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유명(有名) 그룹 H.O.T

입력 2019.07.06 (09:07) 수정 2019.07.0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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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열린 High-five Of Teenagers 콘서트에서 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희준, 강타, 토니안, 장우혁, 이재원

누군가에겐 아직도 가슴 설레는 이름입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대중가요를 즐겨 듣던 분들이라면 특히 더 그럴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이들을 따르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Club H.O.T'라고 명했습니다. 흰색 우의를 단체로 맞춰 입고, 음악에 따라 흰색 풍선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외쳤습니다. "에쵸티 에쵸티!"

문희준 등 5명은 방송에 출연해 "H.O.T의 누구입니다~"라고 자신을 늘 소개했고, 히트곡 <빛>에선 "우린 H.O.T let's party !"라는 구절도 삽입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재결합한 그들은 스스로를 'H.O.T'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2018년 10월 열린 High-five Of Teenagers 콘서트에서 멤버들이 춤을 추고 있다.2018년 10월 열린 High-five Of Teenagers 콘서트에서 멤버들이 춤을 추고 있다.

'H.O.T'라는 이름이 없는 'High-five Of Teenagers'

2001년 해체됐던 H.O.T는 지난해 방송을 통해 재결합했고, 콘서트까지 열었습니다. 콘서트에선 'HighFIve Of Teenagers'라는 풀네임만 사용해야 했습니다. 'H.O.T'라는 약어는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H.O.T'라는 상표-서비스표권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H.O.T'라는 이름의 권리는 전 SM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 모 씨에게 있습니다. 김 전 대표는 1996년 'H.O.T' 이름의 상표를 출원해 지금까지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출원 당시 김 전 대표는 상표권이 김 전 대표에게 있다는 취지의 동의서를 멤버 5명 모두에게 받았습니다.

문제는 지난해 이들이 재결합하며 콘서트를 개최하려고 할 때 발생했습니다. 그동안 잠자고 있던 'H.O.T'라는 이름이 다시 세상 밖에서 사용되려면 김 전 대표의 허락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콘서트 기획사 측과 김 전 대표 사이에서 로열티 문제는 간극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김 전 대표 측은 KBS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H.O.T'를 사용할 땐, 팬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대가 없이 이름을 쓸 수 있게 해줬다"며 "지난해 10월 공연의 경우도, 비영리 목적이면 마음껏 사용하라고 말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영리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그에 따른 일정 부분의 로열티를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협상이 이뤄지지도 않았는데도 콘서트를 강행하고 거기서 'H.O.T'라는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전 대표 측은 이와 관련해 장우혁 씨와 콘서트 기획사를 상표권 침해 등으로 고소했습니다.

또, 이번 콘서트에 대해서도 광고나 굿즈에서 상표권이 침해된다고 보이면 콘서트를 하지 못하게 하는 소송을낼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콘서트 기획사 관계자는 KBS 취재진에 "지난해 공연과 관련 해선 김 씨가 큰 액수의 로열티를 요구해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지난해 공연에서 'High-five Of Teenagers'라는 풀네임을 사용했고, 올해 공연에서도 그럴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전 대표는 로열티 문제와 관련해 "큰 금액을 요구한 적 없고, 보통 판례에 따른 금액을 제시해보라고 말했다"며 "콘서트 기획사와 멤버들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H.O.T만의 문제는 아냐

아이돌 그룹 이름의 소유권 문제는 H.O.T만의 일이 아닙니다. 신화, 비스트, 티아라 등 여러 그룹이 소속사를 떠날 때 비슷한 홍역을 앓았습니다.

신화는 2012년 이름을 갖고 있던 미디어 기획사를 상대로 양도소송을 내 2015년 이름을 돌려받았습니다. 비스트는 소속사를 나오면서 해당 이름을 사용하지 못해 하이라이트로 그룹명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아이돌 산업의 구조에서 그룹 이름에 대한 소유권 문제가 출발한다고 지적합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퀸이나 비틀즈처럼 해외의 경우 보통 팀들이 먼저 결성되고 그들이 대형 기획사와 계약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획사들이 처음부터 아이돌 그룹의 이름과 정체성 등을 기획하고 사람을 뽑아서 육성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기획사 입장에선 아이돌 그룹 육성에 자본과 시간을 투자했으니 그만큼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해체 전 H.O.T가 방송에서 공연하는 모습해체 전 H.O.T가 방송에서 공연하는 모습

다른 멤버들을 모아서 H.O.T를 만들 수 있을까?

기존의 H.O.T 멤버들이 아닌 A,B,C,D,E 라는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H.O.T'라는 그룹을 새로 만든다면, 그들이 대중에게 'H.O.T'로 인식될까요? 아닐 겁니다.

보통 그룹 이름에 대한 정체성은 기획사의 몫도 있지만, 몇 년에 걸쳐 소속사의 육성 과정을 마치고, 바쁜 스케쥴도 이겨낸 그룹 멤버들의 몫도 있을 겁니다. 그들이 아니라면 소속사의 기획이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특정 주체에게 모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아티스트는 일반적인 상품과 달리 인격권을 가진 주체다"며 "이러한 점이 고려돼 아이돌 그룹 발굴 단계 계약부터 상표권 부분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룹 구성 단계에서부터 소속사와 멤버들 간의 세밀하고도 명확한 계약이 성립돼야 이러한 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H.O.T는 원조 아이돌, 아이돌계의 조상이라고 불립니다. 뒤를 잇는 많은 보이 그룹들이 H.O.T를 벤치마킹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룹 구성 단계의 새싹 아이돌은 아니지만, 이번 'H.O.T' 상표권 사건이 원만히 해결된다면, 이 역시 여러모로 좋은 선례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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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06 09:07:06
    • 수정2019-07-06 17:36:01
    취재K
2018년 10월 열린 High-five Of Teenagers 콘서트에서 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희준, 강타, 토니안, 장우혁, 이재원

누군가에겐 아직도 가슴 설레는 이름입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대중가요를 즐겨 듣던 분들이라면 특히 더 그럴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이들을 따르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Club H.O.T'라고 명했습니다. 흰색 우의를 단체로 맞춰 입고, 음악에 따라 흰색 풍선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외쳤습니다. "에쵸티 에쵸티!"

