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헛간에 신생아가?…할머니들이 전하는 그 날

입력 2019.07.15 (08:32) 수정 2019.07.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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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요즘 시골에서 아기 울음소리 듣기 참 힘들죠.

그런데 경남 밀양의 한 시골 마을에 난데없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안타깝게도 누군가가 마을 빈 헛간에 갓 태어난 아기를 버리고 간 건데요.

탯줄도 안 떨어진 신생아를 발견하고 구한 건 바로 마을 할머니들이었습니다.

할머니들은 신생아를 어떻게 구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확인해 보시죠.

[리포트]

경남 밀양의 한 시골 마을.

지난 11일 오전, 여느 때처럼 아침 운동을 마치고 노인회관에 모인 마을 할머니들은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성자/밀양시 내이동 : "(아침밥) 먹고 나니까 한 할머니가 오는 거라. '저기 우리 집에 가 봐라' 해서 '너희 집에 뭐 하려고?' 물으니까 아기가 헛간에 누워 있더라 해서……."]

갓 태어난 아기가 헛간에 놓여 있다는 말에 놀란 할머니들은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자, 여기가 바로 아기가 놓여 있었다는 헛간인데요.

["이 집이었거든요"]

한 눈에 봐도 열악해 보입니다.

여기저기 쓰레기가 나뒹굴고, 동물 배설물까지 있는 어두컴컴하고 외진 공간, 오물 더미 한 편에 아기가 있었습니다.

[채징자/밀양시 내이동 : "여기 보자기에 딱 누워 있었어요. 누워 있는데 보니까 모기랑 개미도 달라붙고 막 파리가 많이 붙어 있어."]

온갖 벌레들이 들끓는 곳에 신생아로 보이는 아기가 있었지만 할머니들은 선뜻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채징자/밀양시 내이동 : "아기가 죽었나 싶어서 다시 물러섰어요. 아기가 죽었나 어떻게 됐나 살지 못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걱정하고 있으니까 삼신도 살리려고 돌보는지 애가 막 울고 인상을 쓰는 거예요."]

할머니들 인기척에 반응을 보인 아기.

그 때부터 할머니들은 아기를 살리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습니다.

[채징자/밀양시 내이동 : "아이고 눈 뜨는 거 보니까 살았다 싶어서 그 때부터 여럿이 살펴 보니까 아기가 생기가 있어요."]

헛간에서 가장 가까운 집으로 달려가 소독한 가위를 들고 와서 탯줄부터 끊었습니다.

[채징자/밀양시 내이동 : "여기 탯줄이 있으면 위쪽은 생생한데 끝은 말라 있었어요. 그래서 마른 쪽을 끊었어요."]

탯줄을 끊고는 아기를 품에 안고 노인회관까지 다시 뛰었습니다.

급한 대로 대야를 마련해 목욕물을 받고 따뜻한 물로 정성껏 씻겼습니다.

[김성자/밀양시 내이동 : "대야 여기 놓고 물을 가스에 끓여서 따뜻한 물에 찬물 섞잖아요. 섞어서 (할머니) 셋이서 붙잡고 씻겼지. 다리에 모기가 물어서 빨갛고 등에 나락이 여기 붙어 있더라. 그거 떼고 그랬지."]

발견 당시 아기의 모습입니다. 온 몸 여기저기 벌레 물린 자국이 가득하죠.

몇몇 할머니가 아기를 씻기는 사이 또 다른 할머니들은 마을 슈퍼마켓으로 뛰어갔습니다.

[박규태/밀양시 내이동 : "아기가 배가 얼마나 고프겠나 싶어서 그래서 사 왔지. 우유라도 좀 먹이고 보내려고."]

이른 아침, 구할 수 없었던 분유 대신 우유라도 살 수밖에 없었답니다.

[설영팔/밀양시 내이동 : "입이 말라서 이렇게 붙었더라. 입술 위에 좀 적셔 주고 하면 낫겠다 싶어서 그래서 사 왔지."]

