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하나 漁夫之利? “봐준 건 맞는데, 황하나를 봐준 건 아니었다”

입력 2019.07.11 (17:45) 수정 2019.07.1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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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일) 또 한 건의 경찰 유착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남양유업의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 씨 사건인데요. 문제의 사건은 황 씨가 2015년 조 모 씨에게 필로폰을 건네고 함께 투약한 혐의로 입건됐지만, 경찰 조사도 받지 않고 결국 2017년 6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이 때문에 '마약 피의자로 입건됐는데 어째서 한 번도 조사를 받지 않은 거냐', '경찰이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라는 걸 알고 봐준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이에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직무유기 혐의로 당시 서울 종로경찰서 지능팀에서 황 씨 사건을 담당한 박 모 경위 등 2명을 입건하고 수사를 벌여왔습니다. 수사 결과 드러난 사실은 뜻밖이었습니다.

■ 직무유기는 맞는데…"황하나를 봐준 건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 경위는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피의자를 봐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가 있다고 판단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하지만 청탁을 한 사람은 뜻밖에도 황 씨 측이 아니었습니다.

박 경위에게 돈을 건네고 '잘 봐달라'며 청탁한 사람은 황 씨와 함께 입건된 다른 마약 피의자의 남자친구 박 모 씨였습니다. 박 씨는 류 모 씨라는 남성과 함께 모 용역업체의 대표를 지내고 있던 사람이었지요.

경찰이 밝힌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박 씨는 2015년경 당시 여자친구 A씨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조 모 씨(황 씨와 마약을 함께 투약했다고 알려진 인물입니다.)에게 마약을 건네받고 투약했다고 털어놓은 겁니다. 박 씨는 A씨가 마약을 끊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향후 수사가 진행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박씨는 같은 해 9월, 동업자 류 씨와 함께 평소 알고 지내던 박 경위를 찾아갔습니다. 이들은 조 씨 사건을 박 경위에게 제보하면서 마약을 공급한 조 씨는 강하게 처벌하고 대신 A씨는 처벌받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서 5백만 원을 박 경위에게 건넸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이 마약 사건에 황하나 씨도 연루돼있다는 사실까지 알렸습니다.

돈을 받은 박 경위, 어떻게든 사건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박 경위는 당시 '이 사건엔 재벌가 자녀가 연루돼 있어 주목을 받을 수 있으니 본인이 하고 싶다'는 취지의 보고를 상사들에게 올렸습니다. 박 경위는 당시 지능팀 소속 수사관이었습니다. 보통 마약 사건은 강력팀이나 마약수사전담팀에서 수사하는데, 이례적으로 지능팀이 맡게 된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사건을 맡은 박 경위는 우선 A씨와 황 씨에게 마약을 건넸다는 여성 조 씨를 구속시키고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조 씨가 마약을 건넸다고 경찰에 털어놓은 사람은 A씨와 황 씨를 포함해 모두 7명이었습니다. 박 경위는 이들을 모두 입건해놓고도 A씨를 포함해 단 두 사람에 대해서만 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약을 받았다는 7명 모두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결론을 내리고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A씨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돈을 건넨 박 씨와 류 씨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 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유착 의혹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그 이유에 대해서 "돈을 받은 박 경위가 관심이 있었던 건 A씨의 처벌을 면하게 하는 것뿐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 황 씨를 포함한 나머지 5명에 대해선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방치한 거죠. 한마디로 어부지리로 조사와 처벌을 모두 면했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박 경위는 최소 2010년부터 류 씨 등과 알고 지내며 여러 차례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용역업체를 운영하는 류 씨 등이 진행하는 명도 집행에 경찰을 동원시켜주기 위해 첩보를 써서 보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2015년 1월과 2월엔 명절 떡값 등을 이유로 3천만 원 정도를 받은 것도 확인됐습니다. 박 경위는 경찰 조사에서 이 돈이 뇌물이 아니라, 빌린 돈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황하나 씨는 2015년 조 모 씨에게 필로폰을 건네고 함께 투약한 혐의로 입건됐지만, 조사도 받지 않고 결국 2017년 6월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됐습니다. (사진은 해당 사건과 관련 없습니다)황하나 씨는 2015년 조 모 씨에게 필로폰을 건네고 함께 투약한 혐의로 입건됐지만, 조사도 받지 않고 결국 2017년 6월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됐습니다. (사진은 해당 사건과 관련 없습니다)

■ 황하나, 진짜 청탁 안 했나?

그래도 혹시 황 씨가 경찰에게 따로 청탁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이번 유착 의혹을 수사한 경찰도 처음부터 이 같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청탁 유무를 떠나 그래도 황 씨에 대해 조사조차하지 않은 건 문제라고 경찰은 봤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출석을 요구하지 않은 건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마약 사건 특성상 신병을 확보해 추가적으로 조사할 필요는 있었는데 그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건 직무유기라는 겁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2015년에는 처벌을 피했던 황 씨. 하지만 결국엔 법의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어제(10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황 씨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황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황 씨 측도 마약 투약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걸로 전해졌습니다. 만약 당시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어땠을까요?

