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주목은 하되 호들갑은 경계”…국가원수 건강을 대하는 독일 언론의 자세

입력 2019.07.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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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연주를 앉아서 듣다

독일 베를린의 연방총리실 마당에서 현지시간 11일 열린 덴마크 총리 환영행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손님인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 함께 걸어나와 의자에 앉는다. 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에도 두 총리는 시종일관 그대로 앉아 있다. 의장대 행사가 끝나서야 비로소 일어나 덴마크 총리를 회담장으로 안내하는 메르켈 총리. 그가 공식 환영행사를 앉아서 치른 데는 이유가 있다.

몸 떠는 장면 그대로 방송…3주 사이 세 번째

바로 전날인 10일 같은 장소에서 안티 린네 핀란드 총리 영접행사가 있었다. 린네 총리와 함께 서서 공식 환영행사를 치르던 메르켈 총리가 갑자기 몸을 떨기 시작했다. 메르켈 총리의 몸 떨림은 두나라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에도 계속됐다. 환영행사가 끝나고 메르켈 총리가 다시 걷기 시작한 뒤에야 몸 떨림 증상은 사라졌다.


메르켈 총리의 몸 떨림 증상이 포착된 건 최근 3주 사이 공식석상에서만 세 번째다. 지난달 18일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영접행사 때가 처음이었다. 공식 환영행사가 생방송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메르켈 총리가 몸을 심하게 떠는 모습은 그대로 독일 국민들에게 전달됐다. 두 번째는 지난달 27일 대통령궁에서 열린 법무장관 취임식이었는데, 몸 떨림을 감지한 메르켈 총리가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두 팔을 감싸 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3주 사이에 공식 행사에서 세 번째 몸 떨림 증상이 나타난 건데, 바로 다음 날 또다시 외국 정상 환영행사를 치러야 했던 독일 정부로서도 안심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의자에 앉아서 국가를 듣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나는 괜찮다, 걱정할 필요 없다”

핀란드 총리 환영행사에서 몸을 떨고 있는 메르켈 총리 입을 보면 계속해서 뭔가를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이었기 때문에 국가를 따라부르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왔지만 다른 해석도 나왔다. 입술 모양을 분석하는 전문가는 메르켈 총리가 "나는 할 수 있다(Ich schaffe das)"라고 계속 혼잣말을 했다고 분석했다. 그 해석이 맞다면 메르켈 총리는 외국 정상 환영행사를 차질 없이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자기 암시를 걸며 몸 떨림을 진정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핀란드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끝나고 공동 기자회견장에 나온 메르켈 총리. "지금 상태가 어떠냐?"는 첫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나는 매우 괜찮다"고 답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지난 행사 때의 몸떨림이 호전되는 단계인데,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아지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이런 증상을 감당해야 합니다. 저는 매우 괜찮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젤렌스키 대통령 영접행사 때는 기온이 섭씨 30도에 육박했고, 상당 시간을 뙤약볕에 서 있었다. 당시 총리실은 탈수증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 법무장관 취임식 때는 실내인데다 기온이 20도 정도였고, 핀란드 총리 환영행사 때는 기온이 14도 정도로 다소 쌀쌀하기까지 했다. 날씨나 기온 탓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당연히 독일 사회가 우려를 나타냈고, 언론들도 관련 보도를 내놓았다.

‘몸 떠는 장면’ 반복 방영…공영방송·권위지는 사실만 보도

메르켈 총리의 몸 떨림 증상은 독일 방송의 주요 뉴스였다. 뉴스전문채널인 ntv는 뉴스시간마다 메르켈 총리가 몸을 떠는 모습을 반복 방영했다. 여러 매체들이 의사 인터뷰나 스튜디오 출연을 통해 메르켈 총리의 상태를 분석하기도 했다. 신경과 전문의인 우베 얀케 박사는 메르켈 총리의 증상을 '기립성 몸 떨림'으로 분석했다. 기립성 몸 떨림은 가만히 서 있을 때 몸이 떨리는 증상으로, 걷기 시작하면 떨림 증상이 멈춘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떨림 증상을 더 강하게 하는 요인은 비타민 B12 결핍이라고 한다.

