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호주인이 겪은 북한은? 北남성 “남한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

입력 2019.07.1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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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간첩행위 호주인" vs 알렉 시글리 "스파이 아냐"

최근 북한에 억류됐던 호주인 유학생 알렉 시글리가 풀려난 뒤 처음으로 입장을 내놨습니다.

시글리는 10일 트위터에 "내가 스파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매우 분명한 거짓"이라고 글을 올렸습니다. 이어 "내가 북한 전문매체인 NK뉴스에 전달한 자료는 블로그에 공개했던 것들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알렉 시글리는 지난해 4월부터 김일성종합대학에 유학해 조선 문학 석사 과정을 밟아왔습니다. 북한에 사는 유일한 호주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던 그는 지난달 말 갑자기 북한 당국에 체포됐습니다.

북한은 열흘쯤 뒤인 7월4일 시글리를 석방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글리가 "인터넷을 통해 모략선전행위를 하다가 지난 6월 25일 우리 해당 기관에 단속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밝혔습니다. 이어 그가 내부 실태자료들을 수집해 제공하는 '간첩행위'를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알렉 시글리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알렉 시글리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

시글리 블로그 보니 '남북 화해 지켜보는 외국인의 시선'

북한 측이 주장하는 '인터넷을 통한 모략선전행위'는 시글리가 운영해 온 블로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글리는 유학 생활을 시작한 지난해 4월부터 블로그에 '퍼스에서 평양까지'라는 북한 생활기를 연재했습니다. 퍼스는 그가 거주했던 호주의 도시 이름입니다.

시글리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본격화되던 지난해 3월 31일 중국 단둥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때문에 "남북미 정상들의 만남이 곧 이뤄질 수 있는 흥미로운 시기에 평양에서의 장기 유학생활을 하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연재 첫 글에는 "일정한 여정을 따라가거나 가이드와 동행할 필요 없이 평양을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또 "북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길 기대한다"며 기대감으로 가득합니다.

태양절 공연 초대장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태양절 공연 초대장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

호주인이 바라본 북한은?.. 北 태양절은 "크리스마스 + 설날"

블로그에는 시글리의 평양 생활이 40개 정도 글을 통해 자세하게 설명돼 있습니다. 주제도 평양의 식당과 패션, 명소, 앱스토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중 재미있는 글을 몇 개 소개해볼까 합니다.

북한에서 가장 큰 명절은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입니다. 시글리는 태양절을 겪고 "크리스마스와 설날이 합쳐진 것 같다"고 평했습니다. 크리스마스처럼 학생들이 새 교복이나 사탕 같은 선물을 받는 데다 설처럼 가족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TV 특별 프로그램이 많다는 겁니다.

이날 북한 측으로부터 '친선예술축전'에 초대받은 경험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라오스와 불가리아, 몽골 등 국가의 사람들이 나와 김 씨 일가를 찬양하는 화려한 공연을 펼쳤다고 합니다. 심지어 김정은 위원장의 인민을 향한 따뜻한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를 일본인 여성이 일본식 창법으로 불렀다고 전했습니다. 이 장면에 대해 "다소 초현실적이었다"고 시글리는 말했습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노동신문 보도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남북·북미 정상회담 노동신문 보도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

남북·북미 정상회담 때 평양 모습도 생생히 전해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 정상회담 때도 알렉 시글리는 평양에 있었습니다. 당시 평양의 분위기도 짧게나마 블로그에 언급됩니다.

시글리는 '동숙생(유학생 기숙사에서 외국인과 함께 사는 북한 학생)'에게 관련 소식을 물었지만 "아직 북한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동숙생도 중국 유학생 친구에게 미리 회담 내용을 전해 들은 상태였습니다. 동숙생은 "위대한 날"이라며 매우 기뻐했고, 남한 여성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소원까지 고백했다고 하네요.

몇 달 뒤 있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 사람들에게도 큰 관심거리였습니다. 왜 관심을 갖냐는 시글리의 물음에 북한 사람들은 "우리나라(북한)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다. 사람들은 통일을 원하고 그 과정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전해 듣고 김정은 위원장의 승리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을 보며 표정이 바보 같다고 조롱했고, 서명도 심박 수 모니터처럼 보인다며 읽을 수 없는 쓰레기라고 놀렸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제재 완화에 대한 기대도 북한 주민들에게서 읽을 수 있었다고 시글리는 밝히고 있습니다.