짧은 시간 동안 할머니들이 아기를 극진히 보살피는 사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이 도착했고, 신생아 격리실이 있는 창원의 종합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김지원/밀양소방서 삼문119센터 : "마을 주민들이 탯줄을 자르고 이미 목욕하고 보온 상태로 수건이나 담요 같은 거 감싸서 그대로 저희가 인수인계 받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할머니들이 구한 이 아기, 어떻게 됐을까요?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하고, 담요에 쌓인 아기를 받아 든 간호사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새도 없이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배규민/한마음창원병원 기획팀장 : "아기 건강은 많이 호전되었고, 눈도 잘 뜨고 있고요. 다만 벌레 물린 곳이라든지 피부 염증 같은 게 있어요. 그런 게 가려운 모양입니다. 염증하고 이런 것들 가라앉혀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고……."]

병원에서는 탯줄의 상태 등으로 볼 때 발견 당시를 생후 2-3일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경찰은 아기를 마을 헛간에 유기한 사람을 추적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진형/밀양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장 : "저희들이 CCTV 분석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주민들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계속 진행 중입니다. 현재까지는 울음 소리라든지 낯선 사람을 봤다는 목격자를 못 만나고 있습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외진 헛간에 누가 아기를 버리고 간 걸까 마을 할머니들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채징자/밀양시 내이동 : "한평생 살아도 우리 알기는 처음이라 이런 일이."]

[김성자/밀양시 내이동 : "여기는 처자도 없고 총각도 없어. 우리 동네는 할머니들만 수두룩하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 모두 한 마음으로 구한 귀한 생명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먼저입니다.

[채징자/밀양시 내이동 : "우리도 자식 키우는 사람인데. 자식 하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상을 하나 딱 만들어 와서 갖다 줘야 하는데 맞죠?) 상도 귀찮고 생명 하나 살렸으면 됐어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상 뭐 하려고. 생명 하나 살아 나간 게 얼마나 영광인 줄 모릅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영광입니다."]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던 아기를 신속한 응급조치로 살린 할머니들.

덕분에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아기는 퇴원하는 대로 지역 아동보호센터로 인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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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헛간에 신생아가?…할머니들이 전하는 그 날
    • 입력 2019-07-15 08:33:44
    • 수정2019-07-15 11: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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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요즘 시골에서 아기 울음소리 듣기 참 힘들죠.

그런데 경남 밀양의 한 시골 마을에 난데없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안타깝게도 누군가가 마을 빈 헛간에 갓 태어난 아기를 버리고 간 건데요.

탯줄도 안 떨어진 신생아를 발견하고 구한 건 바로 마을 할머니들이었습니다.

할머니들은 신생아를 어떻게 구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확인해 보시죠.

[리포트]

경남 밀양의 한 시골 마을.

지난 11일 오전, 여느 때처럼 아침 운동을 마치고 노인회관에 모인 마을 할머니들은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성자/밀양시 내이동 : "(아침밥) 먹고 나니까 한 할머니가 오는 거라. '저기 우리 집에 가 봐라' 해서 '너희 집에 뭐 하려고?' 물으니까 아기가 헛간에 누워 있더라 해서……."]

갓 태어난 아기가 헛간에 놓여 있다는 말에 놀란 할머니들은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자, 여기가 바로 아기가 놓여 있었다는 헛간인데요.

["이 집이었거든요"]

한 눈에 봐도 열악해 보입니다.

여기저기 쓰레기가 나뒹굴고, 동물 배설물까지 있는 어두컴컴하고 외진 공간, 오물 더미 한 편에 아기가 있었습니다.

[채징자/밀양시 내이동 : "여기 보자기에 딱 누워 있었어요. 누워 있는데 보니까 모기랑 개미도 달라붙고 막 파리가 많이 붙어 있어."]

온갖 벌레들이 들끓는 곳에 신생아로 보이는 아기가 있었지만 할머니들은 선뜻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채징자/밀양시 내이동 : "아기가 죽었나 싶어서 다시 물러섰어요. 아기가 죽었나 어떻게 됐나 살지 못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걱정하고 있으니까 삼신도 살리려고 돌보는지 애가 막 울고 인상을 쓰는 거예요."]