ntv의 의학전문기자인 크리스토프 슈페히트 박사도 기립성 몸 떨림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노령에 나타날 수 있는데 설명할 수 있는 원인은 없고, 큰 병은 아니라고 했다. 파킨슨병도 떨림이라는 증상이 있지만 더욱 미세하고, 메르켈 총리에게 나타난 증상은 오한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심리학 전문의 베른하르트 오젠 박사는 과거의 경험이 머리 속에 남아서 다시 떤 것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막으려 하면 더욱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노련함을 알기에 심리적인 부분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영 언론에 비해 공영방송은 사실 보도에 그쳤다. 독일 양대 공영방송인 ARD와 ZDF는 메르켈 총리가 행사에서 몸을 떨었다는 사실과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총리의 기자회견 발언만을 보도했다. 그리고 저녁 이후에는 관련 보도를 아예 내보내지도 않았다.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 가운데 하나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도 11일 1면 하단에 관련 기사를 짤막하게 실었을 뿐이다. 메르켈 총리가 공식석상에서 세 번째 몸을 떨었고, 총리가 걷기 시작하자 증상은 사라졌고, 메르켈은 괜찮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사진도 없었다. FAZ는 오히려 다음날인 12일 1면에 메르켈 총리 사진을 크게 실었는데, 이 사진은 덴마크 총리 영접행사에서 의자에 앉아있는 사진이었다.

정치인의 건강은 사적인 것?

메르켈의 몸 떨림 증상에 외국 언론도 관심을 표명했다. 영국 언론사들은 독일 정부에 메르켈 총리의 건강상태에 대해 문의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상세히 공개하는 미국에서도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도 그럴 듯이 국가원수의 건강은 단순히 개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정책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고, 때로는 국가안위와 직결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국가 정상의 건강상태는 첩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경우 지난해 남북·북미정상회담에서 건강상태 노출을 막으려 전용 화장실을 가져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 메르켈 총리 사례에서 보여준 독일 언론의 태도는 매우 절제돼 있다. 담담함을 넘어 일부에서는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냉정함도 엿보인다.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되, 과장하거나 호들갑은 떨지 않는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ZDF는 "독일에서 정치인의 건강은 사적인 것"이라고까지 지적했다. 독일에 "허리띠 아래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다. 성적인 문제와 같은 개인적이고 저급한 사안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인데, 독일 사회에서는 여기에 정치인의 건강 문제도 포함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관기사]메르켈, 세 번째 몸 떨림 증상…“걱정 안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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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주목은 하되 호들갑은 경계”…국가원수 건강을 대하는 독일 언론의 자세
    • 입력 2019-07-14 07: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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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연주를 앉아서 듣다

독일 베를린의 연방총리실 마당에서 현지시간 11일 열린 덴마크 총리 환영행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손님인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 함께 걸어나와 의자에 앉는다. 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에도 두 총리는 시종일관 그대로 앉아 있다. 의장대 행사가 끝나서야 비로소 일어나 덴마크 총리를 회담장으로 안내하는 메르켈 총리. 그가 공식 환영행사를 앉아서 치른 데는 이유가 있다.

몸 떠는 장면 그대로 방송…3주 사이 세 번째

바로 전날인 10일 같은 장소에서 안티 린네 핀란드 총리 영접행사가 있었다. 린네 총리와 함께 서서 공식 환영행사를 치르던 메르켈 총리가 갑자기 몸을 떨기 시작했다. 메르켈 총리의 몸 떨림은 두나라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에도 계속됐다. 환영행사가 끝나고 메르켈 총리가 다시 걷기 시작한 뒤에야 몸 떨림 증상은 사라졌다.


메르켈 총리의 몸 떨림 증상이 포착된 건 최근 3주 사이 공식석상에서만 세 번째다. 지난달 18일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영접행사 때가 처음이었다. 공식 환영행사가 생방송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메르켈 총리가 몸을 심하게 떠는 모습은 그대로 독일 국민들에게 전달됐다. 두 번째는 지난달 27일 대통령궁에서 열린 법무장관 취임식이었는데, 몸 떨림을 감지한 메르켈 총리가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두 팔을 감싸 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3주 사이에 공식 행사에서 세 번째 몸 떨림 증상이 나타난 건데, 바로 다음 날 또다시 외국 정상 환영행사를 치러야 했던 독일 정부로서도 안심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의자에 앉아서 국가를 듣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나는 괜찮다, 걱정할 필요 없다”

