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허수애비입니다]① 젊은 아빠들…그들은 왜 허수애비가 되었나

입력 2019.07.1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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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적극적인 북유럽 아빠를 가리켜 '라떼파파'라 부른다. 그러나 한국은 허수애비(허수아비+애비)의 나라다. 육아휴직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자식 얼굴 보는 것도 어려운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12년 차 직장인 김 모 씨. 그의 회사는 어엿한 상장사로 업계에선 선두권으로 분류된다. 그에게 육아휴직을 쓴 남자 직원을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육아휴직이요? 아니요. 여자 직원은 가끔 있어도, 남자가 쓰는 건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그는 회사를 서너 차례 옮겼다. 거쳐 온 회사 어느 곳에서도 아빠 육아 휴직자는 없었다. 그는 "경력관리도 문제고 월급도 걱정인데, 그보다는 아예 남 직원들은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두 아이의 아빠인 그에게 앞으로 육아휴직을 쓸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육아휴직..쓰고 싶죠. 쓰고 싶은데 글쎄요. 못 쓰지 않을까요?"

정부는 올 초, 지난해(2018년) 아빠 육아휴직자가 크게 증가했다며 보도자료를 냈다. 지난해 아빠 육아휴직자가 1만 7662명으로 전년보다 46.7% 증가했다는 거다. 전체 육아휴직자 9만 9199명 중에서 남성의 비율은 17.8%였다.

아빠 육아휴직자가 늘어난 건 긍정적이다. 그런데 크게 늘었다는데 정작 주변에서는 찾기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전체 근로자 대비 비율을 따져 봤다.

육아휴직은 고용보험에 가입한 기간이 180일 이상인 근로자만 신청할 수 있다. 직장에 재직한 지 6개월이 지나야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6월 기준 임금을 받는 국내 취업자 수는 2740만 명이다. 이 가운데 남자는 1458만 명인데, 그중에서도 주 혼인 연령대인 20~30대는 519만 명이다.

즉, 20~30대 남자 근로자 519만 명 가운데 지난해 1만 7662명이 '아빠 육아휴직'을 썼다는 얘기다. 비율로 따지면 0.3%가량이다. 주변에서 찾기 힘든 이유다.


김정숙 여사는 지난달 스웨덴 남성 육아휴직자인 '라떼파파'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여사는 "한국 남자들도 용감하게 휴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이 '라떼파파'의 나라라면, 한국은 '허수애비'의 나라다. 허수애비는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남성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단적으로 육아휴직이 꼽힌다. 한국 남성들에게 아직 육아휴직은 언감생심이고 먼 나라 얘기다. 한국의 젊은 아빠들은 왜 허수애비가 됐을까?

◆ '롤모델'의 부재

한국 남성에게 육아휴직이 낯선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들에게 육아휴직을 먼저 보여줬어야 할 소위 '아버지 세대'가 일하던 시기, 육아휴직이란 없는 단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 육아휴직 제도는 1987년 무급으로 도입됐다. 처음엔 여성 근로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

남자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된 건 8년이 지난 1995년에 이르러서다. 육아휴직 대상을 남성으로 확대한 거다.

육아휴직은 가능해졌지만 확산되기 어려웠던 건 2010년까지 휴직 급여가 정액제 50만 원으로 묶여 있어서다. 통상 아빠가 가정의 주된 수입원인 상황에서 월 휴직 급여 50만 원은 넘기 힘든 강이었다.

이에 정부는 2011년 휴직급여를 통상임금의 40%로 올렸고, 이 해부터 남성 휴직자가 천 명을 넘어섰다.

분명한 건, 지금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 20~30대 남성의 '아버지 세대'가 한창 일했던 1980~90년대는 육아휴직의 불모지였다는 거다. 아버지 세대는 주 6일씩 일하며 밥 먹듯이 야근을 하던 시기였다.

여기 10년차 직장인 권 모 씨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중견기업의 부장 직함이 마지막이었다. 권 씨에게 아버지는 '항상 늦게 퇴근하며 일하느라 바빴던' 모습이다. 권 씨는 아버지를 이렇게 떠올렸다.

"지금 저는 그나마 여름휴가는 일주일, 열흘씩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반면, 아버지는 연차휴가 3~4일 쓰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하셨던 기억이 나요. 그 며칠 동안이 저희 부자에겐 신나게 노는 시간이었죠."

박은미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센터장은 이런 상황을 "안타깝다"고 표현했다. 그는 10년 넘게 여성재단에 근무한 육아 전문가다.

