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30년 노예로 산 스님 아닌 스님”…“철저히 수사해 주세요”

입력 2019.07.13 (07:05) 수정 2019.07.1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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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32년간 계속된 노동착취와 폭행

이달 초, 한 사찰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남성이 30년 넘게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취재진은 지난 5일 해당 피해 남성 A씨를 만났습니다. A 씨는 다소 어눌한 어투로 지난 세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또렷해 보였습니다. 절에서 말로만 '스님'으로 불렸을 뿐, 주지 스님으로부터 일상적인 폭행과 노동 착취로 고생했다는 겁니다. 오갈 데 없는 몸인데다 지적 장애까지 갖고 있던 A씨의 처지를 주지 스님이 이용해왔다는 취지였습니다.

절에서 머물 당시 A 씨가 일하는 모습절에서 머물 당시 A 씨가 일하는 모습

견디다 못한 A 씨는 지난 2017년 말 지인의 도움을 받아 절을 떠났습니다. 절에 살던 또 다른 지적장애인 행자와 함께였습니다. 그 뒤 2018년 1월 주지 스님에 대해 폭행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주지 스님의 폭행 혐의와 함께 노동 착취에 대해서도 자세히 진술했지만, 경찰은 '폭행' 혐의로만 수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벌금 500만 원의 약식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주지 스님은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다음 달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주지 스님을 만나러 서울 노원구의 이 사찰을 찾아갔습니다. 지어진 지 천 년도 더 된 고찰(古刹)로 삼국시대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유서 깊은 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지 스님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주지 스님을 대신해 절에서 10여 년 이상 종무(宗務)를 맡았다는 사찰 관계자는 '잠시 출타하셨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는 A씨에 대한 노동 착취 의혹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크게 반발했습니다. 법원도 인정한 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오히려 '주지 스님이 A 씨로부터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관기사] [단독] ‘스님’이라고요?…저는 ‘노예’였습니다

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연 ‘사찰내 장애인 노동착취 및 경찰의 부실수사 규탄’ 기자회견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연 ‘사찰내 장애인 노동착취 및 경찰의 부실수사 규탄’ 기자회견

■ "00 스님이요? 그런 스님 없던데..."

그런데 KBS 보도가 나간 이후 조계종 관계자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현재 해당 사찰이 속한 교구와 감찰을 담당하는 호법부에서 이 주지 스님을 조사할 예정"이라면서, 특히 "이 사찰의 주지는 주지가 되기 위한 '품신'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조계종의 교육 과정 등 행정 절차 전반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또 다른 조계종 관계자로부터 들은 것인데, 피해자 A씨는 승적(僧籍)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것입니다. 절에서는 분명 "A씨가 염불도 잘하고 기도도 잘해서 스님으로 불렀다"라며, "A 씨는 스님이 되기 위해 절에 들어온 '행자'가 아닌 '스님'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조계종으로부터 확인한 바로는 A씨가 스님으로서 신분을 입증하는 승적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A씨가 절에서 어떤 지위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해당 절에서는 "승적만 없을 뿐 절에서는 깍듯이 '스님'으로 모셨고 원래 장애인에게는 승적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했습니다. A 씨가 경찰에 고소했을 때 분명히 주지스님의 폭행 혐의뿐 아니라 노동 착취에 대해서도 진술했음에도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기자회견 뒤 이들은 주지 스님을 장애인복지법·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또, 조계종 총무원을 찾아 철저한 조사와 내부 징계, 조계종 종단 산하 사찰의 전수조사도 요구했습니다.

장애의 몸에, 승적 명부에도 없는 말뿐인 '스님'이 30년 넘게 당한 학대와 폭행, 그리고 노동착취까지 낱낱이 밝혀달라는 게 이들의 호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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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30년 노예로 산 스님 아닌 스님”…“철저히 수사해 주세요”
    • 입력 2019-07-13 07:05:07
    • 수정2019-07-13 07:06:32
    취재후·사건후
■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32년간 계속된 노동착취와 폭행

이달 초, 한 사찰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남성이 30년 넘게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취재진은 지난 5일 해당 피해 남성 A씨를 만났습니다. A 씨는 다소 어눌한 어투로 지난 세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또렷해 보였습니다. 절에서 말로만 '스님'으로 불렸을 뿐, 주지 스님으로부터 일상적인 폭행과 노동 착취로 고생했다는 겁니다. 오갈 데 없는 몸인데다 지적 장애까지 갖고 있던 A씨의 처지를 주지 스님이 이용해왔다는 취지였습니다.

절에서 머물 당시 A 씨가 일하는 모습
견디다 못한 A 씨는 지난 2017년 말 지인의 도움을 받아 절을 떠났습니다. 절에 살던 또 다른 지적장애인 행자와 함께였습니다. 그 뒤 2018년 1월 주지 스님에 대해 폭행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주지 스님의 폭행 혐의와 함께 노동 착취에 대해서도 자세히 진술했지만, 경찰은 '폭행' 혐의로만 수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벌금 500만 원의 약식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주지 스님은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다음 달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주지 스님을 만나러 서울 노원구의 이 사찰을 찾아갔습니다. 지어진 지 천 년도 더 된 고찰(古刹)로 삼국시대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유서 깊은 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지 스님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주지 스님을 대신해 절에서 10여 년 이상 종무(宗務)를 맡았다는 사찰 관계자는 '잠시 출타하셨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는 A씨에 대한 노동 착취 의혹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크게 반발했습니다. 법원도 인정한 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오히려 '주지 스님이 A 씨로부터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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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 스님이요? 그런 스님 없던데..."

그런데 KBS 보도가 나간 이후 조계종 관계자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현재 해당 사찰이 속한 교구와 감찰을 담당하는 호법부에서 이 주지 스님을 조사할 예정"이라면서, 특히 "이 사찰의 주지는 주지가 되기 위한 '품신'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조계종의 교육 과정 등 행정 절차 전반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또 다른 조계종 관계자로부터 들은 것인데, 피해자 A씨는 승적(僧籍)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것입니다. 절에서는 분명 "A씨가 염불도 잘하고 기도도 잘해서 스님으로 불렀다"라며, "A 씨는 스님이 되기 위해 절에 들어온 '행자'가 아닌 '스님'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조계종으로부터 확인한 바로는 A씨가 스님으로서 신분을 입증하는 승적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A씨가 절에서 어떤 지위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해당 절에서는 "승적만 없을 뿐 절에서는 깍듯이 '스님'으로 모셨고 원래 장애인에게는 승적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했습니다. A 씨가 경찰에 고소했을 때 분명히 주지스님의 폭행 혐의뿐 아니라 노동 착취에 대해서도 진술했음에도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기자회견 뒤 이들은 주지 스님을 장애인복지법·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또, 조계종 총무원을 찾아 철저한 조사와 내부 징계, 조계종 종단 산하 사찰의 전수조사도 요구했습니다.

장애의 몸에, 승적 명부에도 없는 말뿐인 '스님'이 30년 넘게 당한 학대와 폭행, 그리고 노동착취까지 낱낱이 밝혀달라는 게 이들의 호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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