평양 외국 맥주 술집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평양 외국 맥주 술집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

평양 이모저모 소개.. '간첩 행위' 찾아볼 수 없어

이 밖에 블로그에 올라온 글은 대부분 북한의 음식과 평양 거리탐방 같은 일반적인 글입니다. 북한에 네덜란드 맥주인 하이네켄 술집이 있고 거기에서 일본 맥주인 아사히까지 판다며 놀라워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본 평양 풍경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평양에서 공연했던 한국의 걸그룹 레드벨벳을 식당에서 마주쳤다는 놀라운 경험까지 언급합니다.

북한을 바라보는 호주 이방인의 시선은 항상 긍정적이고 따뜻했습니다. 블로그에서 북한 측이 주장하는 '모략선전행위'나 '간첩행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억류에서 풀려난 뒤 쓴 트윗에서도 시글리는 "모든 상황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매우 특별한 장소로 간직할 평양 거리를 아마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것"이라고 아쉬워했습니다.

알렉 시글리(좌)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알렉 시글리(좌)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

북한, 외국인 억류 외교적으로 이용 전적

사실 북한이 외국인을 억류한 것은 이번 알렉 시글리 사건이 처음이 아닙니다. 북한은 과거부터 여러 차례 외국인을 자국에 붙잡아 외교적으로 이용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2년 전 '오토 웜비어' 사건입니다. 북한에 간 미국 대학생 웜비어가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다 체포돼 1년 넘게 억류됐다 의식 불명 상태로 풀려난 뒤 결국 숨진 일입니다. 그때까지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만 17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도 북한 억류 단골 국가입니다. 지난해 8월에도 일본인 관광객이 간첩 혐의로 북한 당국에 구속됐다가 추방됐습니다. 지난 1999년에는 일본 기자가 역시 간첩 혐의로 2년 넘게 억류된 적도 있습니다.

북한이 호주인 알렉 시글리를 억류한 이유는 아직 미스터리입니다. 북한과 시글리의 주장은 평행선만 달리고 있습니다. 호주 정부나 사태 해결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 스웨덴 측도 말을 아끼는 상황입니다.

당분간 이번 사건의 전말은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폐쇄 국가인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창 하나를 잃었다는 아쉬움만 남긴 채 알렉 시글리 억류 사태는 마무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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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1 0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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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간첩행위 호주인" vs 알렉 시글리 "스파이 아냐"

최근 북한에 억류됐던 호주인 유학생 알렉 시글리가 풀려난 뒤 처음으로 입장을 내놨습니다.

시글리는 10일 트위터에 "내가 스파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매우 분명한 거짓"이라고 글을 올렸습니다. 이어 "내가 북한 전문매체인 NK뉴스에 전달한 자료는 블로그에 공개했던 것들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알렉 시글리는 지난해 4월부터 김일성종합대학에 유학해 조선 문학 석사 과정을 밟아왔습니다. 북한에 사는 유일한 호주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던 그는 지난달 말 갑자기 북한 당국에 체포됐습니다.

북한은 열흘쯤 뒤인 7월4일 시글리를 석방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글리가 "인터넷을 통해 모략선전행위를 하다가 지난 6월 25일 우리 해당 기관에 단속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밝혔습니다. 이어 그가 내부 실태자료들을 수집해 제공하는 '간첩행위'를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알렉 시글리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
시글리 블로그 보니 '남북 화해 지켜보는 외국인의 시선'

북한 측이 주장하는 '인터넷을 통한 모략선전행위'는 시글리가 운영해 온 블로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글리는 유학 생활을 시작한 지난해 4월부터 블로그에 '퍼스에서 평양까지'라는 북한 생활기를 연재했습니다. 퍼스는 그가 거주했던 호주의 도시 이름입니다.

시글리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본격화되던 지난해 3월 31일 중국 단둥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때문에 "남북미 정상들의 만남이 곧 이뤄질 수 있는 흥미로운 시기에 평양에서의 장기 유학생활을 하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연재 첫 글에는 "일정한 여정을 따라가거나 가이드와 동행할 필요 없이 평양을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또 "북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길 기대한다"며 기대감으로 가득합니다.

태양절 공연 초대장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
호주인이 바라본 북한은?.. 北 태양절은 "크리스마스 + 설날"

블로그에는 시글리의 평양 생활이 40개 정도 글을 통해 자세하게 설명돼 있습니다. 주제도 평양의 식당과 패션, 명소, 앱스토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중 재미있는 글을 몇 개 소개해볼까 합니다.

