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동남아 대신 풀빌라?…“11만 원 환불 안 받아도 그만이지만…”

입력 2019.07.15 (09:50) 수정 2019.07.1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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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성수기 주말, 4인 기준 하룻밤 이용료 50만 원 이상. 동남아시아 유명 관광지의 호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몇 해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우리나라의 '풀 빌라'(pool villa) 이야기입니다. 풀 빌라는 단어 뜻 그대로 수영장이 갖춰져 있는 숙박시설을 말합니다. 다른 숙박객과 함께 사용하는 수영장부터 자신만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방에 따로 갖춰진 수영장까지 풀빌라 유형은 다양합니다.

호텔처럼 번잡한 느낌은 덜 하면서도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비큐 시설이 완비돼 있고, 거기에다 근처 강이나 호수, 산과 같은 자연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날로 인기입니다. '풀 빌라'라는 숙박업종이 따로 있는 게 아닌 탓에 정확히 어느 지역에 몇 곳이나 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가평, 강릉, 여수 등에 이런 시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가평 풀빌라'로 검색하면 200개 넘는 곳이 운영 중인 것으로 나옵니다.

"후기도 좋았고, 기대를 많이 했는데…취소하는 과정에서 억울했죠."

사실 단순히 요금이 비싸다는 이유로 문제 삼을 순 없습니다. 가격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자유롭게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공공재가 아니라면, 비싸면 이용 안 하면 그만입니다. 가격을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풀 빌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싸면 안 가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그 값을 주고 이용한다면 값에 맞는 서비스를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또한, 부득이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제대로 된 환불을 받을 필요도 있습니다.


취재진에게 제보한 A 씨도 풀 빌라의 비싼 가격이 부담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1년에 한 번 가는 여름휴가이기에 큰마음을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포털사이트의 후기를 살펴본 뒤 경기도 가평의 한 풀 빌라를 성수기 주말 1박 2일, 방 2개에 110만 원을 주고 예약했습니다. 일부 수상놀이도 포함된 가격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사용예정일 20여 일을 앞두고 취소를 했습니다.

하지만 환불 요청에 입금된 돈은 110만 원이 아닌 99만 원이었습니다. 업체가 예약금의 10%인 11만 원을 빼고 돌려준 겁니다. A 씨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취소한 것도 아니고 20여 일이나 남은 시점이었기에 업체 측도 새로운 이용객을 구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업체가 '패널티' 성격으로 이용예약금의 10%를 공제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에 어긋나는데도…'내 맘대로' 약관

취재진이 가평군 청평호 부근의 풀빌라 8곳의 약관을 찾아봤더니, 8곳 모두 '기본 취소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예약금의 10%를 공제한다는 약관 규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용예정일을 한 달 남기고 취소하든, 두 달 남기고 취소하든 무조건 10%를 떼야겠다는 겁니다. 예약한 날에 취소해도 10%를 뗀다고 쓰여있습니다. 업체들은 이용자의 갑작스러운 예약 취소에 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패널티라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는 숙박업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어긋납니다. 업체는 자체적으로 만든 약관이 우선한다고 말하지만, 한국소비자원의 설명은 다릅니다. 자체약관이 우선할 수는 있지만, 만약 그 약관이 소비자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면 무효로 한다는 약관규제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 '과중한'의 기준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한 숙박업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릅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성수기 주말 소비자의 사유로 계약이 해제된다면, 사용예정일 10일 전 또는 계약체결 당일 취소 시 예약금의 100%를 모두 돌려받아야 합니다. 심지어 사용예정일 당일 취소해도 10%는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업체들은 이 기준보다 10% 포인트씩 더 공제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네들 룰이라고 해야 하나, 서로 맞춰서 정하겠죠"

가평군 지역의 한 풀빌라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환불 비율이 어떻게 정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네(풀 빌라)들 나름대로의 룰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서로 맞춰서 정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풀 빌라의 관계자도 "환불 약관은 관례적으로 대부분이 그렇게 하고 있어서,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해서 정해놓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풀 빌라들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에 어긋나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소비자가 불리한 약관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면 한국소비자원에 분쟁조정신청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합니다. 분쟁조정신청에 따라 결론이 나기까지 여러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탓에 수개월씩 걸립니다. 그리고 수개월씩 걸린 후 결론이 나오더라도 강제성이 없어서 업주가 이행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다만 조정 결정을 바탕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승소 확률은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선 A 씨 사례처럼 못 받은 금액 11만 원을 받기 위해 수개월씩 이런 일을 해낸다는 건 인내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은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이 큽니다.

A씨도 "전액을 환불해줄 것을 요구하자 업체가 '수수료를 떼야겠으니 마음대로 해라, 분쟁조정을 신청해라'라는 태도에 화가 났다"면서도 "부당하다는 걸 알지만 환불받기까지의 긴 기간과 수고로움 때문에 중간에 포기할 것 같고, 그래서 업체들이 자체 소비자 약관을 들면서 수수료 규정을 유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11만 원은 안 받아도 그만이지만 업체의 '배 째라'식 태도는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공정한 약관 규정으로 자정 노력 보여주길...


