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다보스 포럼 창립자가 ‘다보스’ 포기를 고민하는 이유

입력 2019.07.09 (06:16) 수정 2019.07.0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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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 포럼 또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은 매해 1월 전 세계의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이 모여 지구 상의 주요한 현안들을 논의하는 자리다.

1971년 시작된 이 회의는 올해로 49번째를 맞았는데, 원래 유러피언 매니지먼트 포럼이라는 회의체의 감독 아래 유러피언 매니지먼트 심포지엄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1987년 세계경제포럼으로 확대되었으나 '다보스 포럼'이라는 명칭으로 더 친숙하다.

다보스는 스위스 동부 그라우뷘덴주의 작은 마을로 해발고도 1,600m 가까이에 위치한 관광지다. 여름철엔 피서지, 겨울철엔 스키 휴양지로 유명하며 영국 윌리엄 왕세손 부부와 같은 유럽 왕족들과 부호들이 휴가차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다보스 포럼은 1971년 당시 만 32세에 불과했던 제네바 대학의 젊은 교수,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에 의해 창설됐다. 독일 태생의 공학자이자 경제학자로 하버드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고 독일과 스위스 기업에서 경영 실무 경험도 갖춘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 직원 3명의 사무실을 차리고 1년 남짓한 준비 기간을 거쳐 1971년 1월 24일부터 2월 7일까지 첫 회의(유러피언 매니지먼트 심포지엄)를 열었다.

31개 나라에서 450명의 참가자들이 모인 첫 회의에서는 유럽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대처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주제로 논의가 이뤄졌는데 유럽 굴지의 회사 최고경영자와 경영진, 그리고 미국의 명문 경영대학원 교수들, 기업 전략 분야의 사상가들이 참여했다.

다보스포럼의 전신인 유러피언 매니지먼트 심포지엄 첫해 모습과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 사진 (출처: 다보스포럼 공식 홈페이지 http://widgets.weforum.org/history/1971.html) 다보스포럼의 전신인 유러피언 매니지먼트 심포지엄 첫해 모습과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 사진 (출처: 다보스포럼 공식 홈페이지 http://widgets.weforum.org/history/1971.html)

흥미로운 것은 슈밥 회장 자신은 물론이고 첫해 참여한 그 어느 누구도 그때의 포럼이 훗날 세계경제포럼이라는 거대하고 비중 있는 회의체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슈밥 회장은 왜 하고많은 장소 가운데 다보스라는 작은 관광지를 개최지로 선정했을까? 오늘날 그가 80세가 될 때까지 반세기 이상 지속될 지 몰라서 그랬을까?

물론 아니다.

다보스는 다보스 포럼 공식 웹사이트에도 나와 있듯 20세기 독일문학의 대표작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소설 <마의 산Der Zauberberg>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마의 산'은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요양원을 상징하는데 이 소설은 1차 세계 대전 전에 시민사회가 끝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또 스물네 살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Hans Castorp)의 삶을 통해 시민적 주체가 사라지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평도 있다.

그런 만큼 소설에서 요양원이 위치하고 있는 다보스라는 지역은, 관광지이자 휴양지로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산속의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심신을 재충전하여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희망의 장소'로서도 읽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시대가 당면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장소로서도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해석이다.

슈밥은 처음부터 유러피안 매니지먼트 심포지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으며, 이는 후에 '다보스 정신 Davos Spirit'으로까지 명명됐다.


그런데 창립자 슈밥 회장이 다보스 포럼의 개최지를 다른 곳으로 옮길 가능성을 시사했다.

스위스 현지시간으로 지난 7일 DPA 통신은 슈밥 회장이 전날 발행된 스위스 일간 쥐트오스트슈바이츠와의 인터뷰에서 "치솟는 비용이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개최지 변경 가능성을 먼저 언급했다고 전했다.

슈밥 회장은 "다보스와 계속 협력하기를 원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2,800여 개 호텔 객실이 행사 기간 적절한 가격에 제공돼야 하고 행사 관계자들을 위한 충분한 숙박 시설이 필요하다"며 현재 호텔 방 1개의 1박 비용이 수천 유로(수백만 원)에 달하고 교회 건물까지 임시 숙소로 이용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제까지 단 한 번, 9·11 테러가 발생한 바로 다음 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연대 의식을 표시하기 위해 2002년 회의를 미국 뉴욕에서 진행한 것 외에는 절대 다보스를 떠난 적 없었던 다보스포럼이 과연 다보스를 떠나게 되는 상황이 올까?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이르는 비싼 참가비 때문에 '부자들의 말잔치 놀이터' 또는 '아이디어 교류를 위장한 로비 장소'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제는 평균 3천 명이 참가할 정도로 커져버린 전지구적 행사가 다보스를 떠나도록 과연 다보스가 순순히 내버려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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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09 06:16:54
    • 수정2019-07-09 18: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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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 포럼 또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은 매해 1월 전 세계의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이 모여 지구 상의 주요한 현안들을 논의하는 자리다.