"가족의 문화가 바뀌어가고 있다지만 아무래도 어렸을 적 보고 자란 게 있잖아요. 어린 시절 봤던 아버지의 모습을 아빠의 역할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아빠 육아휴직을 활성화하려면 사회 모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겁니다."

◆ '사회적 인식'의 부재

10년 넘게 북유럽 생활을 하고 있는 김건 씨. 스웨덴에서 거주하는 그는 본인의 육아휴직 경험을 살려 저서까지 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였기에 스웨덴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신청할 때 많이 망설였다. 그를 놀라게 한 건 그와 면담을 한 상사의 반응이었다.

"당연히 가야 하는 거라고, 얼른 다녀오라고 하면서 조언까지 해주더라고요. 본인도 육아휴직을 다녀왔는데 어떤 점이 좋았는지도 얘기하면서요. 여기서는 육아휴직을 안 가면 주변에서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해요."

그는 육아휴직을 다녀온 후 아이와도, 아내와도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고 했다. 그는 "육아휴직을 하기 전까지는 아이의 주 양육자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는데 홀로 육아를 하니 확실히 알 수 있겠더라"고 전했다.

김 씨가 겪은 상사의 반응, 사회의 분위기가 한국에서도 가능한 얘기일까?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를 보자.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녀 400명을 조사한 결과다. 남성 답변자는 육아휴직 신청을 꺼리는 이유로 '인사고과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33.0%)'을 1순위로 꼽았다. 한 마디로 육아휴직을 다녀오면 정상적인 회사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아직 미혼인 직장인 박 모 씨. 경력 5년 차에 접어드는 그는 신입 시절 봤던 선임의 모습이 여전히 선명하다.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했는데 회사에서 사람이 없다고 계속 반려를 했나 봐요. 결국, 회사를 그만두더라고요. 배울 게 많은 분이어서 아쉬움이 컸어요."

선임의 모습은 박 씨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는 "앞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갖더라도 육아휴직을 쓰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회사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 아빠 육아휴직은 그야말로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육아휴직을 가라며 응원하는 나라와 육아휴직을 가려면 용기가 필요한 나라. 어느 쪽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일까.

박은미 센터장은 "지금까지 여성의 몫으로 인식됐던 육아에 남성이 새롭게 진입하는 건 쉽지 않을 일"이라며 "남성 육아를 돕는 정서적 지원 시설의 마련과 함께 사회 전반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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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4 10: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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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적극적인 북유럽 아빠를 가리켜 '라떼파파'라 부른다. 그러나 한국은 허수애비(허수아비+애비)의 나라다. 육아휴직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자식 얼굴 보는 것도 어려운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12년 차 직장인 김 모 씨. 그의 회사는 어엿한 상장사로 업계에선 선두권으로 분류된다. 그에게 육아휴직을 쓴 남자 직원을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육아휴직이요? 아니요. 여자 직원은 가끔 있어도, 남자가 쓰는 건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그는 회사를 서너 차례 옮겼다. 거쳐 온 회사 어느 곳에서도 아빠 육아 휴직자는 없었다. 그는 "경력관리도 문제고 월급도 걱정인데, 그보다는 아예 남 직원들은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두 아이의 아빠인 그에게 앞으로 육아휴직을 쓸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육아휴직..쓰고 싶죠. 쓰고 싶은데 글쎄요. 못 쓰지 않을까요?"

정부는 올 초, 지난해(2018년) 아빠 육아휴직자가 크게 증가했다며 보도자료를 냈다. 지난해 아빠 육아휴직자가 1만 7662명으로 전년보다 46.7% 증가했다는 거다. 전체 육아휴직자 9만 9199명 중에서 남성의 비율은 17.8%였다.

아빠 육아휴직자가 늘어난 건 긍정적이다. 그런데 크게 늘었다는데 정작 주변에서는 찾기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전체 근로자 대비 비율을 따져 봤다.

육아휴직은 고용보험에 가입한 기간이 180일 이상인 근로자만 신청할 수 있다. 직장에 재직한 지 6개월이 지나야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6월 기준 임금을 받는 국내 취업자 수는 2740만 명이다. 이 가운데 남자는 1458만 명인데, 그중에서도 주 혼인 연령대인 20~30대는 519만 명이다.

즉, 20~30대 남자 근로자 519만 명 가운데 지난해 1만 7662명이 '아빠 육아휴직'을 썼다는 얘기다. 비율로 따지면 0.3%가량이다. 주변에서 찾기 힘든 이유다.