휴가철마다 반복되는 기사 중 하나는 '성수기 바가지요금' 뉴스입니다. 저가항공사 등의 영향으로 해외여행이 더 활발해진 지금, 국내 관광업계도 좋은 서비스와 이에 걸맞은 가격으로 생존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올해 여름 소비자가 선택할 것입니다.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으로 영업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먼저 자정 노력을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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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5 09:50:54
    • 수정2019-07-15 09:51:13
    취재후·사건후
여름 성수기 주말, 4인 기준 하룻밤 이용료 50만 원 이상. 동남아시아 유명 관광지의 호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몇 해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우리나라의 '풀 빌라'(pool villa) 이야기입니다. 풀 빌라는 단어 뜻 그대로 수영장이 갖춰져 있는 숙박시설을 말합니다. 다른 숙박객과 함께 사용하는 수영장부터 자신만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방에 따로 갖춰진 수영장까지 풀빌라 유형은 다양합니다.

호텔처럼 번잡한 느낌은 덜 하면서도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비큐 시설이 완비돼 있고, 거기에다 근처 강이나 호수, 산과 같은 자연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날로 인기입니다. '풀 빌라'라는 숙박업종이 따로 있는 게 아닌 탓에 정확히 어느 지역에 몇 곳이나 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가평, 강릉, 여수 등에 이런 시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가평 풀빌라'로 검색하면 200개 넘는 곳이 운영 중인 것으로 나옵니다.

"후기도 좋았고, 기대를 많이 했는데…취소하는 과정에서 억울했죠."

사실 단순히 요금이 비싸다는 이유로 문제 삼을 순 없습니다. 가격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자유롭게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공공재가 아니라면, 비싸면 이용 안 하면 그만입니다. 가격을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풀 빌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싸면 안 가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그 값을 주고 이용한다면 값에 맞는 서비스를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또한, 부득이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제대로 된 환불을 받을 필요도 있습니다.


취재진에게 제보한 A 씨도 풀 빌라의 비싼 가격이 부담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1년에 한 번 가는 여름휴가이기에 큰마음을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포털사이트의 후기를 살펴본 뒤 경기도 가평의 한 풀 빌라를 성수기 주말 1박 2일, 방 2개에 110만 원을 주고 예약했습니다. 일부 수상놀이도 포함된 가격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사용예정일 20여 일을 앞두고 취소를 했습니다.

하지만 환불 요청에 입금된 돈은 110만 원이 아닌 99만 원이었습니다. 업체가 예약금의 10%인 11만 원을 빼고 돌려준 겁니다. A 씨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취소한 것도 아니고 20여 일이나 남은 시점이었기에 업체 측도 새로운 이용객을 구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업체가 '패널티' 성격으로 이용예약금의 10%를 공제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에 어긋나는데도…'내 맘대로' 약관

취재진이 가평군 청평호 부근의 풀빌라 8곳의 약관을 찾아봤더니, 8곳 모두 '기본 취소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예약금의 10%를 공제한다는 약관 규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용예정일을 한 달 남기고 취소하든, 두 달 남기고 취소하든 무조건 10%를 떼야겠다는 겁니다. 예약한 날에 취소해도 10%를 뗀다고 쓰여있습니다. 업체들은 이용자의 갑작스러운 예약 취소에 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패널티라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는 숙박업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어긋납니다. 업체는 자체적으로 만든 약관이 우선한다고 말하지만, 한국소비자원의 설명은 다릅니다. 자체약관이 우선할 수는 있지만, 만약 그 약관이 소비자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면 무효로 한다는 약관규제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 '과중한'의 기준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한 숙박업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릅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성수기 주말 소비자의 사유로 계약이 해제된다면, 사용예정일 10일 전 또는 계약체결 당일 취소 시 예약금의 100%를 모두 돌려받아야 합니다. 심지어 사용예정일 당일 취소해도 10%는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업체들은 이 기준보다 10% 포인트씩 더 공제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네들 룰이라고 해야 하나, 서로 맞춰서 정하겠죠"

가평군 지역의 한 풀빌라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환불 비율이 어떻게 정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네(풀 빌라)들 나름대로의 룰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서로 맞춰서 정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풀 빌라의 관계자도 "환불 약관은 관례적으로 대부분이 그렇게 하고 있어서,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해서 정해놓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풀 빌라들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에 어긋나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소비자가 불리한 약관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면 한국소비자원에 분쟁조정신청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합니다. 분쟁조정신청에 따라 결론이 나기까지 여러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탓에 수개월씩 걸립니다. 그리고 수개월씩 걸린 후 결론이 나오더라도 강제성이 없어서 업주가 이행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다만 조정 결정을 바탕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승소 확률은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선 A 씨 사례처럼 못 받은 금액 11만 원을 받기 위해 수개월씩 이런 일을 해낸다는 건 인내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은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이 큽니다.

A씨도 "전액을 환불해줄 것을 요구하자 업체가 '수수료를 떼야겠으니 마음대로 해라, 분쟁조정을 신청해라'라는 태도에 화가 났다"면서도 "부당하다는 걸 알지만 환불받기까지의 긴 기간과 수고로움 때문에 중간에 포기할 것 같고, 그래서 업체들이 자체 소비자 약관을 들면서 수수료 규정을 유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11만 원은 안 받아도 그만이지만 업체의 '배 째라'식 태도는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공정한 약관 규정으로 자정 노력 보여주길...


휴가철마다 반복되는 기사 중 하나는 '성수기 바가지요금' 뉴스입니다. 저가항공사 등의 영향으로 해외여행이 더 활발해진 지금, 국내 관광업계도 좋은 서비스와 이에 걸맞은 가격으로 생존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올해 여름 소비자가 선택할 것입니다.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으로 영업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먼저 자정 노력을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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