문희준 등 5명은 방송에 출연해 "H.O.T의 누구입니다~"라고 자신을 늘 소개했고, 히트곡 <빛>에선 "우린 H.O.T let's party !"라는 구절도 삽입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재결합한 그들은 스스로를 'H.O.T'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2018년 10월 열린 High-five Of Teenagers 콘서트에서 멤버들이 춤을 추고 있다.
'H.O.T'라는 이름이 없는 'High-five Of Teenagers'

2001년 해체됐던 H.O.T는 지난해 방송을 통해 재결합했고, 콘서트까지 열었습니다. 콘서트에선 'HighFIve Of Teenagers'라는 풀네임만 사용해야 했습니다. 'H.O.T'라는 약어는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H.O.T'라는 상표-서비스표권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H.O.T'라는 이름의 권리는 전 SM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 모 씨에게 있습니다. 김 전 대표는 1996년 'H.O.T' 이름의 상표를 출원해 지금까지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출원 당시 김 전 대표는 상표권이 김 전 대표에게 있다는 취지의 동의서를 멤버 5명 모두에게 받았습니다.

문제는 지난해 이들이 재결합하며 콘서트를 개최하려고 할 때 발생했습니다. 그동안 잠자고 있던 'H.O.T'라는 이름이 다시 세상 밖에서 사용되려면 김 전 대표의 허락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콘서트 기획사 측과 김 전 대표 사이에서 로열티 문제는 간극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김 전 대표 측은 KBS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H.O.T'를 사용할 땐, 팬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대가 없이 이름을 쓸 수 있게 해줬다"며 "지난해 10월 공연의 경우도, 비영리 목적이면 마음껏 사용하라고 말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영리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그에 따른 일정 부분의 로열티를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협상이 이뤄지지도 않았는데도 콘서트를 강행하고 거기서 'H.O.T'라는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전 대표 측은 이와 관련해 장우혁 씨와 콘서트 기획사를 상표권 침해 등으로 고소했습니다.

또, 이번 콘서트에 대해서도 광고나 굿즈에서 상표권이 침해된다고 보이면 콘서트를 하지 못하게 하는 소송을낼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콘서트 기획사 관계자는 KBS 취재진에 "지난해 공연과 관련 해선 김 씨가 큰 액수의 로열티를 요구해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지난해 공연에서 'High-five Of Teenagers'라는 풀네임을 사용했고, 올해 공연에서도 그럴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전 대표는 로열티 문제와 관련해 "큰 금액을 요구한 적 없고, 보통 판례에 따른 금액을 제시해보라고 말했다"며 "콘서트 기획사와 멤버들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H.O.T만의 문제는 아냐

아이돌 그룹 이름의 소유권 문제는 H.O.T만의 일이 아닙니다. 신화, 비스트, 티아라 등 여러 그룹이 소속사를 떠날 때 비슷한 홍역을 앓았습니다.

신화는 2012년 이름을 갖고 있던 미디어 기획사를 상대로 양도소송을 내 2015년 이름을 돌려받았습니다. 비스트는 소속사를 나오면서 해당 이름을 사용하지 못해 하이라이트로 그룹명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아이돌 산업의 구조에서 그룹 이름에 대한 소유권 문제가 출발한다고 지적합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퀸이나 비틀즈처럼 해외의 경우 보통 팀들이 먼저 결성되고 그들이 대형 기획사와 계약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획사들이 처음부터 아이돌 그룹의 이름과 정체성 등을 기획하고 사람을 뽑아서 육성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기획사 입장에선 아이돌 그룹 육성에 자본과 시간을 투자했으니 그만큼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해체 전 H.O.T가 방송에서 공연하는 모습
다른 멤버들을 모아서 H.O.T를 만들 수 있을까?

기존의 H.O.T 멤버들이 아닌 A,B,C,D,E 라는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H.O.T'라는 그룹을 새로 만든다면, 그들이 대중에게 'H.O.T'로 인식될까요? 아닐 겁니다.

보통 그룹 이름에 대한 정체성은 기획사의 몫도 있지만, 몇 년에 걸쳐 소속사의 육성 과정을 마치고, 바쁜 스케쥴도 이겨낸 그룹 멤버들의 몫도 있을 겁니다. 그들이 아니라면 소속사의 기획이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특정 주체에게 모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아티스트는 일반적인 상품과 달리 인격권을 가진 주체다"며 "이러한 점이 고려돼 아이돌 그룹 발굴 단계 계약부터 상표권 부분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룹 구성 단계에서부터 소속사와 멤버들 간의 세밀하고도 명확한 계약이 성립돼야 이러한 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H.O.T는 원조 아이돌, 아이돌계의 조상이라고 불립니다. 뒤를 잇는 많은 보이 그룹들이 H.O.T를 벤치마킹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룹 구성 단계의 새싹 아이돌은 아니지만, 이번 'H.O.T' 상표권 사건이 원만히 해결된다면, 이 역시 여러모로 좋은 선례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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