김정숙 여사는 지난달 스웨덴 남성 육아휴직자인 '라떼파파'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여사는 "한국 남자들도 용감하게 휴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이 '라떼파파'의 나라라면, 한국은 '허수애비'의 나라다. 허수애비는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남성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단적으로 육아휴직이 꼽힌다. 한국 남성들에게 아직 육아휴직은 언감생심이고 먼 나라 얘기다. 한국의 젊은 아빠들은 왜 허수애비가 됐을까?

◆ '롤모델'의 부재

한국 남성에게 육아휴직이 낯선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들에게 육아휴직을 먼저 보여줬어야 할 소위 '아버지 세대'가 일하던 시기, 육아휴직이란 없는 단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 육아휴직 제도는 1987년 무급으로 도입됐다. 처음엔 여성 근로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

남자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된 건 8년이 지난 1995년에 이르러서다. 육아휴직 대상을 남성으로 확대한 거다.

육아휴직은 가능해졌지만 확산되기 어려웠던 건 2010년까지 휴직 급여가 정액제 50만 원으로 묶여 있어서다. 통상 아빠가 가정의 주된 수입원인 상황에서 월 휴직 급여 50만 원은 넘기 힘든 강이었다.

이에 정부는 2011년 휴직급여를 통상임금의 40%로 올렸고, 이 해부터 남성 휴직자가 천 명을 넘어섰다.

분명한 건, 지금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 20~30대 남성의 '아버지 세대'가 한창 일했던 1980~90년대는 육아휴직의 불모지였다는 거다. 아버지 세대는 주 6일씩 일하며 밥 먹듯이 야근을 하던 시기였다.

여기 10년차 직장인 권 모 씨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중견기업의 부장 직함이 마지막이었다. 권 씨에게 아버지는 '항상 늦게 퇴근하며 일하느라 바빴던' 모습이다. 권 씨는 아버지를 이렇게 떠올렸다.

"지금 저는 그나마 여름휴가는 일주일, 열흘씩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반면, 아버지는 연차휴가 3~4일 쓰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하셨던 기억이 나요. 그 며칠 동안이 저희 부자에겐 신나게 노는 시간이었죠."

박은미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센터장은 이런 상황을 "안타깝다"고 표현했다. 그는 10년 넘게 여성재단에 근무한 육아 전문가다.

"가족의 문화가 바뀌어가고 있다지만 아무래도 어렸을 적 보고 자란 게 있잖아요. 어린 시절 봤던 아버지의 모습을 아빠의 역할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아빠 육아휴직을 활성화하려면 사회 모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겁니다."

◆ '사회적 인식'의 부재

10년 넘게 북유럽 생활을 하고 있는 김건 씨. 스웨덴에서 거주하는 그는 본인의 육아휴직 경험을 살려 저서까지 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였기에 스웨덴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신청할 때 많이 망설였다. 그를 놀라게 한 건 그와 면담을 한 상사의 반응이었다.

"당연히 가야 하는 거라고, 얼른 다녀오라고 하면서 조언까지 해주더라고요. 본인도 육아휴직을 다녀왔는데 어떤 점이 좋았는지도 얘기하면서요. 여기서는 육아휴직을 안 가면 주변에서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해요."

그는 육아휴직을 다녀온 후 아이와도, 아내와도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고 했다. 그는 "육아휴직을 하기 전까지는 아이의 주 양육자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는데 홀로 육아를 하니 확실히 알 수 있겠더라"고 전했다.

김 씨가 겪은 상사의 반응, 사회의 분위기가 한국에서도 가능한 얘기일까?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를 보자.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녀 400명을 조사한 결과다. 남성 답변자는 육아휴직 신청을 꺼리는 이유로 '인사고과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33.0%)'을 1순위로 꼽았다. 한 마디로 육아휴직을 다녀오면 정상적인 회사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아직 미혼인 직장인 박 모 씨. 경력 5년 차에 접어드는 그는 신입 시절 봤던 선임의 모습이 여전히 선명하다.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했는데 회사에서 사람이 없다고 계속 반려를 했나 봐요. 결국, 회사를 그만두더라고요. 배울 게 많은 분이어서 아쉬움이 컸어요."

선임의 모습은 박 씨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는 "앞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갖더라도 육아휴직을 쓰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회사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 아빠 육아휴직은 그야말로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육아휴직을 가라며 응원하는 나라와 육아휴직을 가려면 용기가 필요한 나라. 어느 쪽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일까.

박은미 센터장은 "지금까지 여성의 몫으로 인식됐던 육아에 남성이 새롭게 진입하는 건 쉽지 않을 일"이라며 "남성 육아를 돕는 정서적 지원 시설의 마련과 함께 사회 전반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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