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정수장에서 우라늄이 초과했다고요? 처음 듣는 얘기인데…”

입력 2019.07.05 (14:09) 수정 2019.07.0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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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주민들은 몰랐던 검사 결과…두 달 지나서야 인터넷에 공지
환경부 “청양군이 보고 안 해”…자치단체 탓만 할 수 있을까?
전문성 부족·중앙정부와 공조도 안 돼…‘수돗물 불신’ 쌓인다

"이미 해결된 걸 지금에서야 올리는 이유가 뭐냐" "자연 우라늄이네" "괜히 불안감 조성하지 말자"

지난 3일 기사가 출고되고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맞습니다. 충남 청양, 천백여 가구에 공급되는 소규모 정수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석 달간 기준치가 초과했고, 4월 검사에선 수치가 정상화됐습니다. 근처에 원자력 발전소나 큰 공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 발생한 우라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은 괜찮은데 괜히 주민들에게 불안을 조장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취재를 할수록 기사를 써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문진국 의원실을 통해 전국 정수장의 수질검사 초과 사례와 조치 결과가 담긴 자료를 받았습니다. 전국에 2천 개가 넘는 정수장에서 5년간 수질 초과한 사례는 30건입니다. 그 중 충남 청양의 정산정수장은 유독 올해 초에만 4건이 초과했습니다. 1~3월에 연달아 우라늄이, 2월에는 비소도 한 건 기준치를 초과한 걸 확인했습니다. 우라늄 초과 사례로는 청양군이 유일했습니다. 방사성 물질인 우라늄이 왜 수돗물에서 석 달이나 나왔을까 궁금했습니다. 청양군에 물어봤습니다.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우라늄이 나와서요. 정수장에서 지하수를 쓰다 보니까 아마 암반에서 우라늄이 녹아 나온 것 같아요. 어떻게든 빨리 우라늄이 나온 관정을 폐쇄하고 대체 수원을 마련하는 데 진력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4월부터는 괜찮아졌어요."

주민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저희가 수질검사 공고하는 데가 있거든요. 홈페이지에 거기에다가 주민 공고를 했어요."


찾아봤습니다. 청양군 홈페이지에서 꽤 검색해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1월부터 수돗물에선 우라늄 농도가 높았는데, 주민 공고가 게시된 건 4월 3일이었습니다. 다시 청양군에 확인했습니다.

"수질검사는 보통 월 중순쯤에 합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 정도 걸리는데요. 1월 결과를 통보받은 건 2월 초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 업무를 맡은 게 올해부터라서 주민 공고를 해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3월에 환경공단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수질 초과한 거 공고를 해야 한다고..."

수도법상 검사 결과가 나오면 3일 안에 주민에게 알리게 돼 있지만, 두 달이 지나서야 주민 공고를 한 겁니다. 청양군은 수질검사 결과를 등록하는 '국가상수도정보시스템(www.waternow.go.kr)'에만 측정치를 입력하고는 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상수도정보시스템'을 운영하는 한국환경공단에서 뒤늦게 이를 확인하고 청양군에 주민 공고를 지시한 것입니다. 주민 공고 방법도 문제입니다. 군청 홈페이지에서 수질검사 결과를 찾아보는 주민이 얼마나 될까요?


당연히 급수 제한이나 대체 식수 제공 등의 조치도 없었습니다. 우라늄 농도가 높은 관정들을 폐쇄하거나 정수장치를 달았다고는 하지만, 그러는 사이 석 달간은 주민들에게 우라늄 수돗물이 그대로 제공된 겁니다. 건강한 성인에게는 크게 위험할 정도의 양은 아니라지만 노인이나 어린이, 신장에 질환이 있는 사람에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민들에게는 어떤 공지나 안내 없이 수질 회복을 위한 조치만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행정 편의주의' 아닌가 싶었습니다.

수돗물에서 우라늄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환경부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문제입니다. 재발 방지 대책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환경부 답변 또한 예상 밖이었습니다.