황 씨가 직접 청탁을 하거나 경찰이 황 씨의 배경을 보고 사건을 봐준 건 아니지만, 경찰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게 실제로 드러났습니다. 황 씨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4년이나 늦춰졌습니다. 이른바 '황하나 봐주기' 의혹 수사는 엉뚱하게도 '황하나 어부지리'라는 황당한 결론으로 막을 내리는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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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K
오늘(11일) 또 한 건의 경찰 유착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남양유업의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 씨 사건인데요. 문제의 사건은 황 씨가 2015년 조 모 씨에게 필로폰을 건네고 함께 투약한 혐의로 입건됐지만, 경찰 조사도 받지 않고 결국 2017년 6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이 때문에 '마약 피의자로 입건됐는데 어째서 한 번도 조사를 받지 않은 거냐', '경찰이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라는 걸 알고 봐준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이에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직무유기 혐의로 당시 서울 종로경찰서 지능팀에서 황 씨 사건을 담당한 박 모 경위 등 2명을 입건하고 수사를 벌여왔습니다. 수사 결과 드러난 사실은 뜻밖이었습니다.

■ 직무유기는 맞는데…"황하나를 봐준 건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 경위는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피의자를 봐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가 있다고 판단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하지만 청탁을 한 사람은 뜻밖에도 황 씨 측이 아니었습니다.

박 경위에게 돈을 건네고 '잘 봐달라'며 청탁한 사람은 황 씨와 함께 입건된 다른 마약 피의자의 남자친구 박 모 씨였습니다. 박 씨는 류 모 씨라는 남성과 함께 모 용역업체의 대표를 지내고 있던 사람이었지요.

경찰이 밝힌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박 씨는 2015년경 당시 여자친구 A씨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조 모 씨(황 씨와 마약을 함께 투약했다고 알려진 인물입니다.)에게 마약을 건네받고 투약했다고 털어놓은 겁니다. 박 씨는 A씨가 마약을 끊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향후 수사가 진행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박씨는 같은 해 9월, 동업자 류 씨와 함께 평소 알고 지내던 박 경위를 찾아갔습니다. 이들은 조 씨 사건을 박 경위에게 제보하면서 마약을 공급한 조 씨는 강하게 처벌하고 대신 A씨는 처벌받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서 5백만 원을 박 경위에게 건넸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이 마약 사건에 황하나 씨도 연루돼있다는 사실까지 알렸습니다.

돈을 받은 박 경위, 어떻게든 사건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박 경위는 당시 '이 사건엔 재벌가 자녀가 연루돼 있어 주목을 받을 수 있으니 본인이 하고 싶다'는 취지의 보고를 상사들에게 올렸습니다. 박 경위는 당시 지능팀 소속 수사관이었습니다. 보통 마약 사건은 강력팀이나 마약수사전담팀에서 수사하는데, 이례적으로 지능팀이 맡게 된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사건을 맡은 박 경위는 우선 A씨와 황 씨에게 마약을 건넸다는 여성 조 씨를 구속시키고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조 씨가 마약을 건넸다고 경찰에 털어놓은 사람은 A씨와 황 씨를 포함해 모두 7명이었습니다. 박 경위는 이들을 모두 입건해놓고도 A씨를 포함해 단 두 사람에 대해서만 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약을 받았다는 7명 모두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결론을 내리고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A씨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돈을 건넨 박 씨와 류 씨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 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유착 의혹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그 이유에 대해서 "돈을 받은 박 경위가 관심이 있었던 건 A씨의 처벌을 면하게 하는 것뿐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 황 씨를 포함한 나머지 5명에 대해선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방치한 거죠. 한마디로 어부지리로 조사와 처벌을 모두 면했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박 경위는 최소 2010년부터 류 씨 등과 알고 지내며 여러 차례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용역업체를 운영하는 류 씨 등이 진행하는 명도 집행에 경찰을 동원시켜주기 위해 첩보를 써서 보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2015년 1월과 2월엔 명절 떡값 등을 이유로 3천만 원 정도를 받은 것도 확인됐습니다. 박 경위는 경찰 조사에서 이 돈이 뇌물이 아니라, 빌린 돈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황하나 씨는 2015년 조 모 씨에게 필로폰을 건네고 함께 투약한 혐의로 입건됐지만, 조사도 받지 않고 결국 2017년 6월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됐습니다. (사진은 해당 사건과 관련 없습니다)
■ 황하나, 진짜 청탁 안 했나?

그래도 혹시 황 씨가 경찰에게 따로 청탁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이번 유착 의혹을 수사한 경찰도 처음부터 이 같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청탁 유무를 떠나 그래도 황 씨에 대해 조사조차하지 않은 건 문제라고 경찰은 봤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출석을 요구하지 않은 건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마약 사건 특성상 신병을 확보해 추가적으로 조사할 필요는 있었는데 그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건 직무유기라는 겁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2015년에는 처벌을 피했던 황 씨. 하지만 결국엔 법의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어제(10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황 씨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황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황 씨 측도 마약 투약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걸로 전해졌습니다. 만약 당시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어땠을까요?

황 씨가 직접 청탁을 하거나 경찰이 황 씨의 배경을 보고 사건을 봐준 건 아니지만, 경찰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게 실제로 드러났습니다. 황 씨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4년이나 늦춰졌습니다. 이른바 '황하나 봐주기' 의혹 수사는 엉뚱하게도 '황하나 어부지리'라는 황당한 결론으로 막을 내리는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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