1971년 시작된 이 회의는 올해로 49번째를 맞았는데, 원래 유러피언 매니지먼트 포럼이라는 회의체의 감독 아래 유러피언 매니지먼트 심포지엄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1987년 세계경제포럼으로 확대되었으나 '다보스 포럼'이라는 명칭으로 더 친숙하다.

다보스는 스위스 동부 그라우뷘덴주의 작은 마을로 해발고도 1,600m 가까이에 위치한 관광지다. 여름철엔 피서지, 겨울철엔 스키 휴양지로 유명하며 영국 윌리엄 왕세손 부부와 같은 유럽 왕족들과 부호들이 휴가차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다보스 포럼은 1971년 당시 만 32세에 불과했던 제네바 대학의 젊은 교수,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에 의해 창설됐다. 독일 태생의 공학자이자 경제학자로 하버드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고 독일과 스위스 기업에서 경영 실무 경험도 갖춘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 직원 3명의 사무실을 차리고 1년 남짓한 준비 기간을 거쳐 1971년 1월 24일부터 2월 7일까지 첫 회의(유러피언 매니지먼트 심포지엄)를 열었다.

31개 나라에서 450명의 참가자들이 모인 첫 회의에서는 유럽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대처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주제로 논의가 이뤄졌는데 유럽 굴지의 회사 최고경영자와 경영진, 그리고 미국의 명문 경영대학원 교수들, 기업 전략 분야의 사상가들이 참여했다.

다보스포럼의 전신인 유러피언 매니지먼트 심포지엄 첫해 모습과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 사진 (출처: 다보스포럼 공식 홈페이지 http://widgets.weforum.org/history/1971.html)
흥미로운 것은 슈밥 회장 자신은 물론이고 첫해 참여한 그 어느 누구도 그때의 포럼이 훗날 세계경제포럼이라는 거대하고 비중 있는 회의체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슈밥 회장은 왜 하고많은 장소 가운데 다보스라는 작은 관광지를 개최지로 선정했을까? 오늘날 그가 80세가 될 때까지 반세기 이상 지속될 지 몰라서 그랬을까?

물론 아니다.

다보스는 다보스 포럼 공식 웹사이트에도 나와 있듯 20세기 독일문학의 대표작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소설 <마의 산Der Zauberberg>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마의 산'은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요양원을 상징하는데 이 소설은 1차 세계 대전 전에 시민사회가 끝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또 스물네 살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Hans Castorp)의 삶을 통해 시민적 주체가 사라지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평도 있다.

그런 만큼 소설에서 요양원이 위치하고 있는 다보스라는 지역은, 관광지이자 휴양지로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산속의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심신을 재충전하여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희망의 장소'로서도 읽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시대가 당면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장소로서도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해석이다.

슈밥은 처음부터 유러피안 매니지먼트 심포지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으며, 이는 후에 '다보스 정신 Davos Spirit'으로까지 명명됐다.


그런데 창립자 슈밥 회장이 다보스 포럼의 개최지를 다른 곳으로 옮길 가능성을 시사했다.

스위스 현지시간으로 지난 7일 DPA 통신은 슈밥 회장이 전날 발행된 스위스 일간 쥐트오스트슈바이츠와의 인터뷰에서 "치솟는 비용이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개최지 변경 가능성을 먼저 언급했다고 전했다.

슈밥 회장은 "다보스와 계속 협력하기를 원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2,800여 개 호텔 객실이 행사 기간 적절한 가격에 제공돼야 하고 행사 관계자들을 위한 충분한 숙박 시설이 필요하다"며 현재 호텔 방 1개의 1박 비용이 수천 유로(수백만 원)에 달하고 교회 건물까지 임시 숙소로 이용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제까지 단 한 번, 9·11 테러가 발생한 바로 다음 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연대 의식을 표시하기 위해 2002년 회의를 미국 뉴욕에서 진행한 것 외에는 절대 다보스를 떠난 적 없었던 다보스포럼이 과연 다보스를 떠나게 되는 상황이 올까?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이르는 비싼 참가비 때문에 '부자들의 말잔치 놀이터' 또는 '아이디어 교류를 위장한 로비 장소'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제는 평균 3천 명이 참가할 정도로 커져버린 전지구적 행사가 다보스를 떠나도록 과연 다보스가 순순히 내버려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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