"정수장에서 우라늄이 초과했다고요? 처음 듣는 얘기인데...확인을 해봐야겠네요. 원래 기준초과하면 우리한테 보고하게 돼 있는데 보고된 건 없어요."

환경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국가상수도정보시스템' 등록된 결과를 보고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은 이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정작 환경부로 보고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상수도 운영의 주체는 자치단체니까 환경부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요?

우라늄이 수돗물 수질검사 항목에 들어간 건 올해부터입니다. 현장에서의 혼란과 업무 미숙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수도법 27조에 따르면 수질기준을 위반한 경우 주민에게 알리고 수질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게 돼 있습니다. 또 37조에서는 수돗물이 건강을 해할 우려가 있으면 지체 없이 수돗물의 공급을 정지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항목의 수질이, 얼마나 나빠졌을 때 어떻게 주민 보호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원인을 찾고 정상화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매뉴얼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한 자치단체에 환경부가 도움을 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앙정부와의 공조는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인천 붉은 수돗물 사고가 난 지 일주일이 되어서야 환경부 조사단이 꾸려진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인천시가 거부한다는 이유로 현장조사는 열흘이 지나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청양군도 "우라늄 농도가 높게 나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면서도 "환경부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까지는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치단체는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중앙정부에 알리기를 꺼리고, 중앙정부는 자치단체가 요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제를 사실상 방관하는 구조입니다.


지난 2일, 국회에서는 '붉은 수돗물 사태 긴급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최계운 인천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인천 사태와 관련해 "매뉴얼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환경부 책임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돗물이 상품이라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한다. 원수를 정수해서 마지막 가정까지 가는 전 과정을 100% 관리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환경부가 자치단체의 업무까지 다 맡을 수는 없지만, 먹는 수돗물만큼은 전 과정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환경부는 잇따르고 있는 수돗물 문제와 관련해 이달 말에 제도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합니다. 불투명한 행정·중앙정부와 자치단체 간의 불협 등으로 쌓여만 가는 '수돗물 불신'을 불식시킬 방안이 나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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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정수장에서 우라늄이 초과했다고요? 처음 듣는 얘기인데…”
    • 입력 2019-07-05 14:09:31
    • 수정2019-07-05 14:11:12
    취재후·사건후
주민들은 몰랐던 검사 결과…두 달 지나서야 인터넷에 공지<br />환경부 “청양군이 보고 안 해”…자치단체 탓만 할 수 있을까?<br />전문성 부족·중앙정부와 공조도 안 돼…‘수돗물 불신’ 쌓인다
"이미 해결된 걸 지금에서야 올리는 이유가 뭐냐" "자연 우라늄이네" "괜히 불안감 조성하지 말자"

지난 3일 기사가 출고되고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맞습니다. 충남 청양, 천백여 가구에 공급되는 소규모 정수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석 달간 기준치가 초과했고, 4월 검사에선 수치가 정상화됐습니다. 근처에 원자력 발전소나 큰 공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 발생한 우라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은 괜찮은데 괜히 주민들에게 불안을 조장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취재를 할수록 기사를 써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문진국 의원실을 통해 전국 정수장의 수질검사 초과 사례와 조치 결과가 담긴 자료를 받았습니다. 전국에 2천 개가 넘는 정수장에서 5년간 수질 초과한 사례는 30건입니다. 그 중 충남 청양의 정산정수장은 유독 올해 초에만 4건이 초과했습니다. 1~3월에 연달아 우라늄이, 2월에는 비소도 한 건 기준치를 초과한 걸 확인했습니다. 우라늄 초과 사례로는 청양군이 유일했습니다. 방사성 물질인 우라늄이 왜 수돗물에서 석 달이나 나왔을까 궁금했습니다. 청양군에 물어봤습니다.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우라늄이 나와서요. 정수장에서 지하수를 쓰다 보니까 아마 암반에서 우라늄이 녹아 나온 것 같아요. 어떻게든 빨리 우라늄이 나온 관정을 폐쇄하고 대체 수원을 마련하는 데 진력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4월부터는 괜찮아졌어요."