할머니들 인기척에 반응을 보인 아기.

그 때부터 할머니들은 아기를 살리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습니다.

[채징자/밀양시 내이동 : "아이고 눈 뜨는 거 보니까 살았다 싶어서 그 때부터 여럿이 살펴 보니까 아기가 생기가 있어요."]

헛간에서 가장 가까운 집으로 달려가 소독한 가위를 들고 와서 탯줄부터 끊었습니다.

[채징자/밀양시 내이동 : "여기 탯줄이 있으면 위쪽은 생생한데 끝은 말라 있었어요. 그래서 마른 쪽을 끊었어요."]

탯줄을 끊고는 아기를 품에 안고 노인회관까지 다시 뛰었습니다.

급한 대로 대야를 마련해 목욕물을 받고 따뜻한 물로 정성껏 씻겼습니다.

[김성자/밀양시 내이동 : "대야 여기 놓고 물을 가스에 끓여서 따뜻한 물에 찬물 섞잖아요. 섞어서 (할머니) 셋이서 붙잡고 씻겼지. 다리에 모기가 물어서 빨갛고 등에 나락이 여기 붙어 있더라. 그거 떼고 그랬지."]

발견 당시 아기의 모습입니다. 온 몸 여기저기 벌레 물린 자국이 가득하죠.

몇몇 할머니가 아기를 씻기는 사이 또 다른 할머니들은 마을 슈퍼마켓으로 뛰어갔습니다.

[박규태/밀양시 내이동 : "아기가 배가 얼마나 고프겠나 싶어서 그래서 사 왔지. 우유라도 좀 먹이고 보내려고."]

이른 아침, 구할 수 없었던 분유 대신 우유라도 살 수밖에 없었답니다.

[설영팔/밀양시 내이동 : "입이 말라서 이렇게 붙었더라. 입술 위에 좀 적셔 주고 하면 낫겠다 싶어서 그래서 사 왔지."]

짧은 시간 동안 할머니들이 아기를 극진히 보살피는 사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이 도착했고, 신생아 격리실이 있는 창원의 종합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김지원/밀양소방서 삼문119센터 : "마을 주민들이 탯줄을 자르고 이미 목욕하고 보온 상태로 수건이나 담요 같은 거 감싸서 그대로 저희가 인수인계 받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할머니들이 구한 이 아기, 어떻게 됐을까요?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하고, 담요에 쌓인 아기를 받아 든 간호사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새도 없이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배규민/한마음창원병원 기획팀장 : "아기 건강은 많이 호전되었고, 눈도 잘 뜨고 있고요. 다만 벌레 물린 곳이라든지 피부 염증 같은 게 있어요. 그런 게 가려운 모양입니다. 염증하고 이런 것들 가라앉혀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고……."]

병원에서는 탯줄의 상태 등으로 볼 때 발견 당시를 생후 2-3일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경찰은 아기를 마을 헛간에 유기한 사람을 추적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진형/밀양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장 : "저희들이 CCTV 분석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주민들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계속 진행 중입니다. 현재까지는 울음 소리라든지 낯선 사람을 봤다는 목격자를 못 만나고 있습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외진 헛간에 누가 아기를 버리고 간 걸까 마을 할머니들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채징자/밀양시 내이동 : "한평생 살아도 우리 알기는 처음이라 이런 일이."]

[김성자/밀양시 내이동 : "여기는 처자도 없고 총각도 없어. 우리 동네는 할머니들만 수두룩하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 모두 한 마음으로 구한 귀한 생명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먼저입니다.

[채징자/밀양시 내이동 : "우리도 자식 키우는 사람인데. 자식 하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상을 하나 딱 만들어 와서 갖다 줘야 하는데 맞죠?) 상도 귀찮고 생명 하나 살렸으면 됐어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상 뭐 하려고. 생명 하나 살아 나간 게 얼마나 영광인 줄 모릅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영광입니다."]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던 아기를 신속한 응급조치로 살린 할머니들.

덕분에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아기는 퇴원하는 대로 지역 아동보호센터로 인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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