핀란드 총리 환영행사에서 몸을 떨고 있는 메르켈 총리 입을 보면 계속해서 뭔가를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이었기 때문에 국가를 따라부르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왔지만 다른 해석도 나왔다. 입술 모양을 분석하는 전문가는 메르켈 총리가 "나는 할 수 있다(Ich schaffe das)"라고 계속 혼잣말을 했다고 분석했다. 그 해석이 맞다면 메르켈 총리는 외국 정상 환영행사를 차질 없이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자기 암시를 걸며 몸 떨림을 진정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핀란드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끝나고 공동 기자회견장에 나온 메르켈 총리. "지금 상태가 어떠냐?"는 첫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나는 매우 괜찮다"고 답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지난 행사 때의 몸떨림이 호전되는 단계인데,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아지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이런 증상을 감당해야 합니다. 저는 매우 괜찮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젤렌스키 대통령 영접행사 때는 기온이 섭씨 30도에 육박했고, 상당 시간을 뙤약볕에 서 있었다. 당시 총리실은 탈수증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 법무장관 취임식 때는 실내인데다 기온이 20도 정도였고, 핀란드 총리 환영행사 때는 기온이 14도 정도로 다소 쌀쌀하기까지 했다. 날씨나 기온 탓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당연히 독일 사회가 우려를 나타냈고, 언론들도 관련 보도를 내놓았다.

‘몸 떠는 장면’ 반복 방영…공영방송·권위지는 사실만 보도

메르켈 총리의 몸 떨림 증상은 독일 방송의 주요 뉴스였다. 뉴스전문채널인 ntv는 뉴스시간마다 메르켈 총리가 몸을 떠는 모습을 반복 방영했다. 여러 매체들이 의사 인터뷰나 스튜디오 출연을 통해 메르켈 총리의 상태를 분석하기도 했다. 신경과 전문의인 우베 얀케 박사는 메르켈 총리의 증상을 '기립성 몸 떨림'으로 분석했다. 기립성 몸 떨림은 가만히 서 있을 때 몸이 떨리는 증상으로, 걷기 시작하면 떨림 증상이 멈춘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떨림 증상을 더 강하게 하는 요인은 비타민 B12 결핍이라고 한다.

ntv의 의학전문기자인 크리스토프 슈페히트 박사도 기립성 몸 떨림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노령에 나타날 수 있는데 설명할 수 있는 원인은 없고, 큰 병은 아니라고 했다. 파킨슨병도 떨림이라는 증상이 있지만 더욱 미세하고, 메르켈 총리에게 나타난 증상은 오한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심리학 전문의 베른하르트 오젠 박사는 과거의 경험이 머리 속에 남아서 다시 떤 것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막으려 하면 더욱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노련함을 알기에 심리적인 부분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영 언론에 비해 공영방송은 사실 보도에 그쳤다. 독일 양대 공영방송인 ARD와 ZDF는 메르켈 총리가 행사에서 몸을 떨었다는 사실과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총리의 기자회견 발언만을 보도했다. 그리고 저녁 이후에는 관련 보도를 아예 내보내지도 않았다.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 가운데 하나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도 11일 1면 하단에 관련 기사를 짤막하게 실었을 뿐이다. 메르켈 총리가 공식석상에서 세 번째 몸을 떨었고, 총리가 걷기 시작하자 증상은 사라졌고, 메르켈은 괜찮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사진도 없었다. FAZ는 오히려 다음날인 12일 1면에 메르켈 총리 사진을 크게 실었는데, 이 사진은 덴마크 총리 영접행사에서 의자에 앉아있는 사진이었다.

정치인의 건강은 사적인 것?

메르켈의 몸 떨림 증상에 외국 언론도 관심을 표명했다. 영국 언론사들은 독일 정부에 메르켈 총리의 건강상태에 대해 문의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상세히 공개하는 미국에서도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도 그럴 듯이 국가원수의 건강은 단순히 개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정책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고, 때로는 국가안위와 직결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국가 정상의 건강상태는 첩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경우 지난해 남북·북미정상회담에서 건강상태 노출을 막으려 전용 화장실을 가져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 메르켈 총리 사례에서 보여준 독일 언론의 태도는 매우 절제돼 있다. 담담함을 넘어 일부에서는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냉정함도 엿보인다.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되, 과장하거나 호들갑은 떨지 않는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ZDF는 "독일에서 정치인의 건강은 사적인 것"이라고까지 지적했다. 독일에 "허리띠 아래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다. 성적인 문제와 같은 개인적이고 저급한 사안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인데, 독일 사회에서는 여기에 정치인의 건강 문제도 포함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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