북한에서 가장 큰 명절은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입니다. 시글리는 태양절을 겪고 "크리스마스와 설날이 합쳐진 것 같다"고 평했습니다. 크리스마스처럼 학생들이 새 교복이나 사탕 같은 선물을 받는 데다 설처럼 가족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TV 특별 프로그램이 많다는 겁니다.

이날 북한 측으로부터 '친선예술축전'에 초대받은 경험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라오스와 불가리아, 몽골 등 국가의 사람들이 나와 김 씨 일가를 찬양하는 화려한 공연을 펼쳤다고 합니다. 심지어 김정은 위원장의 인민을 향한 따뜻한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를 일본인 여성이 일본식 창법으로 불렀다고 전했습니다. 이 장면에 대해 "다소 초현실적이었다"고 시글리는 말했습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노동신문 보도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
남북·북미 정상회담 때 평양 모습도 생생히 전해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 정상회담 때도 알렉 시글리는 평양에 있었습니다. 당시 평양의 분위기도 짧게나마 블로그에 언급됩니다.

시글리는 '동숙생(유학생 기숙사에서 외국인과 함께 사는 북한 학생)'에게 관련 소식을 물었지만 "아직 북한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동숙생도 중국 유학생 친구에게 미리 회담 내용을 전해 들은 상태였습니다. 동숙생은 "위대한 날"이라며 매우 기뻐했고, 남한 여성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소원까지 고백했다고 하네요.

몇 달 뒤 있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 사람들에게도 큰 관심거리였습니다. 왜 관심을 갖냐는 시글리의 물음에 북한 사람들은 "우리나라(북한)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다. 사람들은 통일을 원하고 그 과정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전해 듣고 김정은 위원장의 승리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을 보며 표정이 바보 같다고 조롱했고, 서명도 심박 수 모니터처럼 보인다며 읽을 수 없는 쓰레기라고 놀렸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제재 완화에 대한 기대도 북한 주민들에게서 읽을 수 있었다고 시글리는 밝히고 있습니다.

평양 외국 맥주 술집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
평양 이모저모 소개.. '간첩 행위' 찾아볼 수 없어

이 밖에 블로그에 올라온 글은 대부분 북한의 음식과 평양 거리탐방 같은 일반적인 글입니다. 북한에 네덜란드 맥주인 하이네켄 술집이 있고 거기에서 일본 맥주인 아사히까지 판다며 놀라워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본 평양 풍경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평양에서 공연했던 한국의 걸그룹 레드벨벳을 식당에서 마주쳤다는 놀라운 경험까지 언급합니다.

북한을 바라보는 호주 이방인의 시선은 항상 긍정적이고 따뜻했습니다. 블로그에서 북한 측이 주장하는 '모략선전행위'나 '간첩행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억류에서 풀려난 뒤 쓴 트윗에서도 시글리는 "모든 상황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매우 특별한 장소로 간직할 평양 거리를 아마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것"이라고 아쉬워했습니다.

알렉 시글리(좌) [사진 출처 : 알렉 시글리 블로그]
북한, 외국인 억류 외교적으로 이용 전적

사실 북한이 외국인을 억류한 것은 이번 알렉 시글리 사건이 처음이 아닙니다. 북한은 과거부터 여러 차례 외국인을 자국에 붙잡아 외교적으로 이용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2년 전 '오토 웜비어' 사건입니다. 북한에 간 미국 대학생 웜비어가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다 체포돼 1년 넘게 억류됐다 의식 불명 상태로 풀려난 뒤 결국 숨진 일입니다. 그때까지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만 17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도 북한 억류 단골 국가입니다. 지난해 8월에도 일본인 관광객이 간첩 혐의로 북한 당국에 구속됐다가 추방됐습니다. 지난 1999년에는 일본 기자가 역시 간첩 혐의로 2년 넘게 억류된 적도 있습니다.

북한이 호주인 알렉 시글리를 억류한 이유는 아직 미스터리입니다. 북한과 시글리의 주장은 평행선만 달리고 있습니다. 호주 정부나 사태 해결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 스웨덴 측도 말을 아끼는 상황입니다.

당분간 이번 사건의 전말은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폐쇄 국가인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창 하나를 잃었다는 아쉬움만 남긴 채 알렉 시글리 억류 사태는 마무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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