주민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저희가 수질검사 공고하는 데가 있거든요. 홈페이지에 거기에다가 주민 공고를 했어요."


찾아봤습니다. 청양군 홈페이지에서 꽤 검색해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1월부터 수돗물에선 우라늄 농도가 높았는데, 주민 공고가 게시된 건 4월 3일이었습니다. 다시 청양군에 확인했습니다.

"수질검사는 보통 월 중순쯤에 합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 정도 걸리는데요. 1월 결과를 통보받은 건 2월 초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 업무를 맡은 게 올해부터라서 주민 공고를 해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3월에 환경공단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수질 초과한 거 공고를 해야 한다고..."

수도법상 검사 결과가 나오면 3일 안에 주민에게 알리게 돼 있지만, 두 달이 지나서야 주민 공고를 한 겁니다. 청양군은 수질검사 결과를 등록하는 '국가상수도정보시스템(www.waternow.go.kr)'에만 측정치를 입력하고는 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상수도정보시스템'을 운영하는 한국환경공단에서 뒤늦게 이를 확인하고 청양군에 주민 공고를 지시한 것입니다. 주민 공고 방법도 문제입니다. 군청 홈페이지에서 수질검사 결과를 찾아보는 주민이 얼마나 될까요?


당연히 급수 제한이나 대체 식수 제공 등의 조치도 없었습니다. 우라늄 농도가 높은 관정들을 폐쇄하거나 정수장치를 달았다고는 하지만, 그러는 사이 석 달간은 주민들에게 우라늄 수돗물이 그대로 제공된 겁니다. 건강한 성인에게는 크게 위험할 정도의 양은 아니라지만 노인이나 어린이, 신장에 질환이 있는 사람에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민들에게는 어떤 공지나 안내 없이 수질 회복을 위한 조치만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행정 편의주의' 아닌가 싶었습니다.

수돗물에서 우라늄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환경부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문제입니다. 재발 방지 대책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환경부 답변 또한 예상 밖이었습니다.


"정수장에서 우라늄이 초과했다고요? 처음 듣는 얘기인데...확인을 해봐야겠네요. 원래 기준초과하면 우리한테 보고하게 돼 있는데 보고된 건 없어요."

환경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국가상수도정보시스템' 등록된 결과를 보고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은 이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정작 환경부로 보고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상수도 운영의 주체는 자치단체니까 환경부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요?

우라늄이 수돗물 수질검사 항목에 들어간 건 올해부터입니다. 현장에서의 혼란과 업무 미숙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수도법 27조에 따르면 수질기준을 위반한 경우 주민에게 알리고 수질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게 돼 있습니다. 또 37조에서는 수돗물이 건강을 해할 우려가 있으면 지체 없이 수돗물의 공급을 정지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항목의 수질이, 얼마나 나빠졌을 때 어떻게 주민 보호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원인을 찾고 정상화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매뉴얼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한 자치단체에 환경부가 도움을 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앙정부와의 공조는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인천 붉은 수돗물 사고가 난 지 일주일이 되어서야 환경부 조사단이 꾸려진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인천시가 거부한다는 이유로 현장조사는 열흘이 지나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청양군도 "우라늄 농도가 높게 나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면서도 "환경부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까지는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치단체는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중앙정부에 알리기를 꺼리고, 중앙정부는 자치단체가 요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제를 사실상 방관하는 구조입니다.


지난 2일, 국회에서는 '붉은 수돗물 사태 긴급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최계운 인천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인천 사태와 관련해 "매뉴얼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환경부 책임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돗물이 상품이라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한다. 원수를 정수해서 마지막 가정까지 가는 전 과정을 100% 관리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환경부가 자치단체의 업무까지 다 맡을 수는 없지만, 먹는 수돗물만큼은 전 과정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환경부는 잇따르고 있는 수돗물 문제와 관련해 이달 말에 제도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합니다. 불투명한 행정·중앙정부와 자치단체 간의 불협 등으로 쌓여만 가는 '수돗물 불신'을 불식시킬 방안이 나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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