조항에 규정하도록 결정했다.

정부는 헌재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대체복무제 도입 준비에 나섰고, 지난해 말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경우 교정시설에서 36개월 동안 합숙 근무하도록 하는 안을 발표했다. 이어 대체복무 도입 관련 법률 제·개정안을 지난 4월 29일 국회에 제출했다. 여기까지는 대체복무제 추진에 큰 걸림돌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이른바 '패스트트랙 정국'을 기점으로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면서 국회가 완전히 멈춰 선 것이었다.

국회 전경국회 전경

국회의 파행으로 정부가 제출한 대체복무 관련 법안은 해당 상임위인 국회 국방위원회에 두 달 넘게 안건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통상적인 입법 과정을 보면 정부 제출 법안은 소관 상임위로 가서 안건으로 상정된 다음 소위원회를 통해 국회의원들의 논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소위원회에서 협의가 끝나면 다시 상임위원회의 심사·의결을 거쳐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다. 법사위에서 자구 검토 절차 등이 끝나면 본회의에 회부되고, 본회의에 올라간 법안은 질의와 토론을 거쳐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이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법안 통과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특히 대체복무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는 데다, 정부가 제출한 대체복무제 도입안에 대해서도 국회 국방위 내 견해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법안 심사 과정부터 진통이 예상된다.

국방부는 법률 제·개정 이후에도 시행령을 개정하고, 대체복무제 관련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체복무제에 필요한 합숙소 등 관련 시설을 갖추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 기간을 고려하면 아무리 늦어도 올해 10월까지는 입법 절차가 마무리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법안이 마련돼야 예산을 들여 후속 작업을 할 텐데, 이 시간을 넘기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해야 할 대체복무제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신체 검사받는 병역판정 검사 대상자신체 검사받는 병역판정 검사 대상자

만약 올해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에 관한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현행 병역법의 효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병역판정 검사는 전면 중단되고, 현역 소집의 법적 근거도 없어서 징집이 불가능해진다. 병무 행정이 전면 마비되는 이른바 '병역대란'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가능성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앞으로 2019년에서 2020년으로 해가 바뀌기까지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병역대란'은 결코 터무니없는 우려가 아니다. '패스트트랙 대치 정국' 끝에 여야 잠정 합의로 국회가 정상화 됐지만 언제 다시 '식물 국회'로 전락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채 30%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걱정됐는지 국방부는 어제(3일) 열린 국회 국방위 업무보고에서 '대체복무제 도입' 관련 내용을 주요 국방현안으로 선정해 여야 위원들에게 보고했다. 특히 '병무행정 중단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률 제·개정안 기한 내 통과에 관심과 지원을 당부드린다'며 적시에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최근 북한 목선 사건 등 안보 현안에서 국방부와 군 당국의 미흡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대체복무제 도입 관련 법안은 여야 위원들의 관심 밖에 있는 상태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병역대란'이 불 보듯 뻔하다. 조속한 입법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국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국방부도 국회를 찾아 발로 뛰면서 여야 국방위원들을 설득하는 등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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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가 더 시간 끌면 ‘병역대란’ 현실화 된다
    • 입력 2019-07-05 09:00:54
    취재K
지난해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 조항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위해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헌재는 다만 현행 병역법의 효력이 곧바로 상실될 경우, 병무행정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에 2019년 12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을 통해 '대체복무제'를 병역법 조항에 규정하도록 결정했다.

정부는 헌재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대체복무제 도입 준비에 나섰고, 지난해 말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경우 교정시설에서 36개월 동안 합숙 근무하도록 하는 안을 발표했다. 이어 대체복무 도입 관련 법률 제·개정안을 지난 4월 29일 국회에 제출했다. 여기까지는 대체복무제 추진에 큰 걸림돌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이른바 '패스트트랙 정국'을 기점으로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면서 국회가 완전히 멈춰 선 것이었다.

국회 전경
국회의 파행으로 정부가 제출한 대체복무 관련 법안은 해당 상임위인 국회 국방위원회에 두 달 넘게 안건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통상적인 입법 과정을 보면 정부 제출 법안은 소관 상임위로 가서 안건으로 상정된 다음 소위원회를 통해 국회의원들의 논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소위원회에서 협의가 끝나면 다시 상임위원회의 심사·의결을 거쳐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다. 법사위에서 자구 검토 절차 등이 끝나면 본회의에 회부되고, 본회의에 올라간 법안은 질의와 토론을 거쳐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이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법안 통과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특히 대체복무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는 데다, 정부가 제출한 대체복무제 도입안에 대해서도 국회 국방위 내 견해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법안 심사 과정부터 진통이 예상된다.

국방부는 법률 제·개정 이후에도 시행령을 개정하고, 대체복무제 관련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체복무제에 필요한 합숙소 등 관련 시설을 갖추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 기간을 고려하면 아무리 늦어도 올해 10월까지는 입법 절차가 마무리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법안이 마련돼야 예산을 들여 후속 작업을 할 텐데, 이 시간을 넘기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해야 할 대체복무제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신체 검사받는 병역판정 검사 대상자
만약 올해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에 관한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현행 병역법의 효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병역판정 검사는 전면 중단되고, 현역 소집의 법적 근거도 없어서 징집이 불가능해진다. 병무 행정이 전면 마비되는 이른바 '병역대란'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가능성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앞으로 2019년에서 2020년으로 해가 바뀌기까지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병역대란'은 결코 터무니없는 우려가 아니다. '패스트트랙 대치 정국' 끝에 여야 잠정 합의로 국회가 정상화 됐지만 언제 다시 '식물 국회'로 전락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채 30%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걱정됐는지 국방부는 어제(3일) 열린 국회 국방위 업무보고에서 '대체복무제 도입' 관련 내용을 주요 국방현안으로 선정해 여야 위원들에게 보고했다. 특히 '병무행정 중단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률 제·개정안 기한 내 통과에 관심과 지원을 당부드린다'며 적시에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최근 북한 목선 사건 등 안보 현안에서 국방부와 군 당국의 미흡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대체복무제 도입 관련 법안은 여야 위원들의 관심 밖에 있는 상태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병역대란'이 불 보듯 뻔하다. 조속한 입법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국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국방부도 국회를 찾아 발로 뛰면서 여야 국방위원들을 